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새벽 / 도봉별곡
오색딱따구리의 색깔 빚은 산을 닮은 시를 읽으면
하얀 바람이 부는 노래의 가사가 되고
안치환의 지리산 같은 입에서 나오는 노래에 어울리는 시와
맑은 정치가의 연설문의 일부가 되어도 어울릴 시를 본다
눈 시려
손 저리고
어깨 결리고
목 불편해
긴 글 편하지 않아도
어둑새벽에 뚝딱 해치우는 한택수 시집 한 권
명상 후
뇌파의 파장이 달라 치워버린 이랑이 긴 책, 헤세의 유리알 유희
눈 어두워졌어도
곧게 속 내비치는 직유와
미로의 은유와
회색의 환유와
맛없는 반어와 생략과
미소 띤 상징과
잔칫집의 축약이
전주비빔밥인 양 미치게 잘 버무려져 환장하게 맛난 시가 좋다
젊었던 날
당단풍이 빛나는 지리산 피아골 빨치산처럼 슬픈 혁명의 해를 그리며
노랗게 바람난 샛바람에 실려 창문 두드리는 불암산의 해
낙수 떨어지듯 수락산 정상에 휘날리는 태극기
삼각관계 사랑마냥 심각한 삼각산 인수와 망경과 백운대
산신령이 도 닦으러 오라 눈웃음 짓는 도봉의 신선대 옆 선인봉
오늘은
알 실은 잉어 가득 찬 중랑천과 눈 마주치며
새벽 물안개 피워 땅 낮아지면
양 치는 순한 목동 되어
무슨 바람이 구름밭을 높게 갈려나
목 다쳐 다행인 여름날 새벽에
산 네 개의 봉우리가 다 보이는 새벽에
우리는 미친 무엇을 위하여 시를 읽는가
때로는
어둡고 미친 삶 위로하기 위한 위안의 밤을 위하여
시작과 끝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한 나에게
시를 읽게 하는가
새벽하늘 어두워도
짝 찾는 새 노래 귀에 익어 내 마음 같아 반갑다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