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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작성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 92회 산행)

작성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 92회 산행)

작성산과 청풍명월(淸風明月)

산 : 작성산(835 미터)

코스 : 무암사-정상-새목재-무암사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반 내려옴 1시간 반

일시 : 2008년 9월 7일 8시

모이는 곳 : 전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준비물 :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하산 후 송어회 혹은 산천어회로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김종화(010-2406-0332)

블로그 : 사진 blog.daub.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어떤 이는 돈에 목말라 하고

어떤 이는 사랑에 목말라 하고

어떤 이는 권력에 목말라 하고

그렇게 목말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처럼 저녁은 시원한 바람을 강물처럼 풀어 놓는다

지금처럼 저녁은 목말라 하는 자들을 잠 재운다

어찌 어찌 숨어 있는 야생화처럼

영혼이 맑은 삶들만 깨어 있어 갈매빛 밤하늘 별을

무슨 상처처럼 어루만지고 있다

-저녁은 (허형만)

 

"저녁을 사랑하자. 밤을 사랑하자. 낮은 훤히 투명하여 사람들 욕망에 닿아 있지만, 저녁은, 밤은, 숨결이 적요해지며 부족함을 덮는다. 돈에, 사랑에, 권력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 사이에, 저녁은 시원한 바람을 강물처럼 풀어 세상의 낮은 곳으로 흐른다. 자신과 만나는 시간. 마음과 마음이 만나 뿌리 내리는 자성(自省)의 시간. 저녁은, 밤은, 적요의 강을 치솟아 오르는 푸른 그리움을 온몸에 적신 후, 목말라 하는 자들을 적신다. 그러면, 야생화처럼 영혼이 맑은 사람들 깨어 상처처럼 별을 어루만지며, 잔잔한 빛이 가슴에 숨어드는 것을 본다."

<박주택·시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살아오면서 뼈아픈 상처를 입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속으로 아픈 만큼 고운 빛깔을 내고 크고 작은 아픔들이 모여 더욱 향기로운 삶이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아픔도 슬픔도 이별도,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의 가슴처럼, 우리도 모든 것을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자.

이재웅 산우는 잊지 말고 외워서 뒤풀이 때 읊어라. 그대에게 주어진, 그대만의 아름다운 일이다. 나도 애송시 하나 읊으려고 외우고 있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다. 우리 모두 하나쯤 준비하여 자진하여 축제의 날에 부르는 축가처럼 멋지게 읊어보자.

-도봉생각

 

 

시산회 제 91회 “도일봉” 산행기(2008. 08. 17 / 구자빈)

 

(참석자) : 13명 <한양기, 조문형, 정해황, 전 작, 이재웅, 이원무, 위윤환, 박형채, 김종화, 김정남, 김용우, 기세환, 구자빈 (성함, 가나다 역순)>

 

“여보, 내일은 출사계획이 없으니 시산회 산행 다녀와도 되겠네.” 길치에다 기계치여서 운전도 잘 못 하면서 늦깎이로 아마추어 사진사 한다고 별로 무겁지도 않은 장비를 끙끙거리며 짊어지고 다니는 집사람이 안쓰러워 기사 노릇을 해 주다가 급기야는 무보수 전속 짐꾼 신분으로 전락해 버린 나는 고용주(?)로부터 일일 휴가를 받았다.

 

산행도 산행이지만 오랜만에 산우들을 만나 하루를 부담 없이 웃고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풍가는 아이처럼 잠을 설치다 늦잠을 자고 말았다. 잠실역에 내려 헐레벌떡 곰두리 상 앞으로 갔더니 먼저 온 기 세환 회장, 김 종화 총장, 윤환이, 원무, 양기, 용우, 형채, 재웅이 등이 반겨준다. 김정남 전회장, 작이, 문형이 등이 속속 도착하고 맨 마지막으로 해황이가 약속한 시간보다 약 5분 늦게 도착하여, 9시 5분경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그동안 여러 사공(?)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던 분이 아니고 새로 온 기사양반은 이쪽 지리에 밝아선지 네비게이션 안내도 없이 막힘없이 척척 시내를 빠져 나간다. 오늘은 김 정남 전회장님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가는 차속에서의 우리들의 공통화제는 당연히 올림픽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어제 밤에 있었던 일본과의 야구경기와 장 미란의 역도경기가 화제의 꽃이었다. 결과만을 보고 하는 이야기였지만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여 출전했겠느냐는 측면에서 야구의 한 기주 투수와 장 미란은 대비되고 있었다. 특히 “장 미란은 체격이나 외모 면에서도 다른 나라 선수들과 비교할 때, 배도 나오지 않고 여성스러우며 날씬하고 S라인이고 심지어는 야위기까지 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더라”는 어떤 산우의 개그에 배꼽을 잡았다.

 

차는 어느덧 중원리에 도착했다. 이제 도일봉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봐야겠다. 도일봉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단월면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864 m의 중봉으로 양평군의 대표 산인 용문산과 마주하고 있다. 용문산의 명성에 가려 있던 덕에 비교적 오염되지 않아 깨끗한 계곡을 간직하고 있다. 도일봉은 대체로 골산이라 할 수 있으며 능선에 올라서면서부터는 상당부분이 암릉이다. 백운봉에서 주봉을 거쳐 문례봉을 지나 도일봉까지 뻗은 용문산 주능선상에 있는 명산으로 중원산과 함께 중원계곡을 이루고 있어 계곡과 산이 어우러진 산이다. 등산로가 계곡으로 나있어 계곡을 통과하지 않고는 산에 접근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여름이면 이 산을 찾는 사람이 많단다. 등반으로 흘린 땀을 계류의 소에 풍덩 들어가 씻을 수 있는 최상의 코스이기 때문이란다.

 

등산로 입구인 상현마을에 이르자 마을 부녀회원인 듯한 젊은 아낙이 길을 막는다. 일 인당 입장료 이 천 원씩을 내라는 것이다. 아니 국립공원에서도 폐지된 입장료가 왜 여지껏 살아 있어? 봉이 김 선달도 산적도 아닌 주제에 왜 길을 막고 돈을 받는 거야?

 

열 세 명이니 깎아서 이 만 원만 내라는데 영수증도 없으니 누구 수중에 들어가는 돈인지 모를 일이다. 모처럼 들뜬 기분 이만한 일로 잡치게 할 필요는 없지 다짐하면서도, 뻔히 부당한 짓인지 알 텐데도 선거를 의식해 지역이기주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지방자치제도가 원망스러워진다.

 

김정남 전회장 말에 의하면 그 동네에서 닭 백숙 원조라는 허 병석씨 가게에 들러 돌아올 시간에 맞춰 닭 백숙을 예약하고 10시 5분경에 들머리에 들어섰다. 최근에 비가 많았던 덕분인지 중원계곡의 물은 수량이 풍부하여 바윗돌과 암반에 부딪치며 포말을 만들어 내고 하얗게 빛나며 힘차게 휘돌고 있었다. 계곡의 숲은 하늘 한 점 안보이게 녹음이 우거져 여름날의 햇빛을 완벽하게 차단한 탓에 감히 더위가 끼어들 틈이 없고 계곡 안엔 음산한 기운 마져 감돈다.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매미, 풀벌레 소리로 귀가 따갑고, 푸른 여울에 쏟아 붓는 물소리가 그렇게 상큼할 수가 없다.

 

조금 올라가니 그림같이 솟은 벼랑이 있고 그 위엔 소나무 그리고 수 억 년을 흘러 암반위에 홈을 만들어 물길을 이룬 중원폭포가 나타난다. 말이 폭포지 그 높이는 기껏해야 2 m나 될까? 그러나 계곡의 넓은 개울이 폭포에 이르러 좁은 암반 협곡사이로 사이다 같은 포말을 만들며 쏟아져 내린 뒤 작은 소를 한차례 헤집으며 가슴 속의 응어리를 우렁찬 함성과 함께 풀어내는 폭포수는 우리가 이 산을 찾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주가무만 즐기는 민족인 줄 알았는데 계곡 물도 무척이나 좋아하나 보다. 반석처럼 반반한 암반 위 계곡엔 아직 덥지도 않은 오전인데도 벌써부터 물 반 사람 반이다. 하기야 이곳처럼 물 맑고 오염이 없는 깨끗한 계곡에 사람이 몰리지 않으면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중원폭포를 지나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는 길은 군데군데 닦아진 길의 흔적은 간데없고 폭우의 흔적만 남아 있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가던 젊은 여자가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것을 본 김정남 전회장이 급히 그 여자를 불러 세운다. 평지에서 같으면 못 본 체하고 말 일인데도 이것이 산사람들의 인심인 모양이다. 계곡의 상당부분이 V자형 협곡으로 이루어져 갑자기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지기라도 한다면 불어난 물을 피할 곳도 없을 것 같고 구조해낼 방법도 없을 것 같다.

 

처음 500 m 고지 정도까지는 시동이 늦게 걸린다는 이 모 산우를 앞세운 덕에 그다지 힘들지 않게 따라 갈 수 있었다. 땀 흘리며 오르다 지쳐 잠시 쉬는 동안 갈증을 다스릴 수 있는 한 잔의 막걸리와 해황표 모시 쑥떡이 있었으니 더 이상 무엇이 부럽겠는가? 그것만으로도 족한데, 자신은 보고 싶은 사람 볼 수 없는 괴로움을 견디기 어려워 쉽게 정을 주지 못한다는 어떤 산우의 허심탄회한 고백은 우리 모두의 공통분모를 하나 더 갖게 해 주었다. 그 친구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가슴에도 아래 시처럼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퇴적암처럼 굳어 있으리.

 

소리내어 말할 수 있는 아픔이라면

그 아픔은

아직 참을만한 것이리,

소리내어 말할 수 있는 그리움이라면

그 그리움은

아직 견딜만한 것이리.

 

소리내어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몰래 오는 어둠처럼 더 깊어져도 좋으리.

 

너무 아프면,

너무 그리우면,

정녕 아무말도 할 수 없는 것임을.

 

너무 아프면,

너무 그리우면,

단단한 소금이 돼버린 눈물 한 섬.

가슴에 쌓는 것 밖에

달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임을.

 

나, 지금 너무 아파요.

나, 지금 너무 그리워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만큼만 아프고

그만큼만 그리웠으면.

 

동굴처럼 텅 비어있는 새벽,

잔잔한 강물처럼 나를 적시는 이름 하나,

그리운 사람아,

아직도 말할 수 있으니

나, 아직은 견딜만한가요.

 

정상이 가까워지니 소나무 숲 향기가 싱그럽다. 도일봉에서는 소나무와 떡갈나무류가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소나무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떡갈나무류가 우세하단다.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리는 노우하우를 가진 소나무가 암석지대에선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지 몰라도 떡갈나무류에 의해 숲이 대체될 것이라는 학자들 말처럼 여기도 숲의 상당부분을 이미 떡갈나무류에 내어주었다.

 

소나무 향에 취해서인지, 늦었지만 시동이 제대로 걸린 것인지 정상에 가까워지자 앞서 가던 이 모 산우의 발걸음이 빨라졌고 내 다리는 그만큼 고단해졌다. 어떤 산이고 정상을 쉽사리 내어주는 산은 없다지만, 육안으로 보아서는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았는데 최근 산행을 게을리 한 나에겐 멀기만 하게 느껴진다. 이윽고 급경사 암릉을 지나 평탄한 능선이 나오고 눈앞에 큼직한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정상은 그 바위 꼭대기에 있다. 바위 중간쯤 밧줄이 매어져 있어 올라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 이 모 산우의 페이스에 말려 풀린 다리로 밧줄을 타고 올라가려는데 올라가지지는 않고 몸이 핑그르르 돈다. 밧줄을 놓자니 다칠 것 같아 꼭 잡고 있는데 내 몸이 돌면서 바위에 정강이를 부딪혀버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밧줄을 타고 올라와 정상에 올랐지만 상처뿐인 영광이 되고 말았다.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보도블럭으로 정돈되어 있는 헬기장에 김정남 전회장이 가져온 제주도산 문어와 여러 산우들이 준비해온 과일 등을 안주삼아 푸짐한 막걸리 상을 마련했다. 하산 길에 뭔가 빠뜨린 게 있는 것 같아 생각해보니 시 낭송을 못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허기진 배를 허겁지겁 채우다보니 모두 다 깜빡 했나보다.

 

간헐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하산 길의 완만한 오르막도 체력이 바닥난 나를 괴롭게 했다. 평소엔 그렇지 않았는데 가끔씩 뒤쳐지는 걸로 보아 기 세환 회장도 저번부터 아픈 허리가 아직 완쾌되지 않은 눈치이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제발 빨리 건강 되찾으소서!...

 

싸리재를 거쳐 하산하는 길의 이정표는 뭔가 잘못된 듯하다. 마을까지 4.3 km정도 남은 것으로 보고 한참을 걸어 내려왔는데 아래쪽의 이정표는 4.4 km 남은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 아래는 3.8 km 남은 것으로 표시된 이정표가 서 있다.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해놓고 입장료나 챙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언짢아진다.

 

이제 계류의 시원함을 만끽할 시간이다. 모두들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았는데, 어떤 산우는 옷을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등목으로 더위를 날려 보내는 산우도 있다. 이로써 우리 민족은 계곡 물을 좋아하는 민족이 틀림없으며 우리도 예외가 아님이 증명된 셈이다.

 

예정보다 한 시간 늦은 오후 3시쯤 허병석씨 가게에 도착했다. 준비 시켜놓은 백숙을 앞에 놓고 정상에서 읊지 못한 시 낭송을 했다. 영광스럽게도 금번 시산회 제 91회 산행기를 쓸 것으로 명 받은 나에게 시 낭송의 기회가 주어졌다. 중년을 지나가고 있는 나로 하여금 ‘의자’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한다.

 

점심을 먹은 후 다음 산행지는 충북 충주근교에 있는 “작성산”으로 결정했으며, 위윤환 산우 ‘재추위’(?)를 결성하고 수락여부와 관계 없이 박형채 산우를 위원장에 위촉했는데, 가시적 성과가 곧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여느 때도 늘 막히는 노선인데다 사흘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돌아오는 길은 예외 없이 막혔다. 이대로 가면 7시 반 이전에 잠실역에 도착할 수 있느니, 불가능하니 하며 막 내기를 하려는 차에 이곳 지리에 정통한 기사양반(나중에 들으니 우리 6년 후배 될 뻔 했다함)이 팔당대교를 건너 자기 마음대로 코스를 잡는 바람에 약 30여분 빠르게 도착할 수가 있었다. 이러다 구르는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뒤풀이는 석촌호수 옆 남원추어탕에서 김정남 전회장이 숙회로 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큰 거 집어 먹는다’고 옆구리 찢어지도록 먹었더니 급기야는 배탈이 나서 다음 날 아침도 건너뛰고 출근해야 했다. 아, 미련한 중생이여! 김 전회장님! 하지만 잘 먹었었네 그려.

 

받을 때는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정말 엄청나게 많은 곡이 재웅표 CD에 수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엄정행의 목련화를 들으며 CD에 묻어있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느껴 본다. 두고두고 간직하고픈 도일봉 산행의 추억을 하게 해 주신 회장단과 잠실의 남원 추어탕집에서 맛있는 숙회를 사심 없이 맛볼 수 있게 해 주신 김 전회장님께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하면서 산행기를 맺는다.

 

2008. 08. 20 구 자빈 씀.

 

적절한 어휘를 뛰어나게 구사력을 구사하고 매우 성의 있게 썼으며 내용도 신선하고 정감어린 글이다. 버릴 것이 없으니 길지만 간결한 문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자주 쓰고 익히면 훌륭한 글쟁이가 될 소질이 보인다. 일찌기 그대의 끈기와 노력에 감탄해마지 않는 사람이 많으니 바라건대 마나님의 소질을 살리는 일만 하지 말고 그대의 소질을 잘 살려보게. 산우들의 일취월장하는 글솜씨에 마음이 흡족하다. 삽입한 시는 이재웅 산우가 어느덧 애송하기 시작한 이은채 시인의 '그만큼만 아프고 그만큼만 그리웠으면'이다.

자작시를 올려보자고 했으나 시를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도전 없이 성공한 삶이란 없다.으니 그 생각을 버리지 말고 끝까지 가자. 언젠가 심금을 울리는 애틋한 자작시 한 편쯤 올라올 날이 올 것을 굳게 믿는다.

 

9월. 열매달 - 가지마다 열매 맺는 달이다. 가을의 첫 자락에 근교보다 먼 산행을 기 회장님과 김 총장에게 적극 주장하여 도일봉에 이어 아름다운 산 작성산으로 정했다. 더 아껴두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산이다.

제천시 금성면과 단양군 적성면 경계에 솟아 있는 작성산과 동산은 약 1.7 km의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솟아 있다. 오대산 서남능선상에서 솟은 치악산 남대봉에서 충주호로 뻗은 지맥의 끝부위에 위치한 두 산의 서쪽 산자락은 아름다운 충주호에 담그고, 수림이 울창한 능선에는 분재 같은 노송이 많고 곳곳에 산재한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충주호의 초가을에 우리는 산천어 한 접시 즐기고 내려오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 내려와서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제천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는 일. 충주호반의 기막히게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휘영청 보름달이 뜨는 소슬한 가을밤에 충주호에 돛단배 띄우고 사랑시 한 수에 국화주 한 잔에 애기별 하나, 뜬구름 한 점, 찬바람 한 점과 사랑하는 고운 님이 옆에 있으면 참으로 행복하겠다.

 

산행노트를 보니 “ 2003. 12. 2. 142회 산행. 무암사에서 출발하여 정확히 3시간만에 원점회귀. 산의 규모에 비해 멋있는 산이다. 동산까지 오르려 했는데 도중에 본 산천어 횟집이 눈에 어른거려 작성산만 오른 후 하산해서 산천어회를 먹기로 결정. 산에서 먹는 점심은 생략하고 동산은 다음 기회로 미룸. 처음엔 급경사였으나 770봉부터는 편한 길. 건너편 동산은 안개 때문에 볼 수 없다. 충주호를 끼고 도는 길이 매력적이다"라고 적혀 있으나 내 기억에는거의 없고 정상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산천어철이 아니어서인지 송어회와 매운탕을 맛있게 먹은 기억만 남아 있다. 잘 먹는 것만 남는 것인가.

 

입추, 처서도 지났고 하얗고 차가운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의 절기에 무거운 두 어깨는 집에 두고 피곤하고 지친 삶을 하루라도 털고 오자. 결코 어렵지 않은 산이다. 좋은 산우들도 있지 않은가. 모두 가자. 9월부터 년말까지 주왕산, 설악산, 내장산 등의 산행일정을 김종화 총장이 보내왔으니 자신의 일정을 잘 조정하여 빠짐없이 참석하자. 아름답지 않은 가을산이 없다지 않는가. 나는 내 인생을 성공했다거나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나 그 중에 잘한 것이 있다면 오뉴월 하늬바람처럼 하늘끝까지 훨훨 날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고 가정을 꾸려 보석 같은 두 딸을 얻은 것과 젊었을 때 부지런히 일해서 나이가 들어 많은 산을 다닐 수 있는 약간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음이다. 해서 산우들에게 좋은 산을 소개하고 안내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런 도움쇠의 작은 가슴에는 아직도 아껴둔 아름다운 산과 시가 많이 들어있다. 부지런히 다니자.

 

시를 선정하면서 항상 가슴에 묻어둔 채 풀지 못한 의문이 하나 있었다. 시란 무엇인가.

감히 말하지만 명확한 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이 말한 정의는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네루다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시를 정의하는 일”이라 했다. 그럼에도 많은 시인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는 일에 동참했다. 길지 않으니 일독을 권한다. 그만큼 시가 어려우나 우리는 높은 산의 정상에서 아름다운 시 한 수를 읊을 줄 아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신이 되려다 받침 하나가 부족한 시는(...)‘언어로 만들어진 발의 옷’이다” 유안진 시인

“부재의 씨앗이 자라나서 맺은 열매가 바로 시다” 장석주 시인

“내 삶에서 시는 단독정부의 무서운 수반처럼 무서운 권력을 쥐고 있다” 천양희 시인

“광막한 우주의 무한한 천공에 펼쳐진 비교록(秘敎錄)의 내용을 가능하면 더 많이 훔쳐내는 일이다” 이건청 시인

“나는 시를 모른다. 굳이 들이대자면 시는 ‘개똥참외’라는 생각이 든다” 이근배 시인

“시가 무엇인가 묻지 말라. 시에 대한 정의는 언제나 완벽한 정의가 아니기 쉽다. 그러므로

오늘은 시인에게 있어 시는 건강과 같다고 말해둔다“ 문정희 시인

“한때 내게 시는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겠다. 시는 적당히 가는 것이다. 시는 흔들리는 삶의 어쩔 줄 모르는 언어다” 김중식 시인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바로 시다” 오탁번 시인

“비계살 많은 내 시의 살갗이 축축 늘어지고 굳은 살이 배길 때면 시퍼런 작둣날 위에 올라선 무당처럼 가끔씩 중얼거려보는 이 한 줄. 시라기보다 그것은 이제 무슨 주문처럼 느껴진다. 섬뜩하다” 손택수 시인

“시인이 선택한 가시면류관” 나태주 시인

“허기진 사람에게만 약동하는 무엇이다” 박형준 시인

“내 뼈 안에서 울리는 내재율” 신달자 시인

“‘나’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나’의 출몰” 김행숙 시인

“몸이며 생성” 정진규 시인

“극점의 언어, 극한의 언어” 이승하 시인

“언어의 탄환으로 명중시킨 진실의 과녁” 이가림 시인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돈을 목적으로 부르지 않는 마지막 노래” 김광규 시인

 

아래의 글은 동반시 '한 잎의 여자'에 대한 시평이다. 현대시 100주년의 해에 시인들이 추천한 100편의 애송시에 뽑힌 시다.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작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의 여름, 한 남학생이 보낸 대학학보의 주소 띠지 속에서 처음 읽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이 시를 옮겨 나르곤 했던가. 이 시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에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시집 '사랑의 감옥'(1991)에 3편의 연작시 중 1편으로 다시 실렸다.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라는 부제가 첨가되었고, 2연의 끝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와 3연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바뀌었다. 부제를 첨가하여 '여자'는 '언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뒤로 배치하여 여자나 언어 모두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스름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물푸레, 이 시 덕분에 물푸레나무와 그 잎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비해 여릿하고 포릇하고 정말 '쬐그만' 둥근 잎이었다. 천생 '여자'를 닮은, 이를테면 눈물 하면 떠오르는 글썽임이라든가, 슬픔 하면 떠오르는 비릿함이라든가. 병신 하면 떠오르는 어리숙함이라든가, 시집 하면 떠오르는 아련함이라든가….

 

그런 '여자'를 반복해 나열하면 할수록, 묘사하면 할수록 '여자'의 실체는 사라지고 '여자'는 신비의 옷을 입는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물푸레나무에 달린 '쬐그만' 잎처럼 하고많은 여자와 '여자'라는 보통명사를 이토록 입에 척척 달라붙도록, 혀에 휘휘 휘감기도록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니!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시평 (정끝별·시인)

 

시인은 죽어서 시를 남긴다는 건 틀린 말이다. 시인은 죽어서 시가 된다. 시가 되어 돌아온다. 지난 여름 병석에 누운 시인의 ‘불 타는 오후다’라는 시를 어느 시인으로부터 전해 듣고는 망연자실했다. 그때 내 마음이 그랬으니까. 아껴둔 동반시다. 동반시에 대한 시평이 기막히게 좋다. 시는 더 좋다. 잊지 말고 작성산의 정상에서 충주호를 바라보며 이 시를 읊자. 충주호같이 아름다운 호반을 닮은 여자를 생각하며. 이런 女子 하나 가슴에 품지 않은 남자는 남자가 아니다. 이런 女子 하나조차 가슴에 품지 않은 남자 아닌 남자가 읊어라. 가을처럼 읊어라.

 

한 잎의 여자 / 오 규 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끄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나는 정말로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2008년 8월 26일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