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377회 산행)
일시 : 2020. 1. 19.(일) 10시 30분
만나는 곳 : 전철 5호선 광나루역 2번 출구
1.시가 있는 산행
겨울 숲에서 / 송기원
겨울이 깊어집니다.
기름진 것들은 모두 떠나고 메말라 외로운 것들만이 더욱 작은 모습으로 몸을 움츠립니다.
저의 몸에서도 더 이상 사람의 냄새는 나지 않습니다.
비로소 저에게 다가올 때입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숲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마을의 불빛들은 아득히 멀어지고 눈발 사이로 떨리며 밤새들의 울음소리만 가득합니다.
메말라 외로운 것들을 위하여 함께 겨울 숲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매일 ‘시요일’에서 새로운 시를 배달하여준다. 그런 사유로 시를 떠나지 않는다. 내게는 달리 할 짓이 없어 시와 앞으로 쓸거리, 읽을거리와 함께 지낸다. 날씨는 비가 오면 아프지만 아픈 대로, 눈이 오면 끝난 후엔 지저분하지만 그런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해가 종일 비춰도 그런 대로 살아간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이다. 마하시선원 명상센터에 들어가면 세상을 잊고 살아가지만 거기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어 날마다 좋은 날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얼굴을 잊고 살아 좋은 날들이다. 텔레비전이 없어 좋은 날들이다.
-도봉별곡
2.산행기
우이령 산행기(2010. 1. 11. 토)
참석자 : 기세환, 한천옥, 이경식, 전작, 김진오, 이윤상, 임용복, 염재홍, 임삼환, 정일정, 김종화, 한양기, 이승렬, 김정남(홍황표 총장은 모이는 장소에 먹을 것 잔뜩 사들고 와서 맡기고 부득이 일찍 감) 이상 15인의 시산인들
뒤풀이 : ‘완도 아구와 코다리찜’ 에서 참돔과 방어회로 푸짐하게 잔치
올겨울은 춥지 않아 삶이 팍팍한 사람들도 견딜만하다고 한다. 일찍이 인도의 성자는 ‘삶은 거친 파도 위에 홀로 떠있어 외로운 섬’이라고 비유했다. 소한이 지나갔으니 대한을 잘 넘기면 다행스러운 겨울이 된다. 그래도 생채기 하나쯤은 남기고 갈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신설동-우이동 간은 경전철이라 무인운전이다. 전철요금을 절약할 수 있어 좋은 일이다. 다행히 시간을 별로 지나지 않아 15명 모였다. 홍황표 총장은 갑자기 족저근막염이 와서 당분간 치유에 집중하고 산행은 어려워 들머리와 날머리는 참석하겠단다. 그런 사유로 세 병의 막걸리와 과자를 잔뜩 들고 왔다. 받아 챙기고 산우들에게 분배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들머리인 우이령탐방센터까지 걸었으니 책임감에 고마울 뿐이다.
탐방센터 앞에서 헤어지고 오르는데 가벼운 비알길이라 모두 잘 가는데 나만 처진다. 3년 간의 공백은 집에서 하는 운동으로는 어림없다. 집에서 하는 운동은 국민체조, 108배, 스퀜스, 제자리걷기기구로 빼지 않고 하는데 아직 겨울이고 고혈압과 심장병이 있어 마나님이 아침 외출을 못하게 한다. 그러나 등산 근육과 그 운동들의 근육은 다른 관계로 효과가 없다. 역시 산꾼은 산을 타야 효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임 수석이 스틱 하나를 빌려주기에 받아들고 걷기 시작하니 훨씬 낫다. 다음에는 꼭 가져와야겠다. 나를 위해 두어 번 쉬고 우이령을 넘는데 마침 탱크 저지선인지 양쪽을 콘크리트옹벽을 세워 그 사이로 바람이 차갑다. 등에 진 여러 가지 물건도 부담이 되는지 땀이 찬다. 미안하지만 어느 정도 체력이 올라올 때까지 앞으로 맨몸으로 다녀야겠다. 이해하시라.
우이령을 지나 12시 반이 되고 마침 양지바르고 간이 휴게실이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다.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음식이 차려지고 한 교장이 포즈를 잡자 오늘의 기자인 도봉이 오늘의 동반시 한 수를 낭송한다.
그리움/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 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두어 순배 돌아가도 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 회장에게서 위스키가, 한 총장은 예의 진도 홍주로 흥을 돋운다. 재홍 산우는 끝까지 막걸리를 내어놓지 않는다. 마시지 않을 것 같던 분위기는 어느덧 술판으로 기울어간다.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가 떨어지자, 먹었으니 내려가자는 목소리가 커진다. 역시 그날도 시산회답게 ‘먹었으니 내려가자’로 의견이 급속도로 기울어진다. 벌써 뒤풀이집의 명단이 오르내린다. 결국 회비도 많이 남았으므로 송추로 가면 내리막길이라 미끄럽고 먹을거리가 많지 않으니 원점회귀하여 우이동으로 내려가서 완도 횟집에서 맛난 회를 먹자로 결정한다.
내려오는 길은 수월한 길로 쉽게 내려와 횟집에 자리 잡고 회를 시키는데 우럭이나 광어가 아닌 고급의 참돔과 방어로 결정하고 맛나게 먹고 마신다. 우리가 앞으로 지내온 15년을 이대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기원을 잠시 해본다. 지금도 세계적 기록일 텐데 그렇게 되면 앞으로 최소 100년간은 그 기록을 깨지 못하리라. 모두 건강하자.
오늘도 산과 술과 시가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한 총장 애경사에 참석의 보답으로 15만원의 한계를 넘어 모두 부담해줬으니 고마운 일이다.
3.오르는 산
부담 없는 산인 아차산으로 정했다. 끝까지 가면 만만하지 않겠지만 이 산은 날머리가 많아 무엇을 먹을 것인가와 관련하여 어디로 내려올지 가서 결정한다. 많은 참석을 바란다. 회비가 올랐으니 뒤풀이의 메뉴가 고급화로 치닫는다. 자주 참석할수록 좋은 일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단백질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자 고단백질을 먹으러 모두 함께 가자.
4.동반시
홍황표 총장이 추천한 시다.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온 시라니 그의 기억력이 뛰어나다.
3수 1편으로 된 연작 시조. 첫 수는 아차산으로 가는 정경을, 둘째 수는 아차산의 옛 성터를 통해 본 세월의 무상감을, 셋째 수는 그런 무상을 딛고 선 현재의 아차산을 노래하고 있다.
첫 수와 둘째 수는 종장 끝 귀가 일반적인 3자 율격과는 달리 4자로 되어 있다. 이것은 더러 보는 예이기는 하지만, 시조에서는 종장의 율격이 3자인 것이 일반 상식일 때, 파격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가람의 시조론은 종장 끝 구를 3ㆍ4자로 주장했었다.
아차산/가람 이병기 <가람시조집>(1939)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쪽이 발 끝에 부딪히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말 이 없고,
벌건 메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2020. 1. 18.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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