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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덕유산 눈꽃 산행(詩山會 제149회 산행)

덕유산 눈꽃 산행(詩山會 제149회 산행)

산 : 덕유산

코스 : 케이블카-향적봉-동엽령-칠연계곡-안성탐방센터(코스는 의견에 따라 변경 가능)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0년 12월 5일(일) 7시

모이는 곳 : 전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돌아서 25인승 버스

준비물 : 막걸리, 점심, 안주, 과일, 카메라(시간 관계로 뒤풀이는 없을 예정이니 각자 점심 지참)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손 털기 전’ - 황동규(1938∼ )

 

누군가 말했다.

‘머리칼에 먹칠을 해도

사흘 후면 흰 터럭 다시 정수리를 뒤덮는 나이에

여직 책들을 들뜨게 하는가,

 

거북해하는 사전 들치며?

이젠 가진 걸 하나씩 놓아주고

마음 가까이 두고 산 것부터 놓아주고

저 우주 뒤편으로 갈 채비를 해야 할 땐데.’

밤중에 깨어 생각에 잠긴다.

 

‘얼마 전부터 나는 미래를 향해 책을 읽지 않았다.

미래는 현재보다도 더 빨리 비워지고 헐거워진다.

날리는 꽃잎들의 헐거움,

어떻게 세상을 외우고 가겠는가?

 

나는 익힌 것을 낯설게 하려고 책을 읽는다.

몇 번이고 되물어 관계들이 헐거워지면

손 털고 우주 뒤편으로 갈 것이다.’

 

우주 뒤편은

어린 날 숨곤 하던 장독대일 것이다.

 

노란 꽃다지 땅바닥을 기어

숨은 곳까지 따라오던 공간일 것이다.

 

노곤한 봄날 술래잡기하다가

따라오지 말라고 꽃다지에게 손짓하며 졸다

 

문득 깨어 대체 예가 어디지? 두리번거릴 때

금칠(金漆)로 빛나는 세상에 아이들이 모이는

그런 시간일 것이다.

 

손을 털고 일어서는 그 잠깐의 미련 없음과 청산(淸算). 이 세상 떠나는 날 우리는 가장 아름답게 손을 털고 일어서야 하리. 손 털고 가야할,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우주 뒤편이 ‘어린 날 숨곤 하던 장독대’라니 얼마나 친근한가. 양지바른 곳에 핀 꽃다지에게도 쉿!하고 홀로 숨어들던 장독대. 그 곳서 졸다 깨면 그러나 또 두리번거리게 될까. 낮꿈에 또 서러울까. <문태준 시인>

 

2.산행기

관악산 산행기 / 김정남

일시 : 2010년 11월 28일

참석 : 3명(사상 최소 김정남, 이재웅, 임용복. 뒤풀이 참석 김종화, 조문형)

 

청계산 산행 참석인원이 단둘이라는 이재웅 회장님의 근심어린 전화를 받고 그럴 바에는 밋밋하고 볼 것이 별로 없는 청계산보다는 볼거리가 많은 북한산으로 가자는 모의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을 옷을 입고 나가려는데 마나님이 영하 5도에 그런 옷을 입으면 감기 든다고 겨울옷을 입으란다. 혼자 산에 간다고 늘 서운한 표정을 짓지만 서로 한 약속이 있으니 순순하다. 다른 날은 집에 봉사를 할 테니 시산회 산행만큼은 편하게 보내주기로 한 약속이다. 하여 개근을 하려 했으나 어깨수술로 한 번, 처외삼촌의 아들 결혼식 때 한 번이니 두 번만 불참했다. 처외삼촌은 광주고 1년 후배이면서 같은 업종인 관계로 자주 만난다. 하여 친가 쪽 결혼식은 산행일과 겹치면 마나님 혼자 보내지만 처가 쪽의 가까운 친척 결혼식은 노후의 만수무강을 위해 소홀히 할 수 없다.

 

산행지 변경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임 수석이 관악산 코스로 가면 자신도 오겠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좋다는 사인을 보내고 서울대입구역에서 10시 정각에 만났다. 오늘의 리더인 임 수석의 뒤를 따라 1511번 버스를 타니 서울대 안으로 한참을 가다 컴퓨터 연구소 근처에서 내렸다. 아랫길을 보니 산객이 많다. 서울대 입구에서 올라오는 산객들이라는 임 수석의 설명이다. 우리는 한참 올라와서 편하게 가는 길이란다. 부드럽고 완만한 길이라 마음도 가벼워진다. 3명뿐이라 홀가분하고 더 좋다는 회장님의 말과 달리 마음이야 그러하겠는가! 섭섭함의 반어법이라는 생각이 슬쩍 고개를 든다.

 

이경식 문장관의 얘기가 나와 병환에 대한 걱정과 연구원 사무국장을 2년간 다시 맡아달라는 원장과 전체 직원의 간곡한 부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했을 때의 통쾌함이 있었고, 우리도 속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니 ‘있을 때 잘 하라’는 말도 있고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떠나라’는 말도 있다. 능력 있고 성실한 사람이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차기 회장을 맡기로 되어 있지만 1년 후인 2011년 말 퇴직 후에 제대로 한 번 잘 해보겠다는 의사를 나타내면서 그 후로 미뤄달라는 부탁도 있었으니 이 회장님의 고민이 시작된다. 건강이 좋지 않으니 강압적으로 맡길 수는 없고 총장을 맡을 예정인 박형채 산우는 총장 후에 회장직을 계승하기로 한 관행에 맞지 않는다. 방법은 잠정적으로 회장을 계속하다가 이경식 문장관의 건강이 회복되면 맡으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가부간에 말이 없다. 신중히 생각해 보겠다는 의사표현으로 본다.

 

앞으로 대통령은 군대를 다녀와야 그것도 육군의 경우 행정병이 아닌 보병이나 포병 등 야전군 계열이어야 한다는 얘기기 나왔다. 국방장관도 행정 계통이고, 국무총리도 군 면제자고, 대통령이 전혀 군대생활을 해 본 적이 없으니 단체생활을 못 해봤을 것이므로 독불장군일 거고, M1소총과 카빈, M16소총, 한국형 K-1, K-2소총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더 많은 기관총의 종류를 구별할 수 있겠는가? 장갑차와 전차를 구별하겠는가? 그러니 북한에서 포성만 울려도 겁을 잔뜩 집어먹고 벙커 속으로 기어들어간다는 흉을 본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근혜도 자격미달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4대강 사업을 할 예산이 있으면 국방력 강화에 힘을 써야지 독불장군식의 고집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 등이 자유롭게 오고간다. 이런 것을 보면 화제는 독점하면 안 된다. 주변에는 목소리가 크면서 화제를 독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많으면 중복이 있어 한 말 또 하고 그 말이 그 말인 경우가 많다.

 

30분쯤 지나니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다. 연주대와 무너미고개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무너미고개는 설악산 공룡능선 아래에도 있다. 천천히 산중한담을 즐기며 무너미고개를 넘는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왔지만 새벽에 먹어서인지 배가 고프다. 11시다. 입산주를 하자며 자리를 펼치고, 회장님의 막걸리와 임수석의 군고구마가 좋은 안주가 된다. 잠시 쉬고 있는데 조문형 산우가 뒤풀이 때 참석하겠다는 연락을 해오더니 김종화 산우도 참석하겠다는 연락을 해온다. 우리끼리는 뒤풀이를 생략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별 수 없게 됐다. 무너미고개를 넘어 목적지인 수목원 입구에 도착하여 양지바른 평상 위에 싸온 음식을 펼친다.

 

시 낭송의 시간이다. 오늘의 기자를 자청하고 시를 읊는다. 마음은 시인보다 더 시인이고 싶은데 목소리가 맑지 못하니 내가 들어도 낭송인의 자질은 아니다. 생굴 두 봉지를 사왔는데 싱싱하고 맛이 상큼하다. 막걸리가 한 병이 남았는데 부족하다. 그러니 더 아쉽고 맛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 맞는 말이다. 진진하게 대화를 하는데 차기 집행부에 대한 걱정, 이경식 산우의 병환에 대한 걱정 등이 또 나온다. 근교 산행 때보다 원거리 산행 때 참석자가 더 많으니 원거리 산행을 늘리자는 의견, 3주 연속 산행은 지양하자는 의견, 월 2회 산행으로 꼭 24회를 해도 괜찮다는 의견 등. 그러나 우리 나이의 섹스 트러블에 관한 화제가 한숨과 함께 가장 진솔하게 나온다.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고민들이다. 세 명 공히 나이가 먹으면 성욕도 같이 스러져가면 좋겠다는 의견에 모두 동의. 폐경기를 지나 성욕이 없어져가는 우리의 마나님들과 산행을 해서인지 아직도 성욕이 생생한 우리들의 섹스이야기다. 세 산우의 부부관계가 거의 섹스리스 수준인데 긴긴 밤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걱정을 했다. 앞으로 우리들은 90살까지도 사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것은 매스컴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사항이다. 즐거운 섹스는 건강에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노인의 성(性)? 우리가 노인이 아닌데 남는 힘을 다른 곳에 쏟으면 된다. 나처럼 한국의 모든 산을 헤매면서(?) 힘을 빼거나 하찮은 글이라도 쓰면서 소일하며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겠는가. 할 일이 없어 친구들 사무실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바람직하지 않다. 정열을 쏟을 일을 찾아야 한다.

 

오던 길을 되돌아오다가 김종화 산우와 만났다. 수산대 친구들과 서해안 쪽 산행을 했으며 미안해서 뒤풀이라도 참석하고 싶어 왔는데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으니 마중을 나왔단다. 작년에 뒤풀이를 했던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한마루에 가니 조문형 산우도 와 있다. 세 번이나 빠져 미안한 마음에 왔단다. 이경식 문장관도 참석하려 했으나 감기에 걸리면 수술 후유증이 클 수 있다고 하니 오지 못한다. 소고기와 야채를 주재료로 한 샤브샤브를 먹고 마시면서 다음 산행지를 얘기했다. 조문형 산우는 전과 같이 칠연계곡으로 올라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자는 의견을 힘을 주어 말한다. 그때에 산우들의 의견에 따르면 된다. 반가운 산우들의 마음씀이 가슴에 절절이 묻어온 하루다.

김정남 올림

 

3.산행지

이번 산행은 덕유산이다. 2006년 54회 산행 때 칠연계곡을 들머리로 하여 올랐던 산이다.

동엽령에서 향적봉까지 걸었던 긴 능선에는 상고대가 맺히고 그 위에 눈까지 덮여 상상하기 어려운 눈꽃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피톤치드를 끊임없이 뿜어대는 구상나무에 내린 눈들의 아름다움에 우리는 흠뻑 취했다. 우리는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을 잊지 못하고 4년이 지난 올해 다시 오르기로 했다. 코스는 반대이나 그날 산우들의 의견에 따른다. 1년에 여섯 번의 원거리 산행뿐이니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다. 조문형 산우가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한다 했으니 기다려 볼 일이다.

 

4.동반시

‘고독은 욕되지 않으나/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이란 문구로 시작하는 청마 유치환(1908~1967)의 시 제목을 불현듯 떠올린 건 먼지바람 속에서 한 전직 대통령의 동상 앞에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 뿔테 안경 낀 그의 동상은 칠레 국기를 휘감고 있었다. 세계 처음 선거로 사회주의 정권을 출범시킨 남미 칠레의 대통령, 3년여 만에 군부 쿠데타로 숨져간 비운의 정객. 남국의 태양빛이 직사로 쏟아지고, 한 켠에선 흙바람 부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 관저(모네다궁) 뒤편 제헌광장에 그는 서 있었다.

 

거장 로댕이 빚은 녹아내릴 듯한 작가 발자크 상처럼 아옌데 동상은 칠레 국기와 한 몸으로 녹아내리며 한 발짝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동상엔 ‘칠레가 가야 할 길, 나는 그 길을 확신한다’는 어록이 새겨졌고, 그 아래 검둥개가 늘어져 자고 있었다. 길잡이를 한 유학생은 동상 옆에 솟은 국기 게양대 깃봉의 대열을 가리키며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거들었던 군장성들을 상징한다더라”고 했다. 진보 정치가와 그를 죽인 우익 쿠데타 군인들의 상징이 공존하는 광장이라니.

 

지난 1월 산티아고의 공연축제 ‘아밀 페스티벌’을 취재하러 갔다가 틈을 내 들른 아옌데 동상 주변의 나른하고도 울적한 풍경은 청마의 시와 얽힌 잔상이다.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는 1960년 3·15 부정선거 직전 쓴 참여시다. 자유당 정권의 말기적 광기에 맞서 뽑아낸 절창을 왜 아옌데의 상 앞에서 생각했던 것일까. 다만 시와 어우러지며 또렷이 눈에 새겼던 풍경들이 있다. 시내 곳곳에 현실로 존재하는 아옌데의 얼굴들. 서거 28년 만에 세워진 동상 말고도 혁명가 체 게바라의 실루엣처럼 흑백 윤곽선만 되살린 아옌데의 얼굴이 포스터·판화 등으로 건물벽, 뒷골목 바닥 등에 붙어 있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항구 발파라이소 언덕의 공산당 본부 벽에도 아옌데의 판화가 찍혀 있었다. 함께 찍힌 문구가 기억난다. ‘그는 언제나 돌아오는 역사다.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2001년 테러의 상징어가 된 9·11 쿠데타 때 그는 ‘화염 속에서 위대한 정신을 품고서’(그의 친구였던 시인 네루다의 묘사) 모네다궁에서 쿠데타군과 대적한다. 최후 라디오연설에서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이라고 유언한다. 총격전 뒤 그의 주검 위를 지나친 쿠데타군이 포고를 발표하며 16년간 군사독재를 시작했을 때 진보의 노래는 사람들 가슴속에 묻힌다. 청마 또한 시에서 노래한다.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라…’

 

이 땅의 바보 대통령은 조금만 때를 타도 금방 더러워 보이는 진보의 도덕성이란 멍에를 지고 삶을 등졌다. 정치적 타살이란 세론이 있지만, 쿠데타군과 맞서다 숨진 아옌데의 최후와 감도가 다르다. 역사는 진공청소기와 같다. 죽어서 역사가 된 바보 대통령의 가치와 이상은 복잡다기한 현실과 한 인간의 구차한 흠결까지 빨아들여 버린다. 그에 대한 배신감, 괴물 정권을 낳은 진보세력의 오류까지 휩쓸어 가버린 ‘바보사랑’의 실체를 사람들이 깨닫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뜨거운 노래…’의 마지막 시구를 눌러 적는다.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시평(한겨레 대중문화팀장)

 

동창회 카페에 김용우 산우가 올린 시를 선정한다.

눈꽃이 피어 있을 능선의 한 모퉁이에서 소리 높여 이 시를 읊어보자.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어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저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요조 : 말과 행동이 품위가 있으며 얌전하고 정숙함

 

2010년 11월 30일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