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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사리舍利의 기억 / 도봉별곡

사리舍利 기억 / 도봉별곡

 

 

"큰스님 비 들어갑니다" 의도한 착어錯語

"나의 다비 , 허황한 사리를 찾지 마라, 그것조차 무겁다"

법정 스님의 유언은 지켜졌다

성철의 유언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제자는 스승을 닮아가는 법

 

오대산 청학동 계곡 끄트머리 노인봉 가는 길가

산사 숨어 있는 덤불

중들의 부도가 돌이끼 희끗희끗하게 장승인 작은 모습으로

산객을 흘깃 훔쳐보며 삐딱하게 있다

숨어 있음은 부끄러움의 아름다운 변명

사리는 업이 남아 차마 타지 못해 형형색색으로 빛을 내는

수행의 결과라는 것은 한낱 세상 눈과 속이는 하릴없는 허구

 

죽음과 사이

절박한 순간에도 명주실 같은 틈이 있어

속에 업이 들어있다면

 

사리 하나에 바람을 잃고

사리 둘에 구름을 찾아

사리 셋에 그보다 많은 비를 닮은 회한

그것들 뭉쳐 휘돌아 타다 뜨거움 견디고

남은 기억의 덩어리

 

목에 박힌 구멍 뚫린 철판과 거기에 박은 여섯 개의 금속 나사

너무 비싸 차마 버리지 못하니

평생 모시고 살아야 한다

불길을 이겨 내서 사리가 된다면

번뇌가 지혜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악견惡見*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리의 허황함을 무시한다

겨우 여섯 나온 사리를 모아다가

사리함에 담아 부도 밑에 넣으면 남는

덧없는 깨달음

깨달음조차 탐욕의 덩어리

 

무소유가 답이고

이기심이 문제라면

부도浮屠 기억의 묶음

산행 뒤풀이 추억의 장대비로 풀었다

 

스승의 스승 김흥호 목사*

한 달 용돈 머리 깎는 값 3,000

사리로 영롱하게 남았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 중앙아시아 쿠차 국 비운의 왕자 구라마즙이 처음으로 역경한 말. 번뇌를 통해 깨달음으로 간다는 역설적 경구.

* 악견惡見 : 근본 번뇌 6가지.

*김흥호 목사 : 이대 교수로 감리교 목사. 신학박사. 이대 연경당에서 오랜 철학 강의. 11식으로 스승 유영모 선생처럼 93세에 폐암으로 영면.

 

*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