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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남한산성에 오릅니다(詩山會 제295회 산행)

남한산성에 오릅니다(詩山會 제295회 산행)

산 : 남한산

코스 : 산성역 - 수어장대(하산은 뒤풀이 장소를 감안)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6. 10. 9. (일) 오전 10시 30분

모이는 장소 : 전철 8호선 산성역 1번 출구

준비물 : 안주, 간식, 과일, 막걸리

연락 : 염재홍(010-4948-6975)

카페 : cafe.daum.net/yc012175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1.시가 있는 산행

치명적인-박상률(1958~)



상수리나무 휘감고 올라가는 칡넝쿨, 거침없다
휘감은 자리마다 나무의 살 깊게 패인다
나무의 굵은 허리 지나 가슴에 이르도록
세게 휘감은 사랑의 자국
상처 되어 깊이 박힌
치명적인 사랑에 붙들려
나무는 가만히 선 채
신음만 나직하다
(사랑하되 너무 깊이는 말고)
칡넝쿨은 그런 소리 아랑곳없이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거릴 때마다 휘감을 사랑 또 찾는다
깊이 붙들어 매지 않으면 아니 될 운명, 치명적인

욕망은 항상 무엇을 ‘향해’ 있고, 대상을 규정하고 전유(專有)한다. ‘나’의 욕망이 대상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자국”을 새긴다. 이것은 일종의 소유권 표시 행위이고, 철학자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영토화(territorialization)’다. 반면에 사랑은 “치명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소유욕만 있는 곳에 사랑은 없다. 소유는 지배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2.산행기

시산회 제294회 검봉산 산행기 / 박형채

산행지 : 춘천 검봉산

참석 : 김정남, 조문형, 김종화, 김진오, 한양기, 박형채, 염재홍, 위윤환, 정동준(9인의 시산인) 정한 뒤풀이참석(전체 10인)

동반시 : 화엄사 중소 / 박진규

뒤풀이 : 양지닭갈비집

 

등산하기 좋은 가을 하늘에 잠실5단지 앞에서 강촌 행 강원고속버스를 타고 진오와 동승하여 편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전철의 혼잡과 환승하는 번거로움 없이 1시간 후 강촌역 옆길에 하차하였다. 자전거, 오토바이, 사발이(사륜 바이크) 대여장에서 구경하다가 450만 원짜리 산악투어형 사발이를 관심을 갖고 눈 여겨 보았다. 임도가 많은 강원도에 적합한 이동수단으로 좋을 것 같다. 대여장 아저씨는 일이 없는 주중에는 그걸 타고 더덕이며 산나물을 뜯으러 간단다. 만약 그걸 타고 도로주행을 하면 바로 딱지란다. 번호판이 없어 동네나 농로용 운반수단이기 때문이다.

 

문형이가 1차로 도착했고 2차로 동준이 종화가 와서 내 친구가 선물한 초란 한 판을 역 앞 광장에서 펼쳐놓고 초란맛을 보았다. 조금 작지만 고소했다. 동준이가 떡을 한 개씩 배급해놓고는 이 근처에서 닭갈비 먹고 산행을 끝내자는 재미있는 제안도 있었지만 10시 반경 9명이 모두 모여 길을 나섰다. 구곡폭포 매표소를 못가고 우측으로 들머리를 정해 오른다. 가파르다. 2년 전 이곳 산행 기억이 생각나지 않고 생소하다. 잣나무가 우거진 가파른 길을 숨을 몰아쉬며 가는데 가끔 잣송이가 떨어져 주워서 들춰보니 잣알이 튼실하게 들어있다. 가평잣은 전국수확량 70%정도란다. 그래서 잣막걸리, 동동주가 유명하기도 하다. 청설모가 먹을 식량인데 군데군데 등산객들이 발견하여 채취한 흔적이 많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욕심이 묻어난다. 쉼터에서 물 한 모금씩 들이켜고 땀을 흠치고 또 출발한다.

 

남자 한 사람을 앞세우고 6명의 여성 일행이 앞에서 쉬고 있는데 조문형 사장이 즐거운 인사로 대화의 문을 열고 20분 이상을 '히히깔깔' 노래로 배꼽을 즐겁게 하였다. 여성심리진단학 박사학위 수여자로 추천해도 될 듯했다. 58년 개띠란다. 요새 한국정치를 개판(?)이라 하는데 쉽게 누구나 자기 나이를 표현한다. 오르막의 힘겨움도 이런 시간을 보내며 거뜬히 9부 능선까지 올랐다. 배꼽시계가 벌써 지나 1시경이라 정상을 눈앞에 두고 주저앉을 모양새다.

 

그래도 정상을 넘어 인증샷을 한 후 맘 편히 자리를 잡아야한다고 염 총장이 주장해 모두 동의하고 정상을 향해 오른다. 한적한 검봉산 정상에서 인증샷을 하고 하산길에 자리를 잡고 1시 반에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참석한 죄로 산행기자로 선택되어서 산행시 박진규 시 '화엄사 중소'를 읊었고 시원한 막걸리로 건배! 참나무의 여섯 가지 중 하나인 늙은 상수리나무에서 나무가 어린 물고기를 배려하는 것을 읽다니, 시인들은 조그마한 것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여 시로 승화시키는 재주가 뛰어나다. 문형이표 홍어회를 필두로 조촐한 식단이다.

 

화엄사 중소 / 박진규

 

갈겨니는 계속 물빛이어서
계곡이 아무리 유리알처럼 투명하여도
자신은 감쪽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하루 종일 내려다보고 있는
늙은 상수리나무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물속을 헤집고 다니는 갈겨니
그 여리디여린 몸이 가을빛을 받아
바닥에 지 몸보다 더 큰 그림자를 끌고 다닌다는 것을
상수리나무는 행여 배고픈 날짐승이 눈치챌까봐
아침부터 우수수 이파리들을 떨어뜨려
어린 갈겨니를 덮어주었던 것이다

시장이 반찬이라 맛나게 배를 채우고 10월16일 졸업45주년 모교 체육대회 방문을 논의하면서 20회 동창회 조 총장이 15인 이상 참여하면 버스를 대절하니 협조를 부탁한다는 말씀과 함께 참석자에게는 8만원 상당의 네파(NEPA) 모자를 선물한다는 미끼를 붙인다. 염 총장은 다음 산행지를 남한산성으로 고지하고 많이 참석해 달라는 부탁한다.

 

마침 뉴스속보로 보성 웅치 출신 백남기 농민이 운명했다는 뉴스에 마음이 무거웠다. 위윤환 회장의 고향마을 이장이셨고, 광고 17회 선배로 중앙대학 재학 시절 박정희 유신반대운동으로 제적당한 후 고향에서 카톨릭농민회 회장 등 우리밀지키기에 앞장선, 의식이 또렷한 농민으로 사셨던 분이 쌀값 안정과 농업정책지원요구를 위한 범국민총궐기대회 행진 중 세종로에서 경찰 물대포에 넘어져 대뇌경피출혈로 혼수상태에서 317일째 서울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 깨어나지 못하고 결국 운명하신 것이다. 슬픈 일이다. 이런저런 한담을 나눈 후 하산했다.

 

무척 가파르다. 무릎이 약한 우리나이에는 더욱 조심해야 할 내리막이다. 잠실에서 뒤풀이에 참석하려는 정한이랑 주차장에서 만나야 하기에 급히 걸었다. 2년 전 늦게까지 맛나게 뒤풀이했던 곳으로 갔으나 기대와는 달리 내부 수리 중이다. 할 수 없이 근처 양지닭갈비집에서 한 상을 차렸다. 닭갈비, 감자전으로 막걸리, 동동주, 소주, 맥주 등 15병정도 비우고, 일부는 버스로 일부는 전철로 시간을 맞춰 서울로 돌아갔다. 이제 나이 들어 헤어지면서 보는 산우들의 뒷모습이 낯설지 않고, ‘떠난 열차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어느 시인의 싯귀가 떠오르는 초가을 산행의 뒤안길의 모습이다.

20116. 9월의 오후에 박형채 올림

 

3.오르는 산

남한산성에 오르게 됐다. 자주 가는 코스가 아닌 새로운 코스로 간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고 사랑하기에는 가을에 해야 제격을 맞춘다고 하면 봄여름겨울에 미안한 말일까. 여름이 힘들었다면 풍성한 가을이 있으니, 집안은 따뜻해지는 겨울도 기다린다. 시산회 산행의 숫자가 300을 향해 쉬지 않고 가는 것은 모두의 염원을 담은 행진곡 덕분이다. 300회를 지나고 나면 문집도 나올 게다. 이제는 문집의 형태에 대하여 슬슬 의견을 모아야 한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단풍 소식이 들려온다. 대청의 눈 소식도 머지 않다. 그러기 전에 지리산 종주를 시도하려 한다. 일요일에 남한산성 수어장대를 보며 부끄러운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산행 중 하나다.

 

4.동반시

이원무 산우가 9월 29일에 시산회 카톡방에 올린 시를 동반한다. 매우 서정적인 시다. 우리의 감성이 메마르지 않았다면 가슴이 찡해올 것이다. 가을날에 누가 이 좋은 시를 남한산성에서 낭송해줄 것인가. 좋은 가을시를 추천해준 이원무 산우에게 감사드린다.

 

가을날의 기도 / 양광모

가을과 함께
가을이 떠난 후에도 떠나지 않는 사람 있어
겨울이면 장작불처럼
운명을 걸고 함께 불타오르다
봄이면 꽃망울처럼
터질 듯 팍 팍 피어오르다
한 번만 더, 여름이면 태양처럼
시뻘겋게 애태우며 달아오르다
가을이,
또 다른 가을이 오면
단풍 고운 키 큰 나무 아래 앉아
하루쯤 사랑으로 물든 얼굴
눈 한 번 떼지 않고 바라보다가
마침내
낙엽처럼 흩어져 떠나가도 서럽지 않을
천 년쯤 그리움만으로도 가슴 뜨거워질
붉은 가을 사랑 하나
가을아 가을아 보내어 다오

-양광모 시집 제4집 '내 사랑은 가끔 목 놓아 운다'에서

 

2016. 10. 7.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