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노적봉(詩山會 제134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도선사-용암문-동장대-대동문-소귀천계곡-우이동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10년 5월 2일(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4호선 수유역 4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사진기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밤 기차를 타본 사람은 안다
마음속엔 몇 개의 몽탄(夢灘)역 있다는 것
역사 너머 저마다 연못 있다는 것
꿈으로나 만나보는
꿈이어서 다행인 풍경 있다는 것
옛날 그림자들 걸어나와
구불구불한 생(生)의 왼편과 오른편에
달불을 켠다는 것
연꽃 눈 뜨는 순간의 떨림 수정으로
구른다는 것
앞마당에 목백일홍은 심지 마라
붉은 울음 빼내어 너, 주면 어쩔래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붓과는 눈 마주치지 마라
네, 속내 빼내어 화선지에 넣으면 어쩔래
어머니의 노래 끝날 무렵
만삭의 근심들 몸 푸는가
온몸에 반딧불 켜고 있는 저 허공
몽탄역!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달불의 연기처럼 스며드는
지는 해도 문득 외박하고 싶어지는
첫사랑, 몽탄행(行) 열차에게
길은 꿈길뿐이라는 것
-몽탄역 (전문. 박라연)
국민학교를 목포에서 나온 나는 기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몽탄역을 지나곤 했다. 몽탄은 우리들 마음의 젖줄인 영산강의 본류에 위치한 시골마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토요일 오후 하숙비와 용돈을 타려고 광주에서 목포로 가는 기차를 타면 한천석과 김성우를 자주 만났다. 국민학교 시절 친하게 지낸 4명의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는 공부를 가장 잘했는데 가정이 어려워 당시 2년제 교대를 나와 선생을 하다가 학비를 모아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여 우리은행에서 퇴직했다. 지금은 한과공장을 하며 우리에게 한과를 제공해주는 사람이다.
한 친구도 가정이 어려워 자기가 벌어 2년 늦게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닌 친구인데 졸업하고 불연(佛緣. 佛戀)으로 맺어진 여자와 조계사에서 결혼한 후 당일로 불가에 몸을 담은 친구이다. 물론 여자도 머리를 깎고 비구니의 길로 갔다. 훗날 득도를 했나 확인(?)하려고 조계종 총무원에서 찾았으나 속가의 이름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전산화되어 있을 테니 찾을 수 있겠으나 찾으면 뭐하나. 젊은 시절, 득도에 대하여 토론을 많이 했던 친구다. 그때 내 말이 “깨우쳐서 뭐 할 건데, 제도중생하려고, 깨우치고 더 깊숙이 산으로 들어가려고?”였다. 깨우침에 대해 지독히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중들의 세계를 조금은 알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케인즈 같은 경제학자가 되거나 에디슨 같은 발명가, 록펠러 같은 자선가가 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인류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요즈음은 법정 스님에 대해 알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러나 그는 답은커녕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생각이 거창하지 않았거나 먼 훗날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을까?
한 친구는 집이 몽탄에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외환은행에서 퇴직을 하였는데 부동산 투기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을 외국에서 보내 자신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투기를 못해 모아놓은 게 없단다. 월급장이가 월급으로는 모으지 못하니 투기를 했어야 하는데 투기를 못했으니 모아놓은 게 없어 서울에 살지 못하고 경기도에 산다고 한다. 이 친구는 나 원장만큼 미남이며, 우선 겸손한대다 남에게 거짓말도, 싫은 말도 하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평생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 사람을 상상하려면 이 친구를 생각한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삼십년 만에 만났다. 테니스를 치자는 명분이었는데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오랜만인지 애틋한 마음이었다. 하여 항상 몽탄역을 지나면서 이 친구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만나지 못한다.
-도봉별곡
시산회 제133회 “북한산 산행기”(2010.4.18)
참석자 : 10명(김정남, 김종화, 신원우,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위윤환, 정해황, 한양기, 최근호)
산행코스: 수유역 집결 -아카데미 하우스- 칼바위능선 -대동문 -진달래능선 -백련암
뒤풀이 : 두부김치, 파전
결혼식 참석 등으로 근자 산행을 못해 오늘의 북한산 산행이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은근한 걱정과 함께 인터넷 설교 등이 교회예배를 대신 할수 있다고 생각해 가끔 교회 출석 무용론을 말하는 본인에게 내몸을 산 제물로 바쳐야 함을 역설하며 주일 교회출석을 바라는 내무대신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집을 나서 10시쯤 수유역에 도착하니 수많은 등산객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두리번거리니 저쪽 한 켠에 반가운 얼굴들 8인이 무리를 지어 있어 반갑게 수인사를 하니 종화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단다.
우리의 목적지인 대동문을 가기 위해선 아카데미하우스까지 일단 차로 가야 하는데 택시로 가나 버스로 가나 요금이 비슷하니 이재웅 회장님 왈 택시로 가자하니 누군가 “환승이 되는데” 라고 말한다.
환승제도가 생긴지 6-7년가량 된 것 같다. 처음엔 환승제도에 익숙하지 않고 웬만한 거리는 잘 걸어 목적지 인근 지하철역까지만 가서 목적지까지 걷곤 하였는데 요즘은 익숙하여 비교적 환승제도를 잘 이용하는 편이다.
출발하는 버스에서 보니 정남이 친구가 차를 못타고 인도에 서있는 모습이 눈에 뛴다.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해줄려 하니 편의점에서 마침 나오는 이 회장 모습도 보인다. 잠시나마 일행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정남이 친구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카데미하우스에 도착해 보니 택시로 온 그들이 오히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가는 길에 보니 여러 군데서 마라톤을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4.19전날인 4.18일이라 4.19를 기념하는 마라톤을 하고 있는 것이다.
4.19가 1960년에 발생하여 아스라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꼭 반세기 벌써 50년 전이라 생각하니 그 시절 少時 적에 비해 나도 많이 먹긴 먹었다는 생각과 함께 금번 4.19가 그 어느 해의 4.19보다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북한산입구에서 밝게 미소 띤 얼굴로 “불조심 하십시오” 라는 말을 전하는 국립공원관리직원의 기분 좋은 배웅을 받으면서 산에 오르기 시작하니 근자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아서 인지 계곡은 말라 있고, 4월 중순이면 만물이 생동하여 천지사방이 푸릇푸릇 하여야 할 터인데 추위가 늦게 까지 기승을 부려서인지 가끔씩 피어있는 빨간 진달래와 산수유 꽃과 비슷한 노란 생강꽃을 제외하고는 산 주위가 황량하다. 푸르름이 아직은 대지 속에서 바깥세상 나갈 준비만 하고 있는 것 같다.
100m쯤 올라가니 대동문까지 1.4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30여분을 더 오르니 널찍하여 쉬기 좋은 바위가 나타나니 너나나나 할것 없이 쉬었다 가자한다. 산행 시 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반포 모시떡을 2개씩 사이좋게 돌리고 양기친구가 가져온 다시마에 초장을 발라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飯疏食飮水반소사음수)하고 曲肱而枕之(곡굉이 침지)라도 樂亦在其中(낙역재기중)이라.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베개하고 누었으니 사나이 대장부 이보다 즐거움이 더 있으랴’라는 싯귀가 떠오른다.
산행 중 자연 천안함 사고가 대화에 등장한다.
이왕 발생한 사고라지만 보고체계 및 사후처리에 있어 사병 출신인 본인이 보기에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너무 많다.
합참기조실장이 직속상관인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을 건너뛰고 청와대에 바로 사고보고를 하지 않나, 뒤에 윤태영 국방부장관이 “천안함은 잠수함이 아니다”라고 해명하였지만 “배속에서 최대 69시간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다”하여 이들을 구조하다 변을 당한 한준호준위의 사망이랄지, 그 거대한 배가 어뢰인지 또는 또 다른 원인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성수대교같이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바로 두 동강이 나고 선미는 즉시 가라앉아 버려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말았으니 그저 기막힐 뿐이다.
상기와 같이 뒤죽박죽인 상태를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감추려고만 하는 군을 보고 있으려니 어디까지가 국가기밀이고 어디까지가 국민의 알권리인지 우둔한 민초인 본인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사태가 정확히 파악되어야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도 수립되고 신상필벌이 될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칼바위정상에서 각자들 멋진 폼을 잡고 한 컷을 한 후 12.30분경 우리도 다른 등산객들과 마찬가지로 요기를 위해 돗자리를 폈다.
정남이의 홍어, 근호의 흰쌀밥, 종화의 유부초밥, 경식의 떡, 그리고 편의점 표인 게맛살과 떡갈비, 막걸리, 2년 여 전의 먹산회와 같이 푸짐하진 않지만 우리 일행이 요기를 하기에는 충분하다. 허나 30여m쯤 거리에 혼자 떨어져 체중조절을 위해 단식 중 있는 원후 친구에게는 몹시 미안하다. 부디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하여 다음 산행 시에는 늘씬한 몸매를 보여주게나.
진달래능선으로 하산을 하였다. 다른 곳보다 진달래꽃을 많이 볼 수는 있었지만 철이 지나서인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좀 더 내려오니 국가유공자 묘역 안내판이 보이고 백련사도 보인다.
뒤풀이는 한식집에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하산길옆 식당으로 들어가 해물파전과 두부김치에 막걸리, 소주, 맥주로 조촐하게 진행하였는데 대화중 산행기는 쓸 사람이 많으니 절대 부담 갖지 말라는 이 회장님과 이 문장관님의 말씀이 있었다. 산행 참석률이 조금은 더 높아질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끝으로 이렇게 화창하게 맑은 날, 여러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갖게 되어 매우 즐거웠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 정 해 황 올림
이번 산행은 북한산이다. 지난 산행 후 뒤풀이 때 청계산으로 결정하려 했으나 청계산은 코스가 단조롭고 매번 같은 코스로 가야하냐는 반대의견들에 대해 화물터미날 쪽에서 오르면 괜찮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그래도 같은 산 같은 코스고 너무 자주 갔다는 반대가 있어 최종결정을 집행부에 맡겼다. 북한산 노적봉 코스와 영봉 코스, 용문산 옆 중원산, 청계산 등 4개의 코스 중 이 회장님, 전 김 회장님, 위 대장, 이 문장관의 의견을 종합하여 북한산으로 정한다. 칼바위능선에서 노적봉이 어디냐고 물어온 산우들이 여럿 있었는데 멀리 손으로 가리키는 수밖에 없었다. 노적봉은 인수봉처럼 암봉이라 오를 수 없다. 다만 옆으로 지나치거나 혹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번 산행은 노적봉의 위치나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코스다. 시작하는 들머리는 도선사 주차장이다. 우이동에서 내려 500원을 내고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까지 오른다.
청담 선사가 입적한 도선사의 뒤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용암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백운대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대동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서 진달래능선이 아닌 소귀천코스로 내려간다. 소귀천코스는 단풍으로 유명한 계곡이다. 진달래계곡의 북쪽으로 응달이므로 늦은 진달래꽃을 볼 수 있겠다. 앞 산행에 못 나온 산우들은 모두 나와 노적봉도 보고 백운대도 보자.
미리 고지하는데 5월의 셋째 산행은 국립공원 주왕산과 주산지다. 멀고 가기 어려운 코스니 시간을 잘 조정하여 빠지지 않도록 하자. 무릎이 아픈 산우들을 고려하여 정한 코스다.
뒤풀이 때, K-20 동창회 카페에 고시를 하여 새로운 산우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자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시산회 자존심(?)의 문제가 있다는 반대 의견에 많이 동조하여 포기한다. 시산회원들은 모임에 약간의 부담감을 가져야 한다는 이경식 문장관의 주장이 있었다. 무릎이 아프고 천주교에 입교하느라 빠지는 경우가 자주 생겨 생각해본 고육지책이었으나 나 혼자 잠시 해본 생각이다.
무릎이 아픈 것은 여러 원인이 있으나 정확한 진단을 내리면 고치거나 완화시키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 병은 자신이 진단하는 것보다 의사가 진단하는 게 낫고 한 의사의 진단에 100% 의존하면 안된다. 나도 1990년 경에는 산에서 내려올 때 무릎이 너무 아파 고치려고 근처의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서 진단과 치료를 수차례 반복했으나 시간만 낭비했으며, 상계백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물리치료를 병행한 산행요법으로 나은 사람이다. 교수는 내 얼굴과 형색을 보면서 간단하게 문진을 한 후, 퇴행성 관절염이나 연골이 파괴되는 경우가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는 x-ray 검사는 불필요하니 초음파검사를 하자고 했다. 같이 초음파검사기의 화면을 보면서 교수가 진단을 하고 그에 따른 물리치료와 가벼운 산행을 치료방법으로 선택했다. 노동일을 하거나 과격한 운동을 하는 운동선수의 경우나 퇴행성 관절염이나 연골이 파괴되거나 연골이 닳아서 아프고, 나 같은 경우는 대부분 무릎 근처의 근육이 약해 산에서 내려올 때 느끼는 일종의 근육통이지 관절과 관련된 병은 아니라는 진단을 내렸다. 산우들의 경우도 일종의 근육통이지 관절염의 경우가 아닐 것이다. 단 류머티스 관절염은 원인과 치료가 다르니 유의하라. 키가 2미터가 넘고 체중이 100키로가 넘는 배구선수들이나 농구선수들이 매일 약 300번 이상의 점프를 하면서 걸리는 병을 우리도 그러는 줄 알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교수는 그들도 근육을 강화시키는 치료를 하면서 선수생활을 계속한다고 했다. 치료는 번거롭게 병원까지 오지 말고 집 근처의 헬스장에서 무릎의 근육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하면서 가벼운 산행을 쉬지 말고 하면, 어렵지 않은 병이라 했다. 헬스장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주 2회의 계곡 산행을 시작했다. 두 달 후부터 좋아지더니 6개월 후, 거의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해서 전국의 산을 순회하는 순례자처럼 2001년에 시작하여 2003년까지 178회 산행을 마쳤다. 그때의 경험이 나와 산우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이것을 새옹지마라 하나 전화위복이라 하는가.
무릎의 보호를 위하여 하산할 때는 번거롭더라도 반드시 2개의 스틱을 사용하자.
동반시다.
나의 애송시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다. 외웠다가 자꾸 잊어버려 이제 외우기를 포기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로 시작하여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로 맺어가는 시다.
위 시를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유가 아무러면 어쩌랴.
내 가슴이 나보다 먼저 그 시를 좋아하는데.
내가 사는 중랑천 둑길에 활짝 핀 벚나무의 꽃잎이 하롱하롱 지기 시작한다.
봄에는 동백, 매화, 목련,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복사꽃 등의 순서로 꽃이 피고 지는데 올해는 순서가 뒤죽박죽이 됐다. 봄의 꽃들은 꽃이 피고 잎이 나는데 꽃과 잎이 동시에 피었다는 기사가 났다. 여름 한철 수밀도가 열리는 복사꽃도 잎이 동시에 피었다니 여름 한철의 복숭아와 가을의 과실맛은 기대이하일 게다. 수확량도 떨어질 거고.
산도 내려올 때가 더 힘이 들듯이 꽃이 지면서 비와 바람에 떨어지는 꽃비가 더 아름다운가! 인생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비가 온다. 바람도 분다. 살아 봐야겠다. 이제는 긴 산행의 끝에 무거운 짐을 덜고 가볍게 내려오자. 마치 산을 숭배하는 순례자처럼.
꽃이 지는 길 / 조은
길을 가려면 꽃길로 가라
꽃길 중에서도
꽃이 지고 있는 길로 가라
움켜잡았던 욕망의 가지를 놓아버린 손처럼
홀가분한 꽃들이 바람의 길을 가는
그 길로 가라
꽃들의 그늘지고 어두운 곳까지 나풀나풀 다가가고
꽃이 진 자리는
어느 순간 당신 삶의 의미를 바꾸리라
그러면 오랜 굴레에서 풀린 듯
삶이 가볍고 경쾌하리라
그 길로 가다 보면
수밀도에 흠뻑 취할 날이 있으리
2010년 4월 27일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