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는 것들에 대한 회상回想
도봉산으로 난 창으로
가을에는 은행잎이 얼굴을 내밀더니
봄의 목련은 내 안을 기웃거린다
흘러간 것은 중요하지 않아진
봄날의 아침에
무리지어 흐드러진 목련꽃에서
젊은 날에는 비통했던,
그러나 무모했던 사랑을 기억해내고는
그 사랑이 5월의 라일락꽃 같았다면
하찮은 봄바람에도 맥없이 지지 않았을 거다
나이만큼 가벼웠을 사랑과
미안했던 이별들
이기와 교만과 죽음에 대한
회상의 하얀 그림자 털어내면서
왜, 봄날의 꽃들은 사랑과는 달리
무리지어 피고 지는 가를 유추해보고는
아, 이끼는 긴 겨울이 추워서 혼자서 살지 못하는구나
피고 지는 모든 것들
꽃에서 피고 지는 것에 대한 필연을 읽어내고
오지 않을 우연을 기다려본다
이제
늙어서
유난히 추하게 지는 것에서
덧없음과 소멸과 흩어짐에 대하여 사유하고는
멀고 푸른 하늘을 보며 내년에 필 재생을 기대한다
영원한 것은 없어
내년에는 너와 내가 살아 있을까를 점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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