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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신은 인간이 만든 장난감(수정)

신은 인간이 만든 장난감(수정)

 

인간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어서 신전을 만들어 그 안에서 기거하게 했다. 비슷한 관점에서 흐르는 시간의 존재를 잡을 수 없어서 시계를 만들었다. 때로는 인간이 오를 수 없었던 히말라야의 고봉을 신이 사는 곳이라 하여 숭배하기도 했다. 그곳들을 신과 시간이 사는 곳으로 한정하였다. 시간은 그대로 장난감이지만, 신은 신전을 벗어나 인간세계로 나와 인간을 호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악한 직업종교인 또는 경제적 종교인인 사제들이 뒤에서 태엽을 감아 작동하는 장난감병정의 역할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과학과 철학 종교의 비교는 우월의 차원이 아닌 방향의 차이일 뿐이며, 자연, 특히 산은 극복의, 우월 비교의 대상이 아니므로 산에서의 명상은 정신과 육체의 화해를 위한 도전이며 자연과 인간의 화해를 위한 기도다.

 

신의 존재증명에 관한 논쟁은 오랜 숙제이다. (神)의 존재(存在)와 신의 부존재에 대한 주장은 철학자신학자과학자 등 매우 많은 사람들이 제기해 왔다. 신의 존재 여부는 철학과 대중문화 모두에서 활발한 논쟁 거리이다. 또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 그 존재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의 입장이 있다.

 

1. 자연신학적 증명 - 이 세계가 아름답고 또한 합리적이며 완전한 질서를 지니고 있는 이상, 이 세계를 창조했던 현명한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

반박: “이 세계가 아름답고, 합리적이며, 완전한 질서를 지녔다.”라는 ‘명제’는 인식주체의 주관에 불과하므로, 올바른 전제라고 할 수 없다.

2. 우주론적 증명 - 자연계의 인과관계(因果關係)를 거쳐 계속하여 원인을 규명해 나간다면 최초의 제1원인으로서의 신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반박: 제1원인이 그것의 존재 근거가 상정되지 않는, 즉 원인이 없는 자기원인이라면 자연 그 자체도 자기원인이라고 상정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으므로, 신을 제1원인으로 놓는 것은 필연적 결론이 아니다.

3. 존재론적(본체론적) 증명 - 인간은 불완전하고 상호간에 관련이 있으므로 완전무결하다고 생각되는 것, 즉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

반박: “인간은 불완전하다.”라는 ‘명제’는 인식주체의 주관에 불과하므로, 올바른 전제라고 할 수 없다.

4. 목적론적 증명 - 자연이 어디까지나 목적에 적응한 질서를 지니고 있는 이상, 자연 전체의 설계자로서의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

반박: 자연의 운동이 누군가에 의해 부여된 목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의 본성에 따른 운동이라고 한다면 목적론적 증명은 부당한 전제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도덕적 증명 - 우리에게 그 실행을 강력히 요구하는 도덕 법칙의 원천으로서 신을 생각할 수 있다.

반박: 도덕 법칙은 각 지역과 나라마다 그 세부적 차이를 보이며,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도덕 법칙의 근저에 ‘완전무결한 신’이 있다는 필연적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

6. 미학적 증명 - 미술이 진리가 될 수 있으며 미를 통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이다.

반박: 미술이 진리가 된다는 주장은 충분한 근거로 뒷받침되지 못하므로, 부당한 전제에 기반한 주장이다.

7. 믿음의 유추 -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게 되는 방식이다.

반박: 성경 내용의 당위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을 진리로 믿지 않는다면 신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된다.

8. 지적설계 - 창조물에 나타난 지적인 설계(의도적 요소)를 통하여 신의 존재를 좀 더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시도이다.

반박: 과학적 이론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실재로 신의 설계에 의해 창조가 사실이라고 해도 신을 거부하면 효력이 없다.

 

불가지론不可知論신의 존재에 대한 진위는 알려져있지 않거나 알 수 없다는 관점이다. 불가지론에 대한 설명 또한 광대하므로 여기서는 더 들어가지 않는다.

 

종교와 과학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내로남불의 관계이며, 과학은 철학에게 종교를 끌어들여서는 자신에게 접근하지 마라고 한다. 과학의 입장에서 논리실증주의에 입각한 실험과 관측을 통한 증명 외에는 어떤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므로 형이상학적 입장의 종교는 그러한 형이하학적 방법으로는 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므로 둘의 관계는 절대 통합 불가능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신을 숭배하든 하지 않든 성자들의 몫이 아니고 자연이므로, 자연을 더 깊이 연구하고 그 연구의 결과를 통해 삶을 조금씩 바꿔가는 과학자들의 주장은 신이 할 일이 없는 시대의 대명제이다.

 

선과 악은 자신의 방향과 입장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의 높은 산이거나 바벨탑 같은 것, 자연의 신에게 도전해봤지만 인간의 한계는 여전해서 실패했다. 상상력이 만든 신은 도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노는 대상, 즉 인간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만든 장난감에 지나지 않다. 인간은 전쟁의 신, 야훼를 전지전능의 신으로 만들어 놓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다. 마침내 장난감의 속내를 눈치 채고 자신에게 필요한 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늘어가자 삼위일체설을 만들어 포장하여 업그레이드 시킨다. 고대 인도인들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창조의 신 브라만과 영원불변의 자아, 즉 아트만의 합일사상, 즉 범아일여梵我一如를 탄생시킨다. 브라만은 원래 《리그 베다》에서 찬미가 또는 제사(祭詞)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브라만 계급에 의해 제사 만능시대가 되자 거기에 간직된 신비한 힘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작위적 장난은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그 의문의 결론/해답에 대한 수많은 도전에 대한 고육지책인 것이다. 눈 밝은 자들은 안다. 아직 그것이 필요한 시기이므로 입을 닫고 있을 뿐, 그들은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에 대한 끝을 보지 못하고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쉬워하지 않는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수백억 년의 세월 중, 신의 나이는 겨우 길어야 1만년이고 인간은 백세를 넘기기 힘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