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록

선운산과 축령산 자연 치유의 숲(詩山會 제164회 산행)

선운산과 축령산 자연 치유의 숲(詩山會 제164회 산행)

산 : 고창 선운산-장성 축령산 자연 치유의 숲

코스 :

7/23 : 고창 행- 미당시문학관 - 점심(풍천장어) - 선운사 산행 - 고인돌유적지 - 고창읍성 - 별장(얼음골산장)에서 저녁식사( 날아다니는 촌닭+ 기타) - 여흥

7/24 : 문수사(천연기념물 단풍나무) - 장성 축령산 자연 치유의 숲 - 점심(정읍산외마을 쇠고기) - 서울 행

소요시간 : 36시간

일시 : 2011년 7월 23일(토) - 24일(일) 1박 2일

모이는 곳 : 전철 2.4호선 사당역 1번 출구. 7시(늦으면 민폐)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사진기,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약간의 금전

연락 : 박형채(011-250-5382))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접시꽃 당신/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 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어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을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시를 고르다가 한양기 산우를 만나 소통을 하고 우연히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도종환의 ‘접시꽃당신’을 보고 동반시를 확인해보니 아직 동반하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하니 너무 길어서 미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길면 나눠서 읊더라도 이 시는 이번 산행에 동반하자. 시인이 먼저 간 부인을 옥수수밭 옆에 묻었다가 생각이 나서 썼다고 한다. 훗날 재혼했다고 애독자들로부터 상상 이상의 항의를 받았다는 후문이 있다. 그만큼 애절한 시다.

 

2.산행기

안양 수리산(詩山會 제163회 산행)/남기인 작성

참가자 : 신원우, 김정남, 남기인, 이경식, 김용우, 김종화, 최광일, 임삼환, 나창수, 이재웅(10명)

산행시

 

나무가 비에 젖는 날/지연희

 

나무가 비에 젖는 날은

바람도 비에 젖는다

가지를 흔들며

날선 자괴에 빠져 등줄기에

채찍을 드는 나무 곁에서

바람은 울기만 한다

나무가

가지마다 꽃을 피워 빛으로 일어서던 날

어둠은 깊은 그림자로 끝없는 아픔을

암담한 내일 위에 걸어 놓고

꽃잎을 꺾기 시작했다

 

뚝뚝 떨어지는 꽃잎

사랑이 강물 위에 떨어졌다

끝내 빛은 어둠의 뒷골목에 누워

전신이 부셔져 자취도 없어지고

작은 열매도 세우지 못한 가지는

옹이진 상처를 안고

겨울 뜰에 나와 섰다

빈 가지의

나무가 몸부림치며 젖고 있다

떨어진 꽃잎이 저만치 흐른다

주르륵

시간의 끝으로 흘러가는 꽃잎

바람이 나무의 집 밖에서 운다.

 

 

어떤 날은 우리의 삶이 순조롭게 순풍을 타는 날도 있고, 하는 일마다 자꾸 꼬이어 역풍을 맞는 날도 있다. 머피의 법칙인지, 일이라고 하는 것이 모임이 있는 날은 꼭 다른 일정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그동안 보고 싶은 친구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멀리 한강 북쪽의 산을 찾는 경우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간다고 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서 시골 생활의 불편함을 통감하기도 하면서 때때로 게으름을 피운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고백한다.

아무튼 오늘은 순조로운 날이다. 수원역에까지 아들녀석이 태워다 준다니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것 같다. 수원역에서 안양역까지 8구간, 도착하고 보니 9시1분전이다. 당연이 아무도 오지 않고 혼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언젠가 용우 친구가 자기는 항상 좀 더 일찍 모임에 나가 주변도 돌아보고 커피도 한 잔 마시는 여유를 즐긴다고 하였던 말이 생각난다. 항상 바쁘게만 살아가는 속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음은 삶의 지혜라고 생각해 본다.

지하철을 이용한 친구, 버스를 이용하는 친구 등 각기 다른 방법으로 안양역에 모였다. 마치 지금까지 살아온 길은 다르지만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산에 모인 사람들처럼.

재웅 친구가 수리산 입구 가는 길을 배낭을 짊어진 한 아주머니에게 물었는데 2001아울렛 앞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한다. 맞게 가르쳐준 것인지.

 

언젠가 배낭하나 메고 낯선 이국땅을 헤맨 적이 있는데, 길을 물으니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일러주기에 그길로 갔다가 헛되이 몇 시간을 보낸 기억이 떠오른다.

수리산은 비록 작지만 경기도 안양, 군포, 안산을 끼고 있는 산이다. 산본 신도시에 사는 어느 주민의 말인즉 수리산이 있기에 산본이 살아난다고 한다.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산과 물이 필수인데 내가 최근 경기도 화성에 거주하면서 간혹 가까운 산에라도 가보려고 하나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그냥 사무실에 처박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화성시의 인구가 늘어가는 것을 보면 아마 먹고 살기 위해 공장이 많은 이곳으로 모이게 되는 모양이다.

선천적으로 길눈이 어두워 한 번 가본 곳을 다시 찾지 못하는 우둔함 때문에 마누라로부터 자주 핍박을 받는 사람인데 두 번째 오는 수리산의 입구에 오르니 몇 년 전에 시산 회원들과 함께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오늘은 이경식 회장의 옛날 군시절 기억을 떠올려 다른 산악인들과는 달리 계곡을 따라 들어가기로 하였다. 장마철이라 계곡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하여 새로운 정취를 느끼게 하였다.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는 길에 천주교 성지와 기도원이 있어서 좁은 길에 통행하는 차들이 등산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였지만 남의 종교 생활을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적으로 종교에 심취해본 적이 없기에 함부로 종교를 이야기 하지 않으나 사회규범의 측면에서 적어도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종교 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공중장소에서 지나친 고성의 선교 활동은 때로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했던 김용우 총장도 본인과 생각을 함께하여 나 혼자만의 까칠한 생각은 아니겠구나 하고 위안을 삼아본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리산에 오른 시산회 산우들 오늘은 산행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겁지 않고 그러나 누구나 공감하는 대화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하였다.

 

오늘은 정상에서 정상주와 산행시 낭송이 어려울듯하여 중간 쉼터에서 막걸리와 묵은 김치(다솜유치원산) 그리고 두부를 안주 삼아 한담을 나누기로 한다. 지난 산행에서 박 총장이 제기한 회비 및 재정 운영에 관한 건, 애경사 찬조금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양의사와 종합병원에 대한 환자로서의 불만 및 문제점, 그리고 신원우 회장의 종합 병원 진료 경험담 등이 안주가 되어 막걸리 5병을 모두 비웠으니 어지간히 우리 시산회원들의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배부르니 뒤풀이는 간단히 하자고 나창수 원장이 제안한다. 특히 보리밥이 좋겠다고 나도 제청하였는데, 오늘 자식 혼사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점심을 사려고 했던 최광일 회원의 계획에 약간 차질이 오는 모양이다. 항상 산행하면서 누구도 김치를 가져오지 않아 유치원에서 지난 가을 담근 김장김치를 가져왔는데 새로운 맛이었다.

 

비록 정상인 태을봉까지는 가지 않았어도 중간에 위치한 정자에서 23일 임용복 회원이 고창으로 1박2일 시산회원을 초청한다고 하여 갈 수 있는 회원을 조사했더니 8명이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그 계획을 조정해야겠기에 반만 동의하는 것으로 하였는데 다솜유치원 승합차 징발령으로 할 수 없이 참석해야할 입장이 되고 말았다.

수리산(修理山)을 견불산(見佛山)이라고도 한다. 부처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이제 계속 내리막길인가 하면 다시 일정 시간 올라야 하고 이윽고 다시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수리산은 마치 우리 삶의 이치(理致)를 다시 일깨워주는 것과 같고, 겸손을 가르치는 것 같기도 하여 산행 후에 참으로 좋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산하고 보니 오를 때 이곳이 길이 아님을 일러준 친절한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 저 앞에 보인다. 겉모습도 왠지 맛있을 것 같다는 공통의 느낌으로 모두 이의 없이 ‘고향 보리밥집’으로 향했다.

곤드레 비빔밥, 보리밥, 청국장 등 을 주문하는데 매생이전은 겨울 메뉴라 하여 파전으로 막걸리 안주를 대신하기로 하였다. 서로 다른 메뉴를 다정한 친구들끼리 나누어 먹는 이 맛은 옛날 고등학교시절 송태복과 앞뒷집에 살면서 밤이면 연탄불에 식은 밥을 비벼서 함께 먹던 그 맛이 생각나서 추억과 맛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누군가 대학 친구도 많지만 자주 만나지 않고 고등학교 친구가 좋다고 말한다. 아무 허물없이 그냥 서로 이해하고 부담 없기에 좋은 것이 고등학교 친구이고 자주 만나서 산의 매력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은 山과 詩가 아니겠는가!

친구들이여 부디 건강하고 우리 오래도록 즐겁게 우리의 만남이 이어지기를 기원하세.

 

오늘의 리포터가 글재주가 없어서 그냥 그림으로 장난이나 해보았네.

남기인 올림

*편집자의 변-원문에 실린 사진의 복사가 안 돼 못 올리니 양해바람. 카페에서 확인

 

3.산행지

7월의 두 번째 산행은 7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일박 이일 코스이므로 박형채 총장이 자세하게 공지해주기를 원하여 위에 코스 설명을 했으니 참고하고 교통편 등 준비를 위하여 7월 21일까지 반드시 참석 여부를 전달해주기 바란다. 현재까지 13명이 신청하였으며 남기인 산우가 흔쾌히 내준 12인승 승합차가 준비되어 있음을 알린다. 인원이 넘으면 버스편이나 개인차를 징발할 수 있다. 이 기회에 산행안내에 대한 문자가 오면 즉시 답을 해주기 바란다는 이 회장님과 박 총장의 간곡한 부탁이다. 즉답이 어려우면 ‘보류’라 해도 된다. 제발! 답좀 하자. 그때까지 의사표시가 없으면 불참하는 것으로 간주하니 유의하기 바란다. 연락도 없이 당일에 불쑥 나와 다른 산우의 자리를 빼앗거나 집행부를 당혹하게 하지 말기 바란다.

 

첫 날은 전북 고창의 선운산과 선운사(젊은 시절, 도움쇠가 참당암에서 공부를 했으며 고창이 낳은 미당 서정주 시비가 있고 풍천장어와 복분자술, 4월에 피는 춘백으로 유명한 곳), 세계 최대의 고인돌 공원, 한국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3대 읍성(낙안읍성과 해미읍성 포함) 중 하나인 고창읍성(모양성)을 들르고 임용복 수석이 은퇴 후에 살려고 오래 전부터 마련해둔 고창의 별장에서 하루를 묵는다. 달이 Em는 저녁에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임 수석의 성심과 함께 날아다니는 촌닭 백숙을 먹으며, 때맞춰 접시꽃이 활짝 피었으니 동반시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을 읊는다. 길면 나눠서 읊고. 아니면 ‘벗은 설움에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고 시작하는 소월의 ‘님과 벗’을 낭송할까? 두 시가 그날의 분위기에 맞을 시라는 생각에 하나는 프롤로그에 하나는 동반시에 올리니 박 총장은 두 시를 준비해주기 바란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아름드리 단풍나무 군락이 있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단풍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된 공원을 들르고, 국내에서 편백나무가 가장 많은 장성 축령산 휴양림에서 피톤치드를 흠뻑 마시고 오는 길에 산외마을에서 한우를 먹고 오는 일정이다. 임 수석의 별장이 여름 한철 뿐 아니라 봄, 가을과 겨울에도 인기가 많아 세 달 전에 예약을 해도 밀리는 곳이므로 간다고 했다가 가지 않아도 곤란하다. 도움쇠도 내 고향 영광과 붙어 있어 은퇴 후에 가고 싶어 하는 곳이며 임 수석도 은퇴 후에 동부인하여 같이 가자고 한다. 임 수석이 지나치지 않은 성심으로 모신다고 한다.

 

4.동반시

이번의 산행은 가볍다. 하현달이 뜨고 물소리에 모든 시름을 흘려보내고 좋은 산우들과 더불어 한 산우가 시를 부르고 나머지 산우들은 술을 읊으면 얼마나 좋을까나! 긴 소리, 긴 말은 사족에 불과하다.

명색이 시산회원이라 어려운 시에도 이제는 불평이 없다. 그러나 어려운 시는 너무 개인주의로 흘러 시인들도 어렵단다. 하여 그것들을 읽는 방법이 보여 올리니 읽어보기 바란다.

 

어려운 시를 읽는 법

 

요즘의 문학 위기론은 문학의 난해함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얻는 것 같다. 난해함은 소설보다 시에서 두드러진다. 가뜩이나 시 독자가 줄어든 판에 문학과지성사·창비·민음사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출판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이 점점 읽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 번 뜨거운 맛을 본 독자는 조심하게 마련이다. ‘난해’가 ‘위기’를 재촉하는 일종의 상승작용이다. 오죽하면 서울대(국문과) 명예교수인 오세영 시인은 최근 일부 젊은 시인들의 난해시(難解詩)를 “정신분열적”이라고까지 비판했겠는가.

 

문제는 젊은 시인들의 난해시 선호가 질타로 해결될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어에 예민한 젊은 시인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 궁핍을 자초하면서까지 난수표 같은 난해시에 매달릴 게 뻔하다. 방법은 하나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쳐야 한다. 난해시는 한편으론 한국 현대시를 풍성하게 하는 귀한 존재 아닌가.

시인 K에게 난해시 감상법을 물었다. 그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정확하게 보기로 소문난 이다. 그에 따르면 난해 시집은 우선 ‘속독(速讀)의 대상’이다. 그는 실내자전거 위에라도 앉아 시집 전체를 30∼40분간에 걸쳐 빠르게 훑는다. 이때 무언가 마음을 건드리는 게 있으면 계속 읽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둔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시집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이 단계를 통과했다면 다음은 각개격파. 시 한 편을 앞에 두고 어느 시간대인지, 장소는 어디인지, 시의 화자가 무언가에 쫓기는 상태는 아닌지 등 구체적인 시의 정황을 그려보려고 노력한다. 이게 잘 안 된다면 단어 하나하나를 소리 내 발음하며 의미가 분명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읽는다. 이렇게 해서 시 한 편을 온전히 이해한 후 다음 시로 넘어간다.

K는 시집 한 권 읽는데 예닐곱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장편소설 한 권 읽는 시간이다. 시집이 어떤 기쁨을 주기에. “세계가 넓어지고 깨달음이 깊어진다”고 한다. 그의 감상법을 실천해보고 싶어진다.

-신준봉(언론인)

 

님과 벗/소월 김정식

 

벗은 설움에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 꽃 피어 향기로운 때를.

고초(苦草)의 붉은 열매 익어 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라.

비가 거친 뒤 진창에 고인

흙물에 비친 푸른 하늘과

그 푸른 하늘에 떠가는 하이얀

구름을 볼 줄 알면 그대를 만나리라 하였다.

백마디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로 줄이며

마지막 한마디 말마저

말없이 전할 줄 알면 그대를 만나리라 하였다.

멀리서도 오래오래 사랑할 줄 알고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쉽게 절망하지 않으며 먼 곳을 바라볼 줄 알면

그대를 만나리라 하였다.

슬퍼하고 기뻐하는 우리의 마음의 신비를 믿고

그 신비를 빚은 신비 절대도록 차이 없는

신의 뜻을 깨달으면

비로소 그대를 만나리라 하였다.

아름다운이여!

 

2011년 7월 19일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