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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과 사모바위(詩山會 제199회 산행)

북한산과 사모바위(詩山會 제199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불광역-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하산은 그때 결정)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2년 12월 1일(토) 10시

만나는 곳 : 전철 3호선 불광역 2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 아이젠

연락 : 전작(010-9858-2858)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詩를 통한 時論

 

슬픈 공복/정진규(1939~ )

거기 늘 있던 강물들이 비로소 흐르는 게 보인다 흐르니까 아득하다 춥다 오한이 든다

나보다 앞서 주섬주섬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슬픈 내 역마살이 오슬오슬 소름으로 돋는다

찬바람에 서걱이는 옥수숫대들, 휑하니 뚫린 밭고랑이 보이고 호미 한 자루 고꾸라져 있다

누가 던져두고 떠나버린 낚싯대 하나 홀로 잠겨 있는 방죽으로 간다 허리 꺾인 갈대들 물 속 맨발이 시리다

11월이 오고 있는 겨울 초입엔 배고픈 채로 나를 한참 견디는 슬픈 공복의 저녁이 오래 저문다

낙엽도 끝물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언제나 흐르고 있었음에도, 새삼스럽게 흐른다는 것이 육박해온다. 오슬오슬하다. 잎새들, 생장하는 것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강이 내다보이고, 산이 뼈를 드러낸다. 서걱이는 것들, 고꾸라진 것들, 꺾인 것들이 거기 없었던 것처럼 드러나 있다. 배부를 때는 느끼지 못하는 위장이 저 스스로를 드러내듯이 쓸쓸함이 드러난다. 이 가을 끝의 역마살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행이라는 것이 새로운 것에 대한 경이보다는 습관적 삶과 사유를 뿌리부터 되돌아보게 하는 기능이 더 클 때가 있다. 이 가을의 끝물에는 어느 때보다 그런 쪽으로 우리를 기울게 한다. 해가 그의 무성한 자리를 비워간다. 가을이 그렇고, 저물 녘이 그렇다. 춥다. 이 공복을 서둘러 채우지 않고 바라보는 것도 건강에 해롭지 않다.

<장철문 · 시인·순천대 교수>

 

유난히 빨리 온 겨울이 원망스럽지만 어쩌랴. 세상사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지만 봄은 빨리 온다지 않는가. 나 원장이 카톡에 보내준 잠언 중 겨울이 춥지 않으면 봄이 따뜻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구절이 있다. 주변을 보면 우리 산우들은 행복한 편이다. 가을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창 밖의 은행나무잎은 다 떨어졌지만, 고로쇠단풍나무잎은 아직 붉은 빛을 띄고 있기에 나의 가을은 가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단풍이 드는 것은 추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산우들아! 길고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건강하게 따뜻한 봄을 맞이하자.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198회 청계산 산행기(2012년 11월 17일. 토요일)/조문형

참석자 ; 고갑무, 김정남, 박형채, 신원우, 이경식, 위윤환, 전작, 정한, 조문형(9인의 산사나이)

산행 전날 저녁 9시, 퇴근길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내일 산행을 할 수 있을 지를 걱정했다. 물론 일기예보에서는 ‘내일 아침부터 비는 안 오고 주말 나들이에 별 지장이 없다‘고 하는 뉴스를 듣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집에 들어가는 길에 며느리한테 들러 홍어무침을 받아 배낭에다 챙겨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산행 당일, 아침 6시 30분에 기상하여 밖을 내다보니 날씨는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아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산행준비를 하는 중 8시쯤 형채 회장님으로부터 '굿모닝! 시산회 친구들이여! 오늘 날씨 좋네. 청계산 등산하고 오리 한 마리 뜯세나. 얼른 챙기소. 청계산역에서 만나세'라는 카톡을 받고 출발하는 중, 종화 산우는 부산 출장 가서 참석 못 한다는 카톡, 왕회장 정남 산우는 늦잠 잤는데 울 회원 먹을거리 생굴을 준비해야 하므로 참석 인원이 몇 명인지 알려 달라는 카톡, ‘못 갈 상황인데 홍어 무침에 길들여졌으니 무조건 가야겠네’라는 갑무 산우의 카톡 등등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상황을 주고받으면서 전철을 타고 청계산 입구역에 9시45분쯤 도착했다. 출구에 나가 전작 총장님과 반갑게 조우하고 기다리는 중, 경식, 형채, 갑무, 정남, 정한이와 합류하고 원우하고 윤환이는 밖에서 기다린다고 하여 밖으로 나와서 오늘 참석자를 확인하니 언제 보아도 반가운 얼굴들이다. 이런 친구들과 한 달에 두 번 만나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한 일이다. 건강과 시간의 여유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10시 15분쯤, 원터골을 들머리로 잡고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막걸리를 파악하는데 모자랄 것 같아서 보충 하려고 값을 물어보니 한 병에 2,000원이라고 하는데 일반 슈퍼에서는 1,000원인데 아무리 등산로라고 해도 너무 폭리를 취하는 것 같아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너무 심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두 병을 보충하고(앞으로는 각자 집근처 슈퍼에서 막걸리를 준비하세) 들머리 입구에서 산행지도를 보면서 오늘산행 코스를 계단이 없는 코스인 원터골 입구에서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계단 없는 코스를 지나 정자 앞 삼거리에서 계단 없는 왼쪽 길 7부 능선 따라 오른 뒤, 양지 바른 곳에서 자리를 펴고 점심과 술을 먹자. 옛골로 하산하여 뒤풀이를 하기로 하고 출발하면서 총장님께서 오늘 기자를 선정해야 한다기에 본인이 쓴다고 자진해서 지원했다.

 

이유는 금년 납회가 200회로써 101회부터 200회까지 산행기를 책으로 발간한다는데 본인 산행기가 183회 예빈산 산행기 한 편뿐으로 너무 빈약한 것 같아 자원했으며 또한 지금까지 청계산 산행은 여러 차례(확인결과 120회, 123회, 129회, 139회, 148회, 157회, 175회, 177회, 193회, 198회 총10회)해서 오래 전에 쓴 산행기를 옮겨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자원 했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면서 30분쯤 올라가는데 정남 산우가 어제 밤에 가족들 하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느라 잠을 설쳐 몸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다며 쉬어가자고 한다. 한적한 곳에서 총장님표 대치동 왕모찌를 한 개씩 나눠먹고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본인이 스마트폰으로 산우들 사진을 포샾하는 방법을 얘기했더니, 그것을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을 알려달라기에 싸이메리라는 항목이 있는데 그걸 이용하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 시킬 수 있다고 방법을 알려주고 현장에서 몇 번의 실습을 하다가 다시 출발한다. 중간에 두 세번을 더 쉬고 난 뒤, 12시쯤 헬기장 밑 양지바른 곳에 도착. 먹산회 전통을 기리 간직하고자 각자가 준비해온 먹을거리로 자리를 마련하고 오늘 기자로 자원한 본인이 동반시 '가을꽃'을 낭독했다. 이 좋은 가을날에 어울리는 시다. 맛나게 배를 채우고 있는 중에 재웅 산우가 회장님한테 전화로 안부를 전해달라면서 본인은 일 때문에 참석 못해 아쉽다는 뜻을 전해 들었다. 산행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꼭 안부를 전하는 다정한 친구다.

 

1시쯤 하산하기 시작하여 2시쯤 옛골 입구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너무 빨라 배가 고프지 않으니 뒤풀이를 생략해도 되겠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우리가 누군가!!

 

지금까지 그런 예가 없었으니 두부김치에 막걸리라도 간단히 한잔 해야지 하면서, 옛골 손두부집으로 들어가 파전에 두부김치를 주문하는데 갑무 산우는 집안일 때문에 일찍 가야한다기에 "그럼 산행기 쓸 때 불참으로 할거야, ㅎㅎㅎ" 농담을 하며, “그럼 회비는 내고 가소“ 하면서 먼저 보내주고 남은 산우들끼리 200회 산행기념 책자 출간문제 납회 장소 문제 등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웠다. 차기 집행부 선출문제로 화제를 돌려 총무를 선임해야 하는데 지난 산행 때 삼환이로 하여금 맡아달라고 부탁하니 금년에는 약초를 캐는 동호회에 가입해서 도저히 무거운 업무를 맡을 수가 없고 차기 총장은 꼭하겠다고 선약을 하였으니 이번 총장은 나더러 하면 어떻겠냐고 하기에 나 역시 아직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윤환이를 추천했는데, 윤환이가 하는 말이 결혼하면 하겠다고 핑계를 대기에 오히려 결혼하면 신혼이라 참석하기 힘들어서 총장 일을 하기가 더 어려우니까 지금 하는 게 더 좋을 거라고 하면서 만약 결혼하면 내가 대신 하겠노라고 약속하고 만장일치 박수로 가결 시켰다.

 

다음 산행지 선정 문제를 얘기했는데 다음 산행은 북한산으로 하되 코스 등 자세한 내용은 집행부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3시 30분 산행 뒤풀이를 마감했다. 버스를 이용해 양재역에 도착했는데 정남이가 윤환이한테 이 시간에 집에 들어가면 오후시간에 뭐 하느냐고 물으니까 "전혀 할 일이 없다"고 하기에 내가 옆에서 해왕이가 나왔으면 같이 당구나 한 게임하면 좋을 텐데 안 나와서 못하겠다고 하니까 정남이가 자기도 당구 칠 줄 안다고 같이 한 게임하자고 해서 3인이 의기투합 당구장으로 가서 1시간가량 놀다가 각자 집으로 귀가 했습니다. 게임비는 성적이 나쁜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난 아무 생각 없이 당구만 쳤는데 정남이는 윤환이가 아직까지 싱글로 지내고 있어서 외로울까봐 배려해 주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정남이의 깊은 정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역시 우리 시산회가 자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나 역시 같은 회원이라는 게 가슴 뿌듯한 하루였다.

 

끝으로 어느 기자의 칼럼에 실린 '혼외정사, 인간의 본능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리니 일별하라.

 

대학 캠퍼스를 거니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다. “당신을 쭉 지켜보고 있었어요. 정말 매력적이시네요. 오늘 밤 나랑 자지 않을래요?” 상대는 처음 보는 남(여)학생이고 용모는 중간 수준이다. 당신의 응답은? 1982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실험한 결과를 보자. 남학생의 69%는 “좋지요”라고 응답했다. 여학생은? 100% “아니오”였다. 남자는 ‘밝히는’ 족속이라는 말이다.

그 배경에는 진화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남자는 몇 시간 투자해 씨를 뿌리면 번식에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는 9개월여를 거쳐 한 명을 낳을 수 있을 뿐이다. 책임감과 부양능력이 우수한 남성을 신중히 고르지 않은 여성은 도태됐을 것이다.

남성이 결혼에 정착하는 데는 ‘배란 은폐’가 큰 몫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은 연중 섹스가 가능할 뿐 아니라 임신이 가능한 배란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특이한 동물이다. 따라서 남성은 자원을 제공하면서 여성을 곁에서 독점해야 자식이 자신의 씨임을 믿을 수 있다. 그런 틈틈이 다른 여성에게 눈을 돌리면 번식 성공률은 더 높아진다. 우리 모두는 이처럼 독점+알파 전략을 취한 ‘호색한 조상’의 후손이다.

하지만 수렵채집 시대에 진화한 심리가 21세기에도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해설이다. 인류는 그동안 유전적으로 거의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 남성의 마음 깊은 곳에는 옛 시대의 단순한 법칙이 도사리고 있다. “권력을 얻어서 그것을 후계자를 낳을 여성을 유혹하는 데 사용하라.” “부를 얻어서 그것을 혼외자식을 낳는 데 사용하라. 다른 남자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를 기회를 사라.” 그런가 하면 현대 여성의 마음 깊은 곳에도 이에 대응하는 법칙이 도사리고 있다. “음식을 제공하고 아이들을 돌볼 부양자 남편을 얻도록 노력하라. 그 아이들에게 1등급 유전자를 줄 수 있는 애인을 찾도록 노력하라.”(『붉은 여왕』·맷 리들리·김영사).

그러고 보니 근래 혼외정사가 들통 나 이혼당하거나 사임한 유명인은 모두 남성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 혼외정사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일수록 흔히 벌인다. 상대 여성의 지위는 가리지 않는다. 매춘부, 가정부, 전기 작가… 하지만 본능은 그보다 나아지라고 있는 것이지 그대로 행동하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2.11.19. 조문형씀

 

 

3.산행지

이번 산행지는 북한산이다. 전작 총장이 내게 집결지와 코스를 물어왔는데 아쉽게도 가지 못한다. 동창 양인수의 큰딸 은희의 결혼식이다. 청첩장을 보내오지 않고 동창회 문자로만 했어도 축의금으로 때우려 했는데 친히 보내오면서 좋은 일에 축하해 줄 것을 정식으로 부탁했으니 고등학교부터의 깊은 인연이 있는 가족이라 가지 않을 수 없다. 인수는 중대 법대를 다녔으니 공부한다고 여름방학에 함께 강릉의 보현사에 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 주지 스님의 꼬임에 넘어가 삭발했는데 개학해서 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의 놀림(?)을 많이 받았다. 시국 등과 관련한 그때의 심정이었지만 치기 어린 젊은 날의 해프닝이었다. 결혼 후, 어느 정도의 세속적인 작은 성공을 이룬 뒤,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마나님에게 했던 '60이 되면 다 내려놓고 보리수나무 그늘로 가겠다'는 말 때문에 지금도 불교 공부를 한다면 집사람의 의심을 받는다. 하여, 이인에게 불교 강의를 들으러 다닌 후, 마나님의 따뜻한 의심과 차가운 관심을 많이 받는다. 문재인과 같은 학번, 같은 대학 법대를 다녔던 이인과의 얘기는 다음에 차분하게 얘기하겠다. 해서, 집사람에게 대리 참석을 부탁했더니 양인수라는 이름은 간혹 들었지만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고 언제 당신이 나를 그런 모임에 데려가기나 했느냐고, 얼굴도 모르는 친구에게 무슨 낯으로 가느냐며 오히려 핀잔만 들었다. 내가 30-40대에 바빠 친구들 부부모임에 전혀 나가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참! 내가 무심했구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어쩔 수 없다는 마음에 산행은 빠지고 결혼식이 끝나고 별일이 없으면 뒤풀이라도 참석해야겠다. 마침 나 원장과 종화와 문형이도 가야 한다니 뒤풀이에 동행하면 좋겠다. 내가 산에 가지 못하지만 이경식 산우가 추천한 코스니 이왕이면 사방이 툭 터진 사모바위에서 겨울이 되면 어김 없이 불어오는 시원한 북풍을 맞으며 시 한 수 읊고 오면 좋겠다. 다음에는 도선사를 거쳐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로 넘어가서 숨은벽으로 내려오자. 겨울의 문턱에서 산에 오르면 준비해야 할 것은 아이젠이다. 미리 배낭에 넣어두라.

 

 

 

4.동반시

조문형 산우가 동창회 K-20 마을 카페의 시/수필란에 김용우 산우가 올린 것을 보고 추천한 시다. 9년째 접어들고 있는 우리들 시산회의 수준에 맞는 시다. 우리는 쉽고 짧은 시보다는 약간 무겁지만 자연과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하고 있는 시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임영석의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에는 곳곳에 깊은 어둠이 배어 있다. 이 어둠은 삶 속에서 겪게 되는 많은 고통과 상처로 "세월이 누르는 무게"('나무는")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에서 이러한 어둠은 빛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거처야만 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빛을 존재하게 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때문에 이 시집이 깊은 어둠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그 어둠을 배경으로 떠오를 빛을 맞이하기 위한 전주곡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은 스스로의 진정성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세월 고통과 상처를 겪은 후에 비로소 자신의 본질을 서서히 드러낼 뿐이다. 오랜 세월 제 가슴을 때려 "퍼런 멍"이 든 바다(바다)나 평생을 먼 바다에서 헤엄치다 태어난 강으로 갈지之자로 회귀한 연어(소주병)를 보며 시인이 깨닫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고통과 상처가 삶의 진정성에 다가가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바닷물이 썩지 않기 위해 파도는 제 가슴을 쳐야하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연어는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하는 것이다.
시평<권경아. 문학평론가>

 

 

거미의 삶의 방식을 본다. 거미줄은 거미에게 희망이고 함부로 남을 공격하지 않고 다가오는 것만 먹으며 살지만 오랜 세월을 거미줄처럼 끈끈하게 삶을 이어왔다. 어둠이 깊어야 별은 더 밝게 빛난다. 산우들아! 우리의 삶이 어두울수록 희망은 더 밝게 빛나고 삶은 더 깊어지나니 겨울에는 동물들처럼 동면도 필요한 것이란다. 긴 겨울, 춥지 말자, 슬프지 말자. 거미처럼 우리의 시대가 올 때까지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자.

<도봉별곡>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 /임영석

 

거미는 밤마다 어둠을 끌어다가
나뭇가지에 묶는다 하루 이틀
묶어 본 솜씨가 아니다 수천년 동안
그렇게 어둠을 묶어 놓겠다고
거미줄을 풀어 나뭇가지에 묶는다

 

어둠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나무가지가 휘어져도
그 휘어진 나뭇가지에 어둠을 또 묶는다
묶인 어둠 속에서 별들이 떠오른다
거미가 어둠을 꽁꽁 묶어 놓아야
그 어둠 속으로 별들이 떠오르는 것이였다

 

거미가 수천년 동안 어둠을 묶어 온 사연만큼
나뭇가지가 남쪽으로 늘어져 있는 사연이
궁금해졌다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따뜻한 남쪽으로 별들이 떠오르게
너무 많은 어둠을 남쪽으로만 묶었던
거미의 습관 때문에 나무도 남쪽으로만
나뭇가지를 키워 왔는가 보다 이젠 모든 것들이
혼자서도 어둠을 묶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수천년 동안 거미가 가르친
어둠을 묶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거미는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뜨는 것을
가장 먼저 알고 있었나 보다

 

2012년 11월 28일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