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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봉화산과 구곡폭포(詩山會 제202회 산행)

봉화산과 구곡폭포(詩山會 제202회 산행)

산 : 검봉(530미터)

코스 : 강촌역-봉화산-구곡폭포-강촌역

소요시간 : 3시간 30분

일시 : 2013년 1월 26일(토) 10시(10시 12분 차를 타기 위해 시간 엄수)

모이는 곳 : 전철 7호선, 중앙선 상봉역 춘천행 플랫홈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뒤풀이)

연락 : 조문형(011-259-2915)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詩를 통한 時論

 

 

부평역 - 정호승(1950~ )

 

봄비 내리는 부평역

마을버스 정류장 앞

허연 비닐을 뒤집어쓰고

다리 저는 아주머니

밤 깊도록 꽃을 판다

사람들마다 봄이 되라고

살아갈수록 꽃이 되라고

팔다 남은 노란 프리지어 한 묶음

젊은 역무원에게 슬며시

수줍은 듯 건네주고

승강장 노란 불빛 사이로

허옇게 쏟아지는 봄비 속을

절룩절룩 떠나간다

동인천행 막차를 타고

다운증후군 아들의

어린 손을 꼭 잡고

수많은 서민들이 분주히 오가는 봄비 내리는 부평역 마을버스 정류장 앞. 시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허연 비닐을 뒤집어쓰고 밤 깊도록 꽃을 파는 다리를 저는 한 아주머니다. 그녀가 밤 깊도록 파는 꽃은 “사람들마다 봄이 되라고 / 살아갈수록 꽃이 되라고” 건네는 희망이고 사랑이다. 그녀는 남은 노란 프리지어 한 묶음을 늦은 시간까지 삶의 현장을 지키는 젊은 역무원에게 슬며시 수줍게 건넨다. 그리고 그렇게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절룩절룩 다리를 절며 허옇게 쏟아지는 봄비 속을 떠난다. 동인천행 막차에 오르는 아주머니의 손에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들의 어린 손이 꼭 쥐여져 있다. 어쩌면 부평역을 아니 세상을 봄비로 적시는 것은 자연현상이 아닌 그녀이고 이를 바라보는 눈 밝은 시인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성자는, 성스러운 것은 낮고 어둡고 남루한 것의 내면 깊은 데 혹은 그것들과 함께하는 데 있다고 시인은 믿고 있다.
<곽효환·시인>

 

'사람들마다 봄이 되라고 / 살아갈수록 꽃이 되라고'는 행은 시의 클라이맥스고 희망의 메시지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떠오른다. 60살이 넘게 살다보니 주변에 불행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행복은 불행이라는 보자기에 싸여 함께 온다'고 한다. 기독교적 정통 유신론에서는 1.신은 전지전능하다. 2.신은 완벽하게 선하다. 3.그러나 악은 존재한다. 이 명제를 생각하면 전지전능한 신이 불행과 악을 예방하거나 제거하지 못한다면 신은 불필요한 존재라는 결론이 나온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논쟁에 대하여 어쨌든 우주는 존재하며 우주는 천 억개의 은하가 있으며 한 개의 은하에 천 억개의 별이 있다. 아직 끝까지 가보지도 못한 태양계는 우리가 속한 은하계에서 티끌 같은 크기에 불과하다. 같은 추론이지만 우주의 나이는 138억 광년이니 빛의 속도로 영혼이 생각을 뻗어나가도 인간은 물론이고 신도 거기까지는 손이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거기에 우주팽창론을 더하면 우리 인식의 밖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우주는 크고 차갑고 의미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그다지 흥미 있는 우주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의 존재에 관한 논쟁은 기껏해야 필요 이상의 짐꾸러미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결론이다. 신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신학적 개념이 내세우는 비교적 순진한 우리의 신도 마찬가지다. 해서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이 나왔고 천체물리학자들의 대부분이 불가지론자다. 그들은 존재를 알 수 없는 신에 대해서는 단지 종교에 맡기자고 한다. 유신론자들의 일부는 신이 없다는 증명을 하지 못한다면 신은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거기에는 논리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논리학에서는 '존재부정의 증명'론이 있다. 존재를 주장하는 측에 증명의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자! 행과 불행도 모두 우리의 몫이고 책임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기댈 것은 없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201회 도봉산 시산제 산행기/기세환

산행일 : 2013. 1. 13.(토)

산행코스 : 도봉산역-시인의 집-석굴암 입구-산악구조대-선인봉 아래 명당자리(시산제)-도봉대피소-도봉탐방지원센터-태정오리구이(뒤풀이)

참석자 : 기세환, 김정남, 김종화, 나양주, 나창수, 박형채, 신원우, 염재홍, 위윤환,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임삼환, 전작, 조문형, 조영훈, 최광일, 최근호, 이인(이상 19인의 시산인)

동반시 : 해/박두진

 

2004년 10월 10일에 첫 도봉산행을 거행하여 시작한 후, 200회를 2012년 말에 마감했다. 드디어 ‘산과 시’ 제2집을 발간하는 쾌거를 이룬 광주고 20회 등산모임인 시산회 회원으로서 긍지와 보람을 가졌으니 지금까지의 삶 중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개인적으로는 시산회 발기인이면서, 그동안 누구보다 열정을 갖고 산행을 해온 터이지만 최근 2년간 허리와 무릎부상 등의 이유로 참석률이 저조했었는데 몸 컨디션이 좋아져서 이번 새해 첫 등반은 꼭 참석하기로 맘을 먹고 집결지인 도봉산역에 10시에 도착했다.

대부분 산우들이 정시에 도착했고 형채, 작, 윤환은 시산제에 쓸 떡, 과일 등 제물과 ‘산과 시’ 수정본을 싣고 등산로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하며 졸업 후 몇 번 못봤던 이인(한의원 개업 중)도 10여분 쯤 후에 찬 기운을 물씬 풍기는 옷차림(트레이닝복, 운동화와 여름 썬캡)으로 동네 뒷산 오르듯 눈길 산행에 동참하였다. 오랜만에 본 인이는 한의사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산속 토굴에서 6년간 수련을 하고 나온 뒤의 심오한 기운을 품은 도사의 풍채였다.

 

그런데 이제 막 산행을 시작하려는 참에 신임 조 총장의 한 말씀이 있었는데 산행기 작성순서는 회원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정하였고 “오늘은 고갑무 회원이 불참하였으니 세환이 차례네” 라고 하면서 작성해온 회원명단을 나누어 주었는데 나는 사양 한 번 못해보고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산과 시’ 1집에서 한 두 차례 산행기를 써보고는 2집엔 한 편의 글도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숙련된 전문 집필자인 김정남, 김종화, 이경식, 박형채 전임 회장들의 깊은 지식과 풍부한 산행 경험과 비교되는 글을 올리기에 부끄러운 일인지라 더욱 마음이 심란하고 무거웠다.

 

겨울산행치고는 참 좋은 날씨여서 우리의 시산제를 염려해주신 도봉산 산신님의 배려인 듯하여 감사할 따름이다. 계곡엔 흰 눈과 얼음이 엉켜 다가올 봄이라도 전혀 밀리지 않을 기세로 풍광을 뽐내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많은 인파 속에 시산회원들이 삼삼오오 섞여 선두와 후미의 구분이 안되어 가끔 "선두 스톱!"을 외치며 걷다가 결국은 삼거리에서 나창수 원장을 놓치고 말았다. 질서 유지에 각별한 김정남 전 회장은 다시 합류해서 출발 할 수 있도록 10여분을 18명의 발을 묶어 놓고 있을 즈음 최근호 회원이 예전 군대생활을 떠올리며 ‘안진고’ 작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기러기가 무리지어 날 때 맨 선두에서 전체 무리를 일사분란하게 통솔할 지휘관의 중요성을 본받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선두에서는 삼거리 등 갈림길이 나오면 전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함께 가는 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조를 짜서 조장이 책임지고 통솔하는 제도도 나쁠 것이 없다.

 

이번 산행은 출발지에서 약 1.5km정도 떨어진 산악구조대 옆 편편한 명당자리까지 크게 힘들지 않은 코스이며 순전히 시산제를 위해 일곱 차례나 올라온 길이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제단 뒤로는 우리 얼굴위로 쏟아질 듯한 우람한 선인봉이 소나무가지 사이로 내려다보고 있는 성스러운 자리였다. 모두 위용이 훌륭한 선인봉을 올려보면서 선인봉의 산신령이 웃는다고 한다. 시산인들은 이제 산과 대화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 틀림 없다.

 

눈 덮인 너른 자리를 쓸고 제단을 만든 다음, 정성스레 준비한 시루떡, 전, 사과, 배, 대추, 북어, 홍어회무침, 생굴, 한과 등을 차리고 초와 향을 피우며 시산제를 거행하였다. 전작 회장의 시산제축문 낭독과 산행기자로서 시 낭독을 한 나는 여러 회원들의 후의로 제주역할까지 맡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동반시는 청록파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중 박두진의 시 '해'다. 새해 첫 산행에 어울리는 시다.

 

박형채 전임 회장이 준비한 ‘경축 제9회 시산제’ 프랫카드를 옆으로 걸게 하여 선인봉을 향해 4인1조씩 재배를 끝으로 전작 회장과 조문형 총장이 준비한 푸짐한 음식과 막걸리로 음복하며 천지신명께 올해의 안전한 산행과 회원들의 복을 빌며 시산제를 마쳤다.

 

산우들과 함께한 이 자리가 살아있는 동안 늘 행복할 것이다. 오늘뿐 아니라 300회, 500회, 또 더 계속될 수 있는 날까지......

 

음복 때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는 서로 권하며 우의를 더욱 다졌다. 조 총장의 며느리가 마련해주는 홍어회무침은 며느리의 출산으로 당부간 먹지 못하게 됐으니 아쉬운 일이나 한 아이의 출산은 우리에게 더 소중한 자산이다. 부디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한다. 하산길은 마당바위로 돌아가느냐, 더 가까운 길로 가느냐를 두고 모두 ''먹었으니 내려가자"였다. 역시 한 시라도 급히 먹으러 내려가자는 먹산회의 전통은 어김 없었다. 하산길은 길이 미끄러워 아이젠을 묶고 천천히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였는데 올라갈 때 만났던 흰 턱수염에 거적 같은 담요를 덮고 낡은 섹소폰으로 선구자를 연주한 악사를 스쳐 지나며 마음 한 켠에는 미안함을 눌러 떨칠 수가 없었다.

 

두 시쯤 뒤풀이 장소인 참나무장작 오리구이 전문집인 태정에 도착하여 신입회원으로 이인 원장을 박수로 환영하였다. 이경식 산우가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고 유보(?)의 의견을 냈으나 웃자고 하는 얘기인 줄을 누가 모르겠는가. 이인 산우는 앞으로 발목 부상에 대비해 침통을 휴대해야 할 것이다. 의사인 나 원장과 이인 한의원 원장이 동참하니 유사시에 대비하여 든든한 마음이 든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었으리라. 그간 제2집 출간에 애쓴 박형채 전임회장을 감사와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큰 박수로 격려하였으며 재경 광주고 총동창회 등산회장으로 김정남 왕회장을 추대하며 축하하였다. 김정남 왕회장은 고사하였으나 위윤환 산우가 "3번은 고사하였으니 이번까지는 안된다"고 하니 포기하고 순순히 승락하였다. 부디 총동창회 산악회장직을 잘 이끌 것을 바란다. 신임 동창회장인 최광일 산우는 가을의 설악산행은 동창회 산행으로 할 것을 고려 중이라 했으니 환영할 일이다. 우리가 신임 동창회장은 잘 뽑았고 퇴임하는 신원우 회장도 4년간 고생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시산회에서 동창회 총장과 회장까지 독식하고 있으니 시산회의 소임은 막중하다. 경조사에 가면 시산회원이 동창의 75%를 차지하는 것만 봐도 우리의 우의는 참 좋다.

 

산행 할 때 오늘의 기자 선정문제로 골치 아팠던 회장단의 고민도 미리 정함으로써 일거에 해결하였으니 조문형 총장의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왕회장이 심사숙고하여 작성한 올해의 산행지에 대하여 계획안을 보니 동과 서, 남쪽을 잘 안분하였고 무리하지 않게 높은 곳은 피하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7월말에 가는 백두산행은 좋은 계획이고 나도 가고 싶다. 이왕이면 5월의 철쭉산행도 동창회 차원에서 함께 가면 좋을 것이라는 것을 건의한다. 산행지가 소백산이면 무리가 가나 지리산 바래봉이면 동창회에서 추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 회원이 28명인데 인원이 너무 많으면 통제가 어려우니 30명으로 제한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반대의 의견도 있어 더는 거론하지 않았다. 내가 참석하니 분위기가 더 부드러워졌다는 덕담에 앞으로는 자주 참석하겠다고 했으나 건강이 회복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전작 회장이 끝인사 겸 건배사를 “새해 안전한 산행,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한잔하세” 하자, 회원일동은 “그러세”하며 건배와 더불어 박수로 화답하였다. 도봉산 산신령님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가운데 눈 속에서 엄숙히 거행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끝난 산행은 영험한 도봉산과 산우들이 있어 넉넉하고 즐거웠다. 시산제를 훌륭하게 준비해 준 집행부에 감사한다.

 

시산회 만세!

기세환씀

 

 

3.산행지

이번 산행은 봉화산이다. 구곡폭포를 끼고 있으며 높이가 480미터이니 낮은 산이다. 지난 번에 갔던 검봉 바로 옆산이다. 10년 전 산악자전거 코스로 올라본 적이 있으며 어렵지 않고 쉬운 산이다. 구곡폭포는 겨울에 빙폭으로 유명하다. 클라이머들이 오르는 모습은 볼만한 구경거리가 된다. 1년의 산행계획을 짤 때 지역을 안분하고 원거리와 가까운 거리도 안분했다. 비교적 오르기 쉬운 산으로 정했다. 물론 산우들의 의견이 있으면 변경도 가능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정선 소금강과 소백산이나 지리산 바래봉 철쭉, 여름에는 백두산행도 있다. 가을 단풍으로는 설악산 흘림골을 한 번 더 가자. 특히 백두산행은 마나님들과 함께 가도 좋을 일이다. 이번에 모이는 곳은 춘천행 플랫홈이니 착오 없기 바란다. 10시 12분에 춘천행 차가 있으니 늦지 않기 바란다.

 

 

4.동반시

동반시는 기세환 산우가 추천했다. 모두 시에 문외한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데 200회의 동반시와 프롤로그시를 접한 산우들이 늘 하는 말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모를까. 오랜만에 나온 기세환 산우가 추천한 시를 다음에는 고갑무 산우가 낭송할 차례다. 부디 와서 그 좋은 목소리를 들려달라.


상처와 고통이 없는 뜨거운 사랑이 있을까. 사랑이란 상처를 주고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 곱씹는 아쉬움과 고통 속에 그 본질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붉은 피를 뚝뚝 쏟는 베인 상처를 서둘러 수습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잘되었다고 며칠 그 상처와 잘 놀겠다고 한다.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일회용 밴드를 바르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며 상처가 준 고통과 그 향을 온전히 느끼며 그렇게 한 열흘은 거뜬히 같이 하겠다고 한다. 어떤 사랑은 쉬 아물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랑은 베이고 아물고 덧나기를 반복하며 끝내는 흉터로 남기도 하는데 시인은 그런 사랑의 흔적을 몸 곳곳에 훈장처럼 가지고 살겠다는 것이다. 오늘 밤에도 사랑의 상처, 그 통증과 함께 뒹굴며 열애에 빠진 사람, 뜨겁고 아름답겠다.
<곽효환·시인>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는가'라는 책에 열정의 유효기간은 절대, 절대로 3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구절이있다. 과연 그럴까? 시인은 한국시인협회 회장이며 숙명여대와 대학우너을 나왔다. 시인은 남편이 죽은 뒤에 결혼생활 중에 남편에게 폭력을 자주 당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시인은 부끄러움을 무릅 쓰고 고백을 했는데 이 시는 지금이라도 그런 열애를 하고 싶었을까? 마지막에 '작살내겠다'는 구절은 누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까? 시인의 아픈 마음이 느껴진다. 모든 사랑은 오고간다.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세상에 영원한 것도 없고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그럴 것이다.

<도봉별곡>

 

 

열애 - 신달자(1943~ )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 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밴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피 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 많아

상처 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 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 밤 그 통증과 엎치락뒤치락 뒹굴겠다

연인 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 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내겠다.

 

2013년 1월 23일 신당도서관에서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