電光石火. 발뒤꿈치 한 번 돌리면 열리는 세상이기에, 불교는 하나도 어렵지 않다. 조고각하. 어려운 것은 이 밝은 지식의 불꽃을 유지하는 데 있다. 눈 크게 뜨고 스승의 눈을 바라보면서 귀를 세우면 붓다의 가르침은 어렵지 않다. 이 밝은 지혜의 불꽃을 유지하기가 어렵지. 강조하건대 돈오는 쉬운데 점오와 점수가 어렵다. 쉽게 내준 물건은 쉽게 걷어가는 까닭이다. 누가 깨달음을 한 번으로 끝난다고 했는가. 누생累生에 걸친 업장을 털기가 그리 쉽다면 깨달음이겠는가. 보살도 털지 못하는 업장인 다음에야! 닦고 닦아 입전수수入廛垂手의 길에 들어서면 붓다의 염원이었던 모든 중생의 구원이 멀겠는가. 四無量心, 붓다의 사무침이여. 다시 말해, 頓悟는 쉬운데 漸修는 어렵다. 요컨대 불교는 이렇다 할 물건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반야심경>을 無得이라고 했으니. 깨달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漸修가 필요하다. 불건전한 상념과 정념, 충동 등은 한번 태운다고 고이 물러가는 것은 아니니......여러 생을 거쳐 묵은 業障과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닦아본 적이 없는 習氣는 손대기 여간 뻑뻑하지 않다.
깨달음으로 일대사 인연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조주가 빗자루를 들자, 객이 핀잔을 주었다. “먼지 하나 없고 깨끗한데 뭘 더 쓸려고 그러시오.” 조주가 허공을 가리키며 한 말이다. “이런, 여기 또 하나 날아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