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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도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93회 산행)

도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93회 산행)

도봉산 용어천계곡

산 : 도봉산(739.5 미터)

코스 : 전철 1호선 도봉산역-도봉서원-성도원-용어천계곡-관음암-거북골과 무수골 중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반 내려옴 1시간 반

일시 : 2008년 9월 21일 10시 반

모이는 곳 : 전철 1호선 도봉산역 1번 출구

준비물 :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김종화(010-2406-0332)

블로그 : 사진 blog.daub.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풀이 몸을 풀고 있다

바람 속으로

자궁을 비워가는

저 하찮은 것의 뿌리털 끝에

지구라는 혹성이 달려 있다

사람들이 지상을 잠시 빌려 쓰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풀은 흙을 품고 있다

바람 속에서

풀이 몸을 풀고 있다

 

-풀.2(김종해)

 

 

볕 좋은 가을날, 7부 능선쯤에 있는 묘지로 인사를 간다. 부들이니 억새니 키 큰 풀들 누렇게 우거졌다. 무덤가에 웃자란 잔디도 여물어 반짝이고. 인사를 마치고, 스스스 불어오는 바람에 땀 식히며 아래를 굽어보면, ‘지상을 잠시 빌려’ 쓴 사람들 잠자리 아늑하고, 아득하다.

 

그 위로 풀풀풀, 풀들이 몸을 풀 것이다. ‘바람 속으로 자궁을 비워’갈 것이다. 지구라는 이 초록 행성의 주인은 인류가 아니다. 하찮을 정도로 작디작은 풀들이 착실히 뿌리털을 뻗어 지구가 푸른 생명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인류는 그곳의 단기 세입자에 불과하다. 이런 생태주의적 깨달음을 ‘풀.2’는 노래하고 있다.

-시평<황인숙·시인>

 

뒤풀이의 시간에 이재웅 산우가 외워와서 시평과 더불어 읊으면 좋겠다. 다행스럽게 그는 이것을 즐기는 것 같아 더 고맙다. 하여 나의 시평은 생략한다. 그의 무게만큼, 그의 걸음만큼 그가 시를 읊는 시간은 무겁게, 더디게 가면 좋겠다.

 

 

 

시산회 제 92회 “작성산” 산행기(2008. 09. 07, 맑음 / 한천옥)

 

 

(참석자) : 11명 (기세환, 김용우, 김정남, 김종화, 박형채, 위윤환, 이원무, 이재웅, 전 작, 한양기, 한천옥)

 

 

등산복을 입고 배낭에 몇가지 등산용품을 챙겨 넣고 있는데, 애들 엄마가 ‘낙지를 삶아 줄테니 가지고 갈래요?’ 한다.

‘낙지? 문어하고 붙어보라는 거야! 뭐야? 아서라!’ 이(재웅) 산우가 어제 잡은 진도산 문어를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25인승 버스 운전기사의 착오로 잠실역 3번 출구 곰두리상 부근에서 20여분을 배회하다가 약속시간보다 약 20여분 늦은 8시 20분경에 ‘작성산’을 향하여 렛츠~ 고!

 

충북 제천시 금성면 소재의 ‘작성산’을 이 지역 사람들은 ‘까치성산’으로 부르며, 이웃한 ‘동산’과 더불어 제천의 이름난 산이라는데 나에게는 낯이 설어 미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두어시간은 족히 졸았을까?

중앙내륙고속도로의 남제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 호젓한 충주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꾸불꾸불 달려가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예사롭지가 않다. 아니나 다를까 군데군데 KBS 촬영장, SBS 부속 촬영장 등의 안내표지판도 보인다.

 

작성산 등산로 입구에 잠시 차를 정차시키고 초입 가게에서 기 회장이 막걸리를 가져오질 못 했다고 동동주를 사느라 기다리는 사이에 대형관광버스에서 내린 등산객들이 끝도 없이 올라간다.

전문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꽤나 알려진 유명한 산 인가보다...?

순진한 우리의 버스 기사님은 대형버스는 통행이 불가능한 길을 지나가면서 걸어가는 등산객들이 불평할 거라며 걱정이 태산 같다.

 

송어양식장과 저수지를 거쳐 승용차나 봉고차 밖에는 통행할 수 없는 시멘트 길로 약 10여분을 더 올라가니 근사한 주차장이 나온다. 10시 20분. 잠실에서 약 2시간이 걸린셈이다.

주차장에 있는 등산안내 표지판에서 시간이 제일로 적게 걸리는 무암사-새목재-작성산-무암사(3시간 30분) 코스로 결정하고, ‘막걸리에 문어를 한 점만 맛을 보고 출발하자’는 일부 산우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500여 m 다시 올라가니 SBS 부속 촬영 셋트장이 나온다.

계속하여 500여 m를 더 올라가니 무암사 앞 삼거리가 나온다.

무암사를 끼고 오른쪽 계곡을 따라 약 100여 m 오르니 화강암 사리탑인 무암사지 부도가 나온다. 소(牛)부도 하나가 화강암 사리탑과 나란히 서 있다. 의상대사가 절을 지을 때 황소 한 마리가 목재 나르는 일을 하다가 죽어서 화장을 했더니 사리가 나와 사리탑과 나란히 봉안하였다고 한다.

 

들머리에서 부터 부터 쩝쩝 입맛을 다시면서 문어 맛보기를 얼마나 고대하였던가!

계곡을 오르다가 암반지대의 적당한 자리가 나타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를 잡고 주저앉는다.

달짝지근한 제천 동동주 한 잔과 이 산우가 아침에 바로 삶아 온 따끈따끈한 문어 한 점을 초고추장에 푹 찍어서 먹는 이 맛 ...

아우~!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문어 세 마리와 동동주 두 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다시 또 출발해야지!

유난히도 바위 표지판이 눈에 많이 띈다.

무암사 아래쪽에서는 애기바위, 안개바위,

계곡에 들어서니 배바위, 장군바위, 소뿔바위, 남근석바위...

인터넷에서 소개되어 있는 작성산, 동산 산행기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진이 있었으니~남근석과 함께 찍은 사진! 김 총장은 언제 와 봤는지? 모르지만 “K-20마을” 시산회 포토홈에 실려져 있다고 한다.

남근석은 무암사에서 새목재로 가는 계곡의 중간에서 동산으로 오르는 곳에 있으니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동산’ 산행시 감상하기로 하기로 하였다.

 

주차장에서 두어시간 남짓 오르니 새목재에 도착하였다.

새목재는 보부상들이 한양에서 배를 타고 와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었다.

새의 목을 닮은 고개라고 한다.

우측으로는 ‘동산’, 좌측으로는 ‘작성산’이란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능선을 따라 약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정상 같지 않은 정상에 ‘작성산’ 표지석이 있다.

전망도 좋지 않고, 좁아 표지석이 없다면 정상인지도 모를 정상이다.

 

5분정도 더 가면 그나마 제법 정상 비슷해 보이는 곳에 ‘까치산’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고도 차이가 별로 나질않는데, ‘작성산’은 771 m, ‘까치산’은 848 m라 표기되어 있다.

 

어찌되었던 기념촬영!

그리고 다시 문어에 막걸리 한 잔씩!

정상에 올라 막걸리 한 잔씩 하는 이 맛이야, 산행을 하는 산우만이 느낄 수 있겠지...

이~야~호~!

내려오는 길은 거리가 짧은 대신 대단히 가파르다.

이 길로 올라왔다면 한참 힘이 들었겠다.

 

왕 회장의 산행노트에는 4년 전에 작성산 왕복 산행 소요시간이 3시간으로 적혀 있다지만, 그건 한참 때였을 것이고, 우리는 4시간 30분 정도 걸렸으니까 안내판에 적혀있는 시간보다도 약 한 시간이 더 걸렸나 보다.

무암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약수로 갈증을 해소하고,, 세수하고 머리까지 씻으니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기분이다. 암자의 마루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산세가 심상치가 않다.

한 쪽에 설치되어 있는 무암사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니 절의 맞은편 산에 커다란 암석이 청명한 날에는 보이지 않고, 운무가 산을 덮으면 암석이 뚜렷하게 보일 뿐 아니라 노승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무암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져 온다고 한다.

 

벌써 오후 2시 반이 지났다. 맛있는 문어에 막걸리를 먹어서인지. 배는 고프질 않았지만, 먼저 내려 간 윤환, 용우 등 산우들이 기다릴 것만 같아 지친 몸을 추스르고 한 참을 내려오니 무암저수지 아래에 송어양식장이 보인다. 올라갈 때 이 곳에서 뒷풀이를 한다고 김 전회장은 말 하였었다. 재웅표 진도산 문어에 이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산천어와 송어회!...

 

흐르는 계곡 물에 땀을 씻고 퍼시픽 호텔 조리과장 출신 주방장(주인)의 예술품을 시각적인 감상과 함께 느끼는 이 맛!

미식가들이 찾는 맛이 바로 이 맛 일까? 주방장 고영수씨는 20여년전에 장인어른이 시작한 송어양식을 함께 하면서 호텔에서만 볼 수 있는 요리 솜씨를 5년 전부터 이 곳에 내려와 산 속에서 송어와 산천어 회에다 접목시켜 유감없이 발휘하여 시각과 미각을 함께 맛 볼 수가 있으니 이 아니 기쁘고 누군들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오늘의 동반시 오규원 시인의 “한 잎의 여자”는 산행기를 쓴다고 나에게 읊으라 한다. 좋은 안주에 시원한 소,맥을 한 잔 하고서 읊으니 한 구절 한 구절 싯귀가 내 마음에 와 닿는다.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끄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나는 정말로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정끝별 시인의 시평 일부)

 

동반시는 왕 회장님이 아껴두었다가 이번에 선정한 시이다. 동반시에 대한 시평도 정말로 마음에 와 닿는다. 더더군다나 아름다운 단양팔경의 산 계곡에서 읊조리는 이 시는 마나님말고 여자 하나 가슴에 품지 않은 내가 읊으니 가을을 타는 내 마음이 더욱 더 쓸쓸하기만 하다. 그래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ㅎ ㅎ ㅎ

 

늦은 점심을 겸한 뒷풀이 시간. 맛있는 음식에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다. 또한 시 낭송이 끝난 후 진도산 재웅표 문어를 제공한 이 산우는 오늘도 왕 회장의 뜻을 받들어 감히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시를 암송하여 풀이까지 멋있게 해 주신다. 그의 정성에 모두가 감사하고 또 존경하는 뜻에서 힘찬 박수를 보냈다. 부디 건강하시고 좋은 산행에 자주 참석하시게...

 

차기 산행장소 협의와 납회시 발간키로 한 산행기(산행시 포함)의 발간 방법 등등의 협의를 한 후 즐거운 뒷풀이 시간을 마쳤다. 그런데 추석전 뒤늦게 산행기를 쓰고 있는데, 김 총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알게 되었는데, 시산회에 가입하여 거의 산행에 빠지질 않고 참석을 하여 개근상을 받아야 할 김(용우) 총장이 당일 날 신고식을 하였다고? 사전에 예고는 않했지만, 언젠가는 좋은 산행 후 시간을 갖일려고 했었는데, 김(종화) 총장과 협의를 했었는가 보다. 당일 산행에 참석한 산우들이 11명으로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임차료의 부담과 성대한 뒷풀이에 경비지출이 많아 이 기회에 신고식을 하는게 전체 산우들에게는 훨씬 뜻이 있고, 좋은 일이 아니었나? 생각 되어진다.

 

아무튼 고맙고... 마음 씀씀이가 깊은 산우임에는 틀림이 없다. 더군다나 광고 20회 홈페이지를 운영하느라 숨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정성을 쏟고 있는 ‘K-20마을’의 애정에는 친구로서 항상 경의를 표하고 있다. 친구들을 위하여 계속 수고를 해 주시기를 바라겠네...

 

돌아오던 길에 잠깐 들려 증명사진을 찍었던 ‘금월성’은 장길산이 금강산에서 수련하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라고 해서가 아나라 정말로 만물상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기묘한 모습에 모두들 탄성소리와 함께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차들이 다 어딜 갔나? 내려갈 때와 비슷하게 올라올 때도 두어시간 정도 밖에 안걸렸으니, 산에는 가질않고 어디 엉뚱한데 갔다 왔느냐고 야단을 맞게 생겼다는 기 회장님의 넉살과 버스에서 내려 헤어질 때 우리 모두의 손을 포개어 잡고 들어 올리면서 “시산회 화이팅!”을 외치자는 왕 회장님의 제안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정말로 유쾌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즐겁과 유쾌한 다음 산행을 또 기대하면서...

 

* 추신 * : 추석 보너스 개그...

 

마실갔다가 술한잔 걸치고 거나하게 취해 들어오는데 안방에서 들리는 거침 숨소리에 정신이 번쩍들어 큰소리로 “누구야!”

복면을 한 남정네가 후따닥 튀어나와 36계 줄행랑이다.

부인에게 “뭐야! 어찌된거야?‘

부인왈 “ 당신에 마실간 사이에 양심적인 복면강도가 들어와 근래 잘 안쓰는 물건 있으면 모조리 가져오라고 해서...”

 

2008년 9월 16일 한천옥 씀.

 

 

 

작성산 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을 먹으면서 산행지를 결정할 때 다음 산행지로 대모산이 거론됐으나 도움쇠는 반대하고 도봉산으로 가자고 주장하여 선택되었다. 철이 가을이기 때문이다. 이 좋은 가을에 근교도 아닌 서울 강남의 복판에서 산책 정도의 산행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산 좋고 물 좋은 천하명산 도봉산을 두고 어디를 오르는가. 오르다 왼쪽으로 들어서면 좋은 계곡 두 곳이 나타난다. 용어천계곡으로 오르고 관음암에서 시원한 약수 한잔 마시고 거북골로 내려오든지 무수골로 내려와서 조용한 주막집에서 뒤풀이를 하던지 내친 김에 우이암을 거쳐 우이동까지 내려와서 지난 여름 86회 아카데미 하우스-칼바위-대동문-진달래능선으로 내려와 들렀던 값싸고 푸짐했던 수유동 한식집을 찾아가면 더 좋을 일이다.

 

 

지난 여름 지독한 마음의 열병을 앓아 산행을 하지 못한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은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나는 산을 찾지 못했다. 하여 이제는 애경사가 있어도 산은 가려고 마음 먹는다. 둘째와 넷째 주는 가족에게 봉사할 테니 첫째 셋째 다섯째 주는 자유롭게 놔주라고 마나님에게 통보했다. 핵가족 시대가 되고 애들도 거의 다 커서 평일에는 마나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만 그 시간을 잘 활용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거나 평소에 잘해줘 왔던 경우에는 일요일까지 같이 놀아달라는데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그것도 좋지만 우리 나이에 자유로울 필요도 있다. 우리 세대는 부모의 유산도 없이 평생 가족부양의 무거운 짐을 져왔지 않은가. 없는 날개라도 펴서 높새바람처럼 훨훨 하늘 높이 날아가야 한다.

 

 

세상사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지만 산은 가져가는 것보다 주는 것이 몇 곱절 많기에 우리는 산을 올라야한다. 산에는 모든 것이 있다.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밤과 낮, 하늘과 별과 해와 달, 바람과 구름이 있고 시와 노래가 있다. 비와 눈, 안개가 있다. 산이 있고 물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있다. 봉우리가 있으니 계곡도 있다. 피톤치드가 있고 솔향이 있다. 신록이 있고 단풍이 있으니 낙엽도 있다. 산밤이 있고 도토리, 돌배가 있다. 오디도 빼놓을 수 없다. 산국화가 있고 진달래, 철쭉도 있다. 꽃이 있으니 열매가 있다. 꽃이 있으니 벌과 나비도 있다. 열매가 있으니 새도 많다. 절이 있으니 스님이 있다. 아! 소리도 있구나.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무엇이 될까? 바람소리가 아니고 사랑이 된다. 그런 사랑을 포함하여 거기에 모든 것이 있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산에 올라야한다. 아니다. 사랑 하나만으로도 산에 올라야 한다. 하여 내가 비록 인생을 더디게 알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지만 산에 오르다 죽을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삶일 것이다. 산에 오를 수 있는 여유와 건강만 가져도 행복한 삶일 것이다. 산과 시와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더 행복하다. 우리에게는 산과 시로 다져진 우정까지 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매일 아침 내 책상의 컴퓨터를 방문한다. 얼마 전에 이런 글이 올라온 적이 있어 소개한다.

 

유종호<내 마음의 망명지>중에서

“내가 만약 사십대라면 만사 제쳐두고 주 규칙적인 산행을 할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평균 주 1회의 산행을 해서 전국의 가보지 못한 전국의 많은 산들을 들러볼 것이다. 건강에도 좋고 정신력을 기르는데도 그만한 방책이 없다.“

 

자작시 운운한 적이 있기에 주어진 지면을 활용하여 간단하게 시론을 연재한다. 물론 내 창작이 아니며 책에 실린 글이다. 많이 읽어 주기 바란다. 시를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천천히 시작하자.

 

 

현대시의 기본 개념과 이론

 

1. 시의 본질과 특성

1)시의 본질

시는 언어 예술인 문학의 영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양식이다. 그런 만큼 시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해명도 예로부터 여러 사람들에 의해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시에 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다.’라는 엘리어트(T. S. Eliot)의 말과 같이 시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관점과 방법에 따라 다양한 정의와 해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서 이와 같은 정의와 해명의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사(邪)가 없음이다. - 공자

-시는 뜻을 서술하는 것이다. - 서경(書經)

-시는 율어에 의한 모방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란 우리들이 상상 위에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기술, 즉 화가가 색채로 하는 일을 언어로 하는 기술이다. - 매콜리

-시는 일반적 의미에서 상상의 표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 셀리

-시는 상상력과 정열의 언어이다. - 헤즐리트

-시는 강한 감정의 자발적 유로이다. - 워즈워스

-시는 미의 운률적 창조이다. - 포우

-시는 상상과 감정을 통한 인생의 해석이다. - 허드슨

-시는 사상의 정서적 등가물이다. - 엘리어트

 

이는 정의나 해석을 종합해 보면, 시는 언어로 되어 있고, 거기에 운율이 있으며, 작가의 상상력과 감정, 사상을 표현하는 문학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따라서, ‘시는 작가의 사상과 정서를 상상력을 통해 운율적인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문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음에

 

 

동반시인 ‘별들은 따뜻하다’의 시평이다.

 

정호승(58) 시인만큼 노래가 된 시편들을 많이 가진 시인도 드물다. 안치환이 부른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비롯해 28편 이상이다. 그의 시편들이 민중 혹은 대중의 감성을 일깨우는 따뜻한 서정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슬픔’으로 세상을 ‘포옹’하는 그의 시편들을 읽노라면 좋은 서정시 한 편이 우리를 얼마나 맑게 정화시키고 깊게 위로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그는 별의 시인이다. 그것도 새벽 별의 시인이다. 별이란 단어를 그보다 더 많이 쓴 시인이 또 있을까.

 

그가 바라보는 별에는 피가 묻어 있기도 하고 새들이 날기도 한다. 그의 별은 강물 위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그 또한 별에 죽음의 편지를 쓰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별들도 어둠 없이는 바라볼 수 없으며, 밤을 통과하지 않고는 새벽 별을 맞이할 수 없다.

 

이 시는 ‘하늘에는 눈이 있다’라는 단언으로 시작한다. 눈은 ‘보리밭길’을 덮는 눈(雪)이기도 하고 ‘진리의 때’를 지키는 눈(眼)이기도 할 것이다. 눈 내린 보리밭길에 밤이 왔으니 ‘캄캄한 겨울’이겠다. 겨울의 캄캄하고 배고픈 밤은 길기도 길겠다. ‘가난의 하늘’이니 더욱 그러하겠다. 진리의 때가 늦고 용서가 거짓이 될 때, 북풍이 새벽거리에 몰아치고 새벽이 다시 밤으로 이어질 때 그 하늘은 ‘죽음의 하늘’이겠다. 그런데 그런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얼마나 따뜻할 것인가.

 

우리 생의 팔할은 두려움과 가난과 거짓으로 점철된 어둠의 시간이다. 눈물과 탄식과 비명이 떨어진 자리에 피어나는 꽃, 그것이 바로 별이 아닐까.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한(‘슬픔을 위하여’)’ 법이다.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별’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밝다.

 

눈 내리는 보리밭길에 흰 첫 별이 뜰 때부터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에 푸른 마지막 별이 질 때까지 총총한 저 별들에 길을 물으며 캄캄한 겨울을 통과하리라. 그 별들의 반짝임과 온기야말로 우리를 신(神)에 혹은 시(詩)에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이리라.

(정끝별·시인)

 

 

시인들이 추천한 현대시 100편 중에 순번은 의미가 없지만 아홉 번째로 소개된 시다.

 

 

별들은 따뜻하다

정 호 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2008년 9월 17일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