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탑사 벚꽃길 산행(詩山會 제132회 산행)
산 : 마이산(진안. 685 미터)
코스 : 천황문-마이산-은수사-탑사-벚꽃길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10년 4월 4일(일) 7시(잠실역) 및 6시 40분(교대역)
모이는 곳 : 교대역 및 잠실역 중 선택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사진기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정호승 '꽃을 보려면' 전문
그런 줄도 모르고 서두르기만 했습니다. 저 연약한 씨방 속에 고요한 꽃과 따뜻한 잎과 부드러운 흙과 그 모든 것을 보듬고 있는 어머니가 계시는데….그동안 눈이 녹기를 기다리지 못하고,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지도 못했습니다. 가끔씩 내 속까지 찌르는 칼마저 버리지 못했으니 더욱 부끄럽습니다. 한평생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신 어머니,이렇게 따스운 봄날 꽃 피고 지는 소리 들으며 온몸으로 참회합니다.
-시평(고두현. 언론인)
3월 27일. 도봉산. 코스 : 보문능선-우이암-무수골
참석 산우 : 전작, 이경식, 한양기, 김정남 이상 4인.
3월의 마지막 토요일. 단출하게 4명의 산우들이 모여 산행을 시작한다. 시산회 사상 최소의 인원이었으나 오붓하고 실속 있는 산행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무릎이 아프다, 땅을 보러 간다, 모친이 편찮으시다, 교회를 가야 한다, 결혼식이다, 벌초하러 가야 한다, 토요일이니 근무해야 한다, 마나님이 같이 놀아 달라 한다 등의 이유로 빠지다 보니 단 4명의 산우들만 단출하게 도봉산역에서 모였다. 선자령으로 눈꽃을 보러 가기로 했으나 인원이 6명뿐이어서 경비를 아끼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이재웅 회장님의 제안에 따라 도봉산으로 급히 변경하였다. 그러나 비가 와서 오르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힘차게 오른다. 아무렴 어쩌랴. 산이 있으므로 오른다.
나는 작년 하반기에 자주 빠져 반성하는 마음으로 올해는 한 번도 빠지지 말자는 일념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개근이다. 이재웅 회장님이 보내주신 올해의 산행 일정표를 마나님께 건네면서 평일이나 산행이 없는 휴일에는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할 테니 그 날들만큼은 건들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고 협조해줄 것을 부탁했다. 주변의 경조사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니까 주변을 살펴보니 조카들 중 혼령기의 애들은 이미 결혼했고, 부모님과 장모님은 돌아가신지 오래고, 친지들의 경조사는 마나님을 보내거나 부조금만 보내면 된다. 친구들의 자식들 결혼식은 이해를 구하고 축의금만 보낼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두 딸의 결혼인데 애비의 올해 목표를 도와줄 생각인지, 수 년 내에 갈 예정은 전혀 없다. 학교를 마치고 자신들 앞가림은 할 정도인데 결혼과 직업에 관하여는 요즘의 애들과 사고의 체계가 틀리지 않다. 한 애는 팀장까지 승진하면 생각해 본다는 데 팀장까지 승진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희망이니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줄 생각이다. 한 애도 자기가 학비를 저축하여 학업을 계속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니 그 또한 존중해 줄 생각이다. 공부를 계속한다면 도와줄 형편은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이제부터는 자기 힘으로 한다니 그도 말릴 일이 아니다. 대신 아비도 지나치게 간섭하지 마시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집안 얘기라 약간은 쑥스럽지만 500년이 넘게 전해오는 집안의 계훈(戒訓)이 있는데 간단명료하게 딱 2개다. 첫째가 ‘남이 도모하는 일에 보증을 서주지 말지어다’와 둘은 ‘일가(一家)를 이루고 싶으면 늦게 혼인하더라도 부모의 덕을 보려 하지 말고 자신이 벌어서 시작하라’이니 참으로 현실적인 가훈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은 지키라고 주입을 했더니 그러겠다는 생각을 떨치지 않고 여태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죽을 때 재산이 얼마나 남을지는 몰라도 내 어머님이 하신 것처럼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갈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분은 1억을 물려주면 1억짜리 바보를, 10억을 물려주면 10억짜리 바보를 만든다는 생각을 돌아가실 때까지 가지고 가신 분이다. 해서 자신의 재산으로 양로원을 설립하셨다. 그러니 본인과 마나님의 사망만 아니면 참석할 예정이다. 웃자고 하는 말이니 하고 생각하니 골프의 늪에 빠졌을 때 생각이 난다. 흐흐흐! 그때는 한 수 더 떠서 본인 사망 외는 불참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였는데.
오르기 전에 싸온 음식을 점검하여 막걸리 4병, 두부김치 가득, 동태전을 비롯한 모듬전 한 판, 푸짐한 제주도산 문어, 한과 등을 마련하여 배낭에 넣고 우이암을 향해 천천히 오른다. 평소 이경식 산우가 좋아하는 코스다. 중간에 산정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를 한 잔하고 완만한 보문능선으로 40분쯤 오르니 일명 ‘작은 마당바위 혹은 고인돌 바위’라고 불리는 너른 터가 나왔다. 그곳에서 쉬면서, 내가 땅콩을 꺼내 나눠주고 휘파람소리로 새들을 부르니 땅콩을 먹으려고 떼를 지어 나타난다. 도봉산의 텃새인 박새와 곤줄박이들이 손에 올려놓은 땅콩을 먹으려고 달려든다. 멧비들기 한 쌍은 땅에 떨어진 것을 먹는다. 오늘은 동고비와 직박구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놈들은 바로 먹는 것이 아니라 물고 가서 저장해놓고 바로 돌아와서 다시 물고 간다. 그런데 저장해놓은 곳을 곧잘 잊어버린다니 그래서 ‘새대가리’라 한단다. 한양기 산우의 입산주 타령이 나오지 않기에 이유를 물어보니 어제 낮부터 술을 마셔 아직은 생각이 없단다. 조금 더 올라가서 한적한 공터에서 이경식표 동태전과 전작표 두부김치로 막걸리 두 병을 마시며 산중한담을 즐기는데 산우들의 수는 적어도 화제는 무궁무진하고 다양하다. 특히 서울의 6대산에 관한 평가를 하는데 도봉산, 북한산, 관악산, 수락산, 청계산, 불암산의 순으로 순위가 매겨졌으나 산은 비교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하게 안다. 이 산은 이 점이 좋고, 저 산은 저 점이 좋으니 산은 모두 다 좋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이암과 오봉의 갈림길에서 의견을 물어보니 오봉 코스는 너무 길다고 우이암을 거쳐 무수골로 가잔다. 전망대에서 언제 봐도 멋진 오봉을 배경으로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참석했다는 증명사진 한 컷. 도봉주능선의 전경이 보이는 멋있는 장소다. 우이암을 오를 수는 없고 옆의 봉우리에서 고도계를 보니 560미터다. 가볍게 올라온 것 같은데 청계산의 높이와 비슷하다. 고도계의 오차는 +-10미터 내외다. 고도는 기압을 환산하여 재는데 약간 흐린 날의 기압인 1,000 mbar 내외일 때가 가장 정확한 것 같다.
남은 막걸리 두 병과 문어, 한과를 먹을 장소를 물색하는데 이 구역은 이경식 산우의 구역이니 길을 잘 안다. 우이동과 무수골의 갈림길에서 보니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여직원이 쓰레기를 수거 중인데 봉투 2개에 쓰레기가 가득 차 있다. 쯧쯧쯧. 자기 집에서 먹을 때는 분리수거를 잘 하는데 밖에 나오면 아무데나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국립공원 신원우 전 자원보전 이사의 말이다. 원통사 근처에서 한적하고 너른 공터에서 남은 막걸리와 문어, 한과를 먹자는데 동의하고 자리를 잡는다. 약간 떨어진 바위 위에 묘령의 여인이 혼자 조용히 먼산을 보며 앉아 있으니 그쪽으로 자리를 옮기자는 제안에 모두 동의하고 자리를 잡자, 시끄러웠는지 그 여인이 바로 자리를 뜬다. 아쉬운 마음으로 곁눈질을 하는데 옆태와 뒤태가 좋은 듯 했으나 내겐 항상 그림 속의 떡이다.
참석자의 수가 적어 아쉬운 점이 있으나 좋은 점도 있어 크게 나쁘지 않다.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전작 산우가 해군장교 출신이라 연평도 초계함 천안함 침몰에 관한 이야기를 서두로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지방색에 관한 얘기, 종교, 정치, 사랑얘기 등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화제가 다양하게 돌아간다. 대통령의 인격에 관한 얘기에서는 모두가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경상도 정권에 관한 얘기, 1694년, 숙종 20년, 갑술환국을 끝으로 남인이 주류를 이루는 경상도 정권이 끝나고 서인이 정권을 잡은 이후 1960년까지 약260년을 정권의 핵심에서 멀어져 있었던 이유로 그동안 권력에 목말랐던 경상도인들이 권력지향적이 되었다는 얘기,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동인이었던 부사 김성일이 도움쇠의 중시조쯤 된다는 얘기, 호남인들이 풍류를 즐기는 이유, 송강 정철이 말년에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불우했던 얘기, 로마제국의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니케아 종교회의가 서기325년에 열린 이후 예수가 ‘사람의 아들’에서 ‘신의 아들’로 변경된 이유, 그 사건 이전이나 이후에도 기독교는 한낱 로마의 수많은 종교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것에 관한 토론, 로마사를 빼면 유럽의 역사는 없다는 얘기, 유부와의 섹스에 관한 도덕성에 이르러서는 부부란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데 지나치게 소극적, 윤리적으로 대처할 것은 아니라는 얘기, 하반기에 폐지될 예정인 간통죄는 섹스에 관한 국가의 불필요한 간섭이므로 개인의 사생활 침범이라는 얘기 등 참으로 박학다식한 산우들이다. 막걸리를 더 사왔다면 화제는 시공을 초월하여 더 다양하고 길었을 텐데 남을 것 같던 막걸리가 동이 나면서 따끈했던 화제가 일단 끝이 났다.
도움쇠더러 산행기를 쓰라는 이경식 문장관의 명령이 있었으니 시낭송은 내 차례인데 오늘의 동반시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 승낙(?)도 받지 않고 본인이 직접 정호승 시인의 ‘쓸쓸한 편지’를 낭송한다. 시가 좋은 건지 목소리가 좋은 건지 산의 분위기와 맞는 훌륭한 낭송이었다. 박수. 짝짝짝.
쓸쓸한 편지
정 호 승
오늘도 삶을 생각하기보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워라
세상이 나를 버릴 때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나는
아침햇살에 내 인생이 따뜻해질 때까지
잠시 나그네새의 집에서 잠들기로 했다
솔바람소리 그친 뒤에도 살아가노라면
사랑도 패배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른 잎새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내가 울던 날
싸리나무 사이로 어리던 너의 얼굴
이제는 비가 와도
마음이 젖지 않고
인생도 깊어지면
때때로 머물 곳도 필요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무수골의 유래에 관한 얘기가 나왔는데 4가지 유래가 있어 잠시 소개한다. 무쇠를 만드는 대장간이 있어 무쇠골로 불리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무수골로 어형이 변했다는 설명, 세종대왕 손자의 무덤이 있는데 소매를 펼쳐 춤을 추는 형상의 명당이어서 춤출 무(舞) 소매 수(袖)의 결합어, 골이 깊고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어서 없을 무(無) 근심 수(愁)를 따서, 계곡의 수량이 많고 춤추듯 굽이치는 모양이라 하여 춤출 무(舞) 물 수(水)를 따서 무수골이라 했다는 설이 있는데 모두 틀리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네 번째 설명은 그 코스를 좋아하는 산객들의 구전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내려왔는데 배는 찼으나 헤어지기 섭섭했는지 전작 산우가 오래 나오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닭백숙을 안주로 뒤풀이를 하자는 제안을 하니 거절할 먹산회가 아니지 않는가. 한양기 산우는 유난히 백숙의 맛이 달다며 너스레를 떤다. 전작 산우의 성의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의 순서에 관한 얘기가 오고 갔는데 술값의 부담에 관하여는 자기가 여러 사람에게 기분 좋게 내는 술, 공짜 술, 내기에 이겨 마시는 내기 술, 외상술, 각자 부담하여 마시는 술의 순서에 별로 이론이 없었다. 수가 적어서 단출했지만 화제가 다양하고 무성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행, 막걸리, 담소를 즐긴 하루였다. 특히 정해황 산우의 모시쑥떡에 대해 고마운 마음들이 있었다. 무겁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가격일 텐데 마다하지 않고 싸오는 마음 씀에 다시 감사드린다. 다음 산행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참석자들의 권한으로 진안 마이산으로 정했다. 이재웅 회장님! 참석자가 많으면 많은 대로 좋고 적으면 적은 대로 괜찮더이다. 너무 신경 쓰지 마소서. 여기까지 이끌어오는데는 회장님처럼 열정적인 사람도 뒤에서 밀어주는 우리 모두도 함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나이다.
지금은 봄이 왔지만 기온이 차고 바람이 많이 불어 날씨가 고르지 못하니 봄 같지 않으나 4월의 첫째 산행 때는 완연히 봄일 게다. 4월은 물 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 돋는 달이라 하여 ‘잎새달’이라 한다.
4월의 첫째 산행지는 진안 마이산이다. 멀리서 보면 말의 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암 마이산과 수 마이산,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특이한 형태의 산이다. 수 마이산은 오를 수 있으나 암 마이산은 오를 수 없다. 북한산의 가파른 인수봉과 비슷하게 돌로 이루어져 길이 없다. 암 마이산은 기슭에 샘이 있어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 같다. 들머리의 고도가 360미터이고 완만하고 높지 않으니 무릎이 아픈 산우들도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굳이 산에 오르지 않아도 볼거리가 많다. 두 봉우리 사이로 지나가면 80 개의 돌탑이 있다는 그 유명한 탑사(塔寺)가 나온다. 이갑용이라는 처사가 1800년대 말에 세웠는데 약80개의 돌탑이 있다. 혼자 쌓기에는 시간이 참으로 많이 걸렸을 것이다. 마이산이 돌과 자갈로 이루어진 큰 바위 같은 산이기에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니 모두 참석하기 바란다. 도움쇠가 특히 추천하고 싶은 산이다. 산 같지 않을 정도로 완만한 산책코스이며, 무릎이좋지 않은 기세환 전임 회장, 임용복 수석을 의식하고 정했으니 두 산우는 꼭 참석하기 바란다. 전에는 오지에 있어 접근하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대진고속도로에서 장수 IC로 나가는 길이 넓게 뚫려 접근하기가 쉬우니 4월의 첫째 일요일에 모두 참석하자.
부활절이어서, 한식이 가까워서, 길이 밀려서, 하는 말은 접어두자. 탑사를 지나면 10리 벚꽃길이 이어지고 벚꽃의 개화시기와 일치하니 일석삼조의 산행이다. 도움쇠의 산행노트를 보니 ‘165회 산행. 2004년 3월 26일. 멀리서 보니 나무가 없는 바위산이다. 인수봉의 모양과 비슷하나 표면은 미끈하지 않다. 화강암이 아닌 콘크리트 같은 화산암 같다. 산행시간은 1시간. 탑의 모양이 다양하고 멋있어 가히 환상적이다. 사진을 찍느라고 탑사에서 1시간 반을 머물렀다. 다만 철이 약간 일러 벚꽃의 꽃봉우리가 아직 터지기 직전이라 벚꽃이 피지 않아 아쉽다. 벚꽃이 피는 4월 초에 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산이다. 기가 센 산인가? 서울로 가는 길에 전주 백송가든에서 육사시미에 소주, 육회비빔밥’이라고 쓰여 있다. 디카로 찍은 사진이 있으면 보여주고 싶으나 당시 필름 사진밖에 없다. 일주일 만에 가는 산행이어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번에 불참한 산우들은 빠지지 말고 참석하자. 결코 기대를 저버릴 산이 아님을 자신 있게 말한다. 여러 번 불참한 나 원장이 영산포 홍어를 조금 준비해 온다며 많이 참석하라고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으나 펼치고 먹을 만큼 힘든 산행이 아니니 많이 싸올 필요가 없으며, 가벼운 산책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오면 된다. 동부인하면 더 좋다. 박형채 산우는 김순단 선생을 꼭 모시고 오게. 벚꽃길이 끝나는 곳에서 주막에 들러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면 행복하고 만족할 것이다. 이번에도 성원이 되지 않아 버스편을 취소하면 삼진아웃처럼 관광업계에서 영구퇴출될 수 있다는 이재웅 회장님의 협박(?)이 있었다. 전과가 많아 이번에 버스를 예약하기가 무척 힘들었답니다.
동반시다. 벚꽃이 제철에 딱 맞는 봄 편지다. 벚꽃은 먼저 꽃부터 피고 잎이 나온다. 꽃도 세상사도 이처럼 순서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 원했든 원치 않았던 지를 막론하고 섬이 될 때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당신과 나 사이에서,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오롯하게 섬으로 솟을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산이 섬이고 섬이 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은 흙에서 솟아 있기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말은 성철 스님이 처음으로 한 말이 아니다. 700년 전 중국에서 다섯 스님이 모여 金剛經五家解라는 금강경해설서를 발간했는데 그 책 속에 ‘山是山 水是水 佛在何處’라는 야보 스님의 시구가 있어 성철 스님이 종정의 자격으로 부처님 탄신일에 맞춰 법문으로 앞 구절만 인용한 것이다. 이것도 야보 스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이 아니라 불법을 수행하는 법승들에게는 하나의 상징이나 보편적인 이미지 같은 것에 불과하다. 석가모니 부처 이전에도 있었던 말이다.
법정 스님은 일반인이 보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난해한 난수표 같은 선문답에서 벗어나야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전할 수 있다는 신념에 가득 찬 분이다. 오랜 수행의 끝에서 한소식을 듣고 깨우쳤다며 난수표 같이 난해한, 한시로 된 오도송 한 수 읊고는 바깥과 담을 쌓고 깊은 산간으로 들어가 어리석은 시자들에게 둘려 싸여 큰스님인 체 하는 분들에 비하면 무시선(無時禪)과 무처선(無處禪)을 표방하며 어려운 자들과 함께 했던 그런 분이 모두를 아우르며 살아가야 할 소명을 가진 현대불교가 전적으로 필요해야 할 분이 아니었나 싶다. 진정으로 몸과 마음을 낮춰 어두운 세상의 작은 빛으로 살다 가신 분이라 생각한다.
시인의 말대로 ‘시작이 아니라 끝, 끝이며 또한 처음/ 맑은 흔적을 확인하는 일/일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아무튼 말이다. /아프게 그리운/한 흙이 될지’라는 마지막 구절이 봄처럼, 물오른 나뭇잎처럼, 그 편지처럼, 산처럼, 섬처럼 솟는다. 문득 이 봄, 지금의 이 시작이 당신의 산과 섬에 닿아, 이 편지 한 구절 깊숙이 스미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시작과 끝은 둘 이 아니다는 마음도 같이.
오랜 만에 기세환 전임 회장님이 참석하여 동반시를 읊어주면 마이산 자락의 탑사가 밝게 화답하리라. 오랜 세월 지난날을 뉘우치며 돌탑을 쌓았던 이갑용 처사가 현생하여 활짝 웃으며 나타날지 아는가! 정성을 다해 싸주시는 무지개 김밥도 먹고 싶네.
봄 편지 / 정 한 용
두 점 사이에 우린 있습니다.
내가 엎드린 섬 하나와
당신이 지은 섬 하나
구불구불 먼 길 돌아 아득히 이어집니다.
세상 밖 저쪽에서 당신은
안개 내음 봄 빛깔로 써보냅니다.
잘 지냈어…… 보고픈…… 나만의……
그건 시작이 아니라 끝, 끝이며 또한 처음
맑은 흔적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혹시 압니까
온 세상 왕창 뒤집혀 마른잎 다시 솟고
사람들 이마에 꽃잎 날릴 때
그 너울 사이사이
흰 빛 내릴 때
그쪽 섬에 내 편지 한 구절 깊숙이 스미고
이쪽 섬에 당신 편지 한 구절 높이 새겨져
혹시 압니까
눈물겨운 가락이 될지 섭리가 될지
아프게 그리운
한 흙이 될지.
2010년 3월 29일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