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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도일봉에 오릅니다(詩山會 제 91회 산행)

도일봉에 오릅니다(詩山會 제 91회 산행)

도일봉과 중원계곡

산 : 도일봉(864 미터. 양평. 용문산 근처)

코스 : 중원리 허병석가게-합수곡-도일봉정상-안부삼거리-중원계곡-허병석 가게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내려옴 2시간

일시 : 2008년 8월 17일 8시 30분

만나는 곳 : 전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준비물 : 식수. 시원한 막걸리, 안주, 과일(하산 후 뒷풀이 겸 점심)

연락 : 김종화(010-2406-0332)

블로그 : 사진 이경식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도움쇠 blog.daum.net/yc012175

동창회카페 김용우 cafe.daum.net/K-20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간격(안도현)전문

 

함께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남을 아끼고 곤란에 아낌없이 도와주는 것. 세월이 오래 지나야만 사람을 알 수 있듯, 혼자 지내본 사람은 더불어 있음의 행복을 안다. 섬, 하지만, 갇혀 있다는 생각으로 홀가분히 떠나온 집마저 그리움이 되는 곳. 방, 조용함에 자신 속으로 파고들어 자신이 되고자 하지만, 살을 물어뜯는 모기마저 반가운 곳. 이렇듯, 홀로는 함께 있음이 있을 때, 그 배경의 북적거림으로 빛난다. 그것은 나무와 나무가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한 숲을 이루는 것처럼, 서로 사이와 사이를 섬길 때 행복은 성자(聖者)처럼 온다.

-시평<박주택·시인>

 

시는 영혼의 높고 깊고 외로운 것을 피와 땀과 눈물로 엮기에, 생활이며 행동이며 실천이다. 마음 속에 일고 있는 것, 극에 달해 있는 것, 어찌할 수 없는 고통에 들어 있는 것, 이 모두가 갈망으로 애쓰고 있다면 시의 거처(居處)에 머물러도 좋으리라. 별자리에 박혀 불빛도 없이, 신의 숨결이 관통하는 밤의 한 끝에서, 삶의 심연을 향해 필사적으로 자신을 던질 줄 아는 것이 시인이기에, 고단한 생의 이빨자국을 슬쩍 들여다보아도 좋으리라. 화살 하나 공중을 가르고 과녁에 박혀 파르르 떨 듯, 시인은 자신의 언어가 시가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서 마구 떨리면서 깊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사랑의 첫 발성처럼, 그때 뺨 붉은 숨결이 무지개로 달아올랐을 때 처럼.

-도봉생각

 

 

시산회 제 90회 “靈長山” 산행기(흐림. 2008. 08. 03)

[참석자] : 10명 (기세환, 김용우, 김종화, 나창수, 박형채, 이경식, 이원무, 전 작, 정해황, 한천옥) * 김정남(뒷풀이 참석)

[산행코스] : 야탑역-경남아파트-종지봉-맹산-체육공원-솔밭쉼터-영장산정상-배지봉-한천약수-갈보리교회-이매역

 

엊그제 일기예보에 의하면 8월3일까지 중부지방에 많은 비와 함께 돌풍이 불 것이라고 하였다. 5~6주째 계속 주말에 비가 오니 우리 시산회 산행이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우천 시도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는 시산회의 방침 때문에 이번 산행도 강행할 터인데 비오는 날 산행할 것을 생각하니 게을러진 나로서는 영 내키지가 않았다. 하지만, 김 총장께는 이번 산행에 참석 할 것이라고 연락은 하였었다.

 

지난 7월20일 검단산 산행 때에도 참석한다고 하였다가 우천을 핑계대고 참석하지 않고 집에서 빈둥대고 있으면서 TV나 보고 있었던 일이 후회 막심해 나로서는 이번 산행에는 꼭 참석 하여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낀 흐린 날씨이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9시25분경 야탑역 2번 출구에 도착하니 김 총장과 김용우 산우가 먼저 와 반긴다. 반갑게 수인사를 나누고 김 총장 자신이 마실려고 가지고 있던 커피라떼를 나에게 마시라고 권한다. 미안한 마음에 사양을 하니 김 총장은 자신이 가져왔던 표주박에 커피 일부를 따라 마시고 나머질 나에게 준다. 표주박에 커피? 아무래도 잘 어울리지 않는데, 좀 거시기하기도 하였다.

 

1시간 전에 야탑역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 후 뒤풀이 겸 점심식사를 할 장소 등을 물색 하였다는 김 총장과 역시 1시간 전에 도착하여 주변상가 등을둘러 보았다는 김용우 산우, 이들의 시산회를 위한 마음과 부지런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9시35분, 오늘 산행에 참석한 10인은 영장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들머리로 이동하면서 지난 3월16일 치악산 산행이후 약 5개월 만에 산행에 참석, 약간 서먹서먹한 상태에 있는 나에게 김 총장은 오늘 산행기 필자는 자네 차례라고 하면서 산행기를 쓸 것을 명한다. 언젠가 한번은 써야 할 걱정했던 상황이 현실로 온 것 같다. 한방 맞은 기분이다. 오랜만에 참석한 나에게 ‘산행기를 쓰라고 하는 것은 좀 너무한 게 아니냐’ 하고는 생각은 들었지만, 김 총장의 시산회를 위한 노고에 잘 못 쓰는 글 솜씨이지만 산행기라도 협조하여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먹으니 불평 할 수도 없었다.

9시45분경, 경남아파트단지 정문을 빠져나와 ‘영장산’입구 들머리에 도착 하였다. 어느 산이건 산행출발 이후 10여 분간이 힘든 것 같다. 나 원장은 벌써부터 뒤에 처져서 힘이 드는지? 자꾸만 쉬어가자고 한다. 약 20여분쯤 오르자 쉼터인 정자가 보인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잠시 쉬었다가 가자한다. 산우들 중 누군가? 먹기 좋게 썰어서 가져온 토마토를 내어 놓아 먹으면서 잠시 재미있는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다른 산객들이 그 곳에서 쉬려고 주춤거리며 눈치를 본다. 더 쉬고 싶었지만 우리들만의 쉼터가 아니기에 자리를 양보하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다.

 

10시40분경, 철봉, 평행봉 등이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종지봉에 도착하였다. 잠시 땀도 식히며 목을 축이기 위해 시산회 산행에서 빠질 수 없는 막걸리와 수박 등을 끄집어내어 놓았다. 나도 가능한 빨리 짐을 덜기 위하여 "아침을 드시지 않은 친구가 있겠지?"하며 매 산행 때마다 준비해 간 ‘해황표 모시떡’을 내어 놓았다. 누군가는 ‘해황이가 가져온 반포의 모시떡이 제일 맛있다’고 하면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질기의 정도가 적당 해 먹기가 아주 좋다고 한다.

 

어떤 산우는 저번 산행 시 만났던 모 산객이 맛있는 떡을 가져옴에 따라 “이제는 해황이가 산행에 참석 안 해도 되겠다”라는 농담도 하였다고 한다. 변변치 않은 떡이지만 그동안 전, 현직 회장님을 비롯해 모든 산우들이 맛있게 잡숴주시니 아무튼 기분이 나쁘진 않다.

 

분당은 주변에 산이 없는 평평한 지대라고만 생각 하였었는데, 시내와 접한 곳에 이렇게 좋은 산이 있다는 사실은 아주 잘 못된 생각이었다. 또한 靈長山은 대부분소나무로 조성된 낙엽이 적당히 쌓인 흙산으로 등산로는 청계산보다 훨씬 순하여 바위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으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폭이 넓어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도 있었다. 등산을 하는 산객들은 산보코스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평상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배낭도 없이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계획도시 인근에 있는 산이라서 인지는 몰라도 반듯하게 조성된 소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소나무가 사람들을 압도할 만큼 자라지는 않았지만, 삼사십년 후엔 지름이 70~80cm의 굵은 송림으로 둘러싸인 산이 되면 산으로부터 압도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미래의 산은 지금의 산보다는 친근감이 덜 할 것만 같은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기 회장과 함께 오르며 나는 “로또 만땅”이라는 주유소 이름을 들어 보았냐고 물어 보았다. 기 회장이 ‘못 들었다’고 하기에 나는 사업아이디어 라고 말하면서 그 주유소에 대하여 설명을 하여 주었다. 기름을 만땅으로 넣는 고객에게 손바닥보다 조금 큰 칠판을 가져와 숫자 3개를 쓰라고 한 후, 기름요금의 끝 단위 숫자 3개가 칠판 숫자와 같으면 기름 값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당첨확률이 천분의 일(기름 1L에 2원 깎아 주는 셈)로 주유소 측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반면, 주유소는 ‘로또’를 기대하는 고객으로 항상 붐빈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난 기 회장은 좋은 아이디어 이지만 “내 주유소는 위탁관리를 하기 때문에 하루에 10명 당첨 되었다고 주유원이 둘러대면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주인이 직접 관리하는 주유소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겠는가?

 

11시10분, 솔밭쉼터에 도착하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이(원무) 산우의 사진인화 제공이 인화한 사진의 관리상 난이성 등의 이유 때문에 지난 지리산 산행이후 우리 시산회의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다른 친구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상 작가로만 활동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뒤풀이 때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쉼터의 이정표에 영장산 정상과는 다른 좌측 길에 ‘원적정사’라는 절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 옆 프랑카드에는 ‘일요일 12~14시 사이에는 절에서 무료로 점심식사를 제공한다’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를 본 어떤 산우는 ‘절밥은 맛이 좋아 꼭 먹어야 한다’고 말을 하니 작년 강원도 고성의 조용한 절 “건봉사”에서 절밥을 맛있게 먹고 얼마간의 시주를 했던 일이 새롭게 생각났다.

 

11시40분, 약 2시간 동안의 산행 끝에 영장산 정상(413.5m)에 도착하였다. 낮은 산인지라 높은 산에 비해 특징은 없었다. 땀을 식히고 있는 중에, 나비 한 마리가 나 원장에게만 날아 앉아 염기가 포함된 나 원장 팔의 땀을 탐하는 듯 했다. 작년 관악산 등반 때 만난 산객들도 나 원장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갖더니만 나비까지도 나 원장을 좋아한다고 한마디씩 한다. 人福이나 미물인 나비까지도 좋아하는 산우인가 보다.

 

기 회장님이 오늘 쏘기로 사전에 공지된 점심은 여름철 보양식인 오리탕으로 결정되는 듯 했었다. 그러나 一當九라는 말이 있듯이 나 원장은 뜨거운 탕보다는 회가 더 좋다고 혼자서만 우긴다. “차기 회장님의 발언이라 누가 감히 반발도 못하고 있다”고 기 회장님은 거든다. 결국 한명이 아홉 명을 이겨 점심은 ‘회’로 결정 되었고, 11시50분경 날머리를 이매역으로 변경하여 하산을 시작하였다.

 

나 원장은 사우나에 가서 먼저 땀 냄새 나는 몸을 개운하게 씻고서 회를 먹자고 주장하였으나 장모님 기일행사 때문에 산행에는 참석을 하지 못하지만 뒤풀이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는 김 전회장과의 약속시간 때문에 점심을 먼저 먹고 난 후에 사우나에 갈 것을 결정하였다.

 

배지봉을 지나 12시30분경, 이매역인근 진흥아파트 주민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한천약수터’에 도착하였다. 잠시 쉬면서 시원한 물맛도 보고 흐르는 계곡물로 땀을 씻었다. 렉산지붕에 스텐기둥, 물받이 통 등 제법 비용이 투자된 것 같다. 기왕 투자 한 김에 샤워실까지 만들어 놓았으면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이 곧장 개운할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대한민국 어느 약수터에도 샤워장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혼자 괜한 생각을 한 것만 같다.

 

‘한천약수터’부터는 계곡이 형성되어 있었고 최근에 비가 많이 와서 인지 계곡에는 상당량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은 물이 많이 흐를 때가 적게 흐를 때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는 것 같다. 힘차게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를 보면 괜히 신이 난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양갈래길이 나타나 主길인 징검다리를 건너 50m쯤 더 가니 등산로가 다시 산정상 방향으로 나 있었다. 오늘 안내를 맡은 김 총장도 이 길은 처음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잘 못 온 것만 같아 양갈래길로 다시 되돌아 와 다른쪽 길로 조금 내려서니 사람들의 횡단이 금지된 자동차 전용도로가 나타났고, 100m 쯤 좌측에는 산과 마을을 연결하는 연육교가 보였다. 양갈래 길에서 산으로 올라가 연육교로 가는 것이 올바른 하산길 이었던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오던 길을 돌아가기에는 너무 지쳐있었기에, 하는 수 없이 길 건너 마을을 향해 위험을 무릅쓰고 차량 왕래가 뜸한 틈을 이용, 자동차 전용도로를 무단 횡단하였으나 마을로 향하는 길은 없었다. 시산회 용사들, 나 원장을 첨병으로 세우고 ‘길이 없다고 못 갈 쏘냐’, 개간을 하여 만든 밭길을 따라 마을쪽을 향해 풀밭을 헤치면서 조금 내려가니 열쇄가 채워진 철책문이 있었다. 용감한 우리 시산회 산우들, 체면을 무릅쓰고 월문을 할 수 밖에, 주민들이 보았으면 40년 전 청와대를 목표로 습격한 김신조 일당과 같은 무리가 아닌가?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었을 텐데...ㅎㅎㅎ

 

철문을 넘어 아파트 단지 내 도로로 한참을 내려가니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온 ‘갈보리교회’ 교인들이 이매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있었다. 얻어 타고 싶었지만 땀내음 나는 등산객을 태워 줄 아량이 없을 것 같아 그냥 지하철역까지 걷기로 했다. 다행히 멀지않은 곳에 지하철 이매역이 있어 수내역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13시50분경, 수내역에 도착하니 김 전회장이 특유의 웃음을 띄면서 나타났다. 나와 만난 지는 근 1년이 다 된 것 같다. 건강한 모습을 다시 보니 무척 반가웠다.

 

기 회장은 VIP고객과 함께 간혹 들린다는 수내역 인근에 위치한 ‘진수사’란 일식집으로 안내했다. 뒤풀이는 항상 즐겁다. 입이 즐겁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워주니 이 행복한 시간을 시산회 산우들만이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예쁜 아줌마가 써빙을 하니 모두들 목소리톤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 그중 귀담아 들을 한마디. 여자의 성감대는 상대 남자의 육체적 기교보다는 여자의 가슴과 두뇌에 의해 더 자극 된다고? 예쁜 아줌마, 맞는 말씀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시원한 소ㆍ맥에 오늘 즐겁고 안전한 산행에다 뒤풀이를 쏜 기 회장님의 사업 번창을 다들 빌었다.

 

뒤풀이 시 협의된 주요 안건은 ‘설악산’ 산행은 10월 셋째 주 주말에 가기로 하고다음 산행지는 지난번에 우천으로 가지 못한 ‘도일봉’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100회 산행을 마치면 산행 동반시보다는 오히려 산행기를 책으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는 산우가 있었다. 큰 비용은 들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동반시 또한 다른 유명 시인들의 시를 가져가지 말고 직접 지어서 읊자고도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들이 시를 지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까진 역량이 부족하고 하여 당분간은 현행대로 동반시는 유명 시인들의 시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본인 생각).

 

약속이 있어 먼저 간 김용우 산우와 이원무 산우를 제외한 나머지 산우들은 땀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베스피아’ 불한증 사우나로 향했다. 온탕에서 몸을 적당히 데운 후 대부분의 친구들은 냉탕으로 향했다. 한 산우가 장방향의 냉탕 한 쪽에서 잠수를 한 후 7~8m의 거리인 반대편까지 머리를 내밀지 않고 발을 통통거리면서 왕복 수영을 하였다. 그러자 모두들 잠수를 해 보자고 한다. 평소 등산으로 심폐기능을 늘려서 인지 반대편까지 완주를 몇 번씩이고 한다. 모두가 50년 전 마을인근 하천이나 저수지에서 놀던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사우나 내 온돌로 올라가 발가벗은 몸들을 서로 보니 나이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젊은 사람들과는 다른 체형으로 모두가 변해 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산행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 속에 즐거운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16시경 집으로 향하였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산회 발전을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지만, 특별히 오늘 삼복더위에 지쳐있는 시산회 산우들의 원기회복을 위해 분당까지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에다, 찌든 삶의 때까지 깨끗이 씻게 해 주신 기 회장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면서 두서없는 글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8월 6일 정 해황 씀.

 

좋은 산행기를 써 줘서 고맙다. 역시 광고인의 탄탄한 기본 실력이 만만치 않다. 해황표 찰떡도 항상 맛있게 먹는다. 부디 자주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기 바란다.

 

여름에는 볕이 따가우니 숲이 우거지고 계곡이 좋은 곳을 권한다. 비가 많이 와서 계곡 때문에 검단산으로 발길을 돌려 오르지 못 했던 용문산 근처 도일봉으로 다시 산행한다. 산행노트를 보니 ‘등산 2시간 하산 2시간. 2003. 7. 11. 114회 산행. 중원계곡은 수량이 풍부하고 시원한 계곡이나 수 개의 폭포가 장엄하지는 않다’고 쓰여 있다. 등산길 안내책을 보니 ‘용문산에서 뻗어내린 지산이나 위성봉으로 볼 수 있고 이 일대는 산림이 울창해서 수량이 풍부하고 유명한 폭포들이 많으며 가을 단풍이 특히 좋은 산’이라 적혀 있다. 정상에 오르면 용문산이 지척이고 함왕봉, 장군봉, 중원산, 백운봉 등 용문산의 위성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는 화악산, 명지산 등 1,200 - 1,400 미터의 고봉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아직은 못 올랐지만 언젠가는 오를 산들이다. 모두 참석하여 미리 그 멋진 산들을 봐두자. 명지산은 지루하지만 단풍과 계곡이 좋다. 화악산은 정상에서 함박눈을 맞이했는데 좋았다. 좋은 날, 좋은 산우들과 휴일의 한나절을 명산에서 함께 즐겨보자. 비가 와도 간다.

살얼음낀 막걸리와 과일, 간단한 안주를 준비하여 산에서 요기를 면한 후 하산 후에 점심을 겸하여 닭찜이나 닭죽과 파전에 시원한 맥주로 즐겁게 뒷풀이하자. 나는 제주산 문어를 준비한다.

 

동반시를 선정하면서 항상 고민한다. 마침 좋은 시와 시평이 있어 가감 없이 옮긴다. 나도 이럴 때는 편하다. 먼저 시평을 적고 동반시를 적는다. 좋은 시와 시평이니 잘 읽기 바란다.

 

-의자(이정록)

어른의 말씀을 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될 때가 많다. 주름살 사이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짧고 두서없이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말이지만 마늘처럼 매운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씀으로부터 태어났다. 허리가 아픈 어머니는 앉아 쉴 곳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어디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허리를 펴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가 심상찮은 것은 의자를 내놓을 데를 태연무심하게 열거하는 어머니의 품 큰 생각에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꽃과 열매와 참외밭과 호박과 망자(亡者)에게도 의자를 내주어야 한다는 그 우주적인 마음 씀씀이에 있다. 공생과 배려에 기초한 이런 모성적 마음씨는 식구를 다 거둬가며 밥을 먹여온 삶의 연륜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면 누가 인생을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것이라고 먹줄을 대듯 명쾌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정록(44) 시인의 시에는 모자(母子)가 자주 등장한다. 시 '꽃벼슬'에서는 한식날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모자가 찾아간다. 아들은 무덤에 난 쥐구멍에다 꽃다발을 꽂아드린다. "꽃밥 한 그릇 바치는 것이다". 어머니는 쥐구멍에 술잔을 따르며 "새끼들이 술 갖고 올 줄 알고/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있구나"라고 익살맞게 말씀하신다. 아들이 "무덤 안에서 뭔 소리 들려요"라고 너스레를 떨자 어머니는 농(弄)으로 "그랴 니 불알 많이 컸다고 그런다"라시며 "아예 술병을 쥐구멍에 박아놓는다". (모자 사이에 오가는 이 능청능청한 대화여.)

이정록 시인의 시는 이처럼 곰살가운 살내가 수북하니 풍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옷 벗고 대중목욕탕에 함께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사랑은 울컥이란 짐승의 둥우리"라고 말하는 그는 안간힘을 쓰며 사는, 몸살 앓는 사람들의 머리맡으로 가 슬그머니 앉는다. 식은땀을 흘리는 자식의 머리맡에서 차가운 물수건을 들고 꼬박 밤을 새던 어머니처럼.

그는 시와 삶의 거리를 18.44미터라고 말한다. (18.44미터는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이다.) 18.44미터가 곧 "너와 나,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의 거리"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의 시는 삶을 정면으로 팽팽하게 응시한다. 삶에 근거해 삶의 현장에서 그의 시는 발발한다.

"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 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들여서 술집을 내는 것"('좋은 술집')이라고 말하는 시인.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공짜 술도 나눠주고 봉지쌀도 나눠주고 싶다는 시인. 그는 소년교도소에 가서 한문을 가르치기도 하는 천안 중앙고등학교 교사이다.

-시평(이정환. 한경 문화부장)

 

의자 / 이 정 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2008년 8월 14일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