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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삼성산(관악산의 서쪽 자락) 깃대봉(詩山會 제189회 산행)

삼성산(관악산의 서쪽 자락) 깃대봉(詩山會 제189회 산행)

산 : 삼성산(479 미터)

코스 : 관악산 입구 광장-성주암-장군봉-깃대봉(하산 방향은 그곳에서 결정)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내려옴 1시간 반

일시 : 2012년 7월 14일 10시

모이는 곳 : 서울대 정문 근처 관악산 입구 광장(전 매표소 앞)

준비물 :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전작(010-9858-2858)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담쟁이 - 도종환(1954~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벽을 넘으면 무엇이 있나. 아무것도 없을 수도, 더 높은 벽이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벽보다 더 숨 막히는 황야가 버티고 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는 잊지 못할 자유의 실감이 묻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벽은 무언가를 가두는 것이겠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넘기 위해 존재한다. 진정 갇히는 것은 넘으려고도 하지 않을 때이므로 담쟁이는 핏줄이 온몸으로 뻗어가듯 벽을 오르고 벽을 나아간다. 이 엄연한 사실에 한 모금의 갈증과 의지를 보태어 쓴 것이 이 시다. 그런데 누군가 교과서에서 ‘담쟁이’를 걷어내려 한다고 한다. 이 참담한 생각이 가두려는 자의 것인지 깊이 갇혀버린 자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도처에서 사람이 비명(非命)에 가도 비명이 안 들리는 사회, 한 인간을 삼백 일이 넘도록 공중의 크레인에 세워두고도 슬픔에 젖지 않던 이곳이, 어떤 눈에는 벽 없는 낙원으로 보이는가 보다. 시인은 아플 자유도 없는가. 돈도 아니고 힘도 아닌 시라는 것에 들이대는 눈먼 칼, 이래 가지고야 어디 ‘쪽팔려서’ 계속 쓰겠나. <이영광·시인>

 

도종환 시인이 야당 국회원이 되고 난 후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삭제한다는 얘기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나왔다가 시쳇말도 본전도 못 찾고 들어가 버렸다. 참으로 한신한 일이다. 우리의 공무원의 수준도, 교육민주주의 수준도 아직 멀었다.

 

시는 패자를 위한, 힘 없는 자를 위한 위로의 말이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시는 패자를 위한 기록이다’는 한 시인의 말을 제처 두고라도 자연을 칭송하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성찰의 기록을 우리는 한 없이 사랑해야 한다. 시를 배우고 싶어 도서관에서 신춘문예 당선작을 모아 놓은 책을 집어 들었다. 당선소감은 감동적이었으나 왜 이렇게 어렵게 썼을까? 자신들이 쓴 시의 해설이 가능할까? 함축, 비유, 상징, 풍유로 범벅이 되고 비약은 얼마나 심한지, 생략은 끝을 모르게 이어진다. ‘나비의 꿈’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어 장자의 나비를 기대하고 읽는데 그 시와는 상관이 없는 것은 내 희망이었지만 행간을 읽을 수도 없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잡히지 않는다. 시는 누가 읽어도 이해가 될 만큼 쉬워야 한다고 수많은 시인들이 주창하지만 젊은 예비시인들, 특히 신춘문예를 통해 거창하게 이름을 알리고 싶은 젊은 작가들의 행태는 마무리 좋게 봐줘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는 쉽게 써야 한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188회 수락산 산행기/나창수

산행일/집결지 : 2012년 07월 01일 (일) / 수락산역 3번 출구 (10시)

산행코스 : 만남의 공원-능선길-안부삼거리-치마바위-철모바위-정상-내원암-청학리

참석자 : 11명 (박형채, 전작, 김정남, 이경식, 이재웅, 조문형, 최근호, 나창수, 고갑무, 김용우, 나양주)

동반시 : “뼈아픈 후회 1” / 황지우

뒤풀이 : 파전, 도토리묵에 냉맥주 / 청학리

 

 

근래에 4개월 동안 극심한 가뭄이 한반도에 지속되다가 어제, 그제 이틀 동안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내렸다. 10평짜리 작은 밭을 일구는 농부로써 여간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간 새벽에 일어나서 일주일에 두 번씩 물을 주고 상추, 고추, 가지 들깨 등을 재배하면서 살아있는 생명체를 가꾸고 키우는 재미가 정신적 및 육체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노력의 대가를 확실한 보상을 해 주는 땅의 고마움을 알게 되어 최근 가뭄이 심하여 열심히 물을 주면서, 물이 생명체의 필수 요소라는 것을 새삼 인식하였는데, 요즘 우리들이 너무 쉽게 편안히 살려고 물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왔으니 산에는 생명체들이 활기를 되찾으니, 나뭇잎은 푸르름이 한층 더하고 계곡에 물 흐르는 소리가 힘차게 들리며 새소리도 더 맑고 생기가 있게 들릴 거라 기대하면서 새벽을 맞이했다. 일요일 아침에는 보통은 늦잠을 잤는데 산행 때문인지 너무 일찍 일어나 거실에서 오랜만에 선전하는 타이거우즈를 보려고 PGA골프를 시청하다가 잠이 들어 깨어보니 8시가 되었다.

 

수락산역까지 가려면 9호선 염창역에서 전철을 타고, 터미널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해 가려면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고 인터넷 검색에서 보았는데 늦었다는 생각에 아침은 대충 먹고 마누라가 챙겨주는 과일만 챙겨 가지고 허둥지둥 염창역에 도착하였다. 급행이 방금 떠나 기다리다가 08시40분 급행을 타고 7호선을 환승하고 가는 도중에 종화에게 카톡이 왔다. 부산에서 대학 다닐 때 도움을 많이 주신 친척분이 노환으로 돌아가셔서 조문을 가기에 참석을 못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제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예전처럼 활동하는 종화의 모습이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병장수’라는 속담이 있듯이 화가 복이 되어 이번 일을 계기로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살면 장수할 것으로 믿는다.

 

어느덧 수락산역에 도착하니 약속시간 10분 전이다. 서둘러서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3번 출구에 나와 보니 반가운 산우들의 얼굴이 보인다. 서로 반갑게 정을 나누니 따뜻한 우정을 느끼며 졸업 후 처음 본 듯한 나양주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나와 같은 종씨인 양주도 자주 만나기를 바라며 그간 서로 모르고 지냈지만 산에서 자주 얼굴을 보다보면 정도 들고 인생의 후반기에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시산회 친우가 되리라고 기대를 해 본다.

 

수락산은 예전에 겨울산행을 하였는데, 하산하면서 눈길에 미끄러져 무릎을 다쳐 고생한 기억이 남아있는 산이다. 서울의 서남쪽에서 향로봉, 비봉으로 시작되는 북한산에서 도봉산, 사패산으로 이어지며 불암산과 붙어있고 서울과 의정부 그리고 남양주 별내면과의 경계선에 위치하며 도봉산과는 서로 마주하고 남쪽으로 달리는 옹골찬 산줄기는 기차바위, 창문바위(정상), 거북바위, 철모바위, 치마바위, 탱크바위 등 아기자기한 기암 행렬을 연출하는 높이 637m의 서울시민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근교의 명산이다.

 

예전에 국립공원에 입장 시 입산료를 내고 다니던 시절에 입산료가 없는 불암산, 수락산을 많은 등산객이 찾아 왔었는데 최근에 다시 교통이 좋아지고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등산객들이 증가하였다고 한다.

 

10시 15분경에 산우들이 다 모여 좌우편에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큰 대로를 따라가다 수락산 현대아파트에서 숲이 욱어진 등산로 초입에 당도하니, 여러 그룹의 등산객들과 만나는 만남의 광장에서 스틱을 조립하였다. 어제의 고마운 비로 수량이 제법 많아진 계곡 옆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비에 생기를 되찾은 듯 나뭇잎들은 푸르름이 더하고 맑은 공기는 우리의 대뇌를 청소하는 듯 싱그럽게 느껴진다.

한참을 걸어가니 습기는 높고 무더워서 온 몸에서 신진대사 작용으로 땀이 흐르고 몸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계곡길을 따라가다 이정표에 수락산정상(능선길)이 4.2km 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이곳에서 수락산은 계곡길 보다는 능선길이 경관이 좋고 마사토길이라 걷기에 좋다는 왕회장의 의견에 따라 우상방으로 방향을 바꾸어 올라가니 평탄한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납작한 돌로 바닥을 만든 길이 나타나면서 경사가 있는 등산로가 시작되었다.

 

 

참나무로 만든 계단을 오르는데 습하고 무더운 기후에 바람도 없으니 머리서 나는 땀이 온몸을 적시고, 숨도 헐떡거리면서 20분간 올라가니 이윽고 능선에 당도하였다. 잠시 쉬면서 수박을 한 조각씩 먹고 물도 마시고해서 더위에 상기된 얼굴들을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식히고 정열을 재정비하여 일어났다. 정상으로 향하여 푹신한 마사토의 능선길을 걸어가니 경사가 완만한 화강암 암반길이 나타나고 쇠줄로 된 난간을 잡고 올라가니 미끄럼 방지를 위한 철심이 암반에 두 줄로 나란히 박혀있어 오르기가 쉬웠다.

 

이윽고 상계동이 내려다보이는 암반 꼭대기에 오르니 누군가 파란 옥상이 있는 아파트가 보람아파트라 한다. 내가 군 재직 시절에 두 번째로 분양 받은 아파트인데 입주하지도 못하고 3년간 보유하다 팔아버린 것이라, 훗날 이것을 제대할 때까지 가지고 있었으면 내 삶의 터전이 상계동이 아니었을까 하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다시 평탄하고 부드러운 마사토의 능선길을 걸으며 건강에 대해서 의견을 말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소화력이 떨어지니 소식을 해야 하고 긍정적인 생각과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어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평범하지만 맞는 말이다.

 

능선길에서 널찍한 곳에 냉막걸리를 파는 곳이 보이고 선두에 있는 산우들이 막걸리 타임 되었다고 기다리니 후미의 산우들이 당도하여 예비군 훈련용 방호진지가 있는 곳에서 형채표 달콤한 수박과 용우표 김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누었다. 어제 밤에 EBS에서 방영된 철새의 이동경로를 보고 두루미가 시베리아에서 히말리아 산맥을 넘어 인도까지 이동하는 경이적인 자연의 신비함과 위대함을 얘기하면서 서로 동감을 하였다.

지도상 도솔봉(518 m)을 지나 수락산역과 덕릉고개 그리고 수락산 정상으로 갈라지는 안부삼거리에 당도하니 명산 해설가인 홍순섭씨의 팬 사인회 겸 “한국 명산 130” 이라는 책을 팔고 있는데 간단명료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어 한 권을 구입하고 저자의 사인도 받고 기념촬영도 하였다.

한참 걸으니 폭이 30 m쯤 되는 널따란 암반이 보인다. 이곳이 치마바위라 칭하는 곳으로 올라와 보니 멀리 불암산이 보이고 시원한 골바람이 불어온다. 누군가 “치마바위야! 치마 좀 들어 올려 봐” 라고 주문하여도 꿈적도 하지 않자 동료산우가 “자네가 바지를 내려야 치마를 올리지 않겠나?” 하고 농담을 하면서 땀을 식히고 잠시 쉬었다.

 

능선은 계속 이어지는데 등산길 좌우로 숲이 무성하여 하강바위, 코끼리바위가 있어도 보지 못하고 옅은 안개 속에서 철모 모양의 둥근 바위가 보이는데, 정말로 대단히 크고 웅장한 바위 덩어리인 철모바위에 도착하였다. 바위의 받침대에 해당하는 곳에 평편한 암반이 깨끗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쉬면서 점심을 드시라고 애원하여 둥그렇게 앉았다. 동반시 ‘황지우 시인의 뼈 아픈 후회’는 오늘의 작가인 내가 식사 전에 읊었다. 조문형표 새콤달콤한 가자미 무침, 생두부, 새우튀김, 한과와 떡, 살구, 참외, 김 등 푸짐한 음식들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들이키는 입이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쉬었다. 예전과 달리 간단하게 약간 적게 먹는 먹산회가 아닌 시산회 모습이 보기 좋았다.

 

좁은 암벽사이를 지나서 10분 걸으니 안개 속에 정상이 보이지 않고 청학리까지 4.13 km라는 이정표에서 급경사의 산비탈 길을 내려와 나무계단을 타고 내원암에 이르니 등산로 우측에 있는 계곡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옥류폭포다. 이곳이 급류폭포가 시작되는 기점으로 청학리계곡은 경사가 심하고 암반이 발달하여 여러 개의 폭포가 이어지면서 수락산에서 자연경관이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계곡을 따라 내려와 보니 이윽고 계곡물위에 설치된 음식점들이 보인다.

 

오늘 뒤풀이는 70년대 복싱계의 전설인 우리와 동향인 유제두 식당에서 하기로 예정하였는데, 오늘 장장 8.5 km을 산행을 하여 피곤한 산우들이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하여 흐르는 물 위에 평상을 펴 놓고 장사를 하는 음식점에 들렸다. 긴 산행으로 지치고 열기에 가득 찬 육체를 식히기 위해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세수를 하니 몸이 한결 가볍다.

 

차디찬 냉맥주를 파전과 도토리묵을 안주로 마시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듯한 만족감이 들어서 인지 다들 기분이 좋아 두서없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자식들에 대한 애기를 하면서 아들놈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요, 군대 가면 손님, 장가가면 사돈이 된다고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말하면서 왕회장은 딸이 둘이나 되고 딸들이 유럽여행까지 보내 준다고 하니 다들 부럽게 생각하는 눈치이다.

 

심신을 단련하고 이제 취기도 약간씩 올라오고 기분도 좋고 즐거운 산행을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다음 산행지는 삼성산으로 정하고 대로변까지 내려와 남양주 별내면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서울로 향하였다. 7월14일 토요일에 삼성산 산행 때에는 많은 산우들이 함께 하시길 바라오며, 동반시는 왕회장의 요청에 따라 ‘마음’(김광섭 시인) 이나 ‘늘, 혹은’(조병화)을 추천하오니 멋진 산행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수락산의 너른 바위에서 읊었던 시를 다시 올린다. 음미 할수록 두고 읽어도 좋은 시다.

 

뼈 아픈 후회/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2012년 7월10일 나창수 씀.

 

 

3.산행지

이번 산행은 관악산의 서쪽 자락에 있는 삼성산이다. 수 차례 올랐지만 지역적으로 안배하자는 의견에 따르고, 무더운 여름이니 낮은 산으로 가자는 집행부의 방침에 따라 정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임 수석이 꼭 온다 했으니 모두 모이자. 장마전선이 오르내려 비가 예상되지만 견산, 아니면 심산이라도 하게 모여 파전에 막걸리 한잔이라도 하게 모두 모이자.

 

 

4.동반시

오늘의 작가에게 동반시의 추천을 부탁해서 실천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협조를 잘 해줘서 고맙다. 추천을 요청할 때는 2-3편을 요청하는데 전에 동반한 적이 있는 경우가 있어 다시 추천해 달라기가 미안해서다. 나 원장이 두 편을 추천했는데 조병화 시인의 ‘늘, 혹은’은 너무 쉬운 사랑의 얘기여서 이 시를 선정했다. 조병화 시인은 시산화의 초기에, 시 선정에 도움을 주었던 시인의 스승이다. 그 시인도 스승처럼 시를 쉽게 쓰라고 했다. 자기만 아는, 독자가 해석이 어려운 시는 독백이지 시가 아니라 했다. 문인들의 알력이 심한 것도 그들의 자의식이 강해서라고 했다. 하여 그런 갈등과 알력이 싫어 절필했다고 했다. 어차피 가계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내가 시를 배우고 싶다 했을 때 밥을 얻기 위한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되고, 구도자처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성찰이 깊이 들어있는 시를 쓰라고 했다. 처음부터 잘 쓰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가는 우물쭈물하다가 세월은 쉽게, 빠르게 흐른다고 했다. 이름을 얻기 위해서 쓰지 말라고 했다. 명성이나 이름은 덧없고 무상한 것이라 했다.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이 이름이라 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좋은 시가 나올 수 없으니 세상에 자신을 너무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 조금은 자의식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것이 좋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을 죽이는 칼을 갈아 헤진 옷을 꿰매는 바늘을 만들 마음이 아니면 시작하지도 말라고 했다. 동반시 ‘마음’은 쉬우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쉽게 들어온다. 70년이 넘은 지금에도 시인의 마음이 보인다. 이렇게 오래 가는 시가 좋은 시라는 생각에 시인과 시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몸과 마음을 낮춘다.

 

마음(시집<문장> 1939) /김광섭(나창수 원장 추천시)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띄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2012년 7월 12일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