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과 봄꽃(詩山會 제83회 산행)
산 : 관악산
코스 ; 서울대 정문-정상-정부 2청사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30분 내려옴 1시간 30분
일시 : 2008년 4월 20일(일) 9시 30분
모이는 곳 : 서울대 정문
준비물 : 중식, 안주, 시원한 막걸리
연락 : 김종화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naver.com/yc012175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나태주 '행복2'전문
행복의 조건이 여기에 다 모였다. 한 몸 누워 쉴 집과 가슴 깊이 간직한 소중한 사람과 쓸쓸함을 달래줄 노래가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변함없이 해가 뜨고 진다는 것, 바람이 분다는 것, 크고 작은 새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것은 덤이다. 또 있다.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봄이다. 머지않아 눈부신 새싹과 꽃을 들고 봄이 찾아 올 것이다. 삶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우리는 이미 행복의 조건을 생각보다 많이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정갈하고 푸근한 시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이정환 문화부장
위의 시와 시평을 나에게는 유난히 어둡고 길고도 추운 겨울을 지나면서 친구처럼 달고 살았다. 주변의 수많은 위로보다 이 한 편의 시와 시평이 내게 더 위로가 되었다면 나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위로해준 그들에게 서운한 일일까. 그래도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빛과 그림자, 인생을 살면서 다가오는 행불행의 양면과 이중성을 선가(禪家)의 화두처럼 되새김질 하며 참고 견뎠다. 다시 시작한다, 새 인생을. 나도 삶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은 없다. 그래도 전 같지 않은 삶을 살 것이다. 그 삶의 일정부분은 잘못된 삶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4월 잎새달-물 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 돋는 달이다.
절기로는 청명이 전날인 4월4일이었고 오늘은 한식이며 식목일이다. 도움쇠는 작년 8월을 마지막으로 참석하지 못 했으니 8개월만이다. 오늘 만난 산우들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참으로 감회가 깊다. 오르는 길에 산행기는 돌아가면서 쓰기로 했으나 오랜만에 참석한 벌로 나더러 쓰라는 기 회장님의 분부가 있었다. 모이는 장소에 대한 전달이 원활하지 못해 약속시간이 거의 1시간이 지나서 모두 모였다. 김종화 총장이 갑작스럽게 출장을 갈 일이 생겨 나더러 꼭 참석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있었으므로 거절할 수 없었다. 같이 오르기로 한 박수호에게는 깜박 잊고 연락을 못 했는데 다음에는 같이 가세.
반갑다, 산우들아.
남한산성 입구에서 모두 모여 산행 시작. 쉬운 산이라 하나 그래도 높이는 535 미터이다. 20년 전에 가족과 함께 왔으니 생소하다. 다만 수어장대에 대한 기억만 남아 있다. 쉬운 길이나 나는 숨가쁘다. 오늘을 위해 3주 전에 혼자 도봉산 송추-여성봉-오봉-칼바위-주봉-신선대-마당바위-주차장-도봉산역 코스를 다녀왔으나 근육은 이미 옛 근육이 아니고 잔뜩 망가졌던 심장은 회복 중이다. 산성으로 오르는 길에 위 산우의 마나님이 싸준 오징어 숙회를 안주로 시원한 막걸리 한 잔. 지병인 고혈압과 심장병 때문에 술을 삼갔으나 산우들과 마시는 술은 사양할 수 없는 일이다. 마시다가 죽어도 즐겁게 마실 일이다.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에 김순단 선생과 반갑게 조우했다. 병마와 싸워 이긴 여사의 표정을 보니 밝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분이다. 수어장대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데 '멸치 대가리----'라는 합창 소리도 눈물겹게 반갑다. 나도 회복 중이니 걱정하지 말기 바란다. 기 회장과 김 총장, 나창수 원장에게만 가볍게 언급했지만 작년 7월말, 나에게는 지난 23년을 허무하게 부인해야 하는 큰 사건이 발생했다. 동업자와 사소한 시비 끝에 사업을 분리하기로 하고 서로의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의견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내가 명색이 법대를 나온 사람이고 수많은 법정싸움을 해온 역전의 투사여서 관련서류를 소홀히 할 사람이 아닌데 함께 작성한 공증서도 필요가 없었고 상대방이 위조한 서류를 고소했는데 사법기관에서는 팔십이 넘은 노인네가 오죽하면 이렇게 했겠느냐고 상대방의 편을 들고 오히려 나를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고 가려하고 조정과 화해만을 종용했으며, 가족 모두가 자신의 부당함을 호소해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주변 가족들이 등을 돌리니까 마지막으로 사즉생(死則生 : 죽고자 하면 산다)의 전략으로 나오면서 ‘내가 이기지 못 할 바엔 같이 죽자’의 전술로 압박했고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쟁원리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결국은 분하게도 졌다. 1998년 외환위기 때 혼자 떨어져나간 큰아들을 통한 화해의 형식을 빌렸지만 더러운 노욕에 지고 말았다. 이것은 내 기준과 관점에서 나의 입장에서 쓴 것이니 감안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내가 모두 옳았겠는가. 내가 온전하게 옳았다면 이런 추잡한 싸움이 있었겠는가 하고 자성도 해 본다. 지금은 그러한 갈등도 오고 갔다. 이길 수 있었고 이기는 방법도 알았고 주변의 이해당사자들도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위로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제삼자이다. 처가식구들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등을 돌려 그와 남이 되면서까지 끝까지 내편이 되어준 처가식구들의 눈물겨운 응원도 소용이 없었다. 치밀어 오는 분노를 삭히고자, 더러운 분쟁에 대한 압박감과 밀려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술로 해소하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거의 나았다 해도 심장병과 고혈압은 항상 조심해야 하는데 그만 심하게 재발해버린 것이다. 하얗게 밤을 새는 불면의 밤이 계속되고 심장이 위치한 등 뒤쪽의 근육에 통증이 왔고 앞 근육에는 간헐적인 경련이 왔다. 가슴은 답답하면서 뻐근했으며, 머리는 아팠다. 특히 목 뒤가 뻐근했으며 부부관계를 하려해도 왼쪽 뇌로 올라오는 뇌압에 속수무책이었다. 부부관계를 한 번 하려다 복상사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심이 밀려왔었다. 뚜렷한 자각증상이었다. 결국 마나님의 손에 이끌려 10년 동안 나를 치료해온 주치의인 을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에게 갔다. 마나님과 함께 주치의 앞에서 증상을 듣고 난 후의 의사의 첫 말인즉 “선배님. 이제는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배님의 건강은 책임질 수 없습니다. 등산도 삼가십시오” 아니 저보고 언제 내 건강을 책임지라 했는가! 그 순간부터 내 고달픈 인생은 곤두박질쳤다. 마나님은 작정한 듯 그날부터 절대금주와 금연 및 등산불가를 외쳤다. 고혈압을 핑계로 추운 겨울철 산행은 절대불가를 외쳤다. 본래 담배는 별로 안 피우지만 술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도 끔직한 세상인데 담배는 밖에서 피우니 몰래 피운다지만 술 냄새는 막을 수 없지 않은가. 산행은 물론이고 산행기도 쓰지 말라는 것이다. 산행기는 새벽에 써야하니 과로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밤새안녕’은 누구에게도 올 수 있는 일이니 자기는 과부되기 싫단다. 딸들도 가세한다. 평소에 잘 해주는 남편도 못 되는데 그래도 혼자되기는 싫단다. 이혼도 불사한다는데 이길 방법이 없었다. 남자야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즐거운 일이지만 딸들은 시집을 보내고 나서 헤어지자고 주장한다. 결국은 또 아비에게도 지고 딸에게도 졌다. 시산회 회원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마나님의 듯을 따르기로 했다. 나 없다고 시산회가 지리멸렬할 것도 아니고 든든한 기 회장님과 열성적인 김종화 총장이 있지 않은가. 나보다 더 시산회를 사랑하는 회원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는가. 덕분에 돌아가면서 산행기를 쓰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새로운 즐거움이지 않겠는가. 하산하여 오리훈제와 홍어를 안주로 행복한 뒤풀이를 했는데 반 년이 넘은 도움쇠의 행적에 궁금한 산우들이 있어 대답은 이 산행기로 가름한다. 쉬운 산행이므로 쓸거리가 없었는데 다행이다.
삶과 죽음
빛과 그림자
양날의 검
동전의 양면
손바닥의 안과 밖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인생사 새옹지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키기도 한다
호사다마
많이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매어 있다는 것이다
바닥이 있으면 천정도 있다
위의 단어들은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적용하는 비유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리는 동전처럼 모든 현상에는 상반되는 두 개의 현상이 필연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느끼지 못 하고 살았다. 동전은 한 면으로는 존재의 이유도 가치도 없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불행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만큼 어깨에 짊어지는 짐도 많고 돈 자체가 자신의 굴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돈이 많은 남자와 사는 여자가 꼭 행복하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돈이 많으면 그만큼 걱정이 많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라지 않은가. 부인의 입장에서는 젊고 예쁜 여자들이 남편의 주변을 맴돌고 다닐 수 있으니 바람을 필 염려도 많다. 돈이 많다는 것은 바쁘다는 것이니 집안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니 남편에 관하여 자기의 몫보다 밖의 몫이 더 크지 않겠는가! 나는 여태 몰랐다. 행복과 불행은 항상 같이 다닌다는 사실을. 특히 불행은 혼자 다니지 않는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는 단어는 설상가상(雪上加霜), ‘엎친데 덮친다‘는 단어와 같이 불행은 동시에 함께 다닌다.
빛과 그림자처럼 모든 밝은 빛에는 반드시 어두운 그림자가 있으며 검의 바깥쪽은 상대를 베지만 안쪽의 날은 자신을 벨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삶과 죽음도 한몸이 아니겠는가, 행복과 불행이 한몸이듯이.
남을 속이지 않고도 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일했거나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세상사의 모든 일을 굳이 분류한다면 행복과 불행, 일상사로 나눌 때 일상사는 항상 있는 것이고 행과 불행은 항상 동반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인생은 +-가 동시에 상존하는 포인트 게임이다. +를 중시하는 사람, -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지만 개인의 차이다.
결론이다.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 마음이 지옥이고 천당이다. 양보 후의 마음이 천당이다.
요즘의 나는‘용서는 삼키고 분노는 뱉어라’고 말하고 다닌다.
이번 산행은 관악산이다. 수차례 오르고 내려왔으니 산에 관한 소개는 생략한다. 동백꽃, 매화, 산수유, 목련, 벚꽃, 진달래, 개나리, 라일락까지 피고 지는데 산에 오르지 않고 어찌 견디겠는가. 모두 모여 봄, 봄꽃, 꽃비를 즐기자. 5월의 첫째 일요일에는 지리산 세석평전에는 철쭉이 한창이겠다. 그때도 모두 가자. 지리산에 관한 시를 세 편 준비해뒀다. 하루에 한 편이다.
동반시는 봄에 어울릴 유안진 시인의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를 꼽았다가 마음을 바꿔 모교인 광주고가 낳은 시인 조태일 시인의 국토서시로 정한다. 1941년생이니 9회일 것이다. 우리가 멋드러진 시 한 수 들고 아름다운 국토를 순례할 사람들 아니겠는가. 이 멋진 순례는 죽을 때까지 게속되어야 한다.
국토서시(國土序詩) / 조태일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2008년 4월 17일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시산회 도움쇠 김 정 남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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