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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안양 수리산(詩山會 제163회 산행)

안양 수리산(詩山會 제163회 산행)

산 : 수리산

코스 : 안양역-병목안 삼거리-정상(하산 방향은 산우들이 결정)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1년 7월 10일(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1호선 안양역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사진기(하산 후 뒤풀이 예정)

연락 : 박형채(011-250-5382))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이 생각이 없으면/이병철

이것이 나라고 하는 한 생각이 없으면

이것이 내가 아니어서 생기는 그 고통도 없지요

 

사랑받아야 한다는 그 생각이 없으면

사랑받지 못해 생기는 그 아픔도 없지요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는 그 생각이 없으면

당신에 대한 내 원망도 없지요

 

나라는 한 생각

지어낸 그 한 생각에 매달려 울고 웃습니다.

 

창공에 걸린 달은 홀로 저리 밝은데

천 개의 강가에 비친 천 개의 달 그림자

물결 따라 출렁입니다.

 

 

-“타인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 내 머리 속을 채우는 온갖 번뇌 등이 오직 나라는 한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생기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비우라는 주변의 말에 마음을 비웠더니 더 무거워진 복수와 증오로 채워진 경험이 있습니까?”

임 수석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손가락으로 달을 보라고 가리켰더니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며 "원망과 미움, 번뇌를 비우라 했거늘 마음만 비웠으니 마음이 빈 자리에 복수와 증오가 새로 채워진 게지“라 말한다.

선문답 같은 얘기다. 요즘 그를 만나면 그런 선문답을 주고 받는다.

덧붙여 오금을 박는다.

-"자네는 다른 사람의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니까"

좋게 말하면 심지가 굳고 나쁘게 말하면 아집이 세다는 뜻이다. 제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 많으니 잘 구별하며 현명하게 살라는 우정 어린 충고다.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남의 입장도 생각해 가며 살라는 의미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162회 예빈산 산행기(2011. 6. 25. 비) / 김종화

산행일/집결지 : 2011. 6. 25(토) / 팔당역(10시)

산행 소요시간 : 3시간10분(10:15~13:25)

산행코스 : 팔당역-팔당2리-율리고개-철쭉군락지-정상(직녀봉)-견우봉-승원봉-천주교공동묘원-능내리(봉안마을)

동참자 : 7명 (고갑무, 김정남, 김종화, 박형채, 이경식, 이재웅, 한천옥)

동반시 : ‘좋은 일들’ / 심보선

뒤풀이 : '보리비빔밥'과 막걸리, 팥빙수(후식) / ‘시골밥상’ - 한천옥 제공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장마전선이 북상. 어제부터 중부지방에 적지 않은 비가 왔었는데, 비는 소강상태이나 바람만 조금 부는 것 같다. 6시 일기예보엔 중부지방에 월요일까지 계속 비가 온단다. 태풍(메아리)이 발생, 서해 쪽으로 북상중이라 비와 강풍으로 인한 피해예방을 당부한다. 작년 9월초에 내습한 태풍‘곤파스’의 기억이 새롭다. 산과 들, 아파트 주변의 수많은 나무들이 뿌리 채 뽑히거나 부러뜨려져 많은 재해를 입혔다.

 

시산회 산행을 갈 것인가? 18시에 결혼식도 있고 점심때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이 회장님으로 부터 문자메시지가 날라 온다. ‘날씨는 하늘에 맡기고, 10시에 팔당역, 못 오르면 밥이나 먹잔다’. 허기사 우리가 언제 날씨 때문에 계획된 산행을 포기한 적이 있었던가? 이 회장님과 박 총장님께 '참석하겠노라!'고 연락한 뒤 배낭을 챙겼다. 행복 씨는 '비 오는데, 웬 산행이냐?'며 볼멘 목소리로 부족한 잠이나 더 주무시고 심산이나 하란다. 어제 밤, 늦게까지 컴에 심취해 잠을 자지 않았던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리라.

 

잠실역 근처에서 박형채 총장님, 한천옥 산우와 만나, 집결지인 팔당역에 도착하니 9시 50분이다. 한 달에 1회 이상 자주 만나지만, 언제 봐도 반가운 산우들(경식, 정남, 갑무, 재웅)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부지런한 친구들이다. 조금 늦게 도착할 산우들이 있을까싶어 다음열차가 도착하는 10시 10분까지 기다려 주는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원무만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참석을 못하겠다고 전화가 왔을 뿐, 끝내 아무도 연락도 없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이 회장님은 7명 정도가 적당히 좋다며, 앞으로는 7명까지만 선착순으로 받겠단다. 서운함을 애써 달래는 심정일 게다.

 

오늘 산행은 지난번 북한산 산행 때에 한천옥 산우가 추천한 산으로 팔당역 가까이에 있는 예빈산(590 m)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옛적엔 예봉산을 예빈산 이라고도 했다는데, 예빈산의 정상은 직녀봉이라고 되어있다. 옛날에는 검단산과 함께 한성백제의 강역을 수비하던 외오성산이었고, 조선조엔 나라굿 기우제를 봉행하던 명산이기도 하였단다.

 

산 이름은 대동여지도, 청구도, 해동지도, 경기38관도 등에 보이고, 유협 등의 묵객들이 예빈산을 소재로 한 시를 남기기도 했단다. 다산 정약용 형제가 유년시절 산책하며 큰 꿈을 키웠고, 화성 선사, 몽양 여운형 등등 역사의 향기가 서린 곳이기도 하단다.

 

수도권 전철 중앙선이 2005년 말, 용산역에서 경기 남양주시 덕소역까지 복선화한 데 이어, 2009년 12월에는 양평군 용문까지 연장 개통되었고, 최근에는 경춘선 또한 복선화되면서 남양주, 양평, 가평, 춘천 등지의 이름 난 산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산 중에서 등산동호인들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선 산이 예봉산(683 m)과 운길산(610 m)이다. 이는 서울에서 산행 들머리까지 이동시간이 짧을 뿐만 아니라 정상이나 산행 중에 아름다운 전경(남· 북한강과 두물머리)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빈산은 예봉산과 운길산의 명성에 가려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산이다. 나 역시 예봉산과 운길산은 산행코스를 달리하여 각각 3~4차례 산행경험이 있으나 예빈산은 한 번도 오른 경험이 없다.

 

최근에는 종주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통 운길산역에서 내려 운길산, 적갑산을 거쳐 예봉산을 오른 뒤, 팔당역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또한 이와 반대로 팔당역에서 예봉산을 오른 후 적갑산을 거쳐 운길산을 오르고, 산행의 마무리를 '수종사'에서 하는 산객들도 있고, 예봉산에서 예빈산(직녀봉), 견우봉과 승원봉을 거쳐 천주교공원묘원, 조안면 능내리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기도 한단다.

 

10시15분경,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린다. 막걸리를 점검하고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펴고 출발이다. 오늘은 당초 계획대로 정상을 향해 오르다가 비가 많이 오면 원점회귀를 하던지, 아니면 정상을 오른 후 조안면 능내리 쪽으로 하산하여 보리밥이 맛있는 식당(시골밥상)에서 뒤풀이를 갖기로 하였다.

 

‘팔당2리’라는 표지석을 지나 아스팔트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계곡에 다다르니 갈림길이 있고, 예봉산을 오르는 등산로 입구 쪽에 산행코스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잠시 산행코스를 살펴보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본다.

 

계곡의 등산로로 접어들자 진초록색의 나뭇잎들이 빗물에 젖어 풋풋한 생기를 느끼게 한다. 커다란 소나무와 도토리나무가 즐비한 숲길은 고요하기만 하다. 두 팀의 산객들이 바쁜 걸음으로 우리들을 지나친다. 아무래도 비오는 우중산행이라 빨리 올라갔다가 내려오려고 하는 바쁜 마음에서 서두르는 모양이다.

 

멀리서부터 상쾌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어제부터 비가 내려서인지 계곡엔 제법 많은 물이 흐른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엔 물소리만 들어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계곡물이 흐르고 햇빛을 가릴 수 있는 그늘진 숲길과 적당히 바람이 불어주면 여름철 산행은 더없이 좋다. 쉬엄쉬엄 오르면서 산우들은 추억이 밴 옛 학창시절 이야기, 김문수의 춘향전 이야기(‘변 사또가 춘향이 따 먹는 이야기’- 우리 역사에 나타난 관리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예를 들면서), 이 회장님과 박 총장님의 텃밭 가꾸는 이야기 등등 재미있는 화재거리를 쉼 없이 주고받는다.

 

등산로는 큰 돌과 자갈이 적당히 섞인 육산의 길이다. 내리던 비도 소강상태이고, 스마트폰을 새로 구입한 재웅이가 폰 사용법을 공부하면서 오는지, 전화가 몇 번 왔었는데, 뒤처져서 따라오질 않자 다들 잠시 쉬어 가잔다. 박형채 총장님은 어제 수확해 가져왔다는 싱싱한 토종오이를 맛보라고 내어 놓는다. 형채는 암사동(아리수센터 근처)에서 텃밭을 일궈 주말농장을 하고 있다. 작년에 이재웅 전 회장님과 텃밭구경을 갔었는데, 부지런한 성격이라 적지 않은 밭을 경작하고 있었다. 그동안 산행 때마다 맛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해 왔었는데, 아무쪼록 금년에도 잘 가꿔 산행 때마다 싱싱한 야채 제공을 부탁드린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사거리가 나온다. 이 지점이 율리고개로 율리봉-예봉산으로 오르는 길과 예빈산(직녀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예봉산까지 1.6 km, 출발지점인 팔당역까지 2.6 km, 예빈산(정상)까지 700 m로 표기되어 있다. 이정표가 잘 못 표기된 것인지? 가파른 암반길을 약 20여분 더 가서야 정상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헬기장 표시를 해 놓은 산마루엔 표지석도 없다. 앉기에는 좋은 곳이라 우린 이 곳에서 가지고 온 간식을 비우기로 하였다.

 

오늘은 뒤풀이 예약이 사전 공지되어 있기에 간단한 먹을거리(두부와 김치, 부침개, 떡 등)로 막걸리를 한 잔씩을 하고 동반시('좋은 일들'/ 심보선)를 낭송하잔다. 산행기를 작성하기로 한 내가 낭송하려고 목을 가다듬고 있는데, 벌써 형채가 일어서서 낭송해 버린다. 아마도 동반시를 준비하면서 읽어보고는 시의 내용에 너무나 심취해 꼭 낭송하고 싶었나 보다. 막걸리 한 잔과 먹을거리로 입맛을 다시고서 동반시를 내가 다시 한 번 낭송하려 했는데, 하느님도 무심하게 비가 한 두 방울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허겁지겁 먹던 음식물과 돗자리를 정리하여 배낭 속에 집어넣고 하산을 서둘렀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바람도 강하여 비가 옆에서 내린다. 천옥이를 앞세워 정신없이 앞만 보고 약 10여분을 이동하니 돌무더기가 조성된 자그마한 봉우리가 있었는데, 이곳이 견우봉이라고 한다. 직녀봉과 견우봉, 옛날에 무슨 깊은 사연이 있으리라. 우린 잠시 인증사진만 담고서 계속 하산한다. 길가에 나리꽃(털중나리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 우릴 반긴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보이는 조망이 아름다울 텐데 멋진 경관을 볼 수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두 갈래 길에서 앞장서 가던 천옥이가 보이질 않는다. 아랫길을 선택하여 가면서 천옥이에게 전화를 해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빗물에 젖은 가파른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니 캄캄할 정도로 보이지 않던 것이 구름이 걷히면서 봉안대교와 양수리, 팔당호의 전경이 희미하게 보인다. 두 갈래 길에서 윗길로 갔었던 천옥이는 승원봉에 갔다 온 모양이다. 좋은 시('더딘 사랑'/ 이정록)가 이정표에 걸려 있어서 음미하고 사진으로 촬영도 해왔단다.

 

몇 년 전 운길산 산행 때에 운길산 정상에서 새재고개로 가면서 이정표마다 목판에 새겨서 걸려 있던 사랑의 시('더딘 사랑'), -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 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 - 달이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눈짓 한 번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이다. 감는데 보름, 뜨는데 보름이나 걸렸단다. 사랑이란 이렇게 더디게 오고, 더디게 가는 것이 것일까? 그래서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도 있고, 사랑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닌가 보다. 이정록 시인은 교직에 있으면서 많은 시를 발표했고, 대표적인 시집으로 ‘의자’가 있는데, 이 시는 우리 시산회에서 동반시로 선정한 시이기도 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이다음에 개인적으로 다시 한 번 와 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산 아래의 멋진 전경은 구름 속에 묻히고 눈앞이 좌우를 구분키 어려울 정도로 캄캄해진다. 운무 속으로 사라져 버린 전망 좋은 곳을 뒤로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곧장 내려서니 공원묘지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안내판에 기재된 '능내리 천주교공동묘원'이다.

 

가파른 산록에 묘지를 조성, 두물머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좋은 곳에 자그마한 비석에다 김해김씨 베드로, 전주이씨 안드레아, 어떤 망자는 생전에 큰 벼슬을 하였던지, 아님 후손들이 갑부인지는 몰라도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누군가가 오늘이 바로‘육이오’날이라 한다. 비가 와서 정신없이 내려오다 보니 묵념도 제대로 못 드렸나보다. 우리들이 육이오 당시에 태어났기에 벌써 60주년이 지났나 보다. 묘지 앞을 지나면서 마음속으로 육이오 참전용사들과 무덤도 없이 산화하신 영령들의 넋을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포장길 옆 무덤가에 피어있는 하얀 망초꽃들이 빗물에 젖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인다. 우린 약 10여분을 더 내려와서야 뒤풀이 장소인 봉안대교 아래 조안면 능내리('시골밥상')에 도착하였다. 남양주의 유명한 맛집인 이곳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막걸리 한 잔과 보리비빔밥으로 뒤풀이를 하고, 후식으로 3가지(녹차맛, 커피맛, 우유맛) 팥빙수도 시원하게 먹었다. 뒤풀이 경비는 당초 공지한 대로 천옥이가 즐겁게 쏘았다(천옥이! 감사히 잘 먹었네).

 

뒤풀이 때 협의된 다음 산행(7월 둘째 주 일요일)은 안양의 수리산으로 결정하고, 집결지는 집행부에서 추후 통보하기로 하였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한천옥 산우가 중국 연대 한인학교로 2년간(8월20일 출발 예정) 파견을 나갈 예정이라 한다. 외국에 머무는 동안 한천옥 산우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해 본다. 오늘 비를 맞으며, 운무 속에서 경황없는 산행이었지만, 좋은 산우들과 안전한 산행을 하여 즐거웠고 산행 중에 승원봉 아래 이정표에 걸려있는 정약용 선생의 시 한 편이 있어서 이를 첨가하면서 산행기를 맺는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산행 때에 보세나.

 

가을날 고향생각/ 정약용

우리 집 동녘에 있는 물과 구름 마을인데

가만히 생각하니 가을이면 즐거운 일 많았겠지

 

밤 밭에 바람불면 붉은 알밤 떨어지고

어촌에 달이 뜰 때 자주빛 게맛 향긋했지

 

마을길 잠시 걸어도 무두가 시(詩)의 소재

돈 들이지 않아도 주안상은 있다네

 

객지생활 여러 해에 돌아가지 못하니

고향 편지 볼 때마다 남몰래 마음 다지네

 

< 동반시 >

좋은 일들/ 심보선

오늘 내가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을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 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 성남에서 김종화 씀. -

 

3.산행지

이번 산행은 안양 수리산에 오른다. 이경식 회장님이 공군 장교로 근무하던 산이다. 높지 않고 편하게 오를 수 있으며 삼림욕장이 있으니 많이 참석해주기 바란다. 시산회에서 오른 적이 있어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산이고 장마철이라 높지 않은 근교의 산을 선택했다.

 

산행 예고(필독)

7월의 두 번째 산행은 7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일박 이일 코스이므로 박형채 총장이 미리 공지해주기를 원하여 코스 설명을 하니 숙박과 교통편 등 준비를 위하여 7월 10일까지 반드시 참석 여부를 전달해주기 바란다. 그때까지 의사표시가 없으면 불참하는 것으로 간주하니 유의하기 바란다. 첫 날은 전북 고창의 선운산과 선운사(젊은 시절, 도움쇠가 참당암에서 공부를 했으며 서정주 시비가 있고 풍천장어와 복분자술로 유명한 곳), 세계 최대의 고인돌 공원, 한국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3대 읍성(낙안읍성과 해미읍성 포함) 중 하나인 고창읍성(모양성)을 들르고 임용복 수석이 은퇴 후에 살려고 오래 전부터 마련해둔 고창의 별장에서 하루를 묵는다. 저녁에 찬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날아다니는 촌닭 백숙을 먹으며 동반시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을 읊는다. 아니면 ‘벗은 설움에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고 시작하는 김소월 시인의 ‘님과 벗’을 낭송할까? 그날의 분위기에 맞을 시라는 생각이 올린다.

 

님과 벗/소월 김정식

 

벗은 설움에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 꽃 피어 향기로운 때를.

고초(苦草)의 붉은 열매 익어 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라.

 

비가 거친 뒤 진창에 고인

흙물에 비친 푸른 하늘과

그 푸른 하늘에 떠가는 하이얀

구름을 볼 줄 알면 그대를 만나리라 하였다.

 

백마디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로 줄이며

마지막 한마디 말마저

말없이 전할 줄 알면 그대를 만나리라 하였다.

 

멀리서도 오래오래 사랑할 줄 알고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쉽게 절망하지 않으며 먼 곳을 바라볼 줄 알면

그대를 만나리라 하였다.

 

슬퍼하고 기뻐하는 우리의 마음의 신비를 믿고

그 신비를 빚은 신비 절대도록 차이 없는

신의 뜻을 깨달으면

비로소 그대를 만나리라 하였다.

 

아름다운이여!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아름드리 단풍나무 군락이 있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단풍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된 공원을 들르고, 국내에서 편백나무가 가장 많은 장성 축령산 휴양림에서 피톤치드를 흠뻑 마시고 오는 일정이다. 들르는 곳이 많아 숙박을 해야 하므로 버스 이용비는 비싸 승용차를 이용하려 하니 부득이 7월 10일에 마감한다. 늦게 통보하면 차편이 없어 난감함을 겪게 된다. 임 수석의 별장이 여름 한철 뿐 아니라 봄, 가을과 겨울에도 인기가 많아 세 달 전에 예약을 해도 밀리는 곳이므로 간다고 했다가 가지 않아도 곤란하다. 도움쇠도 내 고향 영광과 붙어 있어 은퇴 후에 가고 싶어 하는 곳이며 임 수석도 같이 가자고 한다. 임 수석이 보내온 일정과 코스니 참고하라. 나의 백 마디 설명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나 이는 천 마디 웅변보다 낫다.

 

7/23 : 고창 행- 미당시문학관 - 점심(풍천장어) - 선운사 산행 - 고인돌유적지 - 고창읍성 - 별장(얼음골산장)에서 저녁식사( 날아다니는 촌닭+ 기타) - 여흥

7/24 : 문수사(천연기념물 단풍나무) - 장성 축령산편백나무숲 - 점심(정읍산외마을 쇠고기) - 서울 행

 

4.동반시

동반시를 고를 때 중복을 피하기 위해 자료를 입력해두는데 그간 밀린 자료를 정리하다가 명시 중의 명시라는 그 유명한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 빠져 있음을 알게 되어 놀랐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시가 길어 종이 한 장에 들어가기 곤란하여 미뤘기 때문이다. 이번에 동반하려다 접시꽃이 피는 7월 중복에 고창 선운산을 오르고 임 수석의 별장에서 촌닭 백숙을 뜯으며 읊으면 좋을 것 같아 그때 동반하기로 하고 다른 시를 동반한다. 마침 장마철이고 비가 많이 내린 지난 일요일,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예빈산에 오르고 하산 중, 운무가 바람결을 따라 춤을 추는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곳에서 갑자기 생각난 시다. 아! 사람과 나무 뿐 아니라 바람도 비에 젖는다는 상념에 젖어 마음은 어느덧, 숨결이 긴 하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랐다. 수종사에서 내려다보는 두물머리보다 더 좋은 풍경을 지닌 곳이 거기 있었다.

 

동반시는 유난히 춥고 외로워서 더욱 길었던 지난겨울, 집에서 북풍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도봉산 탐방지원센터에서 내려 나 홀로 도봉산에 오를 때 동반한 시다. 보문능선으로 올라 고인돌 바위에서 땅콩을 꺼내면 박새, 동고비, 곤줄박이 등 새들이 친구가 된다. 우이암을 비껴서 도봉주능선을 따라 오르다 송추 쪽에서 불어오는 북풍 된바람이 통과하는 칼바위와 병풍바위 사이의 양지바른 곳에서 두부김치에 땅콩과 육포를 안주로 막걸리 한 잔에 동반시 한 편이면 행복해졌다. 나무도, 바람도, 비도, 자괴도, 꽃과 꽃잎도, 특히 사랑도, 어둠도, 상처도 흐르지 않는 것은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지독한 고통도 그렇게 지나가더라.

 

나무가 비에 젖는 날/지연희

 

나무가 비에 젖는 날은

바람도 비에 젖는다

 

가지를 흔들며

날선 자괴에 빠져 등줄기에

채찍을 드는 나무 곁에서

바람은 울기만 한다

 

나무가

가지마다 꽃을 피워 빛으로 일어서던 날

어둠은 깊은 그림자로 끝없는 아픔을

암담한 내일 위에 걸어 놓고

 

꽃잎을 꺾기 시작했다

뚝뚝 떨어지는 꽃잎

사랑이 강물 위에 떨어졌다

 

끝내 빛은 어둠의 뒷골목에 누워

전신이 부셔져 자취도 없어지고

작은 열매도 세우지 못한 가지는

옹이진 상처를 안고

겨울 뜰에 나와 섰다

 

빈 가지의

나무가 몸부림치며 젖고 있다

떨어진 꽃잎이 저만치 흐른다

 

주르륵

시간의 끝으로 흘러가는 꽃잎

바람이 나무의 집 밖에서 운다.

 

2011년 7월 7일 새벽에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