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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수락산 능선길(詩山會 제188회 산행)

수락산 능선길(詩山會 제188회 산행)

산 : 수락산(640 미터)

코스 : 수락산역 3번 출구-만남의 공원-능선-치마바위-코끼리바위-철모바위-정상-수락폭포-유제두 식당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2년 7월 1일(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7호선 수락산역 3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

연락 : 전작(010-9858-2858)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조오현(1932~)-신흥사 조실, 선사, 시인, 만해사상 선양가.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 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이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남기인 이사장이 좋아하는 스님 시인이다. 물론 위와 같은 선시도 지었지만 불교사상을 근저로 한 현대시도 많다. 불교 경전이나 스님들의 말 중에 가장 자주 나오는 문자는 공(空), 무(無), 유(有), 허(虛), 아(我)이 다섯 손가락을 꼽을 것이다. 그밖에 生, 死, 中이 다음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섯 글자의 의미를 알게 되면 불교의 반은 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수많은 승려들이 몸과 마음을 버리고 비우며 속세를 벗어나 수행하지만 깨달음의 근처에라도 가는 승려는 극히 소수에 해당하니 수행 자체가 쉽지 않은 고행이고 깨달음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니 그 어려운 것을 깨달아서 뭐하나? 어디에 쓸 것인가?

 

매일 도서관에 다니면서 느낀 것은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의 거의 모든 것이 거기에 있고, 내가 가진, 알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알게 해 준 곳이 거기다. 내가 돈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그 언저리를 돌고 있다면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니 지금 생각하면 다행스럽다. 이경식 산우가 보내준 메일 속에서 발견한 말 중에 ‘60살이 넘으면 더 벌려고 하지 마라, 더 필요한 사람이 갖도록 하는 것이 나이 먹은 자로서 돈이 한창 필요한 나이의 젊은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참된 도리다.’는 금언이 있었다. 돈이 필요 없는 자에게 돈은 독이 되기가 쉽다. 돈이 남아돌아서 베푸는 것은 참된 선행이 아닌 동정에 다름 아니다. 2009년에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의 뜻에 따라 30년 사업을 접고 돈 버는 것 말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싶어 신당동에 오피스텔을 구해 첫걸음을 디뎠지만,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라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100%의 창작이란 없다는 결론에 대하여, 공자의 ‘온고이지신’은 같은 맥락에서,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처의 사상도 힌두교의 윤회와 업을 근간으로 해서 발전한 것이다.

 

지난해는 주로 시와 소설을 읽었고 올해는 자본에 관한 책과 종교·철학에 관해 읽고 있다. 그중 부처의 사상에 대해 자주 읽는다. 읽으면서 부처 사상의 다양함에 놀라고, 학자들이 연구한 사상이 얼마나 많은지 놀란다. 수십 년을 쌓아온 나의 부처에 대한 지식이 지극히 단편적이거나 왜곡된 것임을 알게 된 것은 나로서는 큰 수확이다. 힌두교의 윤회와 업을 근간으로 한 부처 사상은 문자로 전해지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 왔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추론과 추정이 많다. 심지어 그의 출생과 사망연대조차 정확하지 않아 후대에 제자들과 학자들이 일단 그렇게 정하자고 한 것을 보아도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는 생각에 손을 든다.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같은 소위 4대 성인의 공통점은 ‘최고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발전이 없다는, 지극히 겸손한 마음에서 그들은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아직도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돈을 벌려고 버둥거리고 있다면 이렇게 좋은 경험을 어떻게 해 볼 것인가. 참으로 다행스럽고 하늘이 내게 이 길로 가라고 배려를 해줬다고 생각하고 감사해 한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187회 검단산 산행기(2012. 6. 16. 토. 맑음)/도봉별곡

참석 : 이원무, 한양기, 김정남, 박형채, 조문형, 김종화, 위윤환, 전작, 이경식(이상 9인의 시산인)

 

아침에 일어나니 4시다. 오랜 직업적인 습관으로 초저녁잠이 많다보니 저녁밥은 주로 두부 다이어트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두부 다이어트는 내 나름의 건강법인데 두부에 상추쌈이나 김쌈을 하고 반주로 막걸리 반병을 마신다. 두부를 너무 많이 먹으면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와 성생활 등에 지장이 있다는 학술적 발표는 있지만, 젊은 적에 급하고 과격했던 성격을 죽이고자 하는 마나님의 음모가 뒤에 몰래 도사리고 있는지, 나이가 먹어 힘도 빠지고 애들은 거의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들어오니 남편만을 위한 반찬을 요리하기 싫어서 그러는지 몰라도 두부는 항상 부엌의 냉장고에 있다.

 

공부를 한다고 밖에서 사는 큰딸이 회사에서 동료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어 이마트몰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해준 두부가 배달되어 온 것이 지난 월요일이다. 한과를 챙기고 두부를 싸달라고 했더니 썰어주기가 귀찮은지 맛없는 해남 묵은 김치와 함께 3개 분량의 한 봉지를 싸준다. 아직 간수가 들어있어 되게 무겁다. 백암산 백양사에 갔을 때 한과만 가져간 것이 걸렸는지 창동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러 막 삶은 제주산 문어를 사서 넣으니 두 개의 깔개 때문에 배낭이 찬다. 막걸리는 산우들이 가져올 것이므로 생략.

 

강변역에 도착하니 20분 전이다. 둘러보니 한양기 산우가 꽃단장을 하는지 뭔가 하고 있다. 요즘 이동 중에 전철에서 읽던 김성우 저 ‘선(禪)’이라는 책을 가져가서 의자에 앉아 읽는다. 10시가 가까워오자 전작 총장이 다가와서 반갑게 맞아준다. 모두 합류하니 8인의 산우들, 모두 반갑게 해후하고 돌싱 위윤환 산우는 산곡초등학교로 바로 온다고 한다. 차를 잘못 탔는지 버스는 노선을 구불구불 돌면서 모르는 길을 간다. 그래도 목적지까지는 가겠지. 11시가 되어 산곡초등학교에 도착하고 위윤환 산우도 곧 바로 도착한다. 막걸리를 점검하니 4병이다. 오르면서 안주가 많다는 핑계를 대고 가게에 들러 3병을 더 보충한다. 없으면 안 마시고 부족하면 덜 마시면 되고, 적을수록 더 맛있지만 내 가파른 성격 탓인지, 부족하면 불안해지는 불안증 탓인지, 그 때문에 풍족하게 채우느라 총장이 고생한다. 이해하시게.

 

입구에 반갑게 서있는 깨끗한 산행지도 앞에서 오늘의 코스를 설명하는데 팔당댐 쪽으로 넘어가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길이 희미하고 교통이 불편해서 귀가가 불편하다는 경험을 얘기해주니, 모두 수긍하고 날머리를 창우동으로 결정한다. 더운 날씨 탓인지 땀이 많은 조문형 산우가 오르면서, 전에 겨울에 오를 때는 쉽게 오른 것 같은데 코스가 바뀌었는지 어째 더 가파르고 어렵다고 푸념하지만, 코스가 바뀌더라도 높이는 똑 같으니 자신이 나이 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런 것을 괜히 코스 탓을 한다. 자세히 보니 없던 줄도 있고 계단이 새로 만들어진 것을 보니 시에서 변경한 것은 확실하다. 그들은 환경보존의 차원에서 그렇게 하지만 계단이 많아지면 내려올 때 무릎에도 좋지 않고 오를 때도 힘들어 지는 것은 확실하다. 오르면서 산우들과 주고받은 얘기 중에 사회의 각층을 상대로 40년을 상담해주면서 명성을 쌓아온 게리 채프만의 대화와 글쓰기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공감한다. 잠시 그의 얘기를 소개한다. ‘상대방과 주고받는 대화를 할 때 17초를 넘기지 말라. 17초를 넘기면 듣는 사람은 상대방이 하는 말을 끊고 끼어들거나 그것이 어려울 때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옆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 오랜 상담과 연구 및 조사과정에서 얻은 결론이라 했다. 17초면 우리말로 60~70단어가 된다. ‘여러 사람을 상대로 말을 할 때는 공통의 화제가 되지 않는 말은 삼가라’고 했다. 그런 경우에는 10초가 지나기 전에 위와 같은 행동을 한다고 했다. 글쓰기에 대하여는 예를 들면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만들어 글을 올릴 때 우리 200자 원고지 8장의 분량을 넘기지 마라‘고 했다. 글이 장황해지면 대충 읽고 넘어간다고 한다. 글쓰기나 말하기나 단순명료한 것이 좋으며 그럴수록 상대방은 그의 지적 수준에 대하여 기꺼이 합격점을 준다는 것이다. 내 글도 길고 장황함을 알지만 끝까지 잘 읽어주는 몇 사람이 있어 지금까지 고집 아닌 고집을 피우고 있다.

 

능선에 오르니 팔각정은 자취도 없고 약수터의 물은 말랐다. 하늘이 점점 더 이기적이 되어가는 인간을 고생시키려고 하는 것인데 어찌 말리나. 동학의 인내천 사상의 요체는 ‘사람이 하늘이고, 인심은 천심’이라 했다.

 

요즘은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오전에는 적적한 오피스텔에 있고 오후에는 신당동에 있는 중구청 구립도서관에 나온다.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에 나와 2층 종합자료실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서가에 가득 찬 책들은 모두 내 책이다. 이곳에는 없는 것이 없다. 이곳에는 우리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이 있고 가질 수 없는 돈이 있고 얻지 못하는 사랑이 있다. 어디 그것뿐이랴. 부처님도, 예수님도 공자도 맹자도 소크라테스도 노자도 장자도 있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분들과 노닐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오르지 못한 산과 시, 소설도 많아 내 지적 욕구에 도움이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곳에 있다. 아!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으니 마나님의 잔소리다.

 

세상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것은 돈도, 완장(권력)도, 사랑도 아니고 이들을 갖기 위한 ‘온갖 거짓’이 세상을 지배하고 움직이고 변하게 만든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잘 봐라, 세상을! 그의 통찰이 틀린가를! 세상의 인심은 메마르고 정치와 경제주체들은 온갖 탐욕과 위선, 거짓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는 것을, 물론 나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언젠가는 초월적인 존재가 세상사람들에게 벌을 내려 태양계에 속해 있는 지구가 현재는 태양을 중심으로 구심력과 원심력이 비슷해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지만 그 균형이 무너진다면 하늘이 무너지게 됨으로서 ‘기’ 씨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하여, 살되 조문형 산우처럼 즐겁게 살아야 한다. 결론은 역설적인데 그 거짓이 세상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숨이 턱에 차게 능선까지 오른 조 산우는 새로 생긴 약수터에 이르자, 물 한 모금 입에 물고는 그때부터 독 오른 독사처럼 사람이 돌변한다. 그때부터 발생한 잡지의 삽화같이 즐거운 에피소드는 내내 우리를 즐겁게 해 줬지만 점잖은 내가 산행기에 써줄 일은 아니다. 더구나 참석하지 않은 산우들을 위해서는 그 징벌로서 써주지 못하겠다. 궁금하면 조 산우에게 직접 물어보라. 무덥고 힘들었던 그날 나는 조 산우에게 이용만 당하고 말았다. 에이, 재미있는 사람.

 

약수를 한 모금 하고 약수터 주변 사람들과 날씨에 대한 근심의 말을 주고받은 후,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을 향해 편안한 능선길을 계속 전진. 검단산은 하남 창우동 에니메이션 고등학교 쪽을 들머리로 하고 넘어가면 코스가 길어 힘들지만 산곡초등학교에서 넘어 가면 약간 가파르지만 코스가 짧아 훨씬 쉽다.

 

정상에서 보니 내 고도계와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고기압인 맑은 날에는 고도계의 오차가 적으나 기압이 낮은 흐린 날에는 오차가 크다. 해발고도를 GPS로 재는 기계가 나왔다는데, 부정확한 것인지, 비싼 것인지 아직은 기압으로 재는 고도계가 대세다.

 

정상에서 인증샷 한 컷. 조금 지나서 너른 곳에 자리 잡고 점심보따리를 푼다. 박형채 회장님은 김 선생께서 바빴는지 오늘은 빈손으로 와서 미안하다 했지만, 회장님, 회장님, 우리들의 회장님! 우리 사이에 그런 말씀을, 그리고 지금까지 싸오신 것을 합하면 우리 모두의 것보다 많으니 평생 빈손으로 와도 괜찮소. 7월 4일에 회장님의 서예 작품 전시회에 오면 술 한잔 쏘신다 했지만 우리들의 아름다운 우정이 술 한잔을 바라고 가고 아니 가고 하겠나이까. 회장님의 멋드러진 작품을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갈 테요. 문어, 홍어무침, 두부김치, 양념두부, 오리훈제, 떡 등 근래의 음식 중 가장 화려하다.

 

먹고 나면 시낭송을 잊는다고 시낭송부터 하자는 전 총장의 말씀에 따라 이원무 산우 대신 산행기를 쓴 내가 오늘의 동반시 배한봉의 '꽃 속의 잎'을 큰소리로 부른다. 목소리가 안 좋으니 부족하거나 불리할 때는 소리의 크기로 기선제압 하자는 것이 나의 오래된 주장. 큰소리만큼 큰 박수로 화답해주니 기분이 좋아진다. 전 총장은 배가 불러 뒤풀이를 못할 것 같다면서 후반기 산행 계획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회의의 결과가 나왔다. 중국의 향산에 대하여 얘기가 나와 동창회 카페에 올렸더니 시산회 회원이 아닌 동창 중에 두 명이 더 온다고 하니 더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지만 그들도 잠정적인 예비 회원이네. 나는 가족들에게 얘기를 꺼냈다가 시쳇말로 본전도 못 찾고 온갖 수모(?)를 당했으니 내가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마나님에게 지은 죄를 언제나 갚을 런지. 나는 비행기를 타기가 싫고 마나님은 배타기를 싫어하니 비행기도 아니고 배도 아닌, 바다위를 5미터 정도 떠서 가는 위그선이 나와 울릉도나 가면 좋을 것인지 모르겠다.

 

분위기가 좋을 즈음에 지나가던 과객들이 물이 올라 완숙한 남자들의 냄새를 맡았던지, 홍어 냄새 혹은 오리 냄새를 맡았던지 기웃거린다. 조 산우가 후식으로 남겨놓은 한과를 내밀고 그들은 답례로 산에서는 귀한 막걸리 한 병을 내놓으며 권주가를 청하니 나는 다시 더 큰소리로 시낭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싼 사람인데 두 번이나 시 낭송을 하게 한다고 구시렁거렸더니 힐끗 쳐다보는 한 과객의 눈이 밉지 않다. 자! 먹었으니 내려가서 뒤풀이를 하자. 시산회 역사 중 아름다운 뒤풀이를 생략한 적이 없다는 이경식 전 회장의 강인한 주장에 아무도 저항하지 못한다. 눈을 높이 들어 위를 보니 하늘은 우리들의 마음만큼이나 푸르다. 가물어 먼지가 나는, 길고 지루한 하산길을 터벅거리고 내려와 바지를 털며 뒤를 보니 과객들이 멀리 보인다.

 

배가 부르니 시원한 맥주나 하자며 호프집을 찾았으나 없다. 콩국수집에 맥주 메뉴가 있어 들어가서 맥주와 막걸리로 뒤풀이를 하는데 이것은 완전히 조 산우의 독무대다. 조 산우! 나는 자네가 지난 검단 산행 때 한 일을 알고 있으니 어쩔 텐가? 내가 입은 무거우나 한 번 열면 태산을 움직인다네. 어쨌든 자네 덕분에 부담 없이 즐겁게 많이 웃었네.

 

소요시간을 보니 5시간 반이 흘렀다. 백암산 산행보다 더 걸렸다. 며칠 후의 188회 수락산 산행을 기다리며 오늘은 여기서 맺는다. 자! 모두 건강하세. 세상 천지에 이렇게 즐거운 모임이 어디 있겠는가.

 

3.산행지

이번 산행은 수락산이다. 자주 오른 산이니 특별하게 소개할 것은 없고 가장 길지만 쉽고 그늘이 많은 코스로 오르고, 내려올 때는 고흥의 장사며 세계 주니어 미들급 참피언을 지낸 유제두의 식당에서 뒤풀이를 하자는 이경식 전 회장의 뜻을 받들어 그 양반을 보고 싶은 사람은 빠지지 말고 오시라. 그 양반이 권투 한 번 시원하게 했지. 그때 권투 세계 참피언이면 대단한 사람 아닌가. 그때는 마땅한 운동이 없었으니 그들의 경기 때는 모두 TV 앞으로 달려들었고 치열하게 싸워 민족적 자존심을 세워준 한때의 영웅들이다. 그때 권투선수 중 세 사람을 꼽으라면 내 경우는 김기수, 유제두, 유명우를 꼽는다. 유제두의 폼이 가장 시원했지. 지금은 가고 없는 프로 레슬러 김일도 생각난다.

 

4.동반시

지난번에는 보내준다는 산행기 메일이 수요일 저녁까지 오지 않아 독촉하기 미안해 전화 걸기를 망설였지만 이번에는 월요일 아침에 전화를 걸었더니 폰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경황없음과 미안함과 술 한잔 살게’가 찍혀 나온다. 길게 말하면 더 미안해하니 내가 쓰마고 했다. 그런데 또 내가 쓰기가 민망해서 누구에게 부탁을 할 것인지 헤아려 봐도 ‘답없음’이 나온다. 백수가 더 바빠서 과로사 한다고, 백수라도 할 일이 많지만 늦어도 목요일 아침까지는 보낸다는, 나름대로의 방침이 있어 또 산행기를 맡았다. 그러다보니 산행기를 쓰는 산우가 동반시를 추천하는데 동반시도 정하지 못했다. 급한 마음에 동갑의 해남 사람 황지우 시인이 떠올랐다. 동시에 ‘늙어가는 아내에게’라는 시를 언젠가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우리가 칠십 살은 되어야 어울릴 것 같다. 하여 좀 어렵지만 우리의 만만치 않은 시 해독 능력을 믿고 올린다. 같은 제목으로 두 편의 시가 있지만 개작을 한 것으로 보이며 첫 편이 더 좋은 느낌이 있어 첫 편을 올린다. 읽을수록 좋은 시다. 젊은 시절 가장 어렵게 대학생활을 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누구나 겪게되는 사랑의 슬픈 이야기, 살아온 생에 대한 깊은 회한과 통찰을 잘 표현한 시다.

 

쉬는 동안 독학으로 시 공부를 하기로 했다. 모든 세상사에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고 스승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단점이 될 수 있고, 없으면 느리나 하얀 도화지의 여백에 그리는 그림처럼 자기만의 색갈을 낼 수 있다는 어느 시인의 조언이 있었다. 그에게 부탁했지만 자기는 시를 놓은 지가 오래되어 누구를 가르칠 능력이 못된다고 하니 이 나이에 떼를 쓸 수도 없어 겸손하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혼자 시작하기로 했다. 작품이 세상에 나올지는 지나야 알게 될 것이다. 다만 노가다와 시인은 어울리지 않지만 재주는 부족하나 시작하는 용기는 가졌으니 긴 마음으로 큰 기대는 하지 말고 계속 지켜봐주면 고맙겠다. 시나 글은 다듬을수록 다듬이 방망이처럼 윤이 난다는 것을 안다. 비록 제갈량의 출사표처럼 거창하지는 않으나 언젠가는 산우들의 마음을 윤이 나게 다듬어줄 시가 탄생하기를 빌어본다.

 

김종화 산우와 잘 아는 시인이 이번 토요일에 우이동에서 시 낭송회를 한다는데 자신은 사정상 나갈 수 없고 나는 순천에서 전남 도의원을 지내고 있는 유일한 대학 친구 딸의 결혼식이 있어 마나님과 함께 천리길을 마다 않고 가야 할 처지다. 가는 길에 마나님을 모시고 순천의 3대 명물인 서대회, 금풍생이 등을 먹고 석양 무렵에 순천만도 구경하고 여수 엑스포도 보고 오면 좋겠지만 일요일에 시산회 산행이 있어 산행이 우선이므로 다음으로 미룬다. 사실 순천이 어딘데 거기까지 운전하기도 싫다. 하여 시 낭송 모임에 광주고 선배도 계신다니 누구 가까운 곳에 사는 산우가 참석해주면 좋겠다는 김종화 산우의 간절한 바람이 있으니 희망자는 연락바란다.

 

뼈아픈 후회 1/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2012년 6월 28일 새벽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