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만남 / 도봉별곡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 무소유라던
법정 스님의 말씀대로
서재가 있어도 아내의 집이니 내 소유가 아니고
작년에 10년 동안 보지 않은 책을 버리니
다섯 개의 서가 중 4개가 비었고
나머지 20%의 손때 묻은 책은 필요한 거고
남은 것은 두 개의 노트북, 하나의 넷북, 테블릿PC와
서재를 지키는 오래된 PC는 최소한의 필수품
생활하는 데는 전혀 지장 없고
얻어먹어도 미안함 없고 사줘도 자랑할 일 아니고
그렇다고 머리통까지 떼어 줄 수는 없고
비로소
만나게 되는 무소유
홀가분하게
진공묘유*의 뜻을 새기며
바람소리에 웃는다
*진공묘유眞空妙有 : 진공(眞空)이 바로 묘유(妙有)라는 뜻으로, 참된 공이란 이 세계의 사물을 떠나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존재 양상이라는 뜻. 또한 이 세계에 있는 만물의 관점에서 볼 때, 만물은 고정 불변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생성과 변화가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만물이 공(空)하므로 비로소 생동감 있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세계의 만물과 공의 원리가 서로 장애함이 없는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파악할 때, 진공 그대로 묘유가 된다는 관점이 성립한다.
대승불교의 사상은 중관사상(中觀思想)과 유식학(唯識學)으로 대별되는데, 여래장사상은 인도에선 유식설보다 먼저 성립해 별도로 발전하다가 합류해 두 사상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게 된다. 그리하여 중관파의 반야공관에 대한 긍정적 측면을 형성하고, 유식학파에서는 아뢰야식의 발전적 측면을 형성했다. 중관불교는 유든 무든 그 모든 것을 파사(破邪)해 양극단에 대한 집착을 철저히 논파했고, 「무자성(無自性)-공(空)」을 주장했다. 이에 비해 유식학은 「자성(自性)-공(空)」을 주장하고, 아뢰야식에 공으로서 깨끗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믿어 공하지만 공한 가운데 묘하게 움직이는 불성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것을 진공묘유라 했다.
금강경을 읽다보면 진공묘유에 관한 열 번의 비유가 있다. 붓다는 줬다 빼앗는다. 그러나 내 손 안에 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진공묘유다.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