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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인왕산 납회 산행(詩山會 제150회 산행)

인왕산 납회 산행(詩山會 제150회 산행)

산 : 인왕산

코스 : 창의문-시인의 언덕-정상 삿갓바위-독립문공원-사직공원(코스는 의견에 따라 변경 가능)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10년 12월 18일(토) 1시

모이는 곳 : 전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준비물 : 뜨거운 커피,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납회는 해인에서 하니 산행에 참석을 못하는 산우들은 해인으로)

납회 장소 : 인사동 해인 (5시) 전화 730-0109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소야도 첫눈/이세기

 

소야도 선착장 낡은 함석집 한 채

바다오리 떼 살얼음 바다에

물질을 하는데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이윽고 밤 되어 눈이 내리고

바닷가에 눈이 내리고

쪽마루 방자문 위에 걸린 가족사진에도

눈이 내리는데

 

갯 떠난 자식 생각하는가

 

갯바람에 얼굴 긁힌 노부부

밤 깊어가는데

굴봉 쪼는 소리

 

밤바다에 성근 눈발이 내리고

굴봉 쪼는 소리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밤바다에 눈은 내리고

 

소야도는 덕적면에 딸린 섬이라는데, 소야도는 소정방 군대가 머문 섬이라는데, 소야도에 첫눈은 내리고,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들리고, 아, 노부부가 깊은 밤 굴 쪼는 소리라. 조새 머리 관통한 쇠꼬챙이로 굴을 찍어 껍질을 젖히고 손잡이 뒤에 달린 뾰족한 갈고리로 굴 훑는 소리. 첫눈 내리는 섬 적요하여 그 소리 온 섬 다 덮겠네. 섬은 커다란 굴이 되고 굴봉 까는 소리가 조새 되어 긴긴 겨울 밤 섬은 비릿 향기로운 굴 향 가득 차겠네.

 

굴봉 까는 소리 대신 포탄 소리 여음 자욱하여, 서러운, 우리 시대의 겨울 연평도는 어찌할거나. 만나는 사람들 눈빛마다 배어 있는 화약 냄새는 또 어찌할거나.

-시평<함민복. 시인>

 

연평도에 떨어진 북한의 포탄 자국을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면서 느끼는 마음을 딸들에게 얘기했다. 100미리가 넘는 포탄의 자국이 그 정도라면 북한군의 전력은 그야말로 별볼 일없다고. 화약의 값은 차이가 많다. 고성능화약은 비싸다. 그런데 포탄 자국이 그 정도면 의아하지만 원시적인 흑색화약의 수준이다. 그들이 가난하고 국방예산이 부족해서 그 정도 수준의 화약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군의 포탄수준은 그보다 훨씬 낫다. 나는 관련 연구소에 근무했고 그 분야에 종사했던 전문가의 입장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딸들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병역미필자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총리도 그렇고 국정원장도 그러니 한심하단다. 여자지만 그 정도는 안단다. 도발이 발생하면 지하 벙커에서 회의나 하는 그런 겁쟁이들에게 주요한 공직을 맡겨서는 안 된다. 에이! 겁쟁이들. 대화도 필요하지만 강력한 응징도 필요하다. 전쟁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로 부자국가가 승리한다. 돈의 전쟁이다.

-도봉별곡

 

2.산행후기

덕유산 산행기(2010. 12. 5) / 김정남

참석 : 정해황, 조문형, 이재웅, 김용우, 이원무, 고갑무, 최근호, 임삼환, 한양기, 김정남(10인의 산우들)

 

5시에 자명종을 듣고 잠을 깼다. 15명이 간다했더니 마나님이 많이 마련해준 한과와 생굴 6봉지를 챙기고 집을 나서는데 별로 춥지 않다. 높은 산이라 바람이 세고 추울 것으로 예상했으니 다행이다. 눈이 왔어야 눈꽃산행에 맞는 산행일 텐데 약간의 걱정을 하면서 전철을 탔다. 10분 전에 도착하니 산우들이 와있다. 5인이 갑자기 취소를 해서 단출하게 10인의 산우가 약 30분 늦게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칠연계곡으로 오르는 것과 케이블카를 타고 무주 리조트에서 오르는 코스를 상의했는데 다수의 의견으로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무주 리조트에 도착하니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니 스키보다 대부분이 보드를 타고 있다. 딸들도 스키를 타다가 보드를 배웠는데 이제 스키는 싱겁단다. 이재웅 회장님이 오늘의 작가를 상의한다. 김용우 산우에게 부탁하려다 년말이라 그도 요즘 동창회일로 바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내놓고 싶어 하나 선뜩 맡을 사람이 없어 고심 중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치매예방에도 좋고 걱정을 빼고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에이 내가 또 쓰지. 두 번의 새벽을 투자하자. 어쨌든 우리가 동석, 임 수석과 용우 등 동창회 살림꾼들은 잘 뒀다. 그 자리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하기 싫어도 쉽게 내줄 자리가 아니다. 그들 숨은 일꾼들 덕분에 우리의 동창회가 성장하고, 모아진 회비도 꽤 많다고 한다. 부자 동창회를 만들어준 그들에게 감사드린다.

 

정상 부근까지 가는 케이블카 탑승료가 만만치 안다. 8,000원이다. 올라가는데 15분이 소요됐는데 오르다보니 덕유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남쪽 적상산은 운해가 덮여 있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덕유산의 높이가 1,614미터이니 남한의 산 중에서 높이가 세 번째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20분을 더 가니 정상이다. 눈을 기대했는데 하늘은 맑고 푸르러 눈을 기대할 수 없으니 약간 실망스러웠으나 남쪽 능선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데 멀리 구름 위로 지리산이 보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내가 지리산을 가리키며 말하니 듣는 산우는 탄성을 지른다. 여기서 어림짐작으로 봐도 60키로가 넘는 지리산이 보이다니!

 

능선길을 바라보면서 빨치산들이 다니던 길이라는데 생각이 미치고,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보면 덕유산은 빨치산 전북도당이 있던 곳이다. 지리산은 전남도당이 있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함에 따라 인민군의 후퇴는 시작되고, 미처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과 기존 빨치산은 태백산맥의 곳곳에 모인다. 덕유산을 중심으로 준동하던 전북도당이 궤멸되고 잔여 빨치산은 지리산으로 모였으나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1954년에 빨치산은 지리산에서도 자취를 감춘다. 그 사건은 이념과 현실이 뒤섞여 우리를 아프게 한 슬픈 역사의 한 선을 깊게 긋고 갔다. 나의 집안도 그 생채기가 깊어 음력 9월 9일 집안의 11명이 몰사했다. 마름이었던 김 씨를 포함하면 12명이다. 그 후에 발생한 처절하고도 무자비한 복수는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에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머님이 사재를 털어 양로원을 설립하신 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이와 관련이 있다. 그때 일어난 사건들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업(業)이라는 것이니 남은 사람들이 풀어야한다고 하셨다. 음력 9월 9일 중구에 그 분들의 제사를 양로원에 들어와서 돌아가신 분들과 함께 모신다. 모두 합쳐 약 380 영가다. 원불교 의식으로 치르는데 원불교에서는 돌아가신 분들을 영가라 한다. 하여 나는 본인 사망(?) 외에는 제사에 빠질 수 없다.

 

기회가 있으면 산우들도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어보시라. 10권이지만 지루하지 않으며, 아프지만 뺄 수 없는 우리의 슬픈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이 서로 반목하며 싸우는지 부분적이지만 극명하게 묘사한 역작이다. 진보와 보수가 왜 반목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은 좌우의 날개로 난다. 한 쪽 날개가 떨어져 한 쪽만 붙어있으면 극좌나 극우로 흐른다. 역사는 좌우의 이념이 극단적으로 한 쪽으로 치우칠 때 비극적인 결말이 나며 그 끝의 비참함을 알려준다. 그것이 역사가 가진 숙명적인 소명이며 의무다. 요즘은 사업을 잠시 접고 나니 남는 게 시간이라 산행이나 운동, 혹은 음주에 잠시 시간을 할애한 적이 있는데 하루 종일 그것만을 할 수 는 없는 일이라 남는 시간에 도봉구청 도서관에 들러 잡지를 보거나 대출하여, 읽고 싶었으나 여의치 못해 미처 읽지 못한 책이나, 읽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 옛날의 명작들을 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나이가 들어가니 보는 시각과 생각이 달라진다. 책을 자주 접하다 보면 생각을 정리하여 책 한 권쯤 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2007년 2월, 칠연계곡으로 올라 능선을 타고 이곳에 왔을 때는 산 전체가 흰 눈으로 덮여 눈꽃이 피어 애들처럼 즐거워했던 기억을 잊지 못했으나 오늘은 지리산을 본 것으로 만족한다. '세상사 모두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으며, 반대로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선인들의 말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공감한다. 2,500년이 지난 석가나 부처 시대에도 그랬으니 지금이라도 다르겠는가! 세상사는 이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정상인 향적봉에 오르니 정상 등반 인증 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독사진을 찍기에 바쁜 산우들을 불러 모아 찍었다. 인증식이 끝났으니 시산회의 가장 주요한 행사 중의 하나인 먹산회로 변신할 시간이다. 식사하기 좋은 곳으로 가자는 말에 따라 '가자', 덕유 주능선으로. 아뿔사! 중봉으로 가는 능선길이 산불통제기간으로 출입금지 안내 현수막이 삼중으로 처져 있다. 국립공원의 주등산로는 산불통제기간의 적용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낭패다. 지금은 눈이 많이 내리는 철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항상 산불통제기간과 휴식년기간으로 인한 출입통제를 챙겼는데 내가 요즘 정신을 반쯤 빼놓고 산다. 표현하지 않았으나 산우들에게 미안했다. 위반하면 과태료 50만원이라는 현수막은 우리를 더 움츠리게 한다. 몰래 넘어가서 계획대로 산행을 하자는 파와 신원우 전 이사의 체면을 봐서라도 넘어가지 말고 구천동계곡 33경도 좋으니 그리로 내려가자는 파가 갈렸지만 대세는 준법파로 기울어진다. 우리가 누군가. 모범생들 아닌가. 산에서 시를 낭송하는 향기로운 사람들 아닌가!

 

내려가는 길옆에는 키 작은 관목들과 산죽들이 무성하다. 높이가 1,614미터이니 바람이 셀 것이고 그 바람에 키 높은 나무들이 견딜 수 없겠다. 너른 곳에 터를 잡고 양기 산우를 필두로 주섬주섬 꺼내는 음식들을 보니, 에효! 과연 이 산해진미를 다 치우고 갈 런지 걱정이다. 음식이 나오면 바로 젓가락을 드는 산우들을 가볍게 만류하고 싶어서 시 낭송부터 하면 방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김에 오늘 실천했다. 처음부터 고치고 싶었던 습관이다. 음식을 싸오는 산우들은 꺼내고 차리고 있는데 싸오지 않은 산우들은 심심한지, 계면쩍은지 젓가락부터 들고 음식을 먹는다. 아니 누구는 배가 고프지 않겠으며 무겁게 싸오고 싶겠는가. 앞으로는 음식을 차리고 시 낭송 먼저 하면 이 습관이 고쳐지지 않겠는가. 시 낭송의 권한은 내게 있었지만 내 목소리는 알아주는 탁음이니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양보한다. 깊고 넓은 산이고 서울을 올라갈 길이 멀어 뒤풀이를 생략하고 산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지만 문형 산우가 유난히 많이 싸와서 음식이 넘친다. 결국 다 먹고 마시지 못하고 배낭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15명이라 했더니 유난히 많이 싸준 생굴도 예외가 아니다.

 

하산길이다. 급하지 않은 하산길을 부지런히 걸어 계곡 초입에 들어서니 백련사가 나온다. 백련사에는 선방이 있어 동안거 중이다. 그들은 용맹정진한다고 90일을 틀어박혀서 잡히지도 않는 도를 깨친다고 하는데 깨쳐서 뭐할 건데. 도가 있기나 하나? 변변한 필기구가 없어 구전으로 내려온 석가의 말씀은 2,500년이 흘러 얼마나 변질되었을까?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고 탈취의 역사고 침탈의 역사고 악이 성행한 역사다. 과연 인간이 선한 존재인가? 공자, 노자, 장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등은 150년의 시차를 넘지 않는 거의 동시대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태어나고 활약을 하던 약 2,500년 전부터 그들은 악을 멀리하며 선을 부르짖고, 도를 깨치며 예를 실천하며 살라고 했으나 오늘날 인간의 역사를 보면 과연 인간이 선한 존재일 수 없다는 결론에 쉽게 달한다. 종교가 인류에게 끼친 해악과 선을 놓고 저울질을 하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까? 영토분쟁이나 종족 간의 전쟁보다 이념과 종교전쟁이 훨씬 잔인하고 길었다는 역사학자들의 기록을 보면서 괜스레 해보는 말이다. 히틀러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도 유태인이 미워 일으킨 전쟁이라는 유력한 설이 있다. 자신들만의 선민의식 속에 틀어박혀 한 치의 양보도, 후퇴도, 반성도, 되새김도 없는 유태인들이 미워 그들을 말살시키려고 일으킨 전쟁이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역사학자들의 시각도 자신들의 영역이니 누가 간섭하겠는가?

 

구천동 33경을 보면서 30년 전 연구소 시절, 각 실과 과로부터 덕유산과 오대산 등산의 안내를 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다. 초심자가 많은데다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여직원들이 있어 설악산 같이 어려운 산은 오르지 못하고, 유명한 산은 오르고 싶어 하는 부탁이라 거절을 할 수 없었고, 해서 두 산을 자주 올랐다. 줄잡아 열 번은 넘었을 것이다. 5년 전에 다녀갔을 때는 계곡을 보호한다고 계곡 옆으로만 길이 있어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 계곡을 건너는 다리와 데크 및 전망대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 바로 위에서 혹은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 신원우 산우가 국립공원에 수석이사로 재직하면서 수행한 과제이며 최대의 공적이다. 모두 무사히 주차장에 도착하여 서울로 올라갔다. 배가 부르니 뒤풀이를 하자는 산우도 없다. 지금 한 시간을 지체하면 고속도로에서는 두 시간이 더 소요된다. 8시 반에 도착하니 마음도 한가롭다. 오늘도 좋은 산우들과 한바탕 즐거움을 누렸던 하루였다. 시산회 만세!

 

3.산행지

이번 산행은 납회를 겸한 근교 산행이다. 이경식 문장관의 제안에 따른 산행이다. 창의문에서 내려 오르면 윤동주 시인이 걸었던 시인의 공원이 있고 서울 성곽길이 있다. 정상 부근의 삿갓바위를 거쳐 사직공원으로 내려와 인사동 해인까지 걸어가는 길이다. 납회는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마감의 장이다. 한 해 동안 무사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게 보살펴준 산신령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산과 시' 시산지를 발행하는 건과 산행 요일을 정하는 안건이 나올 것이다. 산행에 참가하지 못하더라도 납회는 참석하여 주기 바란다. 올해, 25회의 산행 중 나는 두 번을 불참하여 개근상(?)을 받지 못하지만 내년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할 것을 다짐해본다. 모두 모여 건전하고 건강한 산행을 통해 변함없는 우정을 다지자.

 

4.동반시

동창회 카페 k-20마을에 올린 김용우 산우의 시를 동반한다. 사랑시다. 사랑도 인생도 우정도 우애도 아플수록 성숙하고 그것들을 극복하면 그 향기는 더 짙다. 속으로 아픈 만큼 고운 빛깔을 내며 크고 작은 아픔들이 모여 더욱 향기로운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 세상사다. 인왕산 성곽길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한 해를 돌아보며 이 시를 낭송할 산우는 누구일까? 못 다한 사랑의 아픔을 겪은 산우가 있으면 앞으로 나서라. 시보다 더 향기롭게 읊어라.

 

아픈 사랑일수록 그 향기는 짙다 / 도 종 환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들판일수록 좋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한 장일수록 좋다
누군가가 와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단 한 가지 빛깔의
여백으로 가득 찬 마음
그 마음의 한 쪽 페이지에는
우물이 있다

그 우물을 마시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우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마르지 않고
나누어 마시면 마실수록
단맛이 난다

사랑은 가난할수록 좋다
사랑은 풍부하거나 화려하면
빛을 잃는다
겉으로 보아 가난한 사람은 속으로는
알찬 수확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너무 화려한 쪽으로 가려다
헤어진 사랑을 본다
너무 풍요로운 미래로 가려다
갈라진 사랑을 본다
내용은 풍요롭게
포장은 검소해야 오래가는 사랑이다

 

2010년 12월 15일 새벽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