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액수 / 도봉별곡
고통은 응급실비 수술비 병실비 등 1,000만 원 어치였다. 온실에서 키운 백만 송이 장미가 아닌 찬바람에 벼린 백만 개의 바늘이 두 어깨 아래를 무차별 쑤셔대는 고통에 모르핀주사 한 방. 그것의 효능으로 부족할 때는 속수무책 그 이후는 모른다. 고통으로 기절했는지 다른 주사약으로 잠재웠는지
나이 순서를 지켜주지 않는 병마를 원망한들 고양이가 호랑이 되지 못하듯 죽음의 순서도 같을 것이다 옆 환자 신음소리 서로에게 짐이 되는 자율신경이 일으키는 생리적 현상을 탓한들 해결책은 1인실로 가는 것뿐, 그러나 깨달음은 저잣거리에서 나오듯 적막과 외로움은 친구일 뿐 덧없다는 해탈에 방문객은 방해꾼
친구들 모두 죽어 없는 86살 노인네가 퇴원해서도 친구처럼 지내자는 제안에 차마 대놓고 거절하지는 못하고 이제 버릴 것만 남았는데 새 인연 만들기 망설여진다
어느새 옆자리 아줌마 건빵 내밀며 하느님 믿으란다 한 번만 보여주면 믿겠다 했더니 숨 쉬는 공기가 하느님이란다, 보이지는 않아도. 온통 전세 냈냐고 반문하면서 나의 신도 여기 지금 그대로 있는데 하느님과 공기를 두고 네 것 내 것 싸우고 있다고 했더니 뒤도 안 보고 찬바람 날리며 가버린다
주치의와 집도의의 고마움, 알아보니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이미 죽은 몸, 최소한 반신마비라는데 살았으니 재활 열심히 하고 남은 생 할 일 있으려니. 술 담배 끊고 시 열심히 쓰고 철학 강의 다시 시작하란다. 평생 친구인 그와 약속했다. 손가락이 마비돼 쓰기를 중단한 성자들의 만찬, 붓다의 노래, 붓다의 눈물, 붓다의 독백, 여래 시편, 바람의 신화는 완성하고 죽어도 죽어야지.
집에 돌아와서 세 여자에게 받은 눈총의 액수는 얼마일까? 그런다고 노루가 사자가 될 수 있나.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