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始山祭(詩山會 제151회 산행)
산 : 도봉산
코스 : 탐방지원센터-시인의 마을-구조대-길지 명당터(시산제)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1년 1월 9일(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1,7호선 도봉산역 7호선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 제사음식
연락 : 박형채(011-250-5382)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복효근 / 세속사원
집 밖에서 집을 보네
밤이 새벽으로 건너가는 시간
금성이 춥게 빛날 때
울다 잠든 아내 두고
집 밖에서 퀭한 눈으로 내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네
저 칸칸이 토굴 같은 시커먼 아파트 덩어리
모래와 시멘트로 뭉쳐진 커다란 산
저 속에서
그만 살 것처럼 사랑하고
또 다 산 것처럼 싸우고
옷 벗고 뒹굴고 또 옷 입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나날을 최후처럼 살았네
불현듯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
돈황의 막고굴이 떠올랐다네
커다란 산에 층층이 동굴을 뚫고 수도승들은
화엄세계를 새겨 넣으려
굴 밖에 거울을 세워두고 빛을 반사시켜 들여서
몇 십 년 몇 백 년 작업을 했다지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그들에게 차라리
내가 버리고 싶은 이 사바가 극락쯤은 아니 될까
그래, 나의 이 고해가 극락이라니
목말라 물을 찾다 밤새 술만 들이켰던 그곳이 우물터였다니
수많은 생불들이 불을 켜는 새벽
나 옷깃 여미고 저 사원으로 돌아가겠네
나이만큼 이어온 긴 호흡. 그 길이 일자로 펼치면 지구를 몇 바퀴 돌겠네. 더러는 한숨, 더러는 재채기, 자지러지던 웃음, 스타카토로 끊기던 들숨과 길게 늘어지던 날숨의 편곡인 울음, 음 높낮이로 감정의 기승전결 다 담는 감탄사, 수시로 내뱉은 무수한 말들 그 많은 것들의 길을 대신 걸어주며, 긴긴 숨 여기까지 와 잠 못 이루고 있네.
지나치는 지하철 전동차 속, 사람들로 꽉 찬 칸과 어이없게도 텅 빈 칸 바라보며 삶을 생각해본 적 있지. 우리 삶이 옆 칸도 못 보는 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비켜서 보거나 떨어져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도 하지.
아파트를 벗어나 맘 경계를 허물었구나. 사랑과 싸움, 고해와 극락, 세속과 사원, 층층이 다 한 마음 속에 있는 마음 아파트임을, 한 몸임을 보았구나.
-시평(함민복. 시인)
이 좋은 시와 시평에 내가 시평을 곁들이면 군더더기가 되겠다. 하여 내 이야기는 생략한다. 올해의 내 화두는 조선 후기 대선사 경허가 해인사 구광루에 올라 내뱉었던 사자후 ‘마침내 하늘과 땅을 삼켰다 뱉는 나그네 하나’다.
-도봉별곡
2.산행 후기 및 납회 소회
인왕산 납회 산행 / 김정남
참석 : 고갑무, 염재홍, 김정남, 임용복, 이원무, 신원우, 김종화, 한양기 등 8인
납회나 시산제 등의 산행기는 주로 도움쇠, 경식 아니 신임 회장님, 종화 등이 쓰기로 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납회는 임기를 마치는 회장이나 총장이, 시산제는 신임 집행부에서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여 이번은 산행기는 도움쇠가 작성하고 납회의 소회는 이재웅 회장님이 썼다. 이재웅 회장과 이경식 문장관이 산행을 못하니 다른 산우에게 부탁해야 하나 내가 그냥 썼다. 그러다보니 3번을 연속해서 내가 쓰게 됐는데 한 사람이 자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음에 시산회지 낼 때 특별회비를 더 내라고 할까봐 조금 걱정도 되고. 하하하.
다음 날, 이 회장에게 형채 딸 결혼식에서 소감을 물었더니 “아쉬운 마음에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다”고 마음과 다른 말을 하는데 물론 농담이겠다. 시원섭섭하겠다. 내가 그 심정을 잘 안다.
산행에 10명이 참석한다는 회장님의 문자를 받고 그에 맞춰서 마나님이 싸준 한과와 생굴을 들고 집을 나섰다. 먼저 회장님의 부탁으로 납회에 참석해주는 전임 동창회장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도봉산 입구로 갔다. 우리들이 공동으로 스틱을 싸게 구입했던 가게다. 살림살이가 빠듯하여 좋은 선물을 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기는 회장님의 부탁으로 최대한 깎아 등산용 양말을 샀다. 울로 된 실로 짰으니 고급품이다. 1/3값으로 판다지만 장사꾼 말을 누가 믿는가. 내가 장사를 해봐서 잘 안다.
경복궁역에 6명이 정시에 나왔고 종화 산우만 조금 늦는다기에 조금 기다리니 7명이 모였다. 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와 자하문 터널 입구 중에서 내려야 하는데 아는 산우가 없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서울에서 40년을 산 나도 이 산은 처음이다. 버스 안에서 우아하게 늙으신 어느 할머니가 자하문 고개에서 내리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그곳에 내리니 68년 김신조 일당이 넘어와 교전이 벌어져 전사한 종로경철서 최규식 서장의 동상이 있다. 그 옆에 백악산에 관한 설명이 있는데 사진이나 뉴스에서 보는 청와대 뒷산은 전에는 백악산이라 불렀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인왕산의 일부이다.
쉬운 코스를 생각하고 왔는데 길을 몰라 약간 우왕좌왕하다가 윤동주 시비가 있는 ‘시인의 언덕’을 찾았다. 자하문으로 오르면 육교가 있을 것으로 추측했으나 그 길은 청와대 뒷산으로 오르는 길이고 횡단보도를 지나니 길이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에 개방한 것으로 안다. 그분은 힘이 없는 자들을 위하고 그들의 눈높이를 맞춰 정책을 폈으나 조중동이나 귀가 얇은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가신 아까운 분이다. 우리가 언제 이런 대통령을 다시 만나랴. 시인의 언덕에서 윤동주 시비를 보고 사진촬영을 한 후, 성곽길을 따라 올라간다. 처음에는 완만하다 정상으로 오르는 부분은 제법 가파르다.
잠시 쉬면서 청와대 경내를 보니 의외로 크지 않다. 임 수석은 산세를 보면서 정도전과 무학의 이야기를 한다. 유식한 친구다. 경복궁 뒤 인왕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비원(창덕궁) 쪽으로는 발달해서 내려가는 것이 좌청룡이고, 좌청룡이 발달하면 풍수지리상 장자 상속의 맥이 자주 끊기는 이유가 된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우백호인 효자동 쪽으로는 산줄기가 이어지지 않았다. 정도전은 신권정치를 원했고 무학은 왕권정치를 원해서 이런 왕궁의 지세를 보면 왕권보다 신권이 강해지므로 정도전은 한양을 도읍으로 원했고 무학은 반대했으나 당시의 실권자이며 왕조의 기반을 세웠던 정도전의 주장대로 한양이 도읍으로 정해졌다는 임 수석의 해박한 설명이다. 맞다. 조선은 왕권보다 신권이 강했던 신권의 나라다. 태종은 왕권을 위협하려 했던 자신의 심복들, 친동생들을 죽이고 처남들, 심지어 아들 세종의 장인까지 죽이면서 왕권을 강화했던 덕분에 세종은 태평하게 정사를 펼쳤던 것인데 백두선 호랑이 김종서를 죽이면서 쿠데타를 일으킨 세조에 이르러 왕권이 강화된 듯하지만 실제는 한명회, 권람, 신숙주 등이 정권을 휘어잡았다. 성종에게 왕권을 물려받은 연산군이 신하들을 무시하고 왕권을 휘두르자 반정이 일어나 왕을 쫓아내고, 선조에 이르러 당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왕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신권이 그만큼 강했다는 증거다.
북인의 비호를 받던 광해군은 서인 정권에 의해 물러나고 숙종은 교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환국(정권 교체)을 통하여 서인과 남인 사이에서 왕권을 유지하나 그것으로 남인의 세상은 가고 왕조의 끝까지 서인이 정권을 잡는다. 서인은 기호학파가 주류를 이루며 경기, 충청, 전라도 일부가 지역적인 배경이 되며, 영남은 거의 남인 일색이다. 역사서를 보면 영남은 280년을 정권의 외곽에 있었다. 현세에 이르러 영남인들이 정권에 목말라하는 이유다. 탕평책을 펼쳤다는 영조는 실제로는 힘이 없었기에 사도세자를 죽여야 했고, 무수리 등 천하다는 궁인 하나를 채용할 때도 신하들의 눈치를 보고 동의를 받아야 했으며, 개혁 군주라는 정조와 서인의 영수 심환지가 주고받은 어필 편지는 신하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죽인 벽파에게 복수를 하려고 이를 갈았지만 힘이 없어 결국 그들과 묵시적인 화해를 하며 그 뜻을 접는다. 그 뒤로 60년을 시파인 안동 김씨 일문 등 신하들에 의한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대원군에 이르러 10년 왕권정치를 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그것도 신권정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조 대비나 명성황후의 친척들에게 정권이 넘어가고 순종 황제에 이르러 이완용 등 신하들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마침내 망국의 길을 걷는다. 경복궁을 보며 역사에 해박한 산우들과 주고받은 이야기의 일부다.
산이 낮아 등산 시간이 짧아 여기에 긴 얘기를 할애함을 이해바란다. 정상에서 보니 연대 뒤의 안산, 북한산 끝자락인 족두리봉을 시작으로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가 보인다. 문수봉에서 보현봉으로 뻗어 내린 줄기는 형제봉에서 잠시 숨을 멈추고 솟는다. 인수봉, 망경대, 백운대 세 봉우리는 인왕산이 낮고, 중간에 보현봉이 우뚝 솟아 가린 탓에 보이지 않는다. 남쪽으로 멀리 한가롭게 흐르는 한강은 지는 햇빛에 반짝인다. 좋은 산들과 큰 강이 흐르는 서울은 복 받은 땅이라는 이견이 없다. 가볍게 싸온 음식을 꺼내 요기를 채운다. 춥고 목이 마려웠는지 막걸리 5병이 쉽게 동이 난다.
시 낭송의 시간. 도종환 시인의 ‘아픈 사랑일수록 그 향기는 짙다’는 동반시를 동창회장인 신원우 산우에게 권했더니 흔쾌히 낭송한다. 8척 장신의 육사 출신 무골답게 막힘없이 호탕하게 읽는다. 그를 보면 보병이나 포병으로 재직했으면 4성 장군감인데, 항상 아쉽게 생각한다. 이재웅 회장님은 여기서 낭송하고 납회식 때 또 낭송하자 했다.
한참 산중한담을 즐기다 하산의 시간. 내려오다 사직공원 쪽에서 올라오는 한양기 산우와 마주치고 그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내려간다. 하산의 시간은 40분 정도. 사직공원으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인사동으로 향한다. 약속 시간보다 40분이 이르다. 내려서 한 팀은 납회 장소인 해인으로, 한 팀은 토요일 오후의 인사동길을 구경한다며 나뉜다. 토요일 오후의 한가롭고 조용한 산행이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쓰고 다음은 납회에 관한 얘기이니 이재웅 회장님의 몫이다. 회한과 감회가 없을 수 없어 그에게 넘긴다. 그가 마감하는 것이 마땅하다.
경식 산우가 간혹 보내주는 메일에 참으로 좋은 것이 많다. 하루를 살아도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 죽을 때까지 삶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많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우리는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에 알아야 하며 바로 실천해야 한다. 그 중에 쓸모와 보람에 큰 가치를 둔 사람들이 있다. 워런 버핏은 세계 3위 부자이나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역설한다. 집을 10채나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소유가 많다 보면 나중에 물건이 사람을 소유하게 된다. 그가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자산은 건강과 친구다. 즉시 실천하자. 시산회인 우리는 그 중 친구 하나는 가지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빌 게이츠 같은 훌륭한 부자들은 기부를 최상의 투자로, 최고의 성공으로 평가한다.
도움쇠 김정남 씀
시산회 2010년 納會 소회(所懷) (2010. 12.18 / 이재웅)
▣ 납회 일시 : 2010년 12월 18일(토요일) 오후 5시
▣ 납회 장소 : 인사동 식당가 소재 음식점 ‘해인’
▣ 참석 인원 : 21명 (시산회원 19명, 재경 광주고 20회 前 동창회장 2명)
<시산회원 참석자>
- 인왕산 납회산행 후 납회참석자 8명
고갑무, 김정남, 김종화, 신원우, 염재홍, 위윤환, 임용복, 한양기
- 납회만 참석자 11명
기세환, 김용우, 박형채, 이경식, 이원무, 전 작, 정해황, 조문형, 최근호, 한천옥,
그리고 필자 이재웅
< 재경 광주고 20회 前 동창회장>
나성화, 장선식
▣ 동반시 : 아픈 사랑일수록 그 향기는 짙다 / 도종환
벌써 2년 전 2008년 이맘 때 김종화 전 회장님과 그 외 여러 시산회원님들의 권유로 시산회의 2009년도 1년 임기의 사무총장직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2010년도에는 시산회 회장 겸직까지 맡는 등 지난 2년의 기간 동안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본인이 사무총장직과 회장직을 가까스로 원만히 수행하고 이번 납회에서 이경식 신임 회장님과 박형채 신임 사무총장님께 회장직과 사무총장직을 인수인계하게 되기까지는 회원 모두의 이해와 성원과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여 이 지면을 통하여 시산회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도움쇠 역할을 충실히 해 주신 김정남 시산회 초대회장님과 문화부장의 역할을 잘 해 주신 이경식 신임회장님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하며 이 두 분의 직접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본인의 직을 무탈하게 수행할 수 있었음을 밝히며 이 두 분께 거듭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특히 치료 기간 중이자 회복기간 중인데도 불구하고 회장직을 수락한 이경식 제5대 회장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신임 박형채 사무총장님께서는 교직생활의 끝자락에서 제2의 진로변화모색으로 다망한 가운데서도 여러 모로 신경을 써야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시산회 사무총장직을 흔쾌히 맡아 주시니 이에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경식 신임회장과 박형채 신임 사무총장은 2004년 10월 10일 시산회 제1회 산행(도봉산)을 한 시산회 발기인 8명 중 12명에 속한 인사이므로 선입선출방식(FIFO : First In First Out)에 따른다면(비유가 정확히는 좀 안 맞는 것 같지만) 초대 김정남 회장님이나 2대 기세환 회장님에 이어서 진즉에 회장이나 사무총장을 맡으셨어야 할 분들이 아니었나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일부 회원 분들이 본인에게(웃자고 하는 인사말이고 우호적인 생각에서 하는 인사말이겠지만) 이제 회장직과 총장직을 넘겼으니 “홀가분하고 편하지 않느냐?” 또는 “허전하지 않느냐?”등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요는 본인은 저의 입장에서 보아 저에게 불편하거나 편한 편을 가려서 무슨 일을 하거나 회피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일의 정당성을 가려서 정당성도 있고 편하고 즐거우면 큰 행운이겠지만 저에게 불편하더라도 정당성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행하는 성격입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을 수행하느라 때로는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귀찮음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불평불만 하는 마음 없이 단어 뜻 그대로 달게 받았고(甘受)
그 직을 넘긴 것에 대한 허전함도 갖지 않습니다(제가 맡은 2년의 기간 동안 총장 또는 회장으로 칭함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오히려 수준 높은 우리 시산회의 사무총장과 회장을 맡았던 것은 저에게 보람이고 영광입니다. 앞으로 시산회의 나아가는 방향에 맞춰 평 회원으로써의 할 일을 충실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번 주 주말인 12월 11일(토요일)과 12월 12일(일요일)에는 한가했었는데 납회산행이 있는 12월 18일(토요일)은 직장에서의 특별 긴급회의로 인한 출근에다 수원에서의 12시 결혼식(꼭 참석해야 하는)에 오후에는 향우회 모임 등으로 4중 5중의 고를 겪는 토요일이 되었다.
오후 1시에 경복궁 3번 출구에서 집결하여 인왕산 납회산행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참석을 못하고 오후 5시에 시작하는 납회장소에 오후 4시 40분경에 겨우 도착하였습니다.
분당에서 11시에 출발하여 수원을 갔다가 다시 인사동까지 납회시간에 늦지 않게 토요일 교통지옥을 뚫고 도착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고역이었지만 납회시간에 늦지 않은 건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납회에는 오후 1시부터 인왕산 납회산행을 한 8명의 회원과 직접 납회장소에 나온 11명의 회원으로 모두 19명의 회원이 참석하였으며(총 회원 수 26명)으며 광주고등학교 제20회 재경 동창회장을 역임한 나성화, 장선식 前 회장님이 초대인사로 참석하여 총 21명이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납회를 갖게 되었다. 더구나 광주고 20회 재경 현직 동창회장 신원우 회장님과 현직 사무총장 김용우 총장님이 시산회원으로 가입해 있어서 오늘의 시산회 납회는 20회 전 현직 동창회 간부님들이 대거 참석한 무게감이 빵빵함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납회 시작 시간인 오후 5시 경에 시산회 2대회장 기세환의 전화 “회원들에게 맛을 보이려고 일본에서 구해온 일본청주 사께 몇 병을 가져오느라 승용차로 가고 있는데 남산 1호터널 입구에서 교통체증이 심하여 많이 지연도착 될 것 같으니 기다리지 말고 납회행사를 먼저 시작하고 있으라고 하면서 일본청주 사께 외에도 동승해서 함께 가고 있는 장선식(재경 20회 전임 회장)도 양주를 가져가고 있으니 음식은 먼저 들더라도 음식점 술은 작게 마시고 있으라는” 뜻의 전화가 왔다. 그 성의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지난 1년간 집행부에서 진행하는 바에 성실히 협조해 주신 시산회 회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말씀과 함께 오늘 납회에서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는 절차 등 개회취지(Opening Address)를 선언하고 숙달이 안 된 아마추어 식으로 MC역할을 더듬더듬 해 나갔습니다.
재경 광주고 제20회 현직 신원우 회장님, 현직 김용우 사무총장님 두 분으로부터 시산회 발전기금으로 두툼한 금일봉을 디카 플래쉬가 번뜩이는 가운데 공개 박수를 받으면서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시산회 재정이 요즘 다소 어려운 때에 가뭄에 단비처럼 생각하고 시산회 발전을 위해서 요긴하게 쓰겠나이다. 시산회원 여러분 2011년도 분의 동창회비 내는 데에 우리 시산회가 적극 동참합시다.ㅋㅋㅋ
20회 동창회장님으로부터 금일봉을 받은 데에 이어서 이원무 산우로부터 금강산 만물상 사진이 들어 있는 크리스탈 액자 선물을 친구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가운데 감사히 받았습니다. 몸도 건강하여 등산도 잘 하던데 마음 씀도 그리 넓으시니 이원무 그대는 심신이 모두 건강한 우리 시산회의 든든한 기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금강산 만물상 사진액자를 큰 상장이라 생각하고 고이 잘 간직하겠습니다. 특히 '독도, 33인의 메아리'를 보내주신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잘 읽겠습니다.
시산회 회원은 아니지만 재경20회 전직 동창회장 자격으로 초대받아 참석한 나성화 前 회장님과 장선식 前 회장님을 소개하자 시산회원 전원의 환영의 박수가 우뢰(?)와 같이 울려 퍼졌고 우리의 납회행사가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았습니다.
두 분이 오늘 참석하여 나성화 회장님께서는 동반시 도종환의 ‘아픈 사랑일수록 그 향기는 짙다’를 너무나도 심금을 울렁이게 하는 특유의 높낮이 어조로 낭송을 잘 하여서 참석한 친구들의 마음을 쥐고 흔들어 주셨으며, 장선식 회장님께서는 고급 양주 21년산 죠니워커블루로 오늘의 납회 분위기를 한 격을 더 높여 주셨습니다. 기세환 전 회장님께서는 초청손님도 아니면서 일본에서 일본청주 ‘사께’를 회원들이 충분하게 마실 정도로 여러 병을 가져 오셔서 납회를 더욱 풍성하게 하여 주신 점, 전 회원들을 대신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납회를 준비하면서 제가 김정남 도움쇠님과 의논하여 현재의 시산회 재정(?)사정이 풍족하지는 못하므로 회원들에게 드리는 납회선물이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로자 시상행사는 생략하되 외빈 등 특별한 경우를 생각해서 고급 등산양말 3족을 선물로 준비한 바에 따라 오늘 이 3개의 선물을 나성화님, 장성식님, 기세환님 세분께 시산회 답례의 표시로 드렸으니 약소하나마 감사의 情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오늘의 납회 핵심인 차기 2011년도의 제5대 집행부 회장과 사무총장 선출 절차를 진행하였는바, 회장과 사무총장 공히 납회 현장에서의 자천, 타천 출마 희망자는 없었고 전 회원들이 달리 이견이 없었으므로 이경식 회원을 차기(2011년도, 제5대)회장으로 박형채 회원을 차기(2011년도) 사무총장으로 만장일치로 선출하였고 본인들의 수락말씀도 있으셨습니다. 우리 시산회가 2011년도에는 더욱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집행진이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시산회원이자 광주고 재경 20회 회장인 신원우 친구의 맛갈난 건배구호가 분위기를 한 층 돋구었습니다. “혼자 가면 짧게 가고 함께 가면 길게(오래) 간다. 이런 의미로 「항꾸네?」를 소리높이 외쳤다. 항꾸네는 전라도에서 함께 가자고 할 때 ”항구네 가세?“라고 보통 쓰는 말인데 신원우 친구는 본인 고향인 고흥지방에서만 쓰는 사투리로 알고 있어서 여러 친구들이 정정해서 알려 주기도 했습니다.
시산회원들 중에서도 차분하고 조용조용하고 신중하고 부드럽고 점잖은 이미지인(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전작 산우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본인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 조폭 시리즈 건배구호를 한다고 한다. 소위 조폭 시리즈 건배구호 중에서도 버전이 시산회 버전이란다. 분위기를 유쾌하게 일신시키는 큰 기폭제가 되었다. 전작 산우에게 감사드립니다. 조폭시리즈(시산회 버전) 아, 맞, 고 건배구호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 : (전작 선창) 우리가 넘이여?? - - - - - - - - (일동 외침) 아닙니다? 회장님?
이 : (전작 선창) 산에 올라갈 때도 같이 올라가고 하산할 때도 함께 내려갈꺼야?
- - (일동 외침) 맞습니다? 회장님?
삼 : (전작 선창) 산 정상은 내가 책임진다? - - - (일동 외침) 고맙습니다? 회장님?
이렇게 참석한 친구들 일동은 서로의 정을 깊이 느끼면서 2010년도의 납회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격이 좀 높은 음식점이어서 비용이 좀 많이 나왔으나 최근호 친구가 한 열흘 전쯤에 본인의 장모님 상을 당했을 때 시산회 친구들이 조의를 표한 데 대한 사의로 오늘의 납회 회식비의 일부를 부담해 주셨습니다. 최근호 산우! 고맙습니다.
2011년의 희망찬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2011년 내내 시산회원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이 충만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시산회 4대 회장 이재웅 씀
3.始山祭 산행지
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아침 떠오르는 해처럼 희망을 안고 힘있게 한 해를 시작하는 달 1월을 해오름달이라 한다. 시산제를 따뜻한 달에 지내자는 이경식 회장님의 의견이 있었으나 1년에 4-6번 산행을 하면서 첫 산행을 춘삼월에 하는 산악회의 경우는 그럴 수 있으나 시산회는 끊임없이 산행을 하니 전통도 있어 마땅히 첫 산행 때 하자는 의견이 우세해 전례대로 첫 산행 때 시산제를 올린다. 우리는 시산제를 올릴 때 항상 좋은 기를 받은 산을 선택했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멀리 이동하지 않고 도봉산 정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길지 명당의 자리에서 시산회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제를 올리자. 제문을 올린다. 식순은 생략한다.
2011年 신묘년 詩山會 도봉산 시산제
檀紀 4344年 西紀 2011年 신묘年 1月 9日 바야흐로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의 희망을 밝히는 찬란한 새해를 맞으며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會員 一同은 신묘년 도봉산 始山祭를 행함에 앞서 天地神明과 도봉산 山神께 엎드려 고하나이다.
전지전능하신 천지신명이시여. 금일 우리는 선현의 발자취가 은은히 느껴지는 이곳에서 지난 한해를 감사하고 반성하며 내일의 번영과 도약을 다짐하기 위한 일념으로 전체 회원의 정성을 모아 성스러운 祭를 올리나이다.
우리 시산회 일동은 산행을 통하여 대자연의 정취와 미의 극치 속에서 자연을 흠모하며 자연과 동화되며 150회의 산행을 통하여 인내와 협동으로 화목과 단결을 배웠으며 소박하고 준엄한 교훈 속에서 심신을 단련하여 왔습니다.
거듭 비옵건대 신묘년 한 해도 우리 회원 모두를 굽어 살피시어 화합 속에서 안전한 산행이 되도록 엎드려 고하나니, 천지신명이시여, 우리가 정성을 다해 올리는 이 술들을 흔쾌히 흠향하여 주옵소서.
檀紀 4344年 西紀 2011年 1月 9日 시산회 회원 일동
4.동반시
동반시다. 올해 처음으로 동반하고 첫 산행이므로 관심을 갖고 선택한 시다. 시보다 시평이 더 마음에 들어 선택했을 수 있다. 꽃이 필 때 몸을 떤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안다. 누가 꽃을 미물이라 하는가. 한 생명체다. 부처님이 현세에 태어났다면 식물도 먹지 못하게 했을 까? 교리가 현세에 맞게 바뀌었을 것이다. 해오름달 1월이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의기소침해지지 말자. 나이야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 하지 않는가. 나이가 들어 좋은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3대 기도 도량인 여수 돌산 향일암에서 시인은 이렇게 부르짖는다. 자!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하자
동백은 겨울에 피는 꽃이지요. 얇은 꽃잎으로 한겨울 추위를 견디는 붉은 꽃을 보고 송찬호 시인은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동백이 활짝」). 생명을 위협하는 겨울과 싸우다 뚝뚝 떨어지는 동백은 여성에 비유되는 꽃이 아니라 “짐승을 닮은 꽃”입니다. 꽃을 밀어내려고 “허리 뒤틀며 안간힘 다하는” 동백나무에서도 짐승의 신음소리가 나올 것 같죠? 헤쳐 나가기 힘든 일을 겪을 때면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죠. "이 시간은 반드시 지나간다." 그냥 지나갈 것 같지 않은 그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 올가미 같은 시간을 지나, 다시 새해가 떠올랐습니다. "세차게 가지를 찢고 나온" 동백꽃의 기운을 받아 새해를 힘차게 시작해 보시지요.
-시평(이기태. 시인)
관음이라 불리는 어느 동백에 대한 회상 / 송 찬 호
무릇 생명이 태어나는
경계에는 어느 곳이나
올가미가 있는 법이지요
그러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에
저렇게 떨림이 있지 않겠어요
꽃을 밀어내느라
거친 옹이가 박인 허리를 뒤틀며
안간힘 다하는 저 늙은 동백나무를 보아요
그 아뜩한 올가미를 빠져나오려
짐승의 새끼처럼
다리를 모으고
세차게 머리로 가지를 찢고
나오는 동백꽃을 이리 가까이 와 보아요
향일암 매서운 겨울 바다 바람도
검푸른 잎사귀로
그 어린 꽃을 살짝 가려주네요
그러니 동백이 저리 붉은 거지요
그러니 동백을 짐승을 닮은
꽃이라 하는 것 아니겠어요
2011년 1월 5일 새벽에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