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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홍성 용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296회 산행)

홍성 용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296회 산행)

산 : 용봉산(381미터)

코스 : 별도 고지 1, 2, 3코스 중 택일(기수 별로 산행)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16. 10. 29. (일) 오전 7시 30분

모이는 장소 : 전철 2, 9호선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4호차 탑승

준비물 : 안주, 간식, 과일, 막걸리

뒤풀이 : 21회 회장단이 준비(막걸리, 불고기 전골)

증정 : 기념 수건(산악회장 이재주 증정)

연락 : 염재홍(010-4948-6975)

카페 : cafe.daum.net/yc012175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1.산행이 있는 아침 시

 

민박 - 이상국(1946~ )

울산바위 꼭대기에는

별들의 집이 있다

어느 날

집 떠나

해 지고 어두우면

그곳에 가 자고 싶다

신화가 사라진 곳에선 별도 뜨지 않는다. 시는 허구를 동원해 죽은 신화를 살려내고, 독자들은 ‘불신의 자발적 중지’(ST 콜리지)를 통해 시가 만든 가상의 공간에 합류한다. 이렇게 해서 ‘시(詩) 공동체’가 생겨난다. 시 공동체는 디스토피아(dystopia)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불가능했던 모든 것이 여기에서 가능해진다.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이 안으로 들어오라. 거기, “울산바위 꼭대기”, 별들의 “민박집”에 들자.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시집을 내면서 시 본문 못지 않게 제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각 시의 제목보다 시집의 제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출판사 담당자의 말을 통해 알았다. 판명요이 아닌 시집이라도 일단은 서점에 걸리기 대문에 그때부터는 나의 시가 아니란다. 그만큼 열과 성을 다하라는 주문이다. 위의 시는 짧으나 할 말은 다하고 있다. 시의 길고 짧음이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주제의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짧으면 싱거운 느낌이 든다.

위의 시평에 신화가 나온다. 붓다는 "옛날에 기적이 일어났더라도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며 선험에 기대지 마라"고 따뜻하게 그러나 엄격하게 충고한다. 그는 신격화를 거부한다. 기적이라는 것은 증명이 불가능한 말의 표현일 뿐이다. 시집의 제목을 '바람의 신화'라 지었다. 그러나 '無常',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끝까지 유지할지는 모른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295회 ‘남한산성‘ 산행기 / 남기인

산행일 ; 2016년 10월 9일

집결지 : 8호선 산성역 1번 출구

참석자 : 16명(갑무, 정남, 종화, 진오, 양주, 기인, 형채, 재홍, 윤환, 경식, 해황, 정한, 영훈, 양기, 전작, 문형)

산행코스 : 산성역>인공폭포(조각공원)>영춘산입구>남한산성(남문)>만해기념관>종로>장성(뒤풀이장소)

 

얼마만의 산행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는가, 게으름 탓이지. 공교롭게 자주 행사가 겹치는 탓도 있지만 멀리 살다보니 오고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서둘러 왔건만 부지런한 산우 몇 명이 먼저 와서 지하철 구내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특히 해황이는 거의 일 년 만에 보는 듯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염 총장의 여지없는 지정으로 오늘의 산행기 작성자 소임을 명 받았다. 영광이다. 화창한 날씨다. 그냥 집에 있었더라면 후회할 날씨다.

 

그리 힘들지 않은 성남누비길이건만 오랜만에 산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모두들 땀도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나는 등줄기가 흥건히 젖었다. 성남누비길이란 ‘함께 더불어 누빌 수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란 뜻이라고 한다.

남한산성이 역사적, 군사적으로 상당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만해 한용운 기념관이 그곳에 있는 줄은 몰랐다. 그저 만해라고 하면 고등학교 때 배운 ‘님의 침묵’과 선시 같은 ‘알 수 없어요’만 생각했는데 산행기를 쓰려고 자료를 찾아보니 몇 가지 특이한 그의 일화가 있어서 소개한다.

 

한용운 본인도 대처승이 되었는데, 원래 출가 전에 결혼을 해서 아들 1명을 두었다가 이혼하고, 나중에 승려시절인 1931년에 재혼하여 외동딸을 보았다고 한다. 만해는 이른바 '근대적 불교'를 추구하며, 불교의 대중화를 꾀했고 그 과정에서 대처승의 인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대처승 인정요구는 주장당시에도 파격적인 소수파였고 해방 이후의 한국불교의 주계종파가 된 조계종도 대처승을 허용하지 않아 현재에도 소수파 의견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오늘날 누구도 만해 한용운의 그런 주장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그는 분명 앞서가는 용감한 선각자인지도 모르겠다.

 

한용운이 스님이 된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인데 세계를 여행하며 경험을 쌓고 싶었던 한용운이 배를 타고 가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동료 스님들과 같이 있었던 한용운을 한 무리의 조선청년들이 포위했다. 당시 일제의 앞잡이나 친일파들이 스님으로 많이들 위장했다 하는데 진짜 스님인 한용운이 엉뚱하게 친일 밀정으로 몰린 것이다. 맞아죽을 위기에 처한 스님들이 '우린 단지 중일 뿐이다.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청년들은 쉬이 의심을 풀지 않았고 분위기는 험악해져갔다. 그때 한용운이 "우릴 죽여도 개의치 않겠으나 이국의 바닷물에 던지지 말고 조국 땅에 묻어주시오.'라고 대답하자 그제야 그들이 친일파가 아님을 안 청년들이 사과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길지 않은 시간에 형채와 시에 관심이 많은 정남이와 함께 한용운 기념관에 있으면서 한용운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정남이는 외우기가 쉽지 않지만 좋아하는 애송시 중 ‘알 수 없어요‘를 첫손에 꼽는다고 한다.

산에 왜 가는가라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어서 간다고 했던가! 그러나 우리 시산회 친구들은 어쩌면 그곳에 친구가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루를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과거의 추억, 오늘의 일상 그리고 미래를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이 있기에 시산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

 

어렵지 않은 코스로 올라 내려와서 뒤풀이를 산성생두부에서 치르기로 했으나 주객들이 많아 장소 이동, 근처의 장성집에서 역시 두부요리와 막걸리로 술배를 채웠다. 역시 산행 후 마시는 막걸리는 보약에 다름 아니다.

 

버섯 두부 전골과 막걸리를 따라 앞에 두고 산에서 하지 못한 시 낭송의 시간, 내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윽고 터지는 박수소리는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려운 즐거움이다. 첫잔은 동반시는 이 좋은 가을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시다. 이원무 산우가 추천했다던가! 동반시 선정에 보탬이 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산과 술과 시는 시옷자 돌림의 선물이다. 내친 김에 산술시회로 이름을 바꿀까나. 산행을 자주 하여 얻어지는 부산물인 건강을 챙길 수 있으니 이 좋지 아니한가.

 

가을날의 기도 / 양광모

 

가을과 함께

가을이 떠난 후에도 떠나지 않는 사람 있어

겨울이면 장작불처럼

운명을 걸고 함께 불타오르다

봄이면 꽃망울처럼

터질 듯 팍 팍 피어오르다

한 번만 더, 여름이면 태양처럼

시뻘겋게 애태우며 달아오르다

가을이,

또 다른 가을이 오면

단풍 고운 키 큰 나무 아래 앉아

하루쯤 사랑으로 물든 얼굴

눈 한 번 떼지 않고 바라보다가

마침내

낙엽처럼 흩어져 떠나가도 서럽지 않을

천 년쯤 그리움만으로도 가슴 뜨거워질

붉은 가을 사랑 하나

가을아 가을아 보내어 다오

 

-양광모 시집 제4집 '내 사랑은 가끔 목 놓아 운다'에서

 

모교에서 개최되는 광고인 한마당 행사 참가 독려 차 전작 회장과 조문형 총장이 늦게 합류하였다. 참 대단하다. 거의 전원 참석하기로 했다. 모두가 늙기는 늙었나보다. 뒤풀이를 마치고 시내버스 정류장에 모여서 걸어서 산성역으로 하산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염 총장이 일단 버스를 타고나서 생각해보자는 의견에 누구도 반대 의사를 내지 않는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날, 하늘은 맑고 높으니 산우들의 얼굴은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사는 도인의 얼굴을 닮았다.

 

우리 광고인, 우리 시산회여 영원하라!

 

2016. 10. 12. 남기인 올림

 

3.오르는 산

광주고 총산악회에서 가을 산행의 연례행사로 주관하는 충남의 금강산이라는 홍성 용봉산에 오른다. 높지 않으나 암릉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산회에서도 가려는 시도를 했지만 이루지 못했으니 이번에 많이 참가하면 좋겠다. 나는 아쉽게도 결혼 35주년 기념행사를 자식들이 2박3일 휴가를 내서 오대산과 치악산에서 콘도를 빌려 치러준다니 주체로서 빠질 수 없어서 안타깝다. 치악산 구룡사와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를 다녀올 예정이다. 내친 김에 주문진에 가서 복회를 먹거나 기사문리까지 가서 흑돔을 먹고 올 수도 있다. 물론 미수에 그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몸은 거기에 있어도 용봉산과 그대들이 많이 생각날 것이다.

 

4.동반시

시집을 내고 글쓰기 모임에서 마감을 지키기 위해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이제는 피할 수 없으니 스트레스조차 즐겨야 할 처지가 됐다. 산행 메일을 써야 하는 것을 깜박 잊었다는 것도 잊었다. 결코 소홀하게 생각한 적은 없다. 산행 메일의 마감은 금요일로 잡았으니 오늘을 넘길 수 없으므로 동반시를 찾기가 쉽지 않아 자작시를 올린다. 시 창작 교실에서 주어진 시제가 ‘바이러스’였을 때 지은 시다. 수많은 성자들, 곧 붓다와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마호멧 같은 이들이 수없이 다녀갔어도 나아지지 않는 세상, 인성의 선(善)적 향상은커녕 오히려 악화되어 가는 것을 본다. 인간의 본성에는 이기적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고 그 이기성은 생존본능의 본래 얼굴임을 수많은 철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그 이기성이 과학의 발달을 가져와 삶을 다소 편하게 해주지만 과학의 발달만큼 인성이 발달하지 않는 데에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달은 대량살상무기의 발전을 가져오고 그것이 폭력의 상승(相乘)작용을 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알파고를 잘 선용하면 인간의 폭력성을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공상이 아니길 바란다. 좋은 날에 용봉산의 정상에서 이 시를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며, 세찬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대한민국의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해달라며, 간절한 목소리로 낭송하면, 혹시 아는가, 하늘이 감동하실지.

 

 

행복 바이러스

 

 

작은 것이 더 아름답지만

 

큰 것을 이기니

 

힘든 봄, 바다

 

더 힘들어져도

 

모든 것은 다 그렇게 지나간다고 믿을 것

 

여태까지 그래 왔으니까

 

 

죽음이 다가 온다면

 

윤회 같은 허황한 것을 따지지 말며

 

새로운 세계로 여행 간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남겨진 사람은 기도와 명상을 즐길 것

 

비우고 빠르게 잊는 법을 가르쳐주니까

 

 

더 살다가

 

넘어지고 싶지 않으면 둥그렇게 살자

 

공은 굴러만 가니까

 

 

외로우면 시를 쓸 것

 

‘인간이 신에게 말을 걸면 기도

 

신이 인간에게 말을 걸면 정신병‘

 

시는 내가 내 안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나마스떼

 

 

시를 입에 물고 산에 오를 것

 

힘듦은 반이 되고

 

가슴에 담겨진 기쁨은 배가 되니까

 

 

나마스떼

 

 

모두가 잘 되기를 빌어라

 

그러면 너부터 그리 되리라

 

불행은 쉽게 밟히고

 

행복은 더 빨리 퍼져간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인사드립니다. 히말라야 부근 사람들의 인사말.

 

 

2016. 10. 28.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