메두사의 땟목 / '소설, 때대로 맑음' 중에서
마카르에게 추억이란 걸핏하면 물려고 대드는 뱀이었다. 그는 그 뱀의 허리를 분질러버렸다. 아직 모든 뱀을 죽인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여전히 하찮은 기억이 떠올라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구도 생활을 위협하는 가장 큰 독은 추억이다. 가족을 비롯해서 세속에서 맺은 인연이 떠오르면 명상이 흐려진다. 뭇 인연의 독사에 물리면 그간 쌓은 공든 탑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케르가 허리를 꺾은 그의 세속 시절을 되짚어보자.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 마케르는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 간다. 번듯한 외모 덕분에 그는 주인집 딸의 환심을 받아 인연을 맺는다. 당시에 귀족 여인들과 맺은 관계가 발각되면 노예는 목이 잘렸다. 그의 목숨을 아깝게 여긴 주인집 딸의 충고에 따라 마케르는 도시에서 도망친다. 그는 나루터에서 마술사 무리를 만난다. 그들은 실연당한 사람들에게 제웅/물을 팔고 주문을 가르쳐주는 사기꾼들이었다. 흙으로 빚은 인형 제웅/물에 은바늘을 꽂으면 떠나간 연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는 미신을 퍼뜨리는 무리에 끼게 된 것이다. 혹세무민을 일삼는 그들과 어울려 묘지 도굴에까지 가담한 마케르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를 숨겨준 은인에게서 예수의 삶과 은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귀동냥하지만 다시 빵 장수의 눈에 들어 제빵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빵 굽는 일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성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를 득도로 이끌어줄 스승을 찾아 나선다. 사막과 돌산을 헤맨 끝에 공동묘지에 움막을 틀고 집단생활을 하는 수 도승 무리를 만난다. 그러나 은수자의 움막 앞에 엎드려 꼬박 사흘 동안 애원해도 아무도 그를 제자로 거두지 않는다. 신을 입에 올리고 기도를 한다는 행동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그 오만을 버리지 못한 자는 제자로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가혹한 육체적 고행을 견딘다는 데에서 비롯된 은밀한 자부심, 오만을 버리는 것이 수행의 첫걸음이다. 끊임없이 명상하려고 했지만 생각은 늙은 원숭이처럼 날뛰었다”. 그의 스승 크로니오스는 마케르에게 명상과 울력을 금지하고 공동묘지로 가라고 명령한다.
-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 여기에서 대여섯 시간 걸으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이지요. 이곳에 오다가 보았는데 에둘러 왔습니다.
- 그곳으로 가라. 무덤 앞에 서서 죽은 자들에게 욕을 해라. 그들에게 돌을 던져라. 모든 것을 짓밟거라.
(······)
마케르는 무덤을 파헤치고 온갖 욕을 생각해냈다. 묘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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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지 25년이 지난 늙은 귀족을 선장으로 임명한 권력층부터 시작해서 특권층만태우고 뗏목과 구명정에 연결한 줄마저 끊어버린 선장, 의학적 지식을 활용해서 인육을 해체하여 나눠 먹는 데에 앞장선 외과의사 등 메두사호의 침몰과 뗏목을 둘러싼 사건은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보여주는 축도였다. 이 사건에 흥미를 느낀 젊은 화가가 있었다.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당한 젊은 화가는 메디치가 가족묘에 그림을 그리면서 연인을 잊고자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런데 잊기는커녕 그는 무수한 에로틱한 그림만 그렸다. 다시 파리로 돌아온 그는 메두사의 뗏목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그의 이름은 테오도르 제리코이다.
그는 이 사건의 생존자 중에서 뗏목을 만들었던 목수와 사건에 대한 증언을 신문에 기고한 외과의사 장 밥티스트 사비니를 만났다.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뗏목의 모형과 밀랍인형을 만들었다. 보증 병원 근처에 넓은 작업실을 구하고 병원에서 의사들이 연구용으로 사용한 시체와 인체 부위를 구했다. 작업실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바람에 일이 끝난 저녁마다 시체를 지붕에 올려두었다. 화폭의 크기는 가로 7미터, 세로 5미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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