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감기의 상관관계 / 도봉별곡
아침 9시
헤이즐럿 향이 풍기는 커피잔을 들고
창가에 앉았다
불암산佛巖山을 넘어온 해는 온도계를 바쁘게 운동시킨다
20.7도에서 23.7도로
지난 밤 을지로역 근처 식당 순천만에서 친구를 만났다
둘은 인사동 주막 해인亥寅의 단골이었다
친구의 호는 추몽秋夢 주막 주인의 호는 추전秋田 나는 추계秋溪
그는 불자이고 나는 비불자이다
불과 법은 좋으나 승에게 인사하기 싫고
재가불자 5계조차 지키기 싫어
비불자로 남아 있다
천도天道 시야是耶 비야非耶, 하늘의 도는 옳은가 틀린가
로 시작한 대화는
우리가 세상의 이치를 알았으니 더 살지 않아도 미련은 없다
로 끝난다
서로의 눈으로 대화한다
-왜 귀한 보리굴비를 사는가
-자네 고향이 영광이고 통증을 이겨내려면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해
-요즘 장어탕 먹으니 괜찮은데
-그래도 긴긴 겨울 나려면 잘 먹어둬야 해
-동면동물이 아닌데
-어허 참 먹어 둬
그가 코를 흘쩍거린다
-감기에 걸렸는가?
-자네는 감기에 걸린 것을 본 적이 없네
-감기에 걸릴 틈이 없었네
-겨울에도 현장을 꼬박 지키는 사람이었잖은가
-찬바람은 막걸리로 이겨내고
-......
-젊어서는 애들 먹여 살리느라
-원만큼 안정돼서는?
-욕심이 생겨서
-욕심을 채웠을 때는?
-욕심은 채워지는 법이 없다네 다만 배신이 뒤통수를 친다네
-지금도 그런가?
-자기 좋아하는 것을 하면 틈이 안 생기네 감기는 그 틈으로 들어온다네
-......
-감기 예방책은 집에서는 옷을 두껍게 입어 차갑게 살고 밖에서는 햇볕을 많이 쬐는 거라네
-......
밥값은 했다 지키는 것은 그의 몫
결론은 틈이었다
이제는 늙어 벌어지는 틈을 햇볕과
단맛이 없어서 좋은 커피의 향으로 채운다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