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록

우이령길을 걷습니다(詩山會 제326회 산행)

우이령길을 걷습니다(詩山會 제326회 산행)

집결시간 : 2018. 1. 13.(토) 10시 30분

집결지 : 우이역 경전철 종합 대합실

뒤풀이 : 불광동 은하식당

동반시 : 새해 / 피천득

주지사항 : 신분증 필히 지참

 

1.시가 있는 산행

마음이 깨어진다는 말
-천양희(1942~ )


시아침 1/6

 

남편의 실직으로 고개 숙인 그녀에게
엄마, 고뇌하는 거야?
다섯 살짜리 아이가 느닷없이 묻는다
고뇌라는 말에 놀란 그녀가
고뇌가 뭔데? 되물었더니
마음이 깨어지는 거야, 한다
꽃잎 같은 아이의 입술 끝에서
재앙 같은 말이 나온 이 세상을
그녀는 믿을 수가 없다

책장을 넘기듯 시간을 넘기고 생각한다
깨어진 마음을 들고 어디로 가나
고뇌하는 그녀에게
아무도 아무 말 해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길모퉁이에 앉아 삶을 꿈꾸었다

아이들은 엉뚱한 소리도 잘하고 어디서 들은 말을 맥락 없이 옮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들이 뜻밖에 사태에 적중할 때가 있다. ‘고뇌’는 ‘마음이 깨어지는 거’라고, 뜻 없이 건넨 한 마디는 정말 엄마의 마음을 깨뜨릴 것 같다. 그러나 아이의 말은 사태를 더 깊이 고심하게 해준다. 고뇌는 그녀도 몰래 서서히 ‘삶’으로 바뀌어간다. 그것은 ‘꿈’을 통해서다. 꿈은 상심을 담은 채로 현실의 재앙을 견디게 해준다. 꿈이 있는 한 삶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끝에는 다른 현실이 기다릴 것이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2.산행기

 

“시산회 325회 ‘한양도성 순성길’ 산행기”<2017.12.23.(토)> / 김종화

 

▣ 월일/집결장소 : 2017년 12월 23일(토) / 3호선 안국역 2번출구 (11시)

▣ 참석자 : 30명 < 산행 14명(종화, 진오, 양주, 형채, 상수, 재홍, 윤환, 승열, 재웅, 정한, 문형, 양기, 천옥, 황표), 납회 시 16명(갑무, 동주, 일화, 정남, 기인, 창수, 경식, 계신, 윤상, 종진, 전작, 동준, 해황, 영훈, 광일, 근호) 추가 참석 >

▣ 산행코스 : 안국역-와룡공원-혜화문-낙산공원-한양도성박물관-동대문역-뒤풀이장소

▣ 동반시 : "겨울날" / 신경림

▣ 뒤풀이(납회) : 모둠회 및 매운탕 등에 소·맥주, 막걸리/ "종로활어회집"<(02)763-8922>

 

시산회의 2017년도 마지막 산행 및 납회의 날이다. 어제(12월 22일)가 1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인 동지(冬至)의 날이다. 동지는 24절기 중 22번째로 6개 겨울절기 중 4번째 절기로서 동지 다음날부터는 밤이 점점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동지가 가장 깊은 밤이니 ‘동지를 무사히 잘 지내면 태양의 기운이 부활해 기운이 좋아진다.’는 말을 믿어오고 있다.

 

동지 때는 예로부터 팥죽을 끓여먹고 있다.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찹쌀로 새알을 만들어 넣어 팥죽을 쑤는데, 동지팥죽을 먹으면 잔병이 없어진다는 말도 있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도 전해오고 있으며, 실제로 동지는 설날 다음으로 대접하여 ‘작은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특히 새알죽을 좋아 하였기에 간혹 한 번씩 팥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오늘은 안국역(2번 출구)에서 성균관대학교 후문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환승하여 말바위전망대 아래쪽인 와룡공원에서 걷기를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부터 동대문 까지는 지난 11월 중순에 아들과 함께 걸었기에 내가 산우들을 안내하기로 하였다. 오늘 걷기운동을 하기 위해 참석한 산우들은 소생까지 14명이었으나 먼저 온 산우들은 와룡공원 쪽으로 갔단다.

 

지난 11월 11일(토), 시산회 산우들과 윤동주문학관 옆 창의문안내소에서 신분증을 확인한 후 표를 발급받아 백악마루(342m) 계단길을 올라 북악산 한성도성 내에서 가장 조망권이 좋다는 청운대를 지나 말바위안내소, 삼청공원 쪽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새로워서 이번엔 삼청공원을 들머리로 하여 와룡공원~혜화문~낙산을 지나 시간이 남으면 한양도성박물관에서 한양도성의 역사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둘러보고 납회장소(종로활어횟집, 동대문 근처)를 찾아가려고 하였으나 지각을 하였기에 내 뜻대로 주장하기는 힘이 들었다.

 

성균관대학교 후문의 위쪽인 와룡공원이 새롭다. 와룡공원에서 성곽을 따라 동쪽으로 서울성곽 탐방로가 이어지며 와룡공원이 성곽길 탐방로 중간에 있다. 높은 산비탈에 위치해 서울시 북쪽을 조망하기에는 좋은 곳이다. 와룡공원 아래 어린이놀이터에서 이(재웅) 산우가 내어놓은 초코파이와 커피 한 잔으로 입맛을 다신 후 혜화동 길로 접어들며 성곽이 주택가 사이로 이어지다가 끊어짐을 반복한다. 축대 위에는 주택들이 들어차 있고 경신고교가 있었으며, 그 끝에 1년 전부터 한양도성 탐방안내센터로 활용되는 옛 서울시장 공관이 있었다.

 

한양도성 백악구간을 벗어나자 혜화문(惠化門)이 있다. 혜화문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소문 중의 하나로 동쪽의 소문이다. 숙정문을 대신하여 한양의 북쪽 관문 역할을 하였단다. 동소문(東小門)이라는 속칭이 있는데, 이는 조선 초기부터 불린 이름이다.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이 되었단다.

 

혜화문은 1592년 문루가 불타 1744년에 재건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파괴되었고 1994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홍예 안쪽의 천장에는 이 그려져 있어야 하나, 혜화문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었다. 문의 주변에 새가 많아 용 대신 새들의 왕인 봉황을 이용하여 새들을 쫓고 악한 기운을 막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혜화문을 지나 낙산공원 들머리에 ‘장수마을’이 있었다. 운동기구와 함께 깔끔히 비닐을 씌어 정리가 되어있는 쉼터(정자)가 있다. 차마 쉼터에는 들어가지를 못하고 막걸리를 좋아하는 몇 산우들은 한(양기) 산우가 가지고 온 김치에 한 잔씩 나눠 마시고 낙산공원으로 올랐다. 낙산은 풍수지리상 서울의 동쪽을 지키는 좌청룡에 해당된다고 한다. 드러누운 용처럼 뻗은 순성길을 따라 걸으면 발아래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밤에는 성곽을 따라 불이 켜지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서울 성곽길 중 한 코스인 혜화동의 낙산공원길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한성대입구역 근처 혜화문에서 출발, 낙산공원을 경유하여 동대문까지 가면 약 3km의 구간으로 성곽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야경)이 아름다우며, 비탈길과 계단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는 재미를 한결 느낄 수가 있다. 잠시 전망대에서 낙산공원 주변을 둘러보고 이화동벽화마을을 지나 동대문이 보이는 성곽공원으로 내려갔다. 뒤풀이(납회)는 동대문역 근처에서 하기로 되어있으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동대문성곽공원에 있는 한양도성박물관을 관람하였다.

 

한양도성박물관은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양도성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도성정보센터와 학습실을 갖춘 문화공간이다. 1층 제1상설전시실에서는 한양도성의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축소 모형과 영상을 통해 한양도성의 가치와 의미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3층의 제2, 제3상설전시실에서는 각각 한양도성의 건설과 관리, 한양도성의 훼손과 재탄생의 역사를 볼 수가 있었다.

 

박물관에서 보여준 한양도성은 1396년에 축조가 되어 600여 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수도의 성곽이었고, 성곽의 건설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훼손되었지만 복원과 발굴, 개방을 통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한양도성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가 있었다. 지형과 한몸이 되어 축조된 18.627㎞의 한양도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일부 훼손, 철거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까지 그 원형이 잘 남아 있어 도시와 공존하는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양도성의 성곽에는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동쪽 興仁之門(동대문), 서쪽 敦義門, 남쪽 崇禮門, 북쪽 肅靖門의 四大門과 북동쪽에 혜화문, 남동쪽 광화문, 남서쪽 소의문, 북서쪽 창의문 등 四小門을 만들어 성안과 밖을 연결하였다. 한양도성은 축조 당시의 모습과 후에 보수하고 개축한 모습까지 간직하고 있어 조선시대 성벽 축조기술의 변천,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지난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이 침투한 1·21사태 이후 '한양도성'의 핵심구간인 북악산 숙정문에서 창의문에 이르기 까지 출입이 금지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순성이 불가능 하였다. 최근엔 끊겼던 성곽이 서서히 복원되고, 출입이 막혔던 구간이 뚫리며 한양도성은 다시 서울사람들이 사시사철 찾아 자연을 즐기는 곳이 되고 있다. 서울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11월에는 성곽길을 따라 아름답게 물든 가을의 빛을 즐기려고 한양도성을 찾는 이들이 많았었다.

 

조선조의 정조 때 실학자 유득공(1748∼1807)은 한양의 세시풍속을 소개한 저서 『경도잡지』에서 순성(巡城)을 ‘도성의 둘레는 40리라 하는데, 성을 한 바퀴 돌아서 도성 안팎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은 멋진 놀이다.‘라고 표현했다 한다. 지방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상경한 선비들이 한양을 빙 둘러싼 도성을 돌며 합격을 기원했던 풍습은 한양 사람들에게 전해져 순성놀이가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둘씩 짝지어 성곽을 따라 걸으며 도성 안팎의 경치를 감상하고 봄·가을로 꽃과 단풍을 즐기고 있다.

 

서울은 동서남북으로 낙산(125m), 인왕산(338m), 남산(265m), 북악산(342m)에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산의 능선을 타고 조성된 한양도성은 옛 수도의 윤곽을 보여주고 있다.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은 한양도성의 전체 길이는 18.6km로써 현존하는 전 세계 도성 가운데에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조선조 태조5년인 1396년 1∼2월 농한기 때 전국에서 11만8천명을 동원해 1차 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같은 해 8∼9월 2차로 7만4천명을 동원하여 성곽을 완성하고, 사대문(숭례문·숙정문·흥인지문·돈의문)과 사소문 석축을 쌓았다고 한다.

 

각각의 공사기간은 49일씩으로, 100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한양의 외양인 도성이 완성되었다. 당시 한양 인구가 10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 성곽의 공사에 얼마나 많은 인력을 동원했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한양도성 축성공사는 180m씩 97구역으로 나눠 진행되었다. 각 구간 공사는 함경도·전라도 등 군·현별로 할당되었다. 공사실명제가 도입되었기에 지금도 성벽 곳곳에 어느 군·현에서 맡아 공사했는지, 표시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북악산 구간 한양도성에 성벽이 축조된 시대별 차이를 확연히 볼 수 있다. 숙종(1074년) 때에는 석재를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하여 튼튼히 쌓았다. 석재 하나의 무게는 장정 4명이 들어야 할 정도였었다. 태조(1396년) 때는 큰 메주만한 크기의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다. 흙으로 쌓았던 성곽이 홍수로 일부 무너지자 세종 4년인 1422년 전면 보수 공사를 해 성곽 전체를 돌로 다시 쌓았다. 현재 볼 수 있는 성곽의 모습은 이때 어느 정도 갖춰진 셈이었다고 한다.

 

숙종 30년인 1704년 보수 공사를 하면서는 성벽에 공사 감독관 직책과 이름, 날짜까지 기록해 놓은 곳이 있어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때까지 제 모습을 지키던 한양도성은 1900년 즈음부터 속절없이 헐려나가기 시작하였다.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되면서 가장 먼저 성문이 제 기능을 잃었다. 1908년엔 일본 왕세자 방문을 앞두고 길을 넓히려고 숭례문 좌우의 성벽이 철거 되었다. 이후 산성을 제외한 평지 성곽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해방 이후엔 주택과 도로를 공사하며 성벽을 훼손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한때 총 18.6km 구간 중 10.5km만 남았었으나 근래에 꾸준한 복원작업을 해 13.4km(전체구간의 72%)가 원형에 가깝게 정비되었다. 한양도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기 때문에 다른 유적지와 달리 출입구가 따로 없다. 어디에서 시작하든 한 방향을 따라가면 시작점으로 돌아올 수가 있단다. 그러나 한양도성을 여러 차례 찾은 전문가들은 북악산에서 시작해 낙산, 남산, 인왕산의 구간으로 도는 시계 방향 순성을 추천하고 있다.

 

백악구간은 1·21사태 이후 오랫동안 닫혀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정으로 2007년 4월 5일 전면 개방되었다. 다만 아직까지 군사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어 신분증을 들고 가서 본인을 확인 해야만 출입을 할 수가 있다. 창의문 안내소를 지나면 끝없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커다란 돌계단은 오르기가 만만치가 않다. 노약자나 어린이는 오르기엔 힘든 곳이다.

 

그러나 조금만 참고 능선을 오르면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절경이 펼쳐진다. 앞에는 북한산 비봉과 보현봉, 형제봉이 늠름한 모습을 뽐낸다. 뒤로 돌아서면 인왕산 능선 따라 한양도성이 뻗어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한양도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백악마루(342m)에선 세종로는 물론 강 건너 63빌딩 까지 서울시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보였었다.

 

서울시(문화체육관광본부)에서는 시민의 안전과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성벽의 원형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진단 및 계측을 시행하고 있었다. 한양도성박물관의 관람은 한양도성을 순성할 때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양도성박물관에서 시간을 맞춰 관람 후 동대문 근처에 예약된 납회 장소(‘종로활어횟집’)로 자리를 옮겼다.

 

2017년 납회 때의 모임은 총 30명이 참석을 하였다. 염재홍 회장님 인사말이 있은 후 오늘의 동반시(‘겨울날’/신경림)를 낭송 하였으며, 한천옥 총장님의 2017년 산행 참석 및 회비 현황보고와 우수 참여자에 대한 포상이 있었다. 더불어 시산회 발전을 위한 재경20회회장님(전작, 김동주)의 찬조금 협찬이 있었고, 김정남 산우에겐 시집('시인의 농담') 발간에 대한 축하금의 전달이 있었다.

 

겨울날 / 신경림

 

우리들

깨끗해지라고

함박눈 하얗게

내려쌓이고

 

우리들

튼튼해지라고

겨울바람

밤새껏

창문을 흔들더니

 

새벽하늘에

초록별

다닥다닥 붙었다

 

우리들

가슴에 아름다운 꿈

지니라고

 

또한 오늘이 음력으로 동짓달 초이레 날로, 내 생일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한 총장님은 케잌을 구입하여 생일잔치를 하여 주시어 모든 산우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김정남 산우는 두 번째로 발간한 시집('시인의 농담')을 모든 산우들에게 제공하여, 전작 산우님의 협찬으로 동대문역 10번출구 옆 ‘설매화 찻집’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시 한편('겨울비')을 한 총장님이 낭송을 하였다.

 

겨울비 / 김정남

동지 지나고
창문 열면
북한산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솟고
중랑천이 가운데를 가르는 방학동 분지

적막하게 겨울비 내리고
적요한 방안으로
봄눈 녹듯 겨울비 내린다

텃새가 된 백로 한 마리 보면
내 마음도 봄바람 되어 녹는다

 

시산회의 꾸준한 발전과 시산회원들의 건강을 위하여 1년동안 산행계획을 수립하여 차질 없이 실시한 집행부와 제29대총동회회장님 취임식(302회 무등산) 및 광고인 한마당(320회 조계산) 때에 협찬을 하여주신 동창회의 집행부 및 친구들에게 다시없는 고마움을 표하며, 내년에도 산우들 모두가 건강과 함께 안산, 즐산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을 위하여는 꾸준한 걷기 운동이 최고이므로 사랑하는 친구들 모두가 산행 참석을 바랍니다. 시산회 파이팅!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7년 12월 24일 김종화 씀.

 

3.오르는 산

이번에 걷는 우이령길은 수 년 전에 걸은 길이다. 이제 안전 산행이 우선이라 준비 차원에서 집행부에서 정했다. 부디 많이 참석해서 시 낭송도 하고 은하식당에서 맛난 것 먹고 오시라. 산행에는 참석하지 못해도 뒤풀이라도 참석하시라.

 

4.동반시

 

새해 / 피천득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팔월의 태양

 

거센 한 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2018. 1. 12.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