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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분당 영장산(詩山會 제257회 산행)

 

분당 영장산(詩山會 제257회 산행)

 

산 : 영장산(413미터)

 

코스 : 야탑역-종지봉-솔밭쉼터-정상(하산 및 뒤풀이장소는 당일 결정)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15년 4월 18일(토) 10시 30분

만나는 곳 : 분당선 야탑역 2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간식, 과일

 

연락 : 위윤환(010-6230-3180)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시산회 카페 : cafe.daum.net/yc012175

 

 

 

1.詩를 통한 時論

 

진도 맹골수로의 분노/도봉별곡

 

하늘도 마르지 않는 이른 아침

눈물 같은 봄비 뿌리고

빗소리 차갑다

 

4월은 대지만 잔인한 줄 알았더니

4월의 바다는 서러움에 잠 들지 못한다

 

활짝 피어보지 못하고

오고가지 못하는 구천에서

진 꽃잎들

다시 돌아올 길 끊어졌으니

 

오늘

내쉬는 더러운 체념은 누구의 주머니 속에서 울고 있는가

내리치는 천둥번개는 누구의 분노인가

밤마다 맞이하는 절망은 누구의 한숨인가

 

무수한 예수와 붓다가 다녀갔어도

세상은 달라진 것 없어

끝 모르는 양

눈물 내리는 참담한 오후

 

시를 통한 시론을 잠시 중단했다가 오늘은 다시 쓴다. 1년 전 세월호 사건에 즈음하여 써놓은 시가 사라졌으나 다시 쓰면 되니 아쉬울 것은 없다. 하여 오후에 급하게 30분 만에 다시 썼다. 진실 규명과 선체 인양, 보상금 등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 갈등을 끌어온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조건이 붙은 보상금의 진실을 그대로 믿는다면 참으로 얄미운 정부와 여당이다. 마침 이 글을 오늘 쓰게 된 것은 무엇에 홀린 것 같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읽었던 것이 생각나서 더럽게 잔인한 달 4월에 짧은 망설임 끝에 쓴다. 30년 전에 명문대 총장을 지내다 65세에 퇴임하여 지금은 95세가 되신 분의 주장이 오롯이 담긴 글이다. 5년 전 90세가 되던 해에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퇴임 당시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수명이 67세로 기억하고 있으니, 젊은 날에 유학 가서 어렵게 공부를 하다가 건강을 해쳐 건강하지 못한 자신은 평균수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예상하여 편안하게 지내면서 여명을 준비했다고 한다. 생활의 어려움을 없었으니 거의 무위도식(無爲徒食)을 즐겼다고 했다. 그러나 간혹 감기 정도만 걸리면서 지내다보니 어언 90세를 맞이한 생일의 새벽에 무의미하게 보낸 25년이 그리 서럽고 아까워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인문사회학자로서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를 쏟아내기도 하고 하늘을 보며 주먹을 쥐어봤지만 자신의 명예를 흠집 내고 싶지 않아 사회참여는 하지 않고 거기까지만 했다고 한다. 세상은 혼자의 힘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으니 후학들이 잘해줄 것을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수많은 성인들도 바꾸지 못한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세상을 밝혀줘야 할 종교는 자신들의 책임은 버려두고 자신들의 종교의 이익만 생각하고 앞만 보고 갔다고 한다.

 

그가 하고 싶은 얘기의 골자는 세월호 사건을 당하여 인문사회학자로서 자신의 명예에 누가 될 것이 두려워 사회참여를 게을리 한 죄를 씻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학들은 여명을 고려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1인 1개의 사회참여를 권했다. 그것이 생리에 맞지 않으면 반드시 창작의 길을 가라고 한다. 멀어도 가지 않은 것보다 나아간 만큼 나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것이 후회스러웠던 자신은 5년 동안 한시와 붓글씨를 배워 시를 짓고 글씨를 써서 모임에서 전시회를 할 만큼의 조그마한 쌓기를 즐겼다고 한다. 나는 그분의 글을 읽고 무릎을 쳤다. 내가 달리 할 일이 없어 도서관에서 시 쓰기를 배우고 공부하여 50편의 시를 지었으므로 앞으로 계속 지을 것이며, 시 창작 교실에서 하루를 꼬박 준비해야 할 15분의 철학 강의를 하고, 시인 선생이 문체가 특이하다면서 강권하였으나 재능의 부족을 이유로 망설이던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에서 잘 써야 한다는 것과 끝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내 생각이 다 옳고 맞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친구들에게 여생을 사회참여나 자신의 소질에 맞는 창작활동을 해 볼 것을 은근히 권해본다. 부자는 삼대를 가지 못하니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부자는 없으며, 이름을 남기는 것은 학자나 예술가 등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니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허무주의의 슬픈 그늘을 우리는 일찍 걷어버리고 죽을 때까지 창조란 것을 해보자.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256회 모락산 산행기 (2015. 3. 22. 일요일)

참석 : 김정남, 나양주, 전작, 정해황, 조문형, 한양기, 한천옥, 임삼환, 정동준, 정한 ,최근호, 위윤환, 박형채, 최광일, 김종화, 고갑무, 이재웅(이상 17인의 산사나이들)

코스 : 인덕원역-내손배수지-모락터널-제2호봉-석성-전승기념비-갈미문화공원

뒤풀이 : 의왕 민속주점(간장 코다리찜, 파전, 막걸리)

 

오늘은 의왕시에 있는 해발 410미터 모락산에 오르는 날이다. 날씨는 쾌청하고 느낌에 많은 시산회원들이 참여할 성 싶었다. 아직 오르지 않은 야트막한 산이고 날씨도 좋고 위 총장이 ‘최상의 뒤풀이에 1만원 회비 공짜’ 라는 광고를 했기 때문이다.

 

10시 반에 인덕원역 2번 출구에 17명이나 모였다. 한양기 산우가 나타나 감태 김치를 10개 풀어놓으니 눈 깜짝할 사이에 금방 동이 났다. 완도 75세 누님께서 동생에게 보낸 거란다. 아무튼 맛나게 먹겠네. 누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시게나, 양기 산우! 정한이가 준비한 차를 한잔 나눠 마시고 출발 준비를 했다.

 

어떤 산우가 입을 열기 시작하자 위윤환 총장의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한다. 역대 최고의 총장이 될 거란다. 칭찬은 히말라야도 움직인다니 이도저도 즐거운 일이다. 모두가 잘 되면 좋은 일 아닌가.

 

오늘 가이드는 양주 산우가 맡았다. 3열 종대로 길게 늘어서서 골목길을 지나고 의왕천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모락산 들머리의 내손배수지 근처 모락산 약수터에서 인원 점검 후 능선길로 올랐다. 살랑이는 봄바람이며 아직 머금은 진달래꽃, 노랗게 활짝 핀 생강나무꽃들이 우릴 반겨주었다. 꽃바람에 취하니 문득 상념에 잠기며 옛날 읊었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연가(戀歌)/헤르만 헤세

 

나는 꽃이기를 바랐다.

그대가 조용히 걸어와

그대 손으로 나를 붙잡아

그대의 것으로 만들기를.

 

또 나는 붉은 포도주이고 싶었다.

그대의 입으로 달콤하게 흘러들어가

그대와 혼연일체가 되기를,

그리하여 그대와 나를 건강하기 만들기를.

 

높은 능선길에는 지난해 태풍으로 넘어진 나무들이 많아 우리는 유격훈련장에 오는 듯 엎드리고 뛰어 넘으면서 통나무 지나기를 하였다. 오르막에서 한숨을 돌리고 조금 더 가니 모락산 제2봉이 나타났다. 쉼터에서는 어김없이 먹거리가 나온다. 누군가 오이를 썰어와 갈증을 풀어 주었다. 30분쯤 더 가니 백운산 자락에서 고향을 먼데 두고 서울에서 살아온 우리 또래 초등학교 친구들 산행팀들이 시산제를 지내고 있었다. 우리도 그 옆 양지바른 너럭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양주표 청포도와 고갑무표 생밤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제1봉을 지나 모락산 정상으로 향했다. 직선이 아닌 S코스모양으로 걷기 좋은 옆길을 아기자기하게 계속 걸었다. 어김없는 12시 반경 배꼽시계는 우리들 17명이 편이 앉아 식사할 곳으로 인도한다. 모락산 9부 능선 남쪽에 옛 절터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 자리를 펴고 식사준비를 한 다음 오늘의 기자인 본인은 동반시를 읊었다.

 

다시 피는 꽃 - 도종환

 

가장 아름다운 걸 버릴 줄 알아

꽃은 다시 핀다.

제 몸 가장 빛나는 꽃을

저를 키워 준 들판에 거름으로 돌려 보낼 줄 알아

꽃은 봄이면 다시 살아난다

 

가장 소중한 걸 미련 없이 버릴 줄 알아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낸다

하늘 아래 가장 자랑스럽던 열매도

저를 있게 한 숲이 원하면 되돌려 줄 줄 알아

나무는 봄이면 다시 생명을 얻는다

 

변치 않고 아름답게 있는 것은 없다

영원히 가지 것을 누릴 수는 없다

나무도 풀 한 포기도 사람도

그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바다까지 갔다가 제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제 목숨 다 던져 수천의 알을 낳고

조용히 물밑으로 돌아가는 연어를 보라

물고기 한 마리도 영원히 살고자 할 때는

저를 버리고 가는 걸 보라

 

봄이 오는 길목에서 참 잘 선택한 시 한 수라고 생각되었다. 도종환 시인은 지금 국회 교육분과위원으로 의원회관 333호에서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시고 계신다. 지금도 시인으로서 명함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문구가 있다.

 

일명 먹산회답게 오늘도 막걸리, 지초주, 생굴, 홍어무침, 유부초밥, 김부각, 군고구마, 김밥, 산갓초절임, 냉이무침, 사과 등등 적절하게 나눠 먹었다. 위 총장이 주섬주섬 모자에 무언가를 넣고 일어나 오늘의 이벤트 행사를 했다. 1축2봉인지 1꽝2봉이라 해야 할지, 뽑기를 해서 결과는 정동준 산우와 김종화 산우가 쓰레기 봉사담당이 되었고 우연의 일이긴 해도 위 총장 바로 옆에 있었던 임삼환 회장에게 1만원 회비면제 당첨의 영광을 안겨 주었다. 주최측의 농긴이 있었다고 떠들었으나 웃음으로 지워졌고 올해 처음 시행한 즐거운 뽑기 산행놀이의 끝에 봉지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입안을 행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상을 향해 오르니 모락산 석성의 역사가 보였다. 한성백제가 마한과 고구려에 대항하여 한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석성이었단다. 모락산 전승 기념비를 보니 6.25때도 전투가 치열했던 모양이었다.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1사단 15연대가 중공군을 궤멸시킨 전투다. 해발 385미터의 모락산이 의왕지역의 전략요충지라는 증거를 나타낸 흔적들이 보였다. 점심식사 후라서 정남의 고도계를 보니 385미터를 가리킨다. 우리는 여기를 정상으로 인정하고 이곳과 높이가 같은 건너편 모락산 정상 산행을 포기하고 정상 인증 사진을 찍고 하산을 선택했다.

 

그냥 내려오기가 싫었던지 사인암 밑에서 의왕 쪽 전경을 바라보며 양기 산우가 아껴놓은 원두커피를 17명이 고루 나눠 마시고 그 자리를 모락카페로 명칭을 부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오는 길 역시 직선길이 아니고 부드런운 곡선길이라 이리저리 돌아내려왔다. 3시경 모락터널 쪽으로 하산하니 조금은 긴 산행이라 생각되었다. 한글공원을 지나니 알곡교회에서 호떡봉사를 하고 있어 모두 호떡 한 개씩을 입에 물고 오물오물 즐겼다.

 

최상의 뒤풀이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궁금했지만 배가 부른 관계로 간단하게 마무리 했다. 민속주점에서 간장으로 양념한 코다리찜을 주인이 추천하여 산행 후의 입맛을 즐겼으니 오늘도 좋은 날이다. 그것도 부족해 다시 짝을 짓는 산우들을 보며 집으로 향했다. 시산회 산행은 마음이 즐겁고 입이 즐겁고 귀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제공하니 이보다 좋은 만남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저세상 가는 날까지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산행해보세!

오늘도 시산회 산우들과 즐거운 하루였다네. 시산회, 만세!

 

오늘의 기자 박형채 씀

 

 

3.산행지

4월 12일에 오르기로 한 영장산을 미루다가 이번에 오른다. 염재홍 산우의 딸과 신원우 산우의 딸 결혼식은 축하해야 할 행사이나 나창수 원장의 모친상은 함께 안타까워 해야 할 일이다. 영장산은 기세환 산우가 허리가 아파 자주 나오지 못했으므로 그의 집 부근의 낮은 산으로 정하게 되었는데 몇 년이 흘러 연중 행사가 되었다. 기 산우는 컨디션을 잘 조절해 꼭 참석하고 우리도 그의 웃는 얼굴을 보자.

 

 

4.동반시

꽃이 지지 않아도 봄날은 가고

천둥번개 치지 않아도 여름 오거늘

가을 옷은 너에게 없으니

눈 녹지 않아도 겨울 지나가고

또 봄은 오나니

-<낙화. 동백꽃/도봉별곡>부분

 

어김없이 꽃은 피고 진다. 어수선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春來不似春을 불렀던 중국 4대 미녀 중 왕소군의 생각이 든다. 그래도 꽃 피고 지는 봄은 왔으니 봄 노래 없이 봄을 보낼 수 없으니 이 노래를 동반한다. 이 좋은 시를 누가 읊은 것인가!

 

강남춘(江南春) ―이흔복(1963∼ )

 

산에 산에 두견 너는 어이 멀리를 우짖는가. 너는 어이 가까이를 우짖는가. 달 가운데 계수나무 그늘도 짙을러니 내 후생하여 너를 엿듣는 봄은 이리도 화안히 유난하다.

 

일찍이 내가 먼 곳을 떠돈 것이 내가 나를 맴돎이었으니, 미쳐 떠돎이 한결같이 쉬지 않았으니 도화는 붉고 오얏꽃은 희며 장미꽃은 붉다.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가끔 슬쩍 앞자리를 다투는 듯 나고 죽고 가고 온다.

 

날마다 당당(堂堂)하여 천천만만의 산 멀리서 바라볼 때는 앞에 서 있더니 어느새 뒤에 서 있다.

 

오늘 맑은 바람만 두루 불어 뿌리 없는 눈(眼) 속의 꽃을 오며 흩고 가며 흩으면서 그침이 없으니 아름다운 날들은 점점 멀어지고 나는 홀연 서러워진다.

 

2015. 4. 16.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