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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그날 그리고 그곳 / 도봉별곡

그날 그리고 그곳 / 도봉별곡

 

 

 

51병동 신경병동

응급의 후유증이 일상 되어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경구가 살아 숨 쉬는 곳

비정상이 정상인 걸리버의 나라 같아

작은 세계 안에 큰딸과 이름 같은 간호사 아내와 같은 이름의 간호사가 있다

 

휴게실 사랑방에는 여전히 의식불명의 늙은 보수와 무작정 젊은 진보가 암투 중이고

치료 끝나면 다시 감각적 쾌락의 길을 굳이 가겠다는 쾌락파와

이제

쾌락의 음모를 알아 청정한 삶을 살겠다는 청정파의 결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

 

아직도 고단한 삶, 쾌락적 삶의 결과로 생긴 병들 사이에 암투는 진행형이다 터줏대감인 간병인 그룹이 엄존하고 산재의 기득권에 저항하다 지쳐가는 조금은 엄살인 환자의 전쟁도 이어지고 있다

 

분주한 아침과 잠 못 들어

음낭처럼 늘어진 밤 사이 숨 막히는 전투 벌어졌으나

나이가 의미 없어진 시 · 공간과

살아있는 친구가 거의 없다는 86노인과

의식과 의지가 구분 없어진 90노인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어 아직 온전하게 연명하고 있는가

 

아내보다 엄마가 더 반가운 곳

온전하지 못한 몸들의 경연장

‘진리는 잘 설해졌다 더 이상 비밀은 없다 행동하지 않을 뿐’이라는 경구는 여전하고

 

애매한 의학적 이유로 술 ·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비합리적 경고에 가슴 움츠리는 겨울 한낮

딸들의 울먹거림과 사위들의 희미한 안도에 내 가슴은 더 희미했지만 아내의 적대적 호통 안에 가족의 힘

뭉쳤다

살아있었다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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