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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관악산과 송년회(詩山會 제100회 산행)

관악산과 송년회(詩山會 제100회 산행)

산 : 관악산(632 미터)

코스 : 낙성대역-마당바위-정상-사당역

소요시간 : 오름 2시간30분 내려옴 1시간 30분

일시 : 2008년 12월 21일(일) 9시

모이는 곳 : 전철 2호선 낙성대역 1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매트, 사진기(하산 후 점심 겸 납회 예정)

연락 : 김종화(010-2406-0332)

블로그 : 사진 blog.daub.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농담(이문재)전문

 

틈틈이 들르는 산골에 갔다. 첫 서리가 이미 지나간 산촌의 스산한 아름다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싶

을 지경이다. 바위에 고스란히 떨어져 쌓여 있는 물든 나뭇잎들과 고여 있는 수정 같은 물, 구름….

간혹 안개 낀 날은 멀리서 기차가 지나는 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어디로 가는가. 보이지 않는 소리

마저도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된다. '혼자 있기 아깝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 느낌, 이 차원,

이 율동, 이 균질감….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는 지금 사랑하

고 있는 사람이라고 이 시는 말한다.

 

언젠가 맛난 것을 먹으면서 한 열 사람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면 제 삶을 한 번 의심해 봐야 한

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나는 그때 열 사람의 얼굴은커녕 다섯 사람도, 아니 어쩌면 한 사람도 제대

로 떠올려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이 시에 의하면 나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거나 '외로운 사람'이었

다(이 시를 처음 읽으며 '그러한 사람, 나쁜 사람이다' 라고 썼을까 봐 조마조마했음을!) 그러나 곰

곰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감히 이 시에 이러한 말을 보태고 싶어진다.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

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가난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가난했던 사람이거나 여전히 참으로 가난한 사람'이다"라고.

 

이문재 시인(49)은 대학 시절 청량리의 어느 이발소 다락방에서 자취를 했었다. 친한 후배와 라면

을 끓여 먹으면서 그에게 김치를 많이 먹는다고 정색하고 화를 냈었다던 시인이다. 요즘은 자주 들

르는 선술집에 갔다가 옆 테이블에 아는 얼굴만 있으면 도맡아 막무가내로 계산을 한다.그의 사랑

은 가난에서 자란 사랑이고 잃어버린 가난에 대한 사랑이고 너무 빛나고 빠른 것에 밀려난, 느리고

그늘진 것에 대한 사랑이다.

 

그가 '우리 살던 옛집 지붕에는/ 우리가 울면서 이름붙여 준 울음 우는/ 별로 가득하고/(…)/ 우리

살던 옛집 지붕 근처까지/ 올라온 나무들은/(…)/ 무거워진 나뭇잎을 흔들며/ 기뻐하고 /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그 해의 나이테를/ 아주 둥글게 그렸었다'(〈우리 살던 옛집 지붕〉)고 노래할 때 우리

는 모두 잃어버린 가난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다시는 그 집을 찾을 수 없다.

 

-시평(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시산회 99회 “수락산” 산행기 2008.12.14

 

◎ 산행코스 : 상계동 마들역 1번출구 - 수락산정상(638미터) - 석림사 도강서원(장암동)

 

◎ 참석 12인 (기세환, 김용우, 김정남, 김종화, 박형채, 신원우, 위윤환, 이재응, 임삼환, 전작, 정해황, 한양기)

 

◎ 오늘의 시 : 청마 유치환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뒤풀이 : 오리백숙 + 소맥 (충남집)

 

출발 전 창 밖을 보니 맑은 햇살이 가득하다. 바람기도 없는 것 같다. 시산회 결성 4년 만에 처음으로 짝수 주 일요일로 변경하여 날짜를 정했는데도 길일인 모양이다. 시산회 발전을 축원하는 서광으로 느껴져 더욱 더 상쾌한 느낌이다. 지난 4년으로 98회째의 산행을 하면서 매달 첫째, 셋째 일요일 원칙을 지켜왔고, 간혹 지난주와 같은 다섯번째 일요일 산행이 한두 번 있었던 것 같지만 이번과 같이 짝수 주간 일요일을 산행일로 잡은 것은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다. 다음 주의 홀수 주간 일요산행을 끝으로 내년부터는 짝수 주간 일요일과 토요일로 아예 변경하기로 했다기에 더욱 안심이 된다.

 

오늘은 몇 명일까. 누구누구 일까를 기대하면서 출발한다. 시내 산행은 대부분 북쪽 끝이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 서울 북쪽에 명산이 집결되어 있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사는 곳 서남쪽 끝이 다 보니 북동쪽 끝이 있는 수락산의 경우 2시간을 계산해야 하니 게으른 나로서는 항상 부담스럽다. 마음에 꼭 맞는 친구들과 만나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건대입구 역에서 환승하다가 박형채 군과 만나게 되었다. 몇 달 만에 만난 것 같이 반갑다. 마음이 든든해진다. 마들역 출구를 나오는데 기 회장의 확인전화가 걸려온다. 시계를 보니 2분 늦었다. 부지런하고 남에게 부담주지 않겠다는 친구들로 뭉쳐있어 시간관념이 투철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약속시간에서 10분 이상 지체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만나는 시각이 되면 매번 나창수 군 생각이 난다. 지각생 벌금규칙을 확립하려다 실패했지만 서슬퍼렀던 시산회 규율부장으로서의 위상은 굳힌 것 같다. 마들 역 1번 출구에서 100미터를 못 가 수락산 등산로가 시작 된다. 수락산 등산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은 코스인 모양이다. 오늘은 불참한 이원무 군이 추천한 코스란다. 과거의 수락산 등산은 오르는 길이 매우 힘겨웠다는 기억인데, 오늘의 코스는 평탄한 길이 계속되어 시간부터 여유롭다. 야트막한 토성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다. 좌우가 탁 트인, 마사토 흙길이 계속된다. 이제 우리 나이에는 편안한 길이 좋은가보다. 이원무 군이 내년에 60이니 장래를 생각하여 추천했나 보다. 모두들 60대를 눈 앞에 두고 있으니 좋은 산 편안한 길을 많이 확보하는 것도 시산회의 의무로 생각된다.

 

햇볕도 좋고 바람도 없는데 기온은 차가운가 보다. 한참을 걸어도 땀방울이 맺히지 않는다. 들머리에서 20~30분 지나면 어김없이 나오던 막걸리 타령도 오늘은 잠잠하다. 과메기 안주를 약속했던 조문형 군의 갑작스런 불참으로 먹산회도 안주 불황을 겪은 날이 되었다. 오늘의 술안주는 김정남 군이 아침에 부랴부랴 장봐온 싱싱한 생굴이다. 모두들 배낭을 뒤척인다. 과일등이 쏟아져 풍부한 파티장으로 변한다. 정해황 군의 영광 모싯잎 떡이 오늘도 어김없이 등장하여 촉촉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해황 군이 참석한 날은 모싯잎 떡을 맛보는 날이다. 부인을 끔찍히 사랑하는 김정남 군은 한 번 맛본 후 차마 입에 넣지 못 하고 품 속에 간직했다가 부인께 진상한단다. 그후부터 김정남 군 몫은 항상 2개가 되었다. 해황 군 덕으로 아내사랑 받아보세. 해황 군의 위문품 부피도 자꾸만 불어 날 것 같다. 정남 군 같은 아내사랑법 흉내내려면 모두에게 2개씩은 분배해야 될테니까. 나도 먹고 아내도 먹이고, 얼마나 큰 감동이겠는가. 해황 군의 불우이웃돕기는 계속 될 것이다. 한 번도 거르지 않는 정성이 시산회원 모두가 감동 먹고 있다. 모싯잎 떡 부피가 커지면 해황 군의 재물도 몇 십 배 비례해서 커질 것이다. 안팎으로 축원할테니까. 나는 정남 군 흉내를 못 내고 내 뱃속부터 채운다. 전작 군의 비스켓은 딸이 만든 홈메이드 제품이란다. 예쁜 딸이 맛나게 만들어 아빠를 즐겁게 하면서 친구들에게도 맛보이라 했나보다. 인생의 풍족함이 무엇이겠는가를 느끼게 해준다. 나눔의 기쁨을 맛보고 배운다. 먹으면서 정을 느낀다. 모두의 정을 느낀다.

 

 

오늘의 시는 청마의 “행복”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시낭송이 끝나자 김종화 군이 시어와 시구 풀이를 알려준다. 교과서적인 시는 하나하나 풀이가 있나보다.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한다. 이해의 폭이 넒어질 것 같으니까. 진행상황으로 보아 오늘의 시는 김종화 군이 찬성했나 보다. 제목으로 보고 대략 짐작한다. 김종화 군의 어부인 함자가 최행복이다. 종화 군의 행복타령을 알만하다.

 

오늘의 시 낭송은 내 차례였다. 이론상으로는 1년에 한차례 오게 되는데 그럭저럭 하다보면 한 2년도 걸리나 보다. 낭송한다고 해서 기억이 되지 않는다. 머리가 많이 세었나 보다. 낭송하는 그 시각의 감흥만으로도 충분히 취하고 만족한다. 산행길의 큰 사고는 없었지만 조그마한 사고는(딩사자는 대형사고였겠지만) 몇 번 있었다는 기억이다. 나창수군이 피를 본 듯하고, 기세환군은 지리산에서 넘어진 후 한 두달 후유증 치료 때문에 등산을 못했으니까. 오늘은 박형채 군이 다쳤다. 겨울 모자를 쓴 머리통으로 바위에 헤딩을 했다. 한 시간이 지난후에도 아파하기에 확인해보니 머리 속 살갗이 빨갛게 터졌다. 날씨가 추우니 무척 아팠을 거다. 여인네 행군을 배려하다 다쳤다는데, 액면대로 믿어야할 지 모르겠다.

 

수락산 정상 한 고개 건너편에 찐빵같은(제1 태극기봉?) 커다란 바위가 위태롭게 걸려있다. 이름이 있을 법한 바위인데 내 눈에는 찐빵처럼 보인다. 그 바위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건너편에서 보니 개미같다. 그 길은 수락산 정상으로 향하는 정상적인 지름길 등산로였다. 가녀린 여인네들도 그 길을 따라 간다. 얼마 전에도 그 바위에서 여자 산객 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단다. 정보에 빠른 위윤환 대장이 우회로를 주장한다. 안전 우선 지침에 동참한 회원은 7인이다. 우회로를 통과하여 병목고개에서 확인하니 5인이 안보인다. 뒤따르던 5인은 당연히 찐빵(하강)바위쪽을 오른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참후에 핸드폰을 가동했더니 건너편 찐빵바위쪽에서 답신이 온다. 벌써부터 우회전길만 찾는 것이 좋은 현상일까/ 답을 모르겠다. 정상(제2 태극기봉)에 올랐다. 해발 638미터란다. 산 정상에 오르면 만감이 교차한다. 하늘이 가까이 있으니 가슴이야 탁트이지만 저 아래 세상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만감이라는데 토해 낼 감상이 한 두가지겠는가. 그 느낌을 맛보려고 산에 오른다. 그러면 됐지 뭘 토하겠는가?

 

정상을 뒤로하고 빠른 길을 택해 하산한다. 1.5킬로미터의 하산길은 골짜기다. 빠르긴 하지만 너무 가파르다. 60대는 피해야 할 길이다. 하산 시 가파른 길은 사고 위험이 많단다. 아마추어들의 등산사고 80%는 하산시 일어난다고 한다. 너무 성급했음을 후회하면서도 잘 내려들 온다. 모두가 건강하니 복 받았음을 증명한 것이다. 지난달 정종술 목사를 만나 늙음에 대해 얘기했다. 인간 최후의 승자는 늙어서도 건강한 사람이란다. 돈도, 권력도 늙고 병들면 무용지물. 심신이 끝까지 건강한 자가 인생의 승리자란 얘기다. 일리 있다고 공감했다. 인생의 최후를 마칠 때까지 자기를 통제할 수 있는 의지는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늙어서도 살아 있어야 할 당위성의 조건에 건강을 제일로 치는 이유일 것이다. 그 건강을 지키려고 시산회가 있는 것이다. 시산회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육체적인 운동이야 효과면에서는 동일하겠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나 하루를 보내는 정신적인 운동은 시산회가 제격이기에 부지런히 모이는게 아니겠는가.

 

하산길에도 세상사 얘기는 계속된다. 전작 군이 중국인에게 들은 조크란다. 중국관리의 8가지 폐단에 관한 얘기인데 가까이 있는 한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길이라서 멀리 떨어진 나로서는 모두 듣지 못했고 들었어도 기억해 내지 못 할 것이다. 그 자세한 내용은 전작 군한테 청하여 경청하길 바란다. 기억나는 2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중국관리는 자기 부하의 업무능력 파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승진시킬 사람만은 정확히 알고 있다. 두 번째는 명절 등에 주고받는 선물의 내용은 기억하지 않지만 선물을 하지않은 사람만은 귀신같이 기억한다. 이와 같은 류의 부패공무원 풍자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시산회 동지들은 어떤 품성을 가지고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모두가 훌륭한 품성을 지닌 것 같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정의를 망각한 친구들이 있을 것 같지 않고 4년간에 걸친 느낌으로는 모두가 정의롭다는 확신이 든다. 인자요산이라 하지 않던가. 인자란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지혜로 덕을 갖춘 사람일지니 부정한 마음이 어디에 자랄 수 있겠는가. 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한다. 산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겨본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는 깡그리 잊어버린다.

 

정종술 목사는 권한다. 친구들과 만나 등산하는 즐거움을 희생하고 하느님께 바치라고. 그래야 복을 받는다고. 시산회 활동을 포기하고 받는 하느님의 복과 시산회 활동을 하면서 받는 또 하나의 복을 가끔 생각해 본다. 어떤게 복받는 생활일까하고. 하산길 뒤풀이는 항상 즐겁다. 초창기에는 선술집 막걸리 대포 쏘듯 맥주 한 두잔 걸치더니 갈수록 옴팍집을 선호하는 것 같다. 느긋하게 점심 겸 저녁을 떼우려는 것으로 정착화 되었다. 이재웅군이 추천하는 “충남집” 오리백숙이 오늘의 뒤풀이감이다. 봉고차 운행이 가능하단다. 옴팍집 스타일인가보다. 이재웅 군의 정보수집능력은 대단하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려는 능력이 우리 회원들 중에서 제일인 것 같다. 핸드폰에 100여개의 음식점을 저장하고 있단다. 오늘 같은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7080가요집 능력으로 기를 죽이던데 이제는 어느 곳이나 분위기 있는 음식점은 쉽게 찾을 수 있는 모양이다. 감사 할 일이다. 내년부터는 회장단이 교체된다고 한다. 두 번 불참했더니 변화가 많았다. 고생하던 김종화 군이 회장을 맡고 착실한 이재웅 군이 총무로 봉사하기로 했단다. 진도바다 문어들도 먹물께나 튀기겠다. 시산회원들이 너무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되고 걱정된다. 차기 총무 이재웅 군 왈 시산회원들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만큼은 반드시 외워야 한단다. 충남집 모양을 보니 노후생활 보장용 재산으로는 안성마춤이다. 넓은 대지에 음식점 건물따로, 주택용 별장따로, 나는 부럽다만 욕심은 안 낼란다. 안되는 걸 어쩌라고. 건강하길 빌란다. 너도 나도 집에가려니 갑자기 생각난다. 100일 지난 손녀딸 웃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런 것에 인생의 뜻이 있나보다. 살아 있어야 할 이유인가보다. 낭송했던 싯귀가 생각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느니라- 끝

한 양 기 올림

 

잘 쓰는 솜씨인데 주가를 올리려고 그토록 사양했는지 모르겠다. 삶의 고뇌가 조용히 우러나는 글이다. 고뇌가 희망으로 바뀔 때 삶의 향기가 되는 날이 온다. 고뇌 없는 삶은 없나니.

우화 비슷한 얘기인데 '신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쓰인 글로서 소개한다.

 

신의 책상 위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불행하다고 말하며 다닌다면

불행이 정말 어떤 것인지 보여 주겠다.

또한 네가 만일 행복하다고 말하며 다닌다면

행복이 정말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

 

'- 버니 S. 시겔의《내 마음에도 운동이 필요해》중에서 -

 

긍정과 부정은 항상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선택하면

신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조차 빼앗아 갑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복하다고 고백하십시오.

정말 행복이 무엇인지 신께서 당신을 선택할 것입니다.

희망이 곧 행복입니다.

 

대추 한 알이 유난히 뒤틀어지는 대추나무 위에서 빨갛게 영글기 위해서 저절로 붉어질 리가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더블어 눈, 비, 바람, 구름, 안개 등이 존재하는 이유일 게

다.

 

이제 생산은 어렵고 소비만 남은 날들이 온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만하면 곳간이 가득 채워졌다고

하나 본인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세인들의 본성이다.

 

그러한 상식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산에 갈 수 있는 건강과 좋은 날에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면 작지만 큰 행복이 아닌가.

기대와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자. 이제와서 어이 하겠는가. 쉬운 일이 아니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

야 행복해진다. 편해진다.

 

100회 산행에 대한 감회가 깊다. 2004년 10월 10일. 도봉산을 오른 이후 큰 사고 없이 치뤘다. 모든

산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내년부터 3기 집행부가 출발한다.

시산회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집행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 100회를 왔는데 500회를 못가겠는가. 관

악산행을 하고 내려와 동창회와 골프모임인 스무공회의 집행부도 참석하는 납회를 하니 모두 모여

서 100회를 기념하자.

 

동반시에 대한 시평이 있어 그대로 올린다. 역시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편 중에 포함되어 있

는 시이다. 하필이면 젊은 나이에 심야극장에서 죽었을까! 아까운 시인이다.

 

저녁 거리에 서서 물끄러미 추억을 바라본다. 오래 된 책을 펼칠 때 툭 발등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을 만난 적 있을 것이다. 그곳엔 오래 전, 그러니까 지금보다 훨씬 눈이 밝았을 때, 지금보다 훨씬

외로웠을 때, 지금보다 훨씬 미숙했을 때의 자화상이 들어있게 마련이다. 사랑하던 사람이 하나쯤

그때 모습 그대로 어룽거리며 걸어 나온다. 그 중 십중팔구는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

을 것이다. 이미 화석이 된, 그 가슴 에이는 '사랑의 시간'을 미리 떠나가서 뒤돌아보는 시가 바로

이 시다. 그는 죽음을 미리 예감한 것만 같다.

 

'사랑'이란 말은 생각의 양, 즉 '사량(思量)'의 변형이라는 설이 있다. 기형도(1962~1989)는 마음에

상념이 얼마나 많았으면 '공장을 세웠'다고 했을까. 사랑이 아니라면 그만한 상념일 수는 없으리.

그러나 그 '너무나 많은 공장'의 생산물들을 기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탄식'만

을 남겼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은 희망이 '질투'라니! 잔인하다. 질투만 없어도 사랑은 얼마든지

할 만한 것 아니던가! 질투는 그래서 사랑의 저주일지도 모를 일. 이 질투를 앓는 자, 지금 '저녁 거

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었다. 그 청춘이 얼마나 긴 그림자를 남겼는지는 여백에 속한다.

 

기형도의 유품 중 어느 책갈피엔가 지금도 이러한 글귀가 적힌 쪽지가 꽂혀 있을 것을 생각하면 가

슴이 저릿하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

노라'. 인생은 사랑을 찾아 헤매다 죽는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 사랑의 농도를 열정이라 하

리라. 그는 침침한 심야의 극장에서 그만 청춘의 마지막 숨결을 놓아버렸다. 사후에 나온 유일한 그

의 시집은 이후 90년대에 등장하는 젊은 시인들에게 강력한 자기력을 띤 것이기도 했다.

 

"너 좋아하던 시인이 죽었대…." 신경숙 선배의 더듬거리는 전화 목소리가 들려오던 그 가을날의 스

산한 오후가 엊그제 같다. 기형도 시인은 태생지가 내 이웃의 섬이어서 친연성이 있었던지 내 시를

유심히 읽어주고 격려해주던 고마운 선배였다.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렸던 시 합평

회가 끝나면 우리들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우리 모두 가난한 손님들이었던 시절 듣던 그의

노랫소리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그날 저녁 적십자 병원 영안실의 차디찬 형광불빛을 빠져나오며 나는 한없는 아쉬움에 가슴이 조였

다. 따져보니 내년이 20주기다. 유서와 다름없는 그의 마지막 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

라, 짧았던 밤들아…'(〈빈집〉). 어느 침침한 술집에 들어 촛불이라도 켜놓고 읽어야 하리라.

 

-시평(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2008년 12월 17일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

 

*컴퓨터에 문제가 발생하였으므로 전송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블러그로 방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