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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회광반조 조고각하(廻光返照 照顧脚下)

내 시의 샘물은 붓다의 가르침이다. 붓다의 샘은 마르지 않는 깊은 샘을 닮아 시집 4집을 내면서 잠시 물갈이를 위해 마음껏 퍼냈다. 남는 것은 사성제와 팔정도만 남았다. 인연생기법因緣生起法, 곧 연기법은 영원히 마르지 않아 끝까지 남아 우리 모두의 몫임을 물을 통해 밝혔다. 만약 북방불교를 공부했다면 십바라밀을 더해라. 더 깊이 퍼내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을 공부해오면서 느낀 의문에 대한 합리적 예의가 아니다. 뜬금없이 합리성을 내세우는 이유는 나의 두뇌는 비논리적 비합리적 신화와 전설, 설화를 경계警戒하는 형이하학적 境界에 속하고, 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까닭이다. 더 이상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의문과 비판 속에서 살기에는 내 여명餘命은 짧다. 불교는 종교가 아닌 철학이라는 신념에 변함이 있을 수 없으므로 나의 사유에 따른 시에 철학적 색채를 지우고 싶지 않다. 훌륭한 스승과 함께 올바르게 수행하는 도반들이여, 잘들 계시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까닭에 내 갈 길은 나도 모른다. 온 길을 모르므로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될 런지는. 이번 시집을 내면서 오래 괴롭힌 소회는 여러 생을 거쳐 묵은 업장業障과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닦아본 적이 없는 훈습熏習이나 습기習氣는 손대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혼자만의 명상센터에서 처음 꿈에 나타난 붓다가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지나온 삶에 대한 기억을 잊고 싶지 않으며, 온전히 간직하고 싶어서다. 다만 풀어드려야 할 한 가지, 호가 도봉道峯인 것은 내가 살아온 곳이 항상 도봉산을 볼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붙인 아호雅號일 뿐, 의 봉오리가 아닌 좁아서 서러운 오솔길 또는 슬프도록 좁은 오솔길 위에 약간 솟은 돌부리임을 밝힌다. 발에는 눈이 없으므로 멀리 가시는 길에 간혹 발아래를 보기도 하면서 작은 돌부리에라도 채이지 않도록 조심하시라. 회광반조 조고각하(廻光返照 照顧脚下).

-명상록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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