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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덕유산 눈꽃 산행(詩山會 제204회 산행)

덕유산 눈꽃 산행(詩山會 제204회 산행)

 

산 : 덕유산(1,614미터)

 

코스 : 칠연계곡-동엽령-중봉-향적봉-케이블카-삼공리

 

소요시간 : 4시간 반

 

일시 : 2013년 2월 23일(토) 7시

 

만나는 곳 : 전철 4호선 과천정부청사역 8번 출구

 

준비물 : 나양주 산우 사무실 시산제 동행. 배낭은 가볍게 꾸리고 아이젠 필수

 

연락 : 조문형(011-259-2915)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詩를 통한 時論

 

 

은둔지/조정권(1949~ )


시는 무신론자가 만든 종교.

신 없는 성당.

외로움의 성전.

언어는

시름시름 자란

외로움과 사귀다가 무성히 큰 허무를 만든다.

외로움은 시인들의 은둔지.

외로움은 신성한 성당.

시인은 자기가 심은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

나는 나무에 목매달고 죽는 언어 밑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다.

시인은 1인 교주이자

그 자신이 1인 신도.

시는 신이 없는 종교.

그 속에서 독생(獨生)하는 언어.

시은(市隱)하는 언어.

나는 일생 동안 허비할 말의 허기를 새기리라.


시란 무엇인가.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의 언어와 세계관을 가지고 저마다의 언어의 집을 짓는 한 이 질문은 끊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견고하고 서늘한 사유와 정신 세계를 보여온 시인은 자신의 시를 홀로 존재하는 독생(獨生)의 언어이고 세속 속에서 은둔하는 시은(市隱)의 언어라고 정의한다. 독생의 언어란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은 무신론자가 만든 종교이고 신(神)이 없는 성당이며 또 외로움의 성전이다. 시인은 그 신성한 외로움에 은둔하지만 그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 자신이 교주이고 성도인 신 없는 종교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언어에 복무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시인의 언어가 세상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세속의 중심에서 깊이 침잠하여 세상의 허기를 담고 새기는 것이라는 점이다. 세속과 신성, 현실과 언어가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라는 일원론적인 사유와 시론. 독생하는 시은의 시를 찾는 시인의 치열한 자기 갱신이 차갑고 높고 강인하다.

(곽효환·시인)

 

시각에 따라서 인생은 물이 반만 남은 컵일 수도, 반이나 남은 컵일 수도 있다. 모두 비워도 채워지지 않는 컵이 있어 시로 채울까 노력을하나 내게 아직은 시가 종교도 신도 아니가보다. 계영배(戒盈盃)라는 것이 있다. 잔의 7할 이상을 물로 채우면 신기하게도 물이 모두 빠져버리는 컵이다. 광주분원의 도자기 전시장에 가면 볼 수 있다. 재물도 사랑도 시도 그 정도만 채우고 살려한다. 시를 배우고 익히고 쓰려해도 이것이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이 없는 나침반처럼 나도 시를 두고 헤맨다. 시인이 자기 시의 교주라면 한 종교의 창시자이니 종교를 창시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인 것처럼 시 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시인의 파라다이스'라는 영화가 있다. 불치병에 걸려 항상 누워있어야 하는 시인의 얘기를 각색하여 나온 영화이다. 마지막에 시인이 죽으면서 남긴 시다. 일독을 권한다.

<도봉별곡>

 

누군가를 위한 사랑의 시

 

나의 언어로 그대를 어루만지리

내 손은 빈 장갑처럼 무기력하나니

나의 시로 그대를 만지고

그대의 허리와 배를 간지럽히니

내 손은 힘 없고 벽돌처럼 무감각해서

내 조용한 욕망의 소리를 거부하나니

나의 언어로 그대를 두드리니

횃불을 들고

영혼 깊숙히 날 맞아주오

내 시가 그대를 애무하도록.....그대를

 

 

 

2.산행기

시산회 제203회 대모-구룡산 산행기/고갑무

산행일 : 2013. 2. 3(일)

산행코스 : 대모산역 - 구룡산정상 - 대모산정상 - 궁마을

참석자 : 16명 (용우, 정남, 양주, 형채, 원우, 윤환, 경식, 원무, 재웅, 용복, 작, 해황, 문 형, 양기, 갑무, 종화)

동반시 : 틈(김 기택)

 

이번 산행은 금년들어 3번째 산행이다. 원래는 의정부에 있는 천보산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항상 부지런함을 제1의 신조로 삼고 실제 언행일치를 보이시고 계시는 우리 왕회장 김정남 전 회장께서 우리 산우들의 안전한 산행과 교통편의 등을 위해 미리 사전답사를 한 바, 이번 겨울 산행에는 도저히 아니올시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갑자기 도시자연공원으로 서울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대모산으로 산행지를 변경하게 되었다. 하여 다른 산행지와 달리 이번 산행예정자는 역시 부지런함으로 둘째가라면 몹시 서러워할 우리 총장께서 각 산우들께 보낸 문자에 의하면 무려 18명이라 내 짧은 기억으로 비록 우리 산우들이 시산회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줄은 알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여 신청을 낸 것은 처음 봤다.

 

3일 10시에 대모산역에 도착하니 언제나 반가운 우리 산우들의 얼굴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약속시간이 다되어가자 당일 아침에 급한 용무가 생겨 참석치 못한 친구들 3명을 빼고도 무려 15명의 중늙은이(?)들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챙겨 모여들었다. 언제 보아도 반갑고 마음 편한 친구들이다. 나이가 들수록 챙겨야 할 귀한 목록 중에 친구가 꼭 들어가야 한다는 선배들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다. 친구들아 무지 반가우이......

난 그동안 개인적으로 사회복지사인가 하는 공부를 하느라고 우리 모임에 연속적으로 빠져 내심 잘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참석해서 친구들 모임에 명줄이라고 유지하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갔더니, 우리 총장께서 금년도 산행계획을 주면서 내가 오늘 산행기를 쓰는 기자 순서라고 한다. 이름 순으로 정했다고 하니 뭐 그냥 따라야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척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네. 다 이런 것이 나이 먹은 증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 슬슬 일단 구룡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자는 이쪽 동네 리더 윤환이 산우의 말씀에 따라 겨울산행을 시작하였다. 겨울산행은 항상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일단 모든 잎을 털어내고 자기의 벌거벗은 본 모습을 아무 느낌 없이 내보이는 나무의 외부 모습과 피부로 느끼는 쌀쌀한 겨울 공기가 함께 어우러져 왠지 모르는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가파른 산언덕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배낭 안쪽의 등으로 흘러내리는 땀 기운을 느끼다 보면 생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삶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가지게 하는 것이 겨울산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이제 우리들 나이가 경식이 산우말대로 120살까지 산다고 봤을 때 딱 꺾어진 절반인데(너무 욕심이 과했나?) 아무튼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대한 계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일에 관심이 많고 아는 것도 무지하게 많은 양기산우는 앞으로는 우리 산우들 건강유지에 필요한 좀 더 실용적인 건강관련 소식이나 지식을 많이 섭렵해서 우리들에게 전파해주기 바라네. 그러면 내 확신컨대 자네 분명 천당(=극락) 갈 걸세. 다만 상념에 잠기거나 산과 대화를 하고 싶어 조용한 것을 원하는 산우들이 있어 목소리를 한 옥타브를 낮춰주면 매우 고맙겠네.

 

올라간 지 얼마 안됐나 싶은데 벌써 1부 간식시간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해황표 모싯잎떡이 보급되었다. 한 입 베어 무니 찰떡 특유의 쫀득쫀득한 미감이 혀끝으로부터 전해져 온다. 처음 먹어본 것도 아니지만 항상 느끼는 이 느낌이 참 좋다. 더구나 산행 도중의 친우들과 함께 먹는 맛은 평시에 먹는 맛과 별다른 맛으로 느낌이 다르다. 1부 행사를 마치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니 이번에 전 회장님인 형채표 곶감이 산우들에게 1인 1개씩 지급되었다. 원래 손재주 있는 사람이라 이것저것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오늘 본인이 직접 집에서 만들었다는 수제 곶감을 먹어보니 능력이 보통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형채 산우님! 노후에 시간여유가 생기면 사업 쪽으로 한번 구상해보심이 어떠하실는지. 만약 시작하시면 저희 집에서는 책임지고 정기구매를 하겠습니다. 맛이 너무 좋고 당도가 보통을 훨씬 넘는다.

 

드디어, 구룡산 정상 원우 회장님의 짬지표 가래떡이 출현하니 시간도 거의 점심 때라 모두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하나씩 재빠르게 해치운다. 그런데 자상도 하시지, 원우 회장님은 산우들 가래떡 먹는데 목이 메일까봐 식혜를 준비해 한 잔씩 따라 나누어 주고 있다. 이런 부분이 우리 시산회가 유명세를 탈 수밖에 없는, 부인할 수 없는 산 증거들이기도 하다.

 

“시산회 마안세!!! ”

 

한참 가래떡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을 때 갑자기 양기 산우가 절반은 베어 문 가래떡을 들고 지나가는 예쁜(?) 아줌마에게 하나 들고 가시라고 실실 수작을 거는데 아줌마가 미치지 않고서야 머리가 백발인 중늙은이가 그것도 본인의 거시기만도 못한 가래떡을 들이미는데 누가 그걸 덥석 받아들겠는가? 모두들 한바탕 박장대소를 하고 웃으면서 왁자지껄 얘기꽃을 피우는데 오늘의 진미인 총장님 며느리표 홍어무침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니 여기저기서 꺼낸 막걸리로 목을 축이면서 홍어무침으로 반주를 삼으니 산정상의 싸늘한 겨울한기도 여기서는 별 힘을 쓰지 못하는 듯하다.

준비한 음식으로 대충 허기를 달래고 이제는 두 번째 정상인 대모산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배낭은 가벼워지고 몸은 원기가 충천하니 발걸음도 가벼워져 순식간에 대모산 정상에 도달하였다. 오는 도중 모든 산우가 모여 서울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잠실벌을 배경으로 인증샷 한 장은 우리 시산회의 살아있는 역사의 기록이다.

 

오늘의 기자가 된 내가 김용우 산우가 추천한 동반시 김기택 시인의 '틈'을 읽으니 '지화자'라는 추임새도 나오고 낭송에 적합한 목소리라는 칭찬도 나오면서 이구동송으로 " 그 시 참 좋다"고 한다. 용우 산우는 K-20 마을 카페에 꾸준하게 좋은 시를 올리고 있는 시인에 다름 없는 산우다. 그 시를 올리니 다시 음미하자.

 

틈/김 기택

 

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

숨쉬고 돌아다닐 길는 있었던 것이다

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을 우겨넣고

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

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

수십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본다

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온 것인가

그 느리고 질긴 힘은

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있다

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속에서

다리없이 벽과 벽을타고 다니며 우글거리고 있다

지금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 있지만

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하거든

뜯어보라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

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달아나 숨을

그러나 어느 구석에서든 천연덕스러운 꼬리가 보일

틈! 틈.틈. 틈. 틈틈틈틈틈.......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사실은 한줄 가날픈 허공이다

하릴없이 구름이나 풀잎의 등을 밀어주던

나약한 힘이다

이 힘이 어디에든 스미듯 들어가면

튼튼한 것들은 모두 금이 간다 갈라진다 무너진다

튼튼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가날프고 나약한 허공만 끝끝내 남는다

 

자! 이제 산행 뒤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 맛있는 음식점이 즐비한 궁마을로 내려가는데 항상 느끼는 바지만 나 같은 산행초자는 올라가는 산행의 즐거움도 크지만 내려가는 산행의 기쁨은 더욱 크다는 사실을 산우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약 40분쯤 걸어 내려오니 눈앞에 하나 둘씩 음식점이 들어오는데 멀리서 종화 산우의 반가운 얼굴이 갑자기 나타난다. 역시 공자님은 현명하신 것 같다. ‘유붕자원방래하니 불역락호아’라고 일찍이 설파하지 않으셨는가! 종화 산우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곳에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시산회 단골메뉴인 도널드 덕 요릿집으로 들어가 들쳐 맨 배낭들을 풀고 자리에 정좌하니 오늘의 시산회 203회 산행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기쁨을 여러 산우들과 함께 나눴다. 음식점을 고르기 전부터 내린 함박눈이 뒤풀이가 끝날 때까지 계속 내려 모두 '서설'이라고 외친다. 낙지오리탕을 한 그릇씩 먹으며 다음 산행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윤환 산우가 예봉산을 외쳤으나 모두 "에이"한다. 그러나 윤환 산우의 예봉산 사랑은 알아줄 만하다. 식사가 끝나고 나올 때까지 함밤눈은 푸짐하게 내려 우리들 마음까지 포근하게 한다. 우리가 산행을 할 때는 항상 날씨가 좋은 것을 보면 하늘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는 것임에 틀림없다.

제 203회 대모-구룡산 산행기 2013년 2월 3일 고갑무 올림

 

3.산행지

이번 산행은 두물머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예빈산으로 정했다가 나양주 산우의 사무실의 덕유산 시산제에 동행하기로 수정했다. 지난 2년 전 산행 때 가지 못한 종주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 향적봉에서 폭설로 출입정지를 당해 돌아선 적이 있어 아쉬웠지만 다시 가게 됐으니 반가운 일이다. 눈꽃 산행의 추억을 잊을 수 없어 자주 거론이 됐지만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구상나무에 덮인 눈꽃과 금강석처럼 빛나던 상고대의 빛깔을 잊지 못한다. 좋은 기회가 왔으니 제백사하고 모두 모이자. 마침 시산제를 올리는 산행이라 먹을거리가 많을 테니 배낭은 최대한 가볍게 꾸리고 음식은 함께 지고 가야 한다. 먼거리 산행이니 늦지 말자. 코스에 대하여는 합의되지 않았으니 그 산악회의 회장님과 상의할 예정이다. 아이젠은 잊지 말고 챙기자.

 

2월 6일에 재경 총동문회 산악회 신년교례회가 있어 전작 회장님과 박형채 전 회장은 사정이 있어 불참하고 조문형 총장과 함께 참석했다. 5회 선배 네 분을 포함하여 22명이 모였다. 작년에 관악산과 광덕산, 청계산 등 3회의 산행을 했다. 이월된 회비는 4,364,043원으로 살림살이는 넉넉했다. 19회 현 회장 조성갑 선배가 1년을 더 하고 내년에는 20회가 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해서 내가 일단은 수석부회장을 맡기로 했다. 올해와 내년의 동문회 산행은 우리 시산회원들의 협조가 필요하니 많은 협조를 바란다. 가장 화제에 많이 오른 것은 우리 시산회의 문집 '산과 시'였다. 모두 자랑스러워하고 혹은 부러워했다. 남으면 달라는 요청이 많아 조문형 총장이 전달해주기로 했다. 19회의 경우는 산행기를 쓰라고 하면 불참해버린다는 것이었다. 올해의 시산제는 매년 관악산에서만 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이 있어 이미 3월 9일(토)에 도봉산으로 정했고 장소는 내가 추천한 곳을 미리 가보고 정한다고 했다. 내가 추천한 곳은 용어천계곡의 중간인 제6휴식처다.

 

4.동반시

동반시를 대모-구룡산 기자에게 부탁했더니 고갑무 산우가 산행기와 함께 3편의 시를 보내왔다. 한 편의 시는 이미 동반한 시여서 그가 권유한 아래 시를 동반한다. 류시화 시인은 잠언류의 시를 많이 써서 그들의 세상에서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상처 받은 영혼에 위안을 주는 시인이다. 누구든 한때 이유 없이 빗나간 사랑의 기억이 있다. 떠나간 사랑은 눈부시지만 남은 사람은 슬프다. 그런 류의 시로 해석하는데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류시화 시인 시 3편을 선시하였는데 다 좋지만 '들풀'이 더 마음이 끌리네. 통상 우리 시산회 산행시가 A4 용지 한 장을 다 채우는 정도의 분량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선정한 시는 시 원문대로 띄어쓰기를 많이 하니까 일단 한 장은 채우긴 하는데 웬지 조금 짧은 감이 있네. 길이까지 고려한다면 '누구든 떠나 갈 때는'이 적절한 것 같고....

혹시 앞의 동반 산행시에서 이미 낭독한 시인지도 모르니까 자네가 잘 참고해서 선시를 해주면 고맙겠네. 난 지금 강원도 봉평의 노인요양원에서 동생 일을 도와주느라고 거의 이곳에 와있네. 일은 낯설고 조금 힘들지만 여분의 시간을 활용한다는 기분으로 지내고 있네. 또 연락함세. 고갑무."

 

누구든 떠나갈 때는/류시화

 

누구든 떠나갈 때에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더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는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2013년 2월 20일 신당도서관에서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