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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호명산과 호명호수(詩山會 제173회 산행)

호명산과 호명호수(詩山會 제173회 산행)

산 : 호명산

코스 : 청평역-호명산-호명호수-버스로 청평역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1년 11월 26일(토) 9시 40분(10시 출발이므로 시간 엄수)

만나는 곳 : 전철 7호선 상봉역 춘천행 승강장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송어회로 뒤풀이 예정. 종화 제공)

연락 : 박형채(011-250-5382)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時論)

 

탑돌이/이천종

 

감히 깨달음을 위한 일은 아니어도

높은 경지를 보았다는 사람도 없는데

마음 속에 부처님은

누가 보았을까

나를 위한 간절한 소망인데

아닌 척 사람을 잡기보다는

다른 이를 위한

기원을 담아둠이 솔직하지 아니한가

선문답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가까이에서 찾으면 될 일을

너무 멀리 돌고 있는것은 아닐까

날마다 돌아도 그 자리인데

그래도 오늘도 돈다

 

이천 설봉산에 올랐을 때 신원우 회장이 사진을 찍길래 무언가 쳐다봤더니 모진 비바람에 찢어지지 않게 천으로 적어논 시였다. 잠시 가뿐 숨을 고르기에 좋은 장소에 걸어두었으니 가히 시의 휴게소다.

 

수능이 됐던 취업이 됐던 시험날이 가까워오면 우리의 신들도 바빠진다. 수백만 명의 기도를 동시에 듣느라 바쁘셨을 떼니 잠시 쉬게 해드리자. 우리가 초월적 존재(이하 '신'이라 한다)인 신에게 말을 거는 것은 기도지만 신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오는 것은 정신분열증이라 한다. 불가에서는 신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접하게 되는 마(魔)가 낀다고 한다. 하여 멀쩡한 수도승이 무당이나 점장이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도를 할 때 반드시 스승이 필요하다.

 

우리 인간과 신 간의 의사전달 여부를 경험적이나 과학적, 실체적으로 입증하기는 100% 불가능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나 실제로 간절한 기도가 효력이 있을까? 간절한 마음이 신에게 전달되고, 신이 모종의 힘을 써서 원하는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은 공신적, 무조건적인 종교인 말고는 없을 것이다. 기도에 대한 인과적 효력에 대한 몇 가지 과학적 실험이 있지만 부정적인 결과가 대부분이라 한다. 대신 기도하는 사람이 자신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자신의 정신과 신체에 모종의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마인드 컨트롤, 또는 긍정적 사고의 힘이라 할 수 있다. 기도를 하는 부모의 진심에 감동해 자신의 행동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자식도 많은 것을 보면 그것이 정답인 것 같다.

 

기도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시작됐다. 결과는 부정적이지만 우리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위의 긍정적 효과 때문이다. 또,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사례들보다 그것을 입증하는 사례들을 재빠르게 취합하는 경향이 있다. 반례가 나와도 무시하고 확증사례만을 얼른 받아들이는 겨우가 많다는 뜻이다. 종교는 그것을 영리하게 이용했기 때문에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172회 이천 설봉산 산행기 /신원우

산행일/집결지 : 2011. 11. 13(일)/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10시)

산행 소요시간 : 4시간 (12:00 ~ 16:00)

산행코스 : 들머리에서 호암약수터> 설봉산성> 칼바위> 성화봉> 연자봉> 서희봉> 394m의 설봉산 정상> 부학루> 정운봉> 백운봉> 365계단> 화두재> 이천시립박물관> 조각공원> 설봉호를 끼고 내려오는 길

동참자 : 9명 (이경식, 박형채, 김정남, 이원무, 위윤환, 이재웅, 고갑무, 최광일, 신원우)

동반시 : 푸른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 조용미

뒤풀이 : 설봉온천 후 이천쌀밥정식(미란다호텔 근처):이원무 제공

 

동서울터미널에 산사나이들이 배낭을 둘러메고 모여 10시 20분 이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모처럼 만나서 무척 반갑고 모두 건강해 보여서 좋다. 이경식 회장, 박형채 사무총장, 김정남, 이원무, 위윤환, 이재웅, 고갑무, 최광일 산우와 나(신원우)를 포함하여 모두 9명이다. 온천+쌀밥+골프모자로 박 총장이 나름대로 많이 참석하라고 유혹 했지만 참석자가 단단위 숫자에 머물러 서운해 하는 기색이다. 암튼 오붓한 분위기다.

 

오늘 산행은 이천의 설봉산을 오르고, 온천욕을 즐긴 다음, 이천 쌀밥정식을 먹고 귀경하는 간단한 코스다. 글재주가 없는 본인이 오늘의 기자로 정해져서 염려 되는 바 없지 않으나 차례가 되었으니 마땅히 소임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잘될까 걱정이다.

 

정류장에 하차하여 설봉산 들머리인 설봉공원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마침 이달 22일까지 세계도자기 엑스포가 열리는 주말이라 사람들이 한가로이 삶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가끔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이 아이들과 함께 노니는 모습들은 평화로운 정경이다. 안내판의 산행코스를 확인했다. 오늘 코스는 전쟁기념비가 내려다보이는 들머리에서 호암약수터> 설봉산성> 칼바위> 성화봉> 연자봉> 서희봉> 394m의 설봉산 정상> 부학루> 정운봉> 백운봉> 365계단> 화두재> 이천시립박물관> 조각공원> 설봉호를 끼고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이천의 진산인 설봉산은 험준하지 않으나 8개의 봉우리를 비롯해 다양한 계곡과 능선이 있어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이천시민의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설봉공원이 산자락 아래에 있어 이천 시민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이천의 명산이다.

 

설봉산 꽃 이야기를 적어본다. 지금은 꽃이 져서 볼 수 없지만 설봉산에는 원추리꽃이 많다고 한다. 원추리는 풀밭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근심을 잊는다 해서 ‘망우초’라고도 하는데 영어로는 꽃이 하루만 핀다고 하여 ‘Daylily'라고 부른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져 수명이 짧다. 약이나 음식 재료로 쓰이는데 차로 마시면 단맛이 강하고 음식으로 먹으면 기운을 돋워준다고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를 없애고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50~100cm 높이로 자라며 꽃은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여 화려하다.

 

설봉산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나서, 내리막을 두고 자리를 잡는 시산회의 전통에 따라 정상 바로 아래 소나무숲에 자리를 잡고 오늘의 기자인 내가 동반시를 읊었다. 각자 배낭에서 꺼낸 막걸리와 안주로 목을 축인다. 바로 이 맛이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운 듯 힐끔힐끔 쳐다본다. 박형채 친구가 직접 재배하여 일주일 숙성 후 가져온 야콘이 맛나다. 정남이표 굴 맛이 꿀맛이다. 오늘은 단감을 싸온 사람이 세 사람이나 된다. 올해가 감 풍년인가? 요즘 경향이 술을 많이 안 먹는 분위기다. 고갑무 친구가 어부인께 만원주고 사온 국순당 막걸리는 남아서 정남이가 챙겼다. 떡과 과일과 막걸리로 배를 채우니 세상사 부러울 게 무어냐? 서둘러 하산이 시작되었다. 낙엽을 밟고 내려오는 하산 길은 가을의 마지막 끝머리를 즐기는 우리들의 추억으로 장식되었다.

 

설봉산에 오르면 설봉산성이 있다. 우리가 지나왔던 설봉산 7~8부 능선의 3만여 평 고원지대에 축조된 설봉산성은 보기 드믄 석성으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군사 활동과 지방통치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세기후반 백제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본성과 부성 2개로 이루어져 있다. 백제와 신라의 토기 조각이 다량 출토되었는데 발굴된 유물은 설봉공원에 있는 이천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하산 후 길을 물어 설봉온천장을 찾아왔다. 이천 시내 본정통을 통과하여 걷는 맛도 나쁘지 않다. 사람 사는 모습들을 기웃거리고 시장 골목도 정겹다. 온천장에서 노곤한 몸을 담그고 나니 아침부터 설치던 피로가 한방에 날라 간다.

이원무 산우가 지난번 둘째 아들 혼사를 잘 치렀다고 감사의 표시로 이천쌀밥집에서 쌀밥정식으로 한턱 쏘았다. 주인아주머니가 산에 다녀온 우리들을 생각하여 밥량을 넉넉하게 해주었다. 배려하는 마음이 고맙다. 반찬도 입에 맞는 훌륭한 식사였다. 산에서 먹다 남은 막걸리는 살짝 부족한 듯 넉넉했다. 주량이 좀 되는 정남이 윤환이는 좀 부족한 듯 했으나 그냥 넘어갔다.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시산회’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정말 휴머니티가 넘치는 좋은 모범적인 모임이다. 우선 구성원들이 좋다. 사람들이 면면히 산을 닮아 넉넉하다. 이천에서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를 뒤로하고 동서울 가는 버스에 올라 한숨 자고나니 동서울에 도착했다. 보람 있고 알찬 주말을 보냈다.

 

‘有求必應’이라고 중국의 도교 교리에 나와 있는 말이다. 성경에서 이르는 ‘두드려라 열릴 것이요’ 하고 상통하는 동양철학의 가르침이다. ‘구함이 있으면 반드시 응답한다’ 했지요. 시산회 산우들아! 항상 넉넉하게 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동반시: 푸른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 조용미

 

저물녘 산에 올랐다 그만 해를 떨어뜨렸다

해 진 여름 숲,

산발한 나뭇잎들이 내준 길 위로

파랗게 떠 있는 그믐달의 검은 장막이

숲을 뒤흔들었다

나무들은 목이 꺾어지는 줄도 모르고

나를 내려다보았고 새들은

나뭇가지 위에 항로처럼 얽힌 길들을

새까맣게 묻어놓고 잠들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어본 자는 알 수 있다

숲의 밖으로 난 길이 사람을 다시

산속으로 이끈다는 것을

숲은 팽팽하고, 달은 차오른다

푸른 달을 한 입 베어 물면

사람 아닌 무엇이 속에 들어서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아아 비명을 지르게 된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둠 속에서 툭툭 소리를 내며

자꾸 끊어지고

 

2011년 11월 15일 신원우 올림

 

3.산행지

이번 산행은 김종화 산우의 제안대로 호명산으로 정한다. 무의도에서 회를 먹자는 제안도 했는데 여의치 않았는지 호명산으로 정했다. 이번에는 호명호수까지 가는 코스로 하산하는 버스편도 알아봤다니 그 성의가 고맙다. 하산하여 송어회를 제공하겠다는 친구의 제안이니 많이 와서 함게 즐기면 더욱 고맙겠다는 친구의 마음이니 모두 응하자. 참석하는 인원이 많을수록 좋다는 따뜻한 마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답하자. 부처님은 비록 보시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감사하고 찬양한다면 보시와 다름 없다고 하셨으니 그분의 넓고 깊은 마음에 옷깃을 여민다.

 

이천 설봉산에서 내려와 뒤풀이로 이천 쌀밥을 먹을 때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지만 나는 시산회원들처럼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한정식이니 반찬이 부족하면 당연히 무한 리필이 가능한데도 아무도 더 시키는 산우가 없었다. 쌀이 좋다거나 밥맛이 좋다거나 덕담만 하면서 떨어진 반찬을 시키지 않고 남은 반찬에 밥을 맞추는 무심한(?) 행동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래! 한 번 모범생은 영원한 모범생이다. 이런 친구들과 평생을 가도 행복하겠다. 굳이 더 친구를 사귈 필요도 없겠다. 동창의 하객으로 참석하고 온 임 수석의 전언에 의하면 동창 중 어떤 친구의 자식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는데 참석한 동창이 다섯도 안 되니 쓸쓸한 결혼식으로 생각됐다 했다. 우리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최소한 시산회원 20명은 하객으로 참석한다.

 

지난 봄과 여름 사이 가족들은 이제 가장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조용하게 살아줄 것을 요구했다. 그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뻔히 알지만 독선적이고 위압적인 가장이었던 점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소원에 따라 평생을 어깨에 매고 살았던 생업을 내려 놓았더니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도 눈에 보인다. 보이지 않던 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책을 읽다가 내릴 역을 지나쳐서 전철의 종점에서 돌아와도 거리낄 것이 없다. 서울은 도서관으로 꽉찬 도시이니 곳곳이 내 서재고 서고다. 책을 빌려 읽으니 사서 읽을 때보다 꼼꼼히 읽고 메모도 충실하게 하게 되니 일석오조쯤 된다.

 

없던 시간이 모이기 시작했다. 요즈음 약속을 해도 내가 좋은 시간에 즉흥적으로 하는데 '상대방이 불만스러우면 말고' 식이다. 시쳇말로 번개팅이고 '아니면 말고'파가 됐다. 내가 마음을 조금 비워 아쉬운 것이 없으니 조금 행복한 사람이 되었고 내가 무엇을 해야 가족 모두가 행복할 것인지 장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선은 조금 이른 아침부터 집에서 나와 시작한 것이 박물관 순례였고 각종 전시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궁도 좋은 놀이터다. 그래도 가장 좋은 곳은 도서관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내가 신세를 많이 진 사람이 있어 지금은 반대로 그의 무보수 자문역을 해주는데 그의 사무실 근처에 도서관이 무려 네 곳이나 된다. 박물관, 미술관, 음악관, 영화관, 체육관, 도서관, 전시관, 고궁 등이 도처에 있고 전철이 가지 않는 곳이 없는 서울에 사는 것이 갑자기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가까운 거리도 차를 몰고 다녔는데 이제 운전을 하기도 싫고 전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어보니 먼 거리도 지루하지 않고 집보다 편해 집중이 잘 되는 이상한 체질이다.

 

평생을 장사꾼으로 살았으니 그것이 천직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더 즐겁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내가 방향을 잘못 잡고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버렸더니 얻어지는 것도 많다. 이제 온전히 나만 위하여 살아도 된다는 해방감도 들었다. 잠시 즐기다 다시 생업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우선은 주어진 이 해방감을 즐겨야겠다.

나이 들수록 좋은 것이 많다니 나이 든다고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방송에서 나온 것이니 가볍게 읽어보자.

1.모든 것은 결국 다 지나간다.

2.'그럴 수 있어?'가 '그럴 수 있지'로 변한다.

3.가족이 늘었다.

4.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

5.부부싸움이 줄어든다.

 

4.동반시

동반시다. '가을 농부', '사평역에서', '구절초시편' 등 동시에 좋은 시들이 눈에 들어와 시절과 계절을 감안하면서 경합한 중에 고른 시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첫눈이 내렸다. 미뤘던 성묘차 영광에 다녀오면서 정안휴게소에서 진눈깨비를 만났다. 아직 겨울준비를 못한 나는 마음이 바빠진다. 그러나 추운 겨울도 끌어안으면 오히려 따뜻하다 했다. 따뜻한 눈으로 보면 세상도 아름답다 했다.

 

반FTA 집회를 간 큰딸이 문자로 '집회 무사히 마침. 남자친구들과 사케 한잔하고 늦지 않게 들어갈 것이니 걱정 마삼'을 보내왔다. 에효! 이러다 결혼이나 할 런지 걱정이다. '몸조심하고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마라'고 답했다. 지인들이 나더러 몸은 우측에 있는데 머리는 좌측에 있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나 나름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산다. 가족도 부부가 있고 하늘을 높이 나는 새가 그렇듯이 세상도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세기의 세 악당 스탈린, 모택동, 히틀러 같은 자를 만나게 된다. 전두환과 박정희 같은 자도 같은 부류다.

이런 시와 시인이 있어 잠시나마 만족감과 행복을 느꼈다. 고갑무 산우의 따뜻한 제안대로 시 공부를 해볼까 한다. 산우들아, 시작한다고 다 이루어지면 재미없는 세상이라 했으니 내가 시인이 되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그러나 긍정적인 희망은 돈이 들지 않는 가장 효율적인 투자라 했으니 길고 어두운 겨울이 춥지 않으려면 실천해보겠다.

 

겨울의 춤 / 곽재구

 

첫눈이 오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손질해야겠다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먼지처럼 훌훌 털어 내고

삐걱이는 창틀 가장 자리에

기다림의 새 못을 쳐야겠다

무의미하게 드리워진 낡은 커튼을 걷어내고

영하의 칼바람에도 스러지지 않는

작은 호롱불 하나 밝혀두어야겠다

그리고 춤을 익혀야겠다

바람에 들판의 갈대들이 서걱이듯

새들의 목소리가 숲속에 흩날리듯

낙엽 아래 작은 시냇물이 노래하듯

차갑고도 빛나는 겨울의 춤을 익혀야겠다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끌어안으면 겨울은 오히려 따뜻한 것

한 칸 구들의 온기와 희망으로

식구들의 긴 겨울잠을 덥힐 수 있는 것

그러므로 채찍처럼 달려드는

겨울의 추억은 소중한 것

쓰리고 아프고 멍들고 얼얼한

겨울의 기다림은 아름다운 것

첫눈이 내리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열어젖혀야겠다

죽은 새소리 뒹구는 들판에서

새봄을 기다리는

초록빛 춤을 추어야겠다

 

2011년 11월 24일 새벽에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이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