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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도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265회 산행)

도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265회 산행)

산 : 도봉산

코스 : 도봉산역-도봉계곡-용어천계곡-마당바위-시인의 계곡-도봉산 입구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5. 7. 26. (일) 오전 10시 30분
모임장소 : 1.7호선 도봉산역 7호선 대합실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간식, 과일

연락 : 위윤환(010-6230-3180)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시산회 카페 : cafe.daum.net/yc012175

 

 

1.시가 있는 여름

 

후련한 수련 ―박성준(1986∼ )

 

항상 얼굴의 북쪽에서만 키스를 하겠소

한 무리의 싱거움을 조롱하고 가는 입김

수련의 속내가 태양의 뿌리를 흔들며 연못을 개봉하고

가라앉은 얼굴을 꺼내 봉인해온 말을 터뜨리면

자꾸 모르는 이름만 가시를 쥐고서 여름을 방문하고 있소

외침이 될 때까지 몸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헤매는 춤의 하소연이란

애인의 소란스러운 울음을 감싸 안을 때처럼

반짝이는 빈틈으로 여기에 거울을 깨고 있소

모르는 말이 건너오는 동안

바늘을 쥐고 삼베처럼 웃으며 깊은 혀를 꾹 다문 수련

저기 후련하게 수련이 물을 쥐고 솟아 있소

물속을 듣던 바위의 귀는 오래오래 초록을 껴안고

시시때때 하얀 발톱들은 잇몸 근처에서 자라나오

어쩌자구 물속에는 찡그린 미간들이 그리도 많아

물의 어깨를 비튼단 말이오, 비바람과 수련이 키스를 나누는 동안

저 부력은 감은 눈꺼풀에서 풀려 나오는 힘

눈을 감고 응결하는 입술과 입술들의 향연

빗줄기의 청력이 허공과 연못을 꿰매고 있소

서로가 서로에게 눈이 없어 몰라도 좋을 얼굴, 그저 묻고 있소

향기로 취미를 가진 우울한 표정들이여, 꺼져가는 물속의 핏빛을 보오

툭 터진 엄지에서 연못을 향해 배어 나오는

개봉된 허공의 저 피를 보시오

 

 

‘저기 후련하게 수련이 물을 쥐고 솟아 있소’, 이 한 구절만으로도 감각을 후련하게 치고 들어오는 생생한 이미지의 시다. 그러나 여름날 빗속에서 연못에 피어 있는 수련을 모사하는 시인들은 ‘한 무리의 싱거움’이라는 게 박성준의 시 의식(詩 意識). 그에게 세상 만물과 만사는 그 수면 아래 ‘가라앉은 얼굴’이 있는 것이며 시 쓰기는 그것에 ‘몸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헤매는 춤’, 언어의 고행이자 축제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거울(수면)을 깨고’ 있는 ‘하얀 발톱들’인 ‘비바람’은 수련과 ‘키스를 나누는’ 동시에 ‘모르는 말’로 ‘허공과 연못을 꿰매고’ 있는 것이다.

 

‘항상 얼굴의 북쪽에서만 키스를 하겠소’, 죽은 이의 머리를 북쪽에 두는 관습과 잘 때 머리를 그리 두지 말라는 미신이 떠오른다. 죽음의 세계인 ‘북쪽’에서만 접촉하겠다니…. ‘바늘을 쥐고 삼베처럼 웃으며 깊은 혀를 꾹 다문 수련’이 상복이나 수의를 짓는 처녀처럼 귀기 서리고 처연하다. 생이 뿌리 내리고 있는 연못의 깊은 속내를 휘저으며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 삶을 언제나 간섭하는 죽음이 연기처럼 증기처럼 ‘풀려 나오고’ ‘배어 나온다’. 이 낯설고 음습한 세계의 긴장된 고요, 들끓는 정적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박성준은 ‘어쩌자고’ 무당 같다. 엄지손가락을 물어뜯는.

 

-시평<황인숙 시인>

 

 

 

 

2.산행기

 

2015. 7. 12.(일) 남한산성 산행기 / 김진오

집결 장소 : 마천역

동반시 :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 / 도봉별곡 김정남

뒤풀이 :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집에서 옻닭백숙

참석 : 김종화, 조문형, 위윤환, 김진오, 김정남, 박형채, 임삼환, 정한(8인의 산사나이들)

 

7월 12일 새벽. 어제 행사가 있어 오랜만에 서울에 왔다. 평택에서 전기공사 감리를 보니 현장생활에 젖고 무더운 곳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니 홀아비들이 뭉치는 일이 많다. 평택은 경기도지만 서산, 당진과 붙은 곳이라 출퇴근은 쉽지 않다. 이 나이에 매일 운전은 무리한 짓이고 전철은 서서 다녀야 하니 말이 경기도지 그냥 지방이다. 그러니 지인들의 애경사 아니면 서울에 올라올 일도 없다. 마나님이 2주에 한 번쯤 다녀가는 영락없는 홀아비 신세다. 낮에는 땀에 절어 지내다 밤에 퇴근하면 당연히 출출해진다. 홀아비들끼리 술 한잔에 객고를 푸는 즐거움을 무엇과 어디에 비기랴.

 

그런 이유로 시산회 산행에 자주 빠지게 되어 미안하던 차에 마침 남한산성에서 옻닭백숙을 먹는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마나님을 보니 함께 가자고 그냥 꺼내보는 얘기에도 나이가 들어선지 무심하다. 집에서 가까운 마천역이 만나는 곳이라 천천히 집을 나선다. 장마라는데 간간이 비를 뿌린다. 마천역에 도착하니 반가운 세 친구가 기다린다. 늦지 않게 모두 시간을 잘 맞춘다. 가장 가까운 종화가 그나마 늦었으나 무슨 대수랴. 교회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들을 보니 축제마냥 즐거운 표정을 짓고 악수를 나누고 웃는 얼굴이 떠나지 않는다. 그 얼굴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바 없다.

 

자! 8인의 시산인들. 출발하자. 위 총장은 참석자가 적어서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에효! 이 숫자도 감사해야지. 다행히 새벽까지 뿌리던 비가 잦아들었다. 형채를 만나기 위해 부대 앞 휴게소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밤새 내린 비에 참석자가 적다는 위 총장의 말에 “일체유심조라.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니 한 친구가 웃으며 받는다. “일체유심조는 화엄경에 나오는 말인데 원래의 뜻은 너의 맘이 세상을 만든다는 뜻”이라고 한다. 다른 친구는 “그 말이 그 말이네.” 그런가, 어렵네.

 

막걸리 세 병을 챙기고, 먹을거리 상가들이 즐비한 들머리를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위 총장이 오늘의 기자를 들먹이는데 도와줄 테니 이 좋은 날 산에서 시를 낭송하는 영광을 가져보라고 한다. 그래 마음이 세상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든다는데, 자, 만들자, 좋은 세상을. 같은 반이었던, 같은 노가다 정남이가 옆에서 씩 웃는다. 가파르지 않은 길에 흐리니 해는 먹구름 뒤로 숨었고 산의 기운이 노하면 분다는 센 바람이 불어주니, 밤새 내린 비에 땅은 적당히 젖어 감사한 일이다. 고맙게도 종화와 윤환이가 상의해가면서 선도해주니 편한 길을 오른다.

 

나이 들어 더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버리고 갈 것이 많아서 좋다는 노 작가들의 얘기였다고 한다. 우리 시산회 산행기와 보내주는 문자에 그런 글이 자주 오르는 것을 보니 우리도 벌써 그 나이가 되었나! 지금은 작고하셨으니 저 하늘 어디쯤 편하게 웃고 계실 거라 한다. 박경리와 박완서, 현대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분들. 조근조근 말을 주고받으며 오르는 길이 어렵지 않다. 하기는 남한산성길이 어렵지는 않지. 전망대에서 보니 구름 사이로 서울 시내가 간혹 보인다.

 

인증샷, 명정사진, 친구들이 영리하니 말도 잘 지어낸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르지만 지나가는 뿌연 것들을 헤치면서 마나님들이 챙겨준 간식을 먹으며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오르는 곳에 거의 왔는지 정상주를 마시자고 한다. 위 총장이 간식을 꺼내라 하니 형채가 방울토마토를 꺼낸다. 한강변에서 농사를 짓는다는데 벌써 수확했을까? 에효, 부지런한 친구, 이 더운 여름에 수고한 만큼 가을은 풍성하겠지. 한 잔씩 따르니 바로 바닥을 보인다. 곧 옻닭백숙을 먹을 거니 간식은 나중에 먹고, 시 낭송도 뒤풀이 때 하자고 한다. 아쉬움은 뒤풀이 때 풀자며 서둘러서 짐을 챙긴다.

 

암문을 지나 돌아서니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앞 사람의 뒤만 보고 내려간다. 비 오는 날의 산행은 오히려 쉽다고 하는 의미를 이제 알겠다. 아래와 주변이 보이지 않으니 앞 사람의 뒤만 보고 가면 된다. 어느덧 12시 반이 되고 옻닭백숙을 예약한 집이 보인다. 그러나 예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를 지나가는 과객으로 보았다는 얘기다. 이래 가지고 오래 장사할 수 있을까!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뒤에 겨우 방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시장이라는 반찬이 하나 더 늘었다. 하하하. 세상사는 내 마음이 만든다지. 반찬과 술이 먼저 들어오고 본품인 옻닭백숙이 도착할 무렵, 시 낭송을 하게 됐다. 이 나이에 이런 일로 긴장했는지 잠시 침이 마른다.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 성지 순례 / 도봉별곡

 

비 그쳐 바람 불던 오후

구도(求道)가 비처럼 하릴없이 내리면 문득

히말라야에 가고 싶어졌다

 

가서

투명한 하늘 떠도는 바람의

손님으로

아무리 둘러 봐도 망망한 바다 같은 고원에서

한 그루 소나무로 서서

길손들 이정표 되어

다시는 영영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혹은

룽다로 가부좌 틀고

신을 부르는 깃발 다르초와 말벗 되어

오고가는 사람들 말리며

손 흔들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바람에 젖으면

함께 젖어 웅얼거리다

바람이 훠이훠이 목 놓아 우는 날은

어우러지며 춤추며 하늘로 올라 마침내

히말라야 성전의 정수리에서

만년설로 자취 없이 사라지고야 마는

눈으로

 

또는

바람으로

황사 바람 부는 봄에는

성지 순례하는 고행자처럼 실크로드 지나

히말라야로 떠나봐야겠다

기어이 쉬지 않는 바람같이

 

 

*도움말

룽다 : 히말라야에 가면 돌무덤 옆에 세로로 길게 세운 깃발. 경전이 새겨져 있다.

다르초 : 돌무덤 옆에 만국기처럼 네모진 깃발이 많이 서있다. 역시 경전이 새겨져 있다.

 

시 제목을 읽고 작자를 읽으려는데 익숙한 이름이 아닌가. 도봉별곡, 김정남. 건너뛰고 읽었다. 그때는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산행기를 쓰면서 메일을 보니 히말라야에 성지 순례를 하고 싶다는 뜻이다. 아니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낭송을 끝냈는데, 이상하게 아무런 말이 없다. 평소에는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어렵다, 쉽다고 말들이 많았는데 순간, 꿀 먹은 벙어리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를 다시 올리니 잘 감상하기 바란다.

 

그것도 잠시 한잔의 건배사 “호랑이를, 위하여‘에 다시 시끄러워진다. 에이, 다음 건배사는 ’용을, 위하여‘로 하자. 우리가 용띠들 아닌가. 옻닭백숙에 대해 설왕설래 했으나 맛 전문가 전라도 사람들 티는 이럴 때 꼭 나타난다. 다만 예약한 사람의 심정도 헤아릴 줄 알아야지. 어쨌든 친구들 우중에 수고했고 사정상 자주는 가지 못하지만 반가웠네. 끝나고 당구 친구들끼리 한 게임 하고 잘 친 친구가 한잔 사니 그것도 즐거웠던 일. 휴일, 서울의 하루는 친구가 있어 평택의 하루보다 즐겁다.

 

평택에서 진오 씀.

 

 

3.산행지

이번 산행지는 불암산으로 정하려다 그늘이 적고 물이 없다는 의견이 있어 도봉산으로 돌렸다. 도봉산은 그늘이 많고 물이 많으니 여름 산행지로 적격이다. 탁족을 할 수 있는 코스를 요청하므로 오를 때, 도봉계곡-용어천계곡의 눈썹바위에서 탁족하고 계곡 상류에서 너른 곳이 많으니 먹고 마시고, 하산할 때, 시인의 마을 밑 여승방인 금강암 뒤 시인의 계곡에서 탁족 한 번 더하고 도봉산 입구로 하산할 예정이다. 한여름의 한복판에서 집보다 산이 좋을 수 있으니 많이 모이자. 도봉산 입구가 등산복 가격이 가장 싸다는 정보 하나 드린다. 왜? 입산객이 전국에서 가장 많아서다. 도봉의 바위들이다. 자운봉, 배추흰나비바위, Y(와이)계곡, 만장봉, 선인봉, 신선대, 뜀바위, 에덴바위, 주봉, 병풍바위, 칼바위, 물개바위, 소바위, 오봉, 여성봉, 우이암 등. 모두 오른 사람 있는가.

 

4.동반시

갈수록 동반시를 고르는 게 어렵다. 산우들의 취향과 내 취향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선택이 어려우므로 오죽하면 내 시를 가져갈까! 남한산성에 동반한 시는 어렵지 않게 쓴 시인데 평이 없는 게 궁금하다. 더 쉽게 쓰라고? 그건 못한다. 쉬운 사랑 시는 아침에 한 편씩 올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동반시는 어렵더라도 참기 바란다. 마침 20년 전 여름 가족과 영월 단종릉 장릉에서 보리밥 먹던 일, 영월과 제천에 지었던 아파트, 일 끝나고 주천에서 쏘가리, 꺽지회 등 민물회와 맑은 물 산메기 매운탕을 맛나게 먹던 즐거움, 동강에서 낚시하던 생각이 일어난다. 그때가 좋았던가!

 

 

서강에 다녀오다 / 임형신

 

소나기재 베고 누워 있는 장릉 지나

서강에 이르다

물이 불어 오늘 배 못 뜬다네

적소가 보이는 주막거리에 앉아

강울음 소리 들으며

술을 마신다

여름이 분탕질은 끝났다

하늘을 찢어버리고 서강에 내려온

원호(元昊), 강의 역사 다시 쓰고 있다

생을 찢어버리고

온몸으로 길을 열고 들어온 김립(金笠)

강바닥에 시를 널어놓고 몸을 감추었다

물소리 날아다니고

나비가 된 시들이 내려앉는 곳마다

골골이 흘러든 사람들

울음토끼처럼 숨어 우는

골짜기 너머 너머

또 너머

다시 분탕질로 얼룩진 강가에

아직도 시는 날아다니고

금표비가 보이는 언덕에 주저앉아

자꾸 술잔이나 기울이고 있는

영월은 너무 멀다

 

*원호(元昊) : 생육신의 한 사람. 서강에 집을 짓고 살다

*김립金笠 : 김삿갓, 김병연

 

2015. 7. 23.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