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현문우답]
'주역의 대가' 김석진 옹 인터뷰
올해 어렵지만 작년보다 나을 듯
스스로 애를 쓸 때 하늘이 돕는다
주역은 점서 아닌 최고의 철학서
올해 '총선', 빈 수레가 요란하다
대산 김석진 옹은 "이제는 '주역은 점서'라는 선입견을 벗어날 때가 됐다. 주역은 최고의 철학서"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대산 선생은 올해 93세다. 오전과 오후 30분씩 집 앞에 있는 몽촌토성을 날마다 바람을 쐬며 걷는다. “천일, 지이, 천삼, 지사(天一 地二 天三 地四)…”하면서 왼발 오른발 소리를 붙이며 걷다 보면 “뒤에 오던 사람이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있다”고 말할 정도로 건강하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나라 안으로도, 나라 밖으로도 힘겨웠다. 새해 첫날 제자들이 신년하례를 와서 꼭 묻는 말이 있다. “올 한해는 어떻습니까?” 그럼 대산 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주역의 괘를 뽑아본다. 그렇다고 ‘결정론적 운명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나쁜 운도, 운용하기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역(周易)의 ‘역’은 바꿀 역(易)자다. 또 주역에는 노력할 때 하늘이 도와주는 ‘자천우지(自天祐之)’가 있다. 새해 벽두에 만난 대산 선생에게 ‘2020년의 주역적 전망’을 물었다.
- “올해는 ‘산천대축(山天大畜)’에서 ‘산화비(山火賁)’로 변하는 괘가 나왔다. 작년에 어려운 괘가 나와서 걱정했는데, 올해도 어렵지만 작년보다는 나은 괘가 나왔다.”
- “‘대축’은 ‘크게 쌓는다’는 뜻인데, 조그마한 산이 하늘을 품듯이 욕심이 가득한 걸 말한다. ‘우리라야 된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며 계속 쌓아간다. 그럼 문제가 된다.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멈출 줄 아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계속 쌓기만 하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칠 줄 알아야 한다.”
- “수레바퀴 안에는 속바퀴가 있다. 그걸 ‘백토(白兎)’라고 부른다. 이걸 벗겨놓으면 수레가 못 간다. 결국 빈 수레가 된다. 이와 똑같다. 2020년은 모든 것이 쌓이고 모이지만 자칫 빈 수레가 굴러다녀 요란스러운 해가 될 수 있다. 계속 쌓이고 모이니까 당파적으로 된다. 이것이 ‘산천대축’이라는 체(體)다.”
전국을 돌면서 30년 동안 주역 강의를 하던 김석진 옹. 30년간 강의하면서 단 한 번의 결강도 없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중앙포토]
주역의 괘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다. 올해는 ‘산천대축’이 체라면, ‘산화비’가 용이다. 대산 선생은 “체(體)가 몸뚱아리라면, 용(用)은 팔다리에 해당한다. 아무리 몸뚱아리가 좋아도 팔다리를 못 쓰면 나빠지고, 아무리 몸뚱아리가 나빠도 팔다리를 잘 쓰면 좋아진다. 주역은 좋은 괘가 나왔다고 그것만 믿으면 안 된다. 좋은 괘가 나와도 애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 올해의 몸뚱아리가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팔다리를 어떻게 써야 하나.
- “팔다리를 쓰는 게 ‘산화비(山火賁)’괘다. ‘뫼 산, 불 화, 꾸밀 비’다. 산을 보라. 온갖 풀과 동식물로 꾸며져 있다. 서로 평화롭게 바람 따라 너울너울 춤을 춘다. 봄이 오면 싹 트고 꽃 피고, 여름 오면 무럭무럭 자라고, 가을 오면 열매 맺고, 겨울에 추우면 저장하고 감춘다. 이렇게 꾸며야 한다. 한 마디로 ‘조화’다. 팔다리를 이렇게 쓰라는 말이다. 그런데 서로 잘났다고 하면 어찌 되겠나
대산 선생은 ‘수염’을 예로 들었다. “주역은 괘가 아무리 좋게 나와도 애를 써야 한다. 괘로 보면 작년보다는 희망이 있다. 그렇지만 사람이 하기에 달렸다. 꾸미는데 수염처럼 해야 한다. ‘에헴!’하고 어깨 힘주며 수염을 아래로 쓰다듬기만 해선 곤란하다. 수염을 봐라. 혼자서 움직일 수 없다. 턱에 의지해서 움직인다. 그러니 ‘더불어’ 가야 한다. 상대와 함께, 상대에 응하면서 조화롭게 꾸며야 한다.”
- “남북관계는 막히는 상이다. 서로 의혹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막힌다. 북이면 북, 남이면 남, 미국이면 미국, 중국이면 중국. 막힌 것을 풀려면 지도자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라도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대산 김석진 옹은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주역의 괘대로 이야기를 할 뿐이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 “경제는 올해도 성장을 하기가 어렵다. ‘대축(大畜)’은 크게 쌓는 괘다. 경제는 한 곳에 쌓아두기만 하면 문제가 생긴다. 유통이 돼서 흘러야 한다.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때도 빈 수레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 일단 수레를 멈추고 그동안의 정책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아니고, 남이 듣기 싫은 말도 아니다. 주역을 공부한 사람은 독자들 귀에 거슬려도 괘 나온 대로 이야기하는 거다. 내 나이가 아흔 셋이다. 무슨 욕심이 있겠나. 이해를 해달라.”
- 여야간 갈등이 첨예하다. 올해 정치 쪽 전망은 어떤가.
- “작년 12월 마지막 날까지 여야는 서로 싸웠다. 올해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세상은 혼자서 꾸밀 수가 없다. 음양으로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꾸밀 수가 있다. 산화비궤에서 ‘꾸미라’고 하지 않았나. 여야도 마찬가지다. 독선(獨善)은 서로 불행하게 한다. 남에게 그치라고 말할 수 없을 때는 내가 먼저 그쳐야 한다. 그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 4월에는 총선도 있다. 선거 때면 찾아와 ‘당락’을 묻는 정치인도 있다고 들었다. 어떤가.
- “정치인이 많이 찾아오지만 나는 말을 안 한다. 애초부터 그렇게 선언을 했다. ‘90 넘은 늙은이가 무슨 총기(聰氣)가 있겠느냐’며 거절한다. 얼마 전에는 당을 조직한다며 찾아와 묻기에 거절했다. 이번 총선은 당끼리 시끄럽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여야간에 비례대표당을 놓고 논란이 많은 것도 다 빈 수레다. 그러니 실속 있는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 “‘주역’은 점치는 책”으로만 생각하는 이들도 꽤 있다. 어찌 보나.
- “‘주역’은 천지와 만물이 생성변화하는음양적 이치를 담은 글이다. 최고의 철학서다. 이제는 ‘점서(占書)’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음양의 상호작용에서 길흉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흉한 것은 피하고 길한 쪽으로 가기 위한 ‘피흉취길(避凶取吉)’의 성격이 있다. 그래서 점서의 기능을 갖는 거다. 사람들이 철학은 어려워서 외면하고, 미래가 궁금하니까 점에만 급급해서 점서로 알려진 거다. 그런데 점서의 기능 때문에 ‘주역’이 살아남은 측면도 있다.”
공자는 '주역'을 담은 죽간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주역을 연구했다. [중앙포토]
영화 '공자'에서 배우 저우룬파가 공자 역을 맡았다. 김석진 옹은 "공자께서 '주역'을 사라질 것을 걱정해 점서의 형태로 남겨두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 “진시황 때 분서갱유가 있었다. 유가(儒家)의 책을 모두 불태웠다. 진시황이 ‘주역’을 불태우려고 보니까 점서였다. ‘아, 이건 내가 두고두고 어려운 일 있을 때 써먹어야겠다’. 그래서 살아남은 거다. 당시 의학서나 점서는 태우지 않았다. 그건 모두 민간에서 쓰는 실용서라고 봤기 때문이다. 나는 공자가 후세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 걸 예견하고 점서의 형태로 ‘주역’을 남겼다고 본다.”
- 공자는 만년에 죽간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주역’을 읽었다고 한다. 왜 그랬나.
- “어려워서 그랬다는 건 틀린 말이다. 그만큼 좋아하고 연구를 많이 한 거다. 그리고 ‘십익(十翼)’이라는 주역에 대한 열 가지 해설서를 내놓았다. 공자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주역’이 전해지지 않았을 거다.”
- “다가오는 미래 세상을 걱정하며, 주역을 바르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설서를 남겼다. 그런 공자의 마음을 ‘우환(憂患) 의식’이라 부른다. 세상은 많이 알면 알수록 걱정이 많아지고, 조금 알수록 교만해지는 법이다.”
김석진 옹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간단한 기체조를 한다. 그는 "자고나서 입 안에 처음 고이는 침을 삼키면 건강에 무척 좋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마지막으로 대산 선생에게 건강 비결을 물었다. 그는 평생 약도 안 먹고, 병원도 거의 가지 않는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눈과 코, 귀를 살살 비빈다. 눈을 뜰 적에도 천천히 깜박깜박하다가 뜬다. 누워서 자전거 타듯이 다리 운동도 한다. 다리를 꼰 채로 들었다 놓았다도 한다. 그럼 허리 아픈 줄 모른다. 또 자고 나서 처음 입 안에 고이는 침을 ‘옥천(玉泉)’이라 한다. 한 시간 가까이 입 안에 고인 침을 세 번에 나눠 삼킨다. 그걸 ‘체중선약(體中仙藥)’이라 부른다. 우리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신선의 약이다. 그만치 중요하다는 뜻이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주역 대가' 김석진 옹 "올 총선, 빈 수레가 요란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