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축사 범종각梵鍾閣
가을 한 철 떠도는 하늬바람 한 줄기 능선 너머 골 타고 흐르다 선인봉仙人峰에서 우뚝 선다 그 사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는 도토리 떨구고 산국 감국 뇌향국 구절초 갯국화 개미취 쑥부쟁이는 늦은 짝짓기하고 지친 가을잎 다독이다 곤줄박이 박새 동고비 직박구리 찬바람에 깃털 세운다 오늘밤은 어느 그늘에서 뜨거운 달빛 가리나 불상 안에 붓다 없듯 절 안에 법승 없다 사하촌寺下村 곡차 파는 집 들어가 한 모금 마시고 취선醉禪 즐기면 졸고 있는 풍경소리에 더 취하고 목탁소리에 깨기 전에 자! 범종각에서 한바탕 놀아보자 까까중머리 쓰다듬으며 놀아보자 감로수 술 빚어 동종銅鐘 거꾸로 잡아 술잔 삼고 목어木魚는 푹 삶아 생선찜 만들고 법고法鼓는 소고기전 부치고 운판雲板은 구름과자 법어法語 되니 전정백수자前庭柏樹子 법당 앞 흰 잣나무는 그만 자라라 판치생모板齒生毛 다 빠진 앞 이빨에 무슨 털이 나느냐 일주문一柱門 밑 벌 서는 사천왕도 금강역사도 무섭지 않으니 일주문 기둥이 하나인가 둘인가 불일불이불이즉화일여중도不一不二不異卽化一如中道 하나도 둘도 다르지도 않다가 지쳐 한가운데 길로 나간다 차가워진 달빛 무너져 내리는 어둑새벽 발우鉢盂는 비었고 붓다의 얼굴 닮은 달빛은 넘쳐난다 오백나한의 박수 받으며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나서는 산문山門 혜초의 천축국은 여기서 얼마나 멀까 여기서 신라만큼 멀까 서유기 현장 법사*의 잃어버린 17년에 당신의 붓다와 나의 붓다가 바뀐다
*현장 법사 : 서유기 삼장 법사의 실제 인물. 삼장 법사라는 별호는 불가의 경 · 율 · 론 삼장을 모두 터득하고 실천에 옮겼다는 뜻에서 붙인 명칭. 대승불교의 마지막 완벽한 이론 유식론의 대가. 세계 3대 기행문 중 하나인 대당서역기(629~645년. 17년)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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