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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설봉산과 온천, 이천 쌀밥(詩山會 제172회 산행)

설봉산과 온천, 이천 쌀밥(詩山會 제172회 산행)

산 : 설봉산(394미터)

코스 : 설봉공원-정상(하산은 그곳에서 결정)

소요시간 : 2시간 반

일시 : 2011년 11월 13일 10시

만나는 곳 : 전철 2호선 동서울 터미날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쌀밥집에서 뒤풀이)

연락 : 박형채(011-250-5382)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떨어진 꽃 하나를 줍다    - 조창환(1945~)

 

떨어진 꽃 하나를 주워 들여다본다

밟히지 않은 꽃잎 몇 개는 나긋나긋하다

꽃잎 하나를 따서 가만히 비벼보면

병아리 심장 같은 것이 팔딱팔딱 숨쉬는

소리 따뜻하고, 손가락 끄트머리가

아득하다 안개 속의 섬처럼, 혹은

호수에 잠긴 절 그림자처럼

떨어진 꽃 하나를 주워 들여다보는

아침 뜨락에 햇빛 가득하고

어디서 만년설 무너지는 소리

울린다 가을 잎들이

백지 같은 바람 속에서 마구 흔들리고

벌레들이 소스라친다

 

낙화가 개화보다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 동백나무다. 동백 꽃 낙화는 고요의 허공을 가르며 벼락처럼 내리치는 찬란한 파국이다. 노란 꽃술을 보듬고 무너앉는 동백 꽃송이의 추락은 숨막힐 듯 황홀하다. 숨 죽이고 동백 숲 안에 들어서서 그의 낙화에 귀 기울이면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다. 옴쭉달싹 못하는 심장 속으로 생명의 박동이 파고 든다. 꽃과 흙이, 사람과 나무가 하나 되는 찰나다. 동백 꽃 빨갛게 피워 올릴 겨울이 다가온다. 다시 이 땅에 봄 오면 떨어진 동백 꽃 송이 하나 주워 들고 병아리 심장처럼 팔딱이는 생명의 박동을 들어야겠다. 가을 비 찬 바람에 동백 꽃봉오리가 꼬물꼬물 부풀어 오른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늦가을에 어김 없이 찬비가 내렸다. 찬비가 내릴 때는 찬바람도 분다. 잎이 진다고, 꽃이 진다고 바람과 비를 탓하랴. 들국화라 불리는 구절초 꽃이 질 때를 보라. 꽃잎은 본래의 색깔을 잃어가지만 서로 의지하며 흩어지지 않으므로 함께 의기양양하다. 따뜻한 봄은 기어이 올 것이니 잎은 피어나고 가을이 오면 변함없이 꽃잎을 피우리라. 길고 지루한 겨울을 피할 길이 없다면 차라리 추운 겨울을 즐겨라.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지만 잃는 것이 있을 때는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잃지 않도록 항상 대비하고 준비하라. 내가 자주 즐겨 쓰는 말 중에 하나 ‘세라비(cest sa vie)’. 그것이 인생이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171회 도봉산 산행기/김종화

산행일/집결지 : 2011. 10. 30(일)/ 회룡역(10시)

산행 소요시간 : 5시간 50분 (10:30 ~ 16:20)

산행코스 : 회룡역-회룡계곡-회룡사-회룡4거리-649봉-포대능선-망월사-원도봉계곡

동참자 : 5명 (김정남, 김종화, 이경식, 이재웅, 임삼환)

동반시 : 슬프다고만 말하지 말자/ 이기철

뒤풀이 : 추어전골 및 추어튀김에 막걸리 / 선비골추어탕(도봉산 입구 근처)

 

산행하기에 좋은 청명한 가을 날씨이다. 어제 비가 조금 내리더니 안개도 없고 시계가 아주 맑아 먼 산까지 볼 수 있어 기분이 상쾌하다.

 

아침 7시 예배를 보고 배낭을 챙긴 후 집을 나서며 시계를 본다. 벌써 8시40분이다. 매달 일요일 시산회 산행 때마다 북한산이나 도봉산 등 강북에 있는 산을 산행할 때에는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산우들께 죄송하기 그지없다. 이 회장님과 박 총장님께 조금 늦을 것 같으니 먼저 출발하라고 문자로 연락을 한 후 전철을 탑승했다.

 

8호선 천호역, 5호선 군자역과 7호선 도봉산역에서 다시 1호선으로 환승하였다. 수락산, 도봉산역이 가까워지자 전철 승객들의 대부분이 등산객들이다. 약 10여분 늦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도봉산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면서 20여분을 기다려도 전철이 오지를 않아 집결지인 회룡역에는 10시30분이 다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날씨도 좋고,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오늘은 많은 산우들이 참석하겠지? 하고 멀리 1번 출구 쪽을 바라보니 낯익은 친구들 몇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4명밖에 없다.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오랜만에 참석한 이재웅 친구는 내가 늦게 오는 바람에 기다리다 지쳐서 10명은 먼저 출발했단다. 순진한 나는 처음엔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는데, 마트에서 막걸리를 보충할 때에 참석인원이 총 5명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2년 전, 사패산 산행 때에도 참석인원이 5명이었는데, 그 날은 비가 왔기에 그렇다치고, 오늘은 날씨도 좋고 일요일이지 않는가? 아쉬운 심정이나 단출한 인원이라 좋은 점도 있다.

 

들머리는 재작년 이맘때 시산회 사패산 산행과 작년 8월에 이종오 친구와 함께 올랐던 길이기에 낯이 익다. 도로변에 의정부시에서 지정한 420년 된 보호수 회화나무가 산객들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회룡계곡으로 들어서자 도봉산 산행코스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잠시 오늘 가야 할 등산코스를 살펴보고 다시 계곡길을 따라 오른다.

 

산 계곡에는 나뭇잎에 단풍이 곱게 물드는 시기는 이미 지나서 낙엽이 되어 지고 있다. 단풍철은 지났지만 늦은 가을을 만끽하며 잠시나마 뇌에 휴식을 주는 시간을 가져 보자. 천천히 걸으면서 멀리 산마루를 쳐다본다. 계곡에 소슬바람이 일자 낙엽이 우수수 흩날린다.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니 어쩐지 마음이 휑하다. 이럴 때, 중년이 지난 우리들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바닷가나 깊은 산골 등 한적한 곳에서 한 보름간 휴식을 취하면서 감성뇌를 100% 채워 줄 재미나는 일이나 즐길거리가 뭐 없을까? 호기심 많은 사춘기 소년 같은 상념에 괜히 빠져 본다.

 

이제 우리나이도 예순에 달하였으니 쇠락해 가는 육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고, 인생의 정점에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정서적인 허탈감을 추슬러야 한다. 무엇보다 퇴직 후 앞으로 20~30년은 족히 남아 있는 후반부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한 번쯤 우리들의 삶을 조망하고 인생 제2막을 준비하는 삶의 의지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잠시 회룡약수터에서 목을 적시고 오르려 했으나 가물어서 물이 나오질 않는단다. 회룡사로 올라가는 길에‘보루길’입구가 있고, 조금 더 오르자 회룡사가 보인다. 정남이는 목이 타는지 회룡사에 가서 목을 축이자고 한다. 하지만, 절에서도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회룡사는 신라 신문왕 1년(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원래의 이름은 법성사였다 한다.

이 절은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는 사찰로 고려말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이곳에서 3년간 무학대사와 함께 수행을 하며 경륜을 폈다고 한다.

 

그후 이성계가 이곳으로 무학스님을 찾아오게 되었는데, 임금이 되어서 돌아왔다고 하여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회룡(回龍)이라 하고, 법성사 대신 회룡사로 고쳤다고 한다. 오래된 고찰이라고는 하나 지금은 규모가 크지 않아 아담한 모습으로 한수 이북의 유일한 비구니선방을 갖춘 도량이라고 한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절 입구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샛노란 은행잎에서 맡아지는 가을향기, 회룡사에 찾아 온 등산객들의 옷차림이 파란 하늘과 빨간 단풍나뭇잎, 노란 은행잎이 함께 어우러져서 묘한 설렘을 느끼게 한다. 자연의 색채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무다리가 설치되어 있는 회룡계곡 중간쯤에서 잠시 쉬어 가잔다. 등산로 옆에 5명이 앉을 수 있는 적당한 자리를 잡았다.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이재웅 전 회장님 왈, 오늘 산행에 몇 명이나 참석할 것인지를 어제 박형채 총장님께 물었더니 15명쯤은 될 것이라고 했단다. 해서 재웅 친구는 15명이 여유 있게 먹기 위해 가래떡 40개(8팩 x 5개)를 가져 왔다며 내어 놓는다. 너무 무겁다고 1팩씩 나누어 줄 테니 집에 가져가 마나님과 함께 먹으라고 한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있는 가래떡을 달콤한 조청에 찍어 먹는 맛은 마치 어렸을 적 명절 때 먹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막걸리 2병도 순식간에 비우고서 다시 낙엽 쌓인 계곡을 오른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 능선의 회룡4거리에 도착하였다. 잠시 쉬면서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협의하였다. 이곳에서 곧장 직진하여 내려가면 송추 방향이고, 우측으로 오르면 사패산, 좌측으로 오르면 포대능선으로 가는 길이다. 송추방향과 사패산은 이미 가 봤던 길이고, 포대능선 쪽은 우리 시산회에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에 포대능선 쪽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참석인원이 적어서 의견 통합도 바로 결정된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기를 4-5번 하고나니 전망이 탁 트인 암반봉우리가 있다. 표지석은 없으나 이곳이‘649봉’인 모양이다. 멀리 앞쪽에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이고, 발아래에는 우리가 올라왔던 회룡계곡과 우측에 원도봉계곡도 보인다.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과 선인봉, 만장봉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있는 듯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가 지났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서 등산로 아래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풀었다. 이 회장님의 큼지막한 두부와 김치, 임삼환 산우의 삶은 돼지꼬리 20개, 김정남 산우의 큰 생굴 3봉지, 그리고 한과, 가래떡, 김밥과 막걸리 등이 차려지고 인원은 몇 명 되지 않는데 너무 푸짐하다. 안주가 푸짐하고 좋으니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 맛도 달짝지근하다. 다른 때와 달리 막걸리도 1인당 한 병꼴을 더 가지고 왔는데도 남겨 놓지 않는다. 아직 먹산회의 전통은 빛나게 이어지고 있었다.

 

배부르게 실컷 먹고도 아직 안주는 남아 있다. 하지만, 가지고 온 음식을 다 먹기는 힘들 것 같아 자리를 정리하고 오늘의 동반시(이기철 시인/‘슬프다고만 말하지 말자’)는 내가 산행기를 쓰기로 하고 오래간 만에 내가 읊었다. 당초 정남친구가 산행후기를 쓰기로 되어있었는데, 좋은 시를 한 번 읊고 싶은 욕심이 더 앞섰기에 산행후기를 내가 쓰기로 하였다.

 

슬프다고만 말하지 말자/ 이기철

 

저렇게 푸른 잎들이 날빛을 짜는 동안은

우리 슬프다고만 말하지 말자

저녁이면 수정 이슬이 세상을 적시고

밤이면 유리 별들이 하늘을 반짝이고 있는 동안은,

내 아는 사람들 가까운 곳에서

펄럭이는 하루를 씻어 널어놓고

아직 내 만나지 못한 사람들

먼 곳에서 그날의 가장 아름다운 꿈을 엮고 있는 동안은,

바람이 먼 곳에서 불어와 머리카락을 만지고

햇빛이 순금의 깁으로 들판을 어루만지는 동안은,

우리들 삶의 근심이 결코 세상의 저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밤새 꾸던 꿈 하늘에 닿지 못하면 어떠랴

하루의 계단을 쌓으며

일생이라는 건축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

우리 슬프다고만 말하지 말자

그 아름답고 견고한 마음들 눈 감아도 보이는 동안은

그들 숨소리 내일을 여는 빗장 소리로

귓가에 들리는 동안은

 

이 시는 이기철 시인이‘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30여 년 동안 자기성찰과 참회를 통해 삶의 진정성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을 시화하여 그의 열한 번째 시집인‘가장 따뜻한 책’제4부‘풍경의 안과 밖’에 실려져 있다.

 

자연과 부드럽고도 견고한 상상력이 교차하며 직조해 내는 그의 작품들은 우선 한없이 따뜻하다. 소유하거나 욕망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아름다운 생명들과 조화되는 삶을 지향하는 시인. 이와 같은 지향점을 닮은 그의 견고한 언어는 고단한 세상살이에 잊고 지내기 일쑤인 희망과 사랑과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시를 낭송하는 소리를 듣고 곁에서 간식을 먹고 잠시 쉬고 있던 50~60대로 보이는 남녀 세 사람이 우리에게 한 마디씩 거든다. 산에 올라와 시를 읊는 낭만이 있는 멋있는 분들이란다. 배도 부르고 오늘은 뒤풀이를 생략하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정남인 벌써 뒤풀이 장소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도봉산 가까이에 살고 있으니 골목길까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색 있고 맛있는 음식집을 모를 턱이 있겠는가. 가을철이고 하니 오늘은 추어탕으로 뒤풀이를 하잔다.

 

당초에는 포대능선을 따라 선인봉이나 정상인 자운봉까지 가보기로 계획하였으나 먹고 마셨으니 내려간다는 시산회의 전통과 선인봉이나 자운봉까지 가서 도봉산역으로 하산하려면 소요거리가 만만치 않다. 또한 포대봉과 선인봉 구간을 이어주는 Y협곡은 온몸으로 오르내려야 하며 일방통행구역이라 안전한 산행을 위하여 망월사 쪽으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15시경, 자리를 정리한 후 포대능선 제3초소 부근 아래에서 망월사 쪽으로 내려섰다.

 

망월사에서 잠시 쉬면서 뒤편에 아름다운 도봉산의 주봉들(자운봉, 선인봉, 만장봉)과 주변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촬영하였다. 대웅전 종무소 앞에는 불당만한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방문객들이 항상 마시고도 남을 만큼의 맑은 석간수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시원한 석간수로 목을 축인 후 하산을 서둘렀다. 회룡계곡과 마찬가지로 이곳 원도봉계곡에서도 올 가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대부분의 나뭇잎들이 단풍철이 지나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벌써 10월 마지막 주이고 설악산에는 지난주에 첫 눈이 내렸다고 하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닐 텔데 조급해 지는 마음은 나이가 들은 탓일까?

 

망월사탐방지원센터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니 16시가 다 되었다. 이곳에 오니 내가 시산회에 가입하여 처음으로 산행에 동참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약 5년 전, 시산회 제50회 도봉산(원도봉계곡) 산행 때의 일이다. 그날은 전날 밤 함박눈이 내려 무릎까지 쌓여서 입산통제를 하는 바람에 당초 계획한 망월사 쪽으로 못 오르고 다락능선으로 가다가 결국엔 못 가고 도중에 내려왔었던 일, 나 원장이 고향 영산포에서 홍어를 공수해 와 맛있게 먹었던 일, 하산 후 의정부 부대찌개집(보영식당)에서 그 해의 납회를 가졌던 일 등등이 주마등처럼 생각난다.

뒤풀이 장소인‘선비골추어탕’집은 도봉산 입구 부근이란다. 그곳을 찾아가는데 두 팀으로 나눠지는 바람에 몇 번을 연락한 후에야 서로 만날 수 있었다. 추어탕집은 유명한 식당인지 편히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안쪽 자리에는 벌써 30여명의 산악회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별 수 없이 바깥쪽의 식탁에 자리를 잡은 후 통추어전골 등 음식을 주문했다.

 

추어(鰍魚)는 우리말로 미꾸라지이다. 이 미꾸라지를 이용하여 탕으로 끓인 추어탕은 여름 보양식으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가을 음식이다. 추어의 추(鰍)자는 물고기 어(魚)와 가을 추(秋)의 합성어로써 가을 물고기를 뜻하니 추어탕은 가을 음식인 셈이다. 특히 가을 미꾸라지는 겨우내 동면을 하기 위해 많은 영양분을 저장하므로 통통하게 살이 올라 제 맛이 난다.

 

예부터 추어탕은 서민들의 보양식이었다. 농촌에서는 여름이 지나면 논에 물을 빼고 논 둘레에 도랑을 파 통통하게 살이 오른 미꾸라지들을 잡아 국을 끓였다. 서민들의 음식이었던 탓인지, 추어탕이 옛 기록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미꾸라지는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하며 양사(陽事)에 좋아 양기가 부족할 때 끓여먹는다고 적혀 있다. 동의보감 역시‘추어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속을 따듯하게 하여 원기를 돋우고, 비위를 보하며 설사를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였다. 정력에 좋다고 해서인지 옛날 양반집에서는 은밀하게 야식으로 즐겼다고 한다.

 

또한, 미꾸라지는 비타민 A, 비타민 D, 칼슘 등을 포함하고 있어서 야맹증이나 골다공증, 어린아이들의 발육에도 좋다. 특히 음(陰)체질에게 좋아서 소음인에게 추천하는 음식이다. 이런 풍부한 영양소들이 뇌의 회전을 원활하게 만들어 수험생에게도 그만인 음식이다.

 

추어탕이 지금과 같이 대중화되어 농민이나 도시의 서민층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사랑하는 음식이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이다. 미꾸라지를 통으로 끓이는지, 갈아서 끓이는지에 따라 지역적인 특색도 갈리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추어탕하면 남원시가 유명하다. 남원에서는 내가 현직에 있었을 때 미꾸라지를 시의 특산물로 개발하기 위해 내수면연구소와 MOU를 맺어 종묘생산과 양식개발을 추진하기도 하였었다.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쌀쌀한 가을에, 추어전골과 튀김으로 원기를 보충했으니 남부러울 것도 없다. 뒤풀이 때 협의된 차기 산행일(11월13일, 일요일)은 경기도 이천시 서쪽에 소재한‘설봉산(394 m)’으로 결정하고, 집결장소와 시간 등은 추후 집행부에서 연락하기로 하였다. 좋은 산우들과 좋은 안주에다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그라세~’를 몇 번씩 복창하고 나서야 뒤풀이를 마쳤다.

 

바쁘게 살다보면 하늘 한번 쳐다보기 힘들다. 사무실이나 집에서 컴퓨터와 함께 씨름하느라 한 주를 보냈다면 주말에는 산행이 아니라도 근교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을 텐데, 최근 들어 산행에 잘 나오지 않는 몇몇 산우들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산행에 참석하지 못하는 산우들의 근황은‘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하고 나름대로 위안을 해 보지만, 나이가 이젠 쉰세대를 지나 예순에 진입함에 따라 건강이 새삼 걱정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를 돌며 아름다운 도전을 행해 왔던‘뉴스킨코리아’홍보대사 故 박영석 대장의 영결식이 11월3일에 거행된다. 그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8,848 m)을 무산소 등정하였고, 희말라야 8천 m 급의 14좌를 세계 최단기간(8년2개월)만에 완등했으며, 또한 7대륙의 최고봉 완등, 3극점(남극점, 북극점, 에베레스트)을 완등함으로서 세계 최초의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영원한 산사나이! 그는 그토록 사랑했고 도전했던 산에서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산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그가 사랑한 히말라야의 품에서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하면서, 그의 자서전 머리글 일부가 내 머릿속에 깊게 남아 소개하는 걸로 산행후기를 맺는다.

 

“산은 내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40차례 이상 세계의 높은 산들을 오르는 동안 쉽고 안전한 등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목숨을 건 위험한 등반, 그 속에서 나는 삶을 생각하고 신의 존재와 인간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중략)... 권력, 명예, 사랑, 행복 등 각자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무엇이든 그것은 결국 죽음을 맞이해야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내게 그것은 산이었다.”-‘끝없는 도전’<그의 자서전(2003.11월)>의 머리말에서 -

 

성남에서 김종화 씀

 

3.산행지

이번 산행은 이천 설봉산이다. 낮으니 산보 삼아 간다는 말이 맞다. 내가 온천을 설계할 때 이천에는 미란다호텔온천과 설봉온천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때 맛있게 먹던 쌀밥집으로 신둔리에 있던 집이 유명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모주가 기본으로 나오고 동동주를 곁들인 점심은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많은 사람의 미각을 돋우고 호박잎을 삶아 찍어먹는 쌈장이 참으로 맛있었다.

 

온천을 설계할 때 처음에 500평을 계획했는데 6배가 늘어 3,000평을 지었으니 과욕이 빚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박현이라는 온천 도사가 있어 온천이란 처음에는 거적으로 작게 지어 잘 되면 조금씩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오래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론이어서 우리 온천의 규모가 커서는안 된다고 말렸는데 듣지 않았다. 이순의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에게는 누구나 멘토가 있어야 한다. 어려운 사람도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각 부문에 들어가면 나보다 나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이가 들고 속이 좁고 욕심이 많을수록 남의 진심어린 충고를 듣지 않는다. 어려운 시련을 많이 겪으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시련을 이겨냈다고 더 기고만장해지는 사람을 많이 봤다. 세상에 아쉬운 것이 없어 건방졌던 나는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 일을 그르친 경우가 많았으니 그것은 치기도 아니고 어리석은 위인이었다. 나이 들어 지금은 멘토를 찾으려 해도 쉽지 않다. 바로 충고를 해주지 못해 아쉽지만 죽은 사람도 좋다면 '피터 드러커'를 꼽고 싶다. 인격적으로는 공자가 완벽했다니 그분도 항상 마음에 두고 섬기면 좋겠다.

 

세상에 어려운 사람이 없었던 나도 가리지 않고 따끔하게 충고하는 두 딸만은 어렵다. 나도 어려운 사람이 있어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으니 이제라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찬바람이 불고 낙옆도 지니 깊어가는 가을에 온천에 들러 살면서 떼가 묻고 피곤해진 몸과 마음을 씻고 이천 쌀밥도 맛있게 먹고 오자.

11월은 미틈달이라 하며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바쁜 달이라는 뜻이다. 작년에는 설악산 흘림골과 오대산 소금강에서 가을맞이를 했는데 올해는 무등산에서 가을맞이를 했지만 한 번이어서 아쉽다. 바쁘고 아쉬운 마음을 온천에서 달래보자. 모두 모이자.

 

 

4.동반시

동반시를 김용우 총장이 동창회 카페에 올린 것을 퍼왔다. 요즈음 마음의 여유가 없어 시를 접하지 못해 총장의 도움을 자주 받는다. 김 총장은 베풀고 있으니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시공 무처공(無時供 無處供). 베푸는 일에 때와 장소를 가릴 것이 없다는 뜻이다. 無時禪 無處禪. 몸과 마음을 닦고 다스리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마라는 부처님 말씀이다.

 

길은 주인이 없다. 산길은 막힘이 없다. 막혔다면 산길이 아니다. 코리안 루트를 개척한다고 그 높고 춥고 위험한 곳을 올랐다. 내가,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느냐고.

 

박영석 대장의 비보를 접하고 가슴을 떨었다. 에효! 그만 가도 되는데 아까운 사람 하나 잃었다. 히말라야 그곳에도 푸른 달이 뜨고 그믐달은 이곳과 같을 것이다. 그의 영혼과 소원이 죽음을 만나 자유를 얻고 세찬 눈보라 속에 묻혔으니 그대 산이 되었다. 그대 잘 가라.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고이 잠드소서. 그대는 이미 산이 되었으니 더 오르지 않아도 된다. 아아! 산 같은 사람아. 박영석 대장을 추모하며 누가 읊은 것인가. 읊기 전에 같은 산(山)사람으로서 1분의 묵념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자.

푸른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 조용미

저물녘 산에 올랐다 그만 해를 떨어뜨렸다

해 진 여름 숲,

산발한 나뭇잎들이 내준 길 위로

파랗게 떠 있는 그믐달의 검은 장막이

숲을 뒤흔들었다

나무들은 목이 꺾어지는 줄도 모르고

나를 내려다보았고 새들은

나뭇가지 위에 항로처럼 얽힌 길들을

새까맣게 묻어놓고 잠들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어본 자는 알 수 있다

숲의 밖으로 난 길이 사람을 다시

산속으로 이끈다는 것을

숲은 팽팽하고, 달은 차오른다

푸른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사람 아닌 무엇이 속에 들어서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아아 비명을 지르게 된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둠 속에서 툭툭 소리를 내며

자꾸 끊어지고

 

2011년 11월 9일 깊어가는 가을밤에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