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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대하여/사쿙 미팜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대하여/사쿙 미팜

 

인생이라는 버릇에 젖어 살 것인가, 진정한 삶에 눈뜰 것인가.

세상은 모르지만 자기 자신은 알고 있는 삶의 진실과 비밀!

 

라는 틀에서 벗어나라.

내가 누구인가?” 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는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언제나 남는 건 지독한 갈증뿐이다. 사쿙은 이 마음속 오래되고 무거운 의문의 짐을 내려놓고 싶다면 먼저 를 생각하는 마음을 멈추라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화를 내며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누구를 위해 질투와 욕망에 싸여 더 많이 얻으려 하는가? ‘를 행복하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는 단지 관념, 개념, 신화일 뿐이다. 우리는 허상에 매달려서, 그것을 보호하겠다며 부정적인 감정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행복은 바로 우리 내부에 있다. ‘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그리고 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인식할 수 있을 때가 바로 행복의 출발점이다.

 

세상의 곳곳에 만연한 공격적인 성향은 두려움을 낳으며, 두려움은 비겁함을 낳는다.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살면 그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임을 곧 알게 된다.

 

1부 삶을 다스리는 비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지혜와 자비를 제대로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지 순례를 떠나거나 금욕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약간의 행동만으로도 가능하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누구나 착한 본심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24.티베트에서는 행복이 어떻게 오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작정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한다. 아무리 뚫어져라 보고 있어도, 행복은 커지거나 가까워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더 작고 더 멀리 보인다. ‘의 마음을 이렇게 작게 만드는 것은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분노, 욕망, 무지, 오만을 일컫는데 이것들이 착한 본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이런 감정이 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을 삼사라(samsara/윤회)라고 하는데 산스크리트 어로 끝없는 어둠의 시대를 말한다. 이 어둠의 시대 속에서는 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우리는 정신을 빼앗겨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착한 본심을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칭찬과 비난은 실체 없는 메아리와 같아 곧 그치고 만다. 우리가 라는 관점에 사로잡혀 속게 되면 원하는 것은 우리 외부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순간, 욕망이 나타나고 어리석음의 함정으로 가는 길이 된다.

 

28.질투를 의미하는 티베트 어에는 여러 어깨라는 표현이 있으며, 아무리 어깨가 많아도 그 위에 얹을 수 있는 머리는 하나뿐이다. 서로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게 질투다.

()은 실용적인 것이지 도덕주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을 통해 우리는 라는 틀 속에 빠져있는 우리 자신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생각과 말, 행동을 배양할 수 있다. 하루를 시작할 때 내 마음이 올바르다면, 하루 전체를 다스리는 것이 보다 쉬울 것이다.

세상이 잘못 흘러간다고 생각하는가? 부정적인 생각은 왜 일어나는가?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무지일 뿐이다. 아는 것이 힘이며 축복이다. 연기를 알며, 업의 이치를 깨달아 착한 본심을 아는 것이야말로 앎의 지혜이고 행복을 부르는 열쇠이다. 업의 이치를 깨닫고 싶다면 선행을 하라. 곧 알게 된다. 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똑바로 보게 되면, 즉 정견(正見)을 가지면 부정적인 생각이 공()임을 알게 된다.

붓다는 묻는다. “분노가 존재하는 곳은 어디인가? 분노는 무슨 색깔인가? 분노는 어떤 모양인가?” 자신에게 다시 묻고 자신에게 답해보라.

 

올바른 명상을 함으로써 생각이 일어나고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고, 떠오른 생각에 따라 즉각 반응하지 않고 생각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어떤 의미인지, 깊이 성찰하면서 실체를 알게 된다.

 

히말라야에 날리는 기도 깃발, 즉 룽타는 바람의 말이라는 뜻임을 알게 되면, 그것이 히말라야의 신이 내려주는 지혜와 자비라는 보석의 다른 말임을 알게 된다.

 

2부 호랑이의 길- 호랑이의 만족

호랑이의 마음은 소탈하며 전혀 거만하지 않다. 그리고 도약하기 전에는 온 마음을 다해 신중하게 검토한다. 무엇을 하든지 완전히 몰입한다. 호랑이의 이런 참을성 있는 품성은 드넓은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 호랑이의 만족을 갖는다면 우리는 삶을 단념하지 않게 된다.”

 

77.증명이 불가능한 두 가지, 즉 삼사라(윤회)를 믿지 않더라도 카르마()의 존재와 작용은 꼭 믿어라. 붓다의 10무기(無記)를 항상 기억하라. 제자들이 내세나 윤회 등에 대해 질문했을 때, 붓다는 오히려 나무라며 답해주지 않았음을, 붓다의 깊은 의도를 다시 생각하라.

 

나의 마음을 하늘처럼 넓어도 나의 행동은 참깨의 씨처럼 작고 미묘하다.-파드마삼바바. 인도의 위대한 성자는 카르마()의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그것이 두렵다면 항상 선행하라고 했다. 그러면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으로서의 삶의 소중함, 카르마()의 법칙, 삼사라(윤회)의 고통, 무상(無常)의 진리, 그리고 자비와 지혜가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제대로 관찰함으로써 정확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3부 사자(獅子)의 길- 사자의 기쁨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사자가 지닌 규율이며 절제이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 우리는 즐거워진다. 남을 돕는 순간에 우리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극복하고, 가슴 뿌듯해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기쁨을 갖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망설이고 의심하면서, 골짜기 밑에 처박혀 인생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비천한 존재가 아니다.”

 

붓다는 행복을 찾기 위해 밖으로 끊임없이 헤매기 때문에 고통이 생긴다고 가르쳤다. 오늘날 수많은 스트레스는 단순히 만족의 결핍에서 온다. 진정으로 착한 본심을 가진 자신을 사랑하라, 그러면 스트레스는 자연히 사라진다.

태양이 빛을 뿜듯 착한 본심이 쏟아 내는 자비는, 우리의 이기심을 극복하여 어둠의 시대를 벗어나도록 해준다. 자비는 자신을 묶은 족쇄가 풀리길 꿈꾸며 세상을 향해 고귀한 마음으로 응답하고자 하므로 기쁨을 부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있다면 우유를 끊임없이 젓듯 그의 마음을 계속 저어라, 언젠가는 치즈가 될 날도 있으리라. 너의 긍정적 마음이 결국 엄청나게 큰 에너지로 변해 그를 변하게 할 것이다. 그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가? 보아라, 너의 마음이 그의 마음이다.

 

4부 가루다(금시조)의 길- 가루다의 평정심

가루다의 용감무쌍함은 좌절, 성급함, 권태 등의 이유로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과는 다르다. 가루다의 용감무쌍함은 진정한 확신을 의미한다. 이런 용감무쌍함은 평정심을 가져온다. 평정심은 마음이 평정, 즉 고요한 상태를 말한다. 평정심을 갖추면, 일상을 유유히 보낼 수 있다.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金翅鳥(금시조)

garuda 가루라(迦樓羅)가류라(加留羅)계로다(揭嚕茶)라 음역. 묘시조(妙翅鳥)라고도 번역. 인도 신화의 가공의 대조(大鳥). 이상화된 신령스런 새. 사천하(四天下)의 대수(大樹)에 내려 용을 잡아먹고 양 날개를 펴면 336만 리나 된다고 한다. 그 날개는 금색이다. 대승경전에서는 천룡인부중(天龍人部衆)의 하나이고, 밀교에서는 범천(梵天)대자재천(大自在天)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이 새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다고 한다. 또는 문수의 화신이라고도 함.

 

티베트에서는 서양과는 달리 나이가 드는 것을 기분 좋게 생각한다. 또 다른 한 해를 살았으므로 새로운 지혜가 생겼다는 자부심을 갖기 때문이다. 나이 드는 것이 젊음에서 멀어져서 우울한가? 그것은 변화에 대한 시간이 흐르면서 발생하는 성장과 배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상(無常)의 진리와 존재의 본질에 대해 알게 된다면 부질없는 생각임을 알게 된다.

 

죽기 전에 해봐야 할 100가지라는 버킷리스트는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나는 한 가지만 이룩하고 싶다.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지혜와 자비심의 경험이다. ··치 삼독을 놓아 버리면 지혜와 자비의 종착점에 가게 된다. 흘러가도록 놓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는가? 공간이다. 이는 열림, 무아(無我), ()으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잃었기에 공()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란 자신의 생각대로 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없어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비움은 우리의 추측이 비워지며 자비로 채워진다. 이것이 착한 본심이고 착한 본심을 개발하는 것이 자유이다. 비우는 훈련을 쌓다보면 집착할 대상이 없다는 인식에 이르게 되고, 내 안의 지혜와 자비가 빛을 내게 된다.

 

희망과 두려움의 경계를 넘어 갈 때 어떤 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심이 생기며, 그것이 자유와 기쁨을 가져 오고 그것이 바로 명상의 목적이고 그 자체이다. 티베트 법복을 입고도 무더운 여름의 날씨를 견디는 것은 더워서 싫다는 부정적 생각에서 벗어난 평정심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지혜와 자비가 배양되면 평정심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현대를 살고 있으나 시대와 관계없이 희망과 두려움을 기본으로 한 몇몇 변형된 관점이 존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영원주의-제행무상과 반대의 개념으로 영원히 존재하면서 바뀌지 않는 창조자가 지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 허무주의-윤회나 업 등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삶이 한 번뿐이기에 이번 생에서 잘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었다.

. 붓다의 관점-붓다는 여러 사물이 서로 관계를 맺어야 완전해진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을 中道라 한다. 사람들은 종종 중도가 永遠주의와 허무주의 사이, 존재와 비존재의 사이의 중간이라고 생각하나 중()은 사실상 존재와 비존재를 초월하는 접근 방식이다. 이는 균형을 갖춘 시각을 말한다.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공()이라 하며, 중도를 인도에서는 자유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5부 용()의 길- 용의 유쾌한 지혜

용의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짜증나는 상황이 생기면, 그를 위해 일부러 흥을 돋운다. 짜증이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기에, 흥을 돋우면 짜증이 마음에서 떠나게 된다. 우리가 어째서 이렇게 착하고 즐거움이 넘치는지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아가 단단한 형체가 있는 존재이고 영원하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붓다는 자아는 사실상 피, , 기억, 감정, 생각, 인식 등의 집합체, 즉 오온이라고 가르쳤다. 이런 집합체를 라고 오인하는 순간 온갖 집착이 생겨나는 것이다. 집착은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되므로 집착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202.명상 중의 기쁨 체험

어느 날 명상하던 중 갑자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이 투명하게 나타났고, 이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꿈도 아니었고 신탁도 아니었다. 그것은 대지에 박혀 있는 고정된 상태와 움직이는 유동적인 상태의 중간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더 이상 모든 생각, 언어, 현상이 고정된 상태로 지속된다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내 자신도 덧없는 존재인데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 또한 실체가 없다는 것이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진리를 만난 나의 기쁨은 컸고 내 마음이 온갖 관념에서 자유로워졌으며 세상은 활짝 열렸다.

 

하늘의 마음이 된다는 것은 호랑이의 만족, 사자의 기쁨, 가루다의 평정심, 용의 지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라는 것은 현재에 있는 기억일 뿐이고 미래라는 것은 현재에서 투사하는 환상일 뿐이다.

 

6부 삶을 다스리기 위한 길- 바람의 말

바람의 말에 올라탐으로써, 우리는 세속적인 삶 속에서 영적인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착한 본심에 대한 확신을 개발함으로써 풍요로운 천국을 만들 수 있다. 자비를 실천하는 용기는 우리에게 지상에서 천국을 구현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직업에 관계없이 삶을 지배하며 살아갈 수 있다. 마음을 어떻게 쓰고 인생을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바람의 말은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깨달음이란 우리가 라는 관념으로 투사하여 멋대로 색칠하기 이전의 순수한 본래 모습이다.

 

진정으로 강하고 싶다면 먼저 자애로워라. 붓다는 모두가 잘 되를 바라면, 네가 먼저 그렇게 되리라.”하셨으니 붓다의 황금률이다. 사무량심(四無量心) 중 맨 앞의 자비가 최고의 무기임을 언제나 잊지 말라.

 

2015.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