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의 특성과 발달과정
하이쿠의 일반현황
일본은 지리적 특성상 강력한 태풍과 지진, 해일 및 화산 폭발 등의 영향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남다르다. 특히 근대이전까지의 일본인은 막부 중심의 무단정치에 따른 절대적 순종과 잦은 전쟁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일본인은 자연으로 도피하거나 공동체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폐쇄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일본 근대화의 기점인 명치유신 이후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급격한 경제발전과 사회제도 개혁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결과 현재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발전하였다.
세계 각 민족은 자기 고유의 詩歌를 갖고 있으며,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는 향가와 시조, 일본은 와카와 하이쿠, 중국은 絶句와 律詩 등의 漢詩가 있는데, 時調와 하이쿠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양국의 정형시 중 가장 整齊되고 가장 짧은 시 형태이며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작가와 주제 또한 다양하다는 점이다.
하이쿠는 기본적으로 5·7·5 운률과 계어(季語) 및 단절어(切語)로 구성된 정형시이다. 1910년을 전후해서 이미지를 중시한 짧은 無韻詩運動이 일어났을 때 일본 문화가 歐美에 알려졌다. 서양에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양예술에 대한 동경과 함께 하이쿠를 선명한 이미지의 시로서 혹은 선적(禪的)인 깨달음의 시로 이해하고 오늘날에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파되고 있다.
하이쿠는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구지(句誌), 직장 사회의 모임인 구회(句會), 거의 모든 교양잡지에 설치된 하이쿠란(欄), 정규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하이쿠왕국), 일상대화 등 일본 전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자유시는 위축되는 추세이나 일본의 하이쿠(排句) 예외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1,200여 년 전에 발생한 단가(短歌) 인구가 100만 명이 넘고, 약 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하이쿠 인구(하이진 排人)은 500만 명 이상이며, 전문 월간지 8개, 동인지가 약 800개로 현재까지 왕성하게 창작되고 있다.
일본 정형시의 특징
근세 일본(1603~1867)은 江戶幕府의 儒敎的 武斷政治로 막번체제(幕藩体制)를 시작한다. 특히 교통망을 정비하고 士(武士)農工商의 수직적 신분제 사회를 확립하고 전국 각 지역에 국공립 교육기관인 번교(藩校)와 불교 사찰을 중심으로 데라코야(寺子室)를 설립하여 풀뿌리 교육기반으로 철저한 문서주의를 확립하여 識字層이 확대되었다.
와카(和歌), 렌가(連歌), 하이카이(俳諧)에 이르기 까지 일본 전통시의 가장 큰 특징은 공동체문학이며 창작자 자신이 시를 읊는데 중점을 둔 문학이다. 이러한 시 형식은 각계각층이 갖추어야할 필수적인 교양이었다.
하이쿠(排句)는 17음이라는 극단적으로 짧은 시이다. 매우 열려있는 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폐쇄적인 문학이며, 누구나 하이쿠를 이해할 수 있다는 허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실제 하이쿠는 서양인은 물론 우리뿐만 아니라 하이쿠 특유의 작법과 기고(季語)로 대표되는 특정 시어를 모를 경우에는 일본인조차 다루기 어려운 분야이다.
하이쿠는 지역 공동체의 안과 밖으로 구분하고, 안으로만 열려있는 공동체의식이 강한 문학이며, 고도의 양식미를 추구하는 일본문화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언어예술이다. 이러한 하이쿠를 외국어로 번역할 경우 정상적으로 감상하기가 어렵다. 이이다 류타는 “명쾌하게 해석되는 하이쿠는 대체로 별 볼일 없는 작품이고, 정말 뛰어난 작품은 의미 해석의 영역을 넘어서 읽는 사람의 가슴을 울린다”라고 말한다.
하이쿠 창작의 기본요소
하이쿠는 어느 한 순간의 일어난 장면을 마치 정지된 시간으로 포착하여 어떤 깨달음을 얻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有限性을 그리는데 여기에는 禪佛敎思想을 바탕으로 한 인생의 無常觀과 결합하여 있다. 하이쿠는 5・7・5의 17음을 정형으로 하는 滑稽와 諧謔的 성격을 띤 정형시로 자연과 인간의 희노애락을 담고 있다. 렌가의 훗쿠(發句) 형식을 계승한 하이쿠가 17음의 짧은 형식으로 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고(季語)와 기레지(切字) 효과 때문이다.
기고(季語)는 렌가나 하이쿠 문장 중에서 계절을 나타내기 위하여 넣는 특별히 정한 고정적 의미의 단어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계절을 상징하는 모든 단어가 기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고는 오랜 세월 동안 일본 시가문학에서 이어져 온 상징적인 詩語가 어떤 특별한 이미지로 정착된 것이다.
기고(季語)는 렌가를 지을 때부터 존재하였지만 기고(季語)라는 명칭은 20세기에 새롭게 만든 단어이다. 계절을 대표하는 특성으로 시간성을 갖고 동시에 독자의 시선을 한 시점으로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고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① 단어 자체에 계절이 들어가는 시어 : 봄바람(春の風), 여름 산(夏の山)
② 특정 계절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단어 : 더위(署さ), 추위(寒さ)
③ 어느 계절을 나타내기로 약속한 특정 단어 : 꽃(花, 하나), 달(月, 츠키)
※ 꽃 ⇒ 봄을 상징하는 벚꽃 / 달 ⇒ 가을의 보름달
기레지(切字)는 하이쿠의 發句와 平句를 구분하기 위해 넣는다. 5·7·5음 중 기레지의 위치에 따라 5음군 또는 12음군을 형성하여 의식흐름을 끊어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고 기레지의 위치에 따라 1구1장 또는 2구1장의 의미구조를 갖는다.
1장1형의 시형은 현대에 많이 나타나는 구조로 기레지 사용하지 않거나 맨 끝으로 배치하여 전체 문장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 때문에 호흡이 가쁘거나 길어지고 맨 끝에서 강하게 끊어주기 때문에 짙은 여운이 감도는 구조이다.
2구 1장의 시형은 하이쿠의 기본구조로 7음의 앞 또는 뒤에 기레지를 배치하여 흐름이 끊기는 곳에서 시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공간을 확대하여 독자에게 전달된다. 기레지는 시의 흐름이 단선적, 평면적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며 주로 조사나 명령형 조동사 등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 종류는 일정하지 않다.
※ 기레지 : ぞ(zo), ∼や(ya,∼이여), ∼かな(∼로다), ∼けり(∼구나) 등
일본어는 한국어, 몽골어, 만주어 등과 함께 알타이어계 속하는 첨가어다. 일본어는 기본적으로 2音 단위를 구성되며 또 이를 기준으로 발음한다. 일본 율문의 기본 리듬은 8음 4율박 구조이다. 왜냐하면 일본어 發話의 기본단위가 2음이고, 이러한 2음을 반복하여 문장이 전개되며, 최소 4음(2음+2음)이 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형성하고, 최소 8음(4음+4음)이 되어야 안정적인 문장이 완성된다. 즉 8음 4율박으로 박자와 리듬감이 생겨서 생동감 있고 경쾌한 律文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시가의 기본 리듬은 8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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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가에서는 2음을 율박(律拍)이라 부르는데 8음은 4율박이 된다. 8음의 박절구조 속에 실음과 휴음을 조합하여 다양한 형태의 율문을 만들 수 있는데, 주로 7음구와 5음구를 사용한다. 2음을 기본 發話單位로 하는 일본어의 용언과 체언에 부속되는 조사는 모두 1음으로 조사가 붙을 경우에는 1음 분량의 공백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경우 통상 休音(休止)으로 처리한다. 즉 짧은 1음 단위의 휴음의 크기에 따라서 5음·6음·7구음 등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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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형시에서 휴음의 역할은 첫째 구의 변화와 통일을 가져오고, 둘째 리듬을 경쾌하게 만들며, 셋째 구를 창작하기 쉽게 하는 등 7음구와 5음구의 정형을 완성시킨다. 각 음구별 운율적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8음구 : 2음의 율박을 4회 박복하는 것으로 구조적으로 완전하지만 句가
단조롭고 끝 부분에서 무거워 지며,
② 7음구 : 4번째 율박 끝에서 1음의 휴음이 발생하여 구의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고 리듬이 좋아진다.
③ 6음구 : 1∼3번까지 3개의 율박에 음으로 가득차 있고 4번째 율박의 2음을
모두 휴음으로 처리하여 불균형적이고 답답하며,
④ 5음구 : 후반구 3음을 휴음으로 처리하여 구가 가벼워지고 긴 여운을
발생시킨다.
하이쿠의 기본구조는 5·7·5 인데 시를 낭송할 경우에는 3부분으로 구분하여 읽는다. 上五는 비교적 낮은 tone(音調)으로 비교적 완만하게 처지고, 中七은 높은 tone으로 강하고 힘있게 처지며, 下五는 대단히 리드리컬하게 읊다가 후반부에서 급격히 墜落한다.
와카에서는 7·7음의 후구에서 타박을 전개하지만 하이쿠는 그 상태에서 완결되므로 구가 불안정하고 애매한 시형이 된다. 이러한 결점을 다소 경감해주는 것이 中七인데 中七을 중심으로 앞뒤에 上五와 下五가 대칭되는 구조를 만들지만 여전히 애매한 음률로 남는다. 하이쿠는 이러한 운률의 애매성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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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형시의 역사
1. 일본 정형시의 성립과정
일본 신화집인 「古事記(712년)」에는 총 112수의 가요(歌謠)가 수록되어 있는데 수록된 가요 중 1번은 5·7·5·7·7, 31음으로 정형시이다. 즉 일본 최초의 노래는 음수율에 의한 정형시이다. 또한 8세기 경 최초의 시가집인「만요슈(萬葉集」에는 5·7의 음을 반복하는 음수율이 정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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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7·7로된 단카를 낭송할 때에는 각각의 시어와 시어 사이에 크고 작은 쉼(休止)을 통한 음수율을 적용하여 읽어야 한다. 단카는 일반적으로 5·7·5의 상구(上句)와 7·7의 하구(下句)로 끊어 읽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5·7//5·7·7 또는 5·7·5·7//7로도 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음률 적용에 따라 독자는 다양하게 시를 해석하게 된다.
2. 일본 정형시의 음률과 향유방식
일본의 정형시는 기본적으로 음수율만을 사용하며, 두운과 압운은 없다. 고대 정형시가 형태를 살펴보면 5·7의 음률을 기본으로 반복하다가 7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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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의 5음구와 7음구는 시적 리듬을 좋게 하고, 작품 창작을 쉽게 하고 박자가 깨지는 것을 방지하는 특수한 음수(音數)이다.
「만요슈(萬葉集)」에 수록된 4,500여 수의 와카(和歌) 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5·7·5·7·7 형식의 단카(短歌)이며, 최초의 칙찬(勅撰) 와카집인「고킨화카슈(古今和歌集, 905년)」에 수록된 1,111수 중 10수를 제외한 1,101수가 모두 단카 형식이었다. 그 이후 와카(和歌: 일본 노래)는 단카(短歌)를 의미하게 되었다.
「고킨화카슈(古今和歌集)」에는 정통 와카와는 다른「하이카이카(俳諧歌)」라는 이름으로 58수가 부록처럼 수록되어 있다. 하이카이(俳諧)는 중국에서 온 말로 滑稽, 諧謔을 의미한다. 즉 「하이카이카(俳諧歌)」는 당대의 언어와 감성을 해학적으로 읊은 노래이다.
중세시대(1198~1603)의 와카는 원래 한 사람이 읊던 5·7·5·7·7을 두 사람이 나누어 읊는 렌가(連歌) 형식으로 발전한다. 와카도 계속 있었지만 렌가는 무사계급의 지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형식으로 등장한다. 렌가는 와카의 정서를 이어받은 것으로 잔잔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고유의 일본어로 노래한 것이다.
렌가(連歌)의 종류는 와카(和歌)적 정취를 기반으로 유현(幽玄)과 사비(さび)를 추구하는 와카적 렌가와 機智와 滑稽를 주로 하는 렌가로 분류하며 길이에 따라 단렌가(短連歌), 가센(歌仙), 고주인(五十韻), 햐쿠인(百韻)으로 구분한다. 당시 렌가 모임에서 잠시 휴식을 겸하여 웃음과 해학을 위하여 재미있는 시를 읊었는데 이를 하이카이 렌가(排諧 連歌)라고 하였고 형태적으로는 정통 렌가를 따르고 작품의 내용은 해학적인 하이카이(排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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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가(連歌)는 공동체 사회를 지탱하는 사교적 문예로써 작가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기 보다는 시키모쿠(式目)이라는 규칙을 준수하면서 앞뒤 문맥을 잘 연결해야 한다.
최초의 훗쿠는 초대 받은 사람 중에서 주빈이 주인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겸해서 5·7·5를 읊으면 주인이 그 정서를 이어받아서 두 번째 구 7·7을 읊어 답하는 방식이다. 훗쿠(5·7·5)에는 그 계절의 시어인 기고(季語)와 구를 끊는 기레지(切字)가 들어 있어야 하고, 두 번 째 구에서도 훗쿠의 기고보다 앞선 기고를 사용할 수 없다.
렌가를 읊는 자리를 좌(座)라고 하며 가센을 한 권 읊는데 보통 한나절이 걸리고 대단히 엄격한 시키모쿠(式目)를 지켰다. 렌가나 하이카이 렌가는 너무 짧고 형식상 제약이 많고, 앞 사람의 시를 잘 이해해야 하며 그로부터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신의 시를 지어야 하므로 개성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렌가에서 파생된 하이카이 렌가는 형식과 문예공동체적인 성격은 동일하지만 1603년 일본 근세시대의 개막과 함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도시 상인을 중심으로 급속히 보급된다. 士(武士)農工商의 신분제도가 엄격한 일본에서 하이카이의 좌에 참여하는 사람은 신분, 직업, 나이를 차이를 넘어 다 함께 하이카이 렌가를 읊는 사람(連衆 렌주)로 만났고 그들은 각자 자신의 으름 대신 하이고(排號)를 썼다.
근대 이후 서양의 영향으로 일본 근대문학은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 1867∼1902)가 하이카이(排諧)의 훗쿠를 하이쿠(排句)라는 이름으로 개혁시켰다. 시키는 하이쿠를 서양문학에 필적하는 국민문학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이카이 렌가의 좌(座)를 허물고 렌주(連衆)를 부정하였으며, 까다로운 시 창작형식인 시키모쿠를 제거하였다. 그 대신에 언제 어디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자연’을 전면에 내걸고 자연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사생(寫生)’을 제창한다.
하이쿠의 문학적 특징
1. 공동체 중심의 집단창작 문학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은 대개 한 작가 개인의 창작물인데 비해 하이쿠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36개의 구를 계속 연결해서 읊은 렌쿠(連句)의 가센(歌仙)이 대표적 산물이다. 즉 공동 창작 및 향유의 문학으로 좌중에 함께 모인 사람들 모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교감과 집단 무의식을 공유한다.
하이카이의 자리에서는 상인, 농민, 귀족, 무사와도 대등한 관계로 참석할 수 있었다. 중세 말기부터 에도시대 초기(16∼17세기)에는 상업이 급격히 발달하여 상인들은 일약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신분상으로는 최하층민이었기 때문에 상승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문학이나 연극에 관심을 가졌으며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여 하이카이집을 출판을 하고 위와 같은 말장난적인 문장을 확산시켜 갔다. 16세기에는 주로 원초적인 성 본능을 자극하거나 비속하고 외설적인 오락적 성격이 강하였으나 차츰 마음으로 통하는 심연관계(心緣關係)로 발전시켜 계급을 초월하여 확산되다.
2. 언어적 애매함으로 미학 추구
일본 시가문학은 '드러남'의 미학보다는 '감춤'의 미학을 더 선호한다. 이는 깊이 몰입하여 주객합일에서 오는 감동(모노노아와레)과 베일에 가려진 듯한 깊고 그윽한 멋(幽玄), 연륜으로 인해 손때 묻은 정감과도 같은 담백한 맛(사비)을 추구하는 미학으로 이는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의미이다.
19세기 후반,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하이쿠 등 일본 문화를 본국으로 전한 결과 서양미술사에 자포니즘을 탄생시켰으며 인상파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또한 세르게이 M 아이젠슈타인의 몽타쥬 기법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하이쿠는 의도적으로 비논리적인 문장을 만든다.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順三郎)는 '서로 먼 것을 연결하고, 가까운 것을 격리하여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고 한다.
하이쿠 애호가들은 하이쿠가 시적인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매력이 있다는 식의 일견 무책임한 말을 한다. 하이쿠는 하나의 완결된 완성품으로서의 통일된 구성과 주제가 없다. 통일성 대신에 오히려 단편적이고 자율성 대신에 문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3. 하이쿠의 사상적 배경
일본 시가문학의 특징은 물질적 가치관 보다 정신적인 깊이를 중시한다는 것과 자연이라는 테마라는 점이다. 지진, 쓰나미, 화산, 태풍 등 자연재해가 심하여 자연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심성에는 절대적인 확신이 없다. 즉 상주불변(常住不變)에 대한 확신이 없으므로 주거를 꾸미거나 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순간이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섭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17세기 바쇼는 방랑, 고전의 탐독을 통해 하이쿠를 집단적 폐쇄성 속에서 끌어내어 보편화시킨 인물인데, 그는 놀이와 같은 가벼움 또는 자기도취적 심미주의를 지양하고 좀 더 물(物)에 다가가서 느낀 것을 그대로 드러내라고 했다.
하이쿠는 민중들의 생활을 바탕으로 생활 체험에서 나오는 민중의 입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아주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작은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형식화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이쿠의 발달과정
1. 초창기의 하이카이
야마자키 소우칸(山崎宗鑑, ∼1504년경)은 렌가의 대가로 렌가로 부터 히이카이를 독립시킨 사람이다. 전통적인 렌가에서 탈피하여 비속적, 해학적인 골계미로 대중화에 기여한 하이카이의 창시자이다.
아라키다 모리타케(荒木田守武, 1473∼1549)는 당시의 비속적 하이카이를 천박한 下品의 웃음이라고 비판하고, 골계미를 기저로 한 품격 있고 우아한 上品의 句에 예술적인 風流가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이카이의 문학성을 강조했다.
2. 하이카이 확립기
소우칸과 모리타케를 기반으로 시작한 하이카이는 테이몽(貞門)파를 이끌었던 마츠나가 테이도쿠(松永貞㯖)에 의하여 확립된다.
마츠나가 테이도쿠(松永貞㯖, 1571∼1653)는「에노코슈(太子集)」를 통해 하이카이의 시키모쿠(式目)를 제시하고 하이카이의 본질론, 작법, 창작 규칙, 季奇(계절어 모음집) 등을 정립하였다. 이로써 렌가의 余技로 존재하였던 하이카이를 와카(和歌)의 새로운 분야로 만들기 위하여 이론 정립과 시 작법 등 형식화에 주력했다.
니시야마 소우인(西山宗因, 1605∼1682)은 테이토쿠 방식을 비판하고 새로운 하이카이(新排諧) 추구하였다. 신하이카이는 枯渴語를 폐기하고 俗語와 漢字 등을 자유롭게 받아들여 기발한 골계미, 대담한 패러디에 의한 고전의 비속화와 극단적 의인법에 의한 비현실적 부조리의 웃음을 추구하는 등 평언속어(評言俗語)로 작품을 창작하는 구어체 하이카이 운동을 전개하는데 이 운동은 약 10여 년간 유행하지만 그 가풍이 너무 자유분방하여 전통 시가의 본래 정신을 회복하여 성실하고 진실된 하이쿠 이념 즉 마코토(誠)정신으로 전환한다.
3. 하이카이 성숙기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본명은 마쓰오 무네후사(松尾宗房)이며 고향의 봉건 영주 밑에 들어가 시종으로 일하다가 1666년 주군이 죽자 武士의 지위를 버리고 시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바쇼는 진부한 하이카이의 테두리를 과감하게 뛰어넘으려고 애썼으며 하이카이는 참신하고 영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교의 선종 철학에 입각해 사소한 것 뒤에 숨겨진 가능성을 드러내고 삼라만상의 상호의존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세계의 의미를 단순한 시형식에 압축·표현하려고 애썼다.
1684년부터는 약 10년간의 일본 북부지방을 여행하며 오사카(大坂)에서 죽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그의 여행 이야기는 여행길에 본 다양한 광경을 기록한 하이카이뿐만 아니라 그 하이카이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아름다운 산문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북부지방을 여행하고 쓴 오쿠노 호소미치(奧の細道, 1694)는 가장 아름다운 일본 문학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바쇼는 시인은 단순히 말솜씨만 좋아서는 안 되며 '향기'와 '메아리', '조화'를 비롯한 섬세한 이미지의 연상에 따라 시구를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쇼의 시에 등장하는 정신은 '사비(寂)'인데 이는 예스러운 것, 한적한 것, 빛바랜 것, 은근한 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바쇼는 자신이 쓴 시의 온화한 정신과 일치하는 삶을 살면서,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화려함과는 대조적인 검소하고 소박한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사회와 완전히 관계를 끓고 '바쇼안'(芭蕉庵)이 있는 후카가와(深川)로 들어가곤 했는데 '바쇼안'은 자신의 필명을 따서 지은 소박한 오두막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바쇼의 인간성과 그의 시를 기려, 그를 하이쿠의 성인으로 추앙했다.
4. 하이카이 중흥기
근세시대(1603∼1867)에는 막부가 화폐경제 채택, 교통망 정비, 상업의 발달로 기존의 질서와 경제구조가 급변하는 시대다. 특히 상업의 발달로 士農工商 중 최하위층인 상인(죠닌)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고 농민층이 상대적으로 몰락하여 농민봉기가 되풀이되던 시대이다.
바쇼가 죽은 다음 배단(排壇)은 사분오열되고 바쇼가 세운 하이카이의 예술성마저 사라져서 18세기에는 동음이의어에 의한 언어유희, 센류(川柳)적인 유머와 경박한 표현으로 점차 하이카이는 하이카이는 俗化되어간다. 한편 애도(江戶, 동경)와 오사카(大坂)를 중심으로 蕉風復興運動이 일어나는데 그 중심에 요사 부송(与謝蕪村, 1716∼1783)이 있다.
요사 부송(与謝蕪村, 1716∼1783)은 오사카에서 태어나 에도에서 하이카이를 배우며 남송 문인화로 이름을 떨치던 하이카이 시인이자 화가였다. 부송은 사생활이나 세상 일에 대하여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며, 漢詩的·王朝的 취미를 애호하고 조형미를 기반으로 풍부한 색채와 낭만적인 시정으로 회화적, 인상적, 탐미적인 작풍을 추구하였다. 특히 하이카이에 수묵화적인 표현을 도입하여 寫生作家로 불릴 만큼 회화적 기법을 정착시킨 이른바 예술지상적인 문인이다.
코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는 신슈(信州) 지방의 농민출신으로 근세후기의 하이카이 시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잇사는 사투리나 속담을 잘 구사하여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주관적이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 잇사는 전통 카이카이 체제에 대한 부정과 서민의 애환을 독자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근세 하이쿠는 새로운 측면을 맞이한다.
5. 하이쿠의 부흥기
근세 이후 하이카이는 메이지(明治)시대에도 계속 침체되었는데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재생된다.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 1867∼1902)의 본명은 츠네노리(常規)이였으나 후에 노보루(升)로 개명하였다. 시키는 전통적인 하이카이를 격렬하게 비판하고 하이쿠라는 명칭으로 개칭하고 하이쿠에 사생이론을 제창한다. 하이쿠의 독립은 기존의 문학 장르, 즉 하이카이에서 독립한 새로운 문학세계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로서 시키는 20세기 하이쿠 부흥의 지도자로 불린다.
6. 근대 신흥 하이쿠
시키의 하이쿠 사상은 그의 제자 카와히가시 헤키고토우(河東碧梧桐)와 타카하마 쿄시(高浜虛子)에 의하여 활기차게 전개된다.
헤키고토우(河東碧梧桐, 1873∼1937)는 하이쿠의 표현 내용이나 방법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제시하고 현대화를 제창하던 독특한 시인이다. 특히 하이쿠의 정형률을 관습에 따른 맹목적인 유치한 고집이라고 비난하고 하이쿠 시어의 문어와 구어의 구별을 단순한 외적조건으로 취급하였다.
1910년에 하이쿠를 자연현상과 생활현상으로 다가가게 하는 방법 인위성을 배제한 無中心論을 제창하고, 平面描寫의 句를 시도하는 등 신경향으로 하이쿠의 변화를 추진하였다. 또한 1915년에는 하이쿠의 정형에 반발하여 문어대신 구어 사용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이쿠의 17음을 파괴하고 신경향운동을 전개하면서 구어적 표현방법과 자유율을 도입하고, 산문적인 24문자로 만드는 작품을 발표하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1934년에는 스스로 낙오자임을 시인하며 은퇴한 다음 1938년에 장티푸스 패혈증으로 생을 마감한다.
타카하마 쿄시(高浜虛子)는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의 제자이자, 헤키고토우(河東碧梧桐)와는 교우로 하이쿠를 대중문학으로 이끈 시인이다. 그는 일본 전통문학의 미적 이념인 쓸쓸함(사비 寂び 또는 와비 侘び)과 가벼움(輕み)의 세계를 추구하며 이러한 이념을 토대로 사계절을 다루는 하이쿠가 진정한 의미의 하이쿠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하이쿠는 본질적으로 花鳥를 읊는 기법이라고 선언하였지만 쿄시의 하이쿠는 대부분 순간적인 지각현상을 중심으로 창작되고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지 않아 근본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7. 전후 하이쿠의 경향
일본은 패전 이후 서양에 졌다는 열등감과 예술의 분야도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서양의 근대 예술은 엄격하고 타협이 없는 비판정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일상 속에 스며있는 일본 예술에 대해 대중적이며 천한 것이라는 열등의식을 갖게 되었다.
아직도 일본의 하이쿠는 한 위대한 시인 바쇼의 작품, 혹은 그 뒤의 부송, 잇사의 작품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 현대 하이쿠 향유방식
렌가와 하이카이 렌가의 전통을 이어 받은 현대의 하이쿠는 공동체 문학으로의 성격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현대 하이쿠는 동호인간의 결사(結社)를 조직하여 구카이(句會)를 연다. 진행 순서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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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구카이는 장소는 주로 개인의 집이나 공원, 절, 신사 등에서 열린다.
② 구카이 날짜가 정해지면 하이쿠의 기고인 겐다이(兼題)가 사전에 발표된다. 참가자들은 그 기고가 들어간 하이쿠를 지어가며 기고가 사전에 발표되니 않는 경우에는 행사 당일, 즉석에서 세키다이(席題)가 발표되는데 이 땐 행사장에서 하이쿠를 지어 주최 측에 제출한다.
③ 주최 측에서는 제출된 구(句) 중 참자자들이 많이 선택된 구(選句)를 순서대로 발표하고(彼講) 참가자는 자신이 선정한 하이쿠에 대한 비평과 감상을 말한다.
④ 제일 마지막에는 하이쿠를 지은 작자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으로 끝난다.
일본 시가의 전통적 소재는 화조풍월의 자연이다. 쓸쓸함(사비)은 無常이나 孤寂에서 오는 애상적 심미의식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미의식은 무상이나 고적은 소멸하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에서 출발한다. 화조풍월의 모든 변화가 자연의 섬리임을 깨닫고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는 자세로부터 형성되는 미를 추구한다.
하이쿠는 5·7·5, 17자로 된 가장 짧은 정형시로 우주의 삼라만상을 담고 있어 직접적 의미파악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또한 1구1장 또는 2구1장 형식과 8음의 박절구조에 휴음을 삽입하여 율격을 만든다. 17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는 짧은 문장이므로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기레지와 기고를 활용하여 만든다.
기레지는 하이쿠를 1구1장 또는 2구1장으로 만드는 기능을 하며 하이쿠 문장을 질적으로 승화시키고, 기고는 자연과 인생을 담아내는 장치로서 일본인의 정서와 미의식을 보여준다.
하이쿠는 생활 속에 드러나는 滑稽와 諧謔을 중심으로 한 시가인데 초창기에는 자연물을 형상화한 기발한 착상과 해학이 중심이 되었었고, 확립기에는 同音을 적극 활용하여 言語遊戱와 庶民生活을 노래하였으며, 후반기에는 자연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현대 일본에서는 여전히 排壇을 형성하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자연풍경 그 자체를 즐기는 風景興趣와 서민의 생활문학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이쿠는 일본문화의 폐쇄적인 집단문학이다. 폐쇄성 속에 머물러 있을 때는 단순한 이질문화에 지나지 않지만, 바쇼와 같은 깨달음이 바탕이 된 만물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 하이쿠는 우리와도 시공을 초월한 '통함'을 느낄 수 있는 장이 될 수도 있다.
하이쿠 대표 작품감상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
자세히 보면/ 냉이 꽃 피어 있는/ 울타리로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 / 저마다 저만 안 죽는다는 / 얼굴들이네
이 가을, / 너의 삶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 이젠 다 부질없는 짓이니
너무 울어 / 텅 비어 버렸는가, / 이 매미 허물은
초겨울 비가 내리네 / 내 이름은 / '방랑자'
병이 들었지만 / 이 국화는 그래도 / 꽃망울을 맺었구나
보리죽만 먹고 / 사랑을 하느라 / 이 암고양이는 점점 수척해지는구나
첫 가을비가 내리네 / 나무의 그루터기가 / 검어질 만큼
김에 묻은 모래에 / 이가 시큰거리는 걸 보니 / 나도 이젠 늙었다
바위산의/ 바위보다 더 하얀/ 가을바람
파를 하얗게/ 씻어서 쌓아놓은/ 매운 추위여
겨울바람이여/ 볼이 부어 쑤시는/ 사람의 얼굴
헤진 여름옷/ 아직도 이(蝨)를 다/ 잡지 못하고
고양이 사랑/ 끝날 적 침실에는/ 어스름 달빛
여름잡초여/ 무사들의 꿈이/ 사라진 흔적
남의 말 하면/ 입술이 시리구나/ 가을 찬 바람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퐁당
코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
백정의 마을도/ 밤에는 아름다운/ 다듬이 소리
쌀을 뿌려 주는 것도 / 죄가 되는구나 / 닭들이 서로 다투니
벌레가 울고 있네 / 어제까지는 못 보던 / 벽에 난 구멍에서
그녀가 젊었을 때는 / 벼룩에 물린 자리조차도 / 예쁘다네
나는 외출하니 / 맘 놓고 사랑을 나누게나, / 파리여
벌레를 죽이며/ 입으로는 말하네/ 나무아미타불
돌아눕고 싶으니 / 자리 좀 비켜주게 / 귀뚜라미여
이 가을저녁 /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 결코 가볍지 않다
내 귓가의 모기는 / 내가 귀머거리인 줄 / 아는 걸까
옷을 갈아입었지만 / 내 여행길에는 똑같은 이가 / 따라나섰구나
올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쓰라려 / 쓰라려 쓰라려
벼룩 너에게도 / 역시 밤은 길겠지 / 밤은 분명 외로울 거야
옛날에 내가 떠난 집 / 아직도 그곳에 / 벚꽃이 피겠지
강물에 떠내려가는 / 나뭇가지 위에서 / 아직도 벌레가 노래하네
허수아비 /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 울고 있네
마지막으로 / 아버지 얼굴에 앉은 / 파리를 쫒아보냈네
다리 위의 저 거지도 / 아들을 위해 / 반딧불을 잡으려 하네
재주가 없으니 / 죄 지은 것 또한 없다 / 어느 겨울날
파리가 자꾸만 달려든다 / 이 주름진 손에서 / 무엇을 원하는 걸까
이 덧없는 세상에서 / 저 작은 새조차도 / 집을 짓는구나
미타리 풀이여, / 넌 무엇에 대해 /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니
여윈 정강이/ 부둥켜안고 있네/ 오동잎 하나
요사 부송(与謝蕪村, 1716∼1783)
범종에 앉아/ 하염없이 잠자는/ 나비 한 마리
유채꽃이여/ 달은 동녘에/ 해는 서녘에
오월장마여/ 큰 강을 앞에 두고/ 집 두 채
가는 봄이여/ 묵직한 비파를/ 안은 이 기분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 밧줄에도 걸리지 않는 / 물 속의 달
두 그루의 매화, 얼마나 보기 좋은가 / 하나는 일찍 피고 / 하나는 늦게 피고
모기소리 난다/ 인동덩굴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무지개를 토하고/ 막 피어나려는/ 모란이여
모란 잎져서/ 서로 포개어진다/ 두 세 이파리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 1867∼1902)
새해의 첫날 /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 그냥 인간일 뿐
오래된 벽 한구석에/ 거미가 움직임 없이 매달려 있다/ 애를 가졌구나
이 덧없는 세상에서 / 허수아비도 / 눈과 코를 가졌구나
밤은 길고 / 나는 누워서 / 천년 후를 생각하네
기타 하이쿠 시인 작품
경전을 읽고 있는 사이/ 이 나팔꽃은/ 최선을 다해 피었구나 (쿄로쿠)
반딧불이 반짝이며 날아가자/ '저길 봐'하고 소리칠 뻔했다/ 난 혼자인데 (디이기)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 어, 다시 올라가네 / 나비였네 (모리다케)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땐/ 무척 떫었다는 걸 (소세키)
구석에서 / 귀뚜라미가 우니 / 내 귀가 밝아지네 (시바)
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 / 잠들지 않으면 / 더욱 춥다 (시코)
대야의 목물/ 버릴 곳이 없는/ 벌레 소리 (오니쓰라)
내가 사랑 때문에 죽으면/ 내 무덤에 와서 울어다오/ 뻐꾸기야 (오슈)
반딧불을 쫓는 이들에게 / 반딧불이 / 불을 비춰 주네 (오에마루)
이 쓸쓸함이/ 밑 빠진 듯 내리는/ 진눈깨비여 (조소)
그의 모자가 점점 멀어져/ 나비가 될 때까지/ 그를 쳐다보네 ( 치요니)
나팔꽃 넝쿨에/ 두레박줄 빼앗겨/ 얻어 마신 물 (치요조)
저 세상이 / 나를 받아들일 줄 / 미처 몰랐네 (하진)
몸무게를 달아보니 65kg/ 먼지의 무게가/ 이 만큼이라니 ( 호사이)
달빛이 너무 밝아 / 재떨이를 비울 / 어둔 구석이 없다 (후교쿠)
긴 긴/ 한줄기 강이여/ 눈 덮인 들판 (본초)
땔감으로 쓰려고 / 잘라다 놓은 나무에 / 싹이 돋았다 (본초)
화투의 상징과 의미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놀이문화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이 ‘고스톱’이라는 화투(花鬪)였다. 화투의 기원은 1543년 일본을 왕래하던 포르투칼 상인에 의해 최초로 전래된 서양의 카드인 카루타(かるた)에서 유래한다. 에도시대(江戶)의 우키요에(浮世繪)라는 풍속화가 결합하여 18세기 말에 완성된 것이다.
화투는 ‘꽃들의 싸움’이라는 의미이고 전형적인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놀이문화이다. 일본에서는 화투를 화찰花札(일명 하나후다 はなふだ)라고 부르며, 12개월로 나누어 각 4매씩 총 48장으로 구성되며, 그림에는 일본 고유의 세시풍속, 축제, 각종 행사 등과 기원의식 심지어는 교육적인 교훈까지 담겨져 있는데 19세기말 한일정기여객선(연락선 부산⇔시모노세키)을 타고 왕래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화투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숫자가 적힌 패를 뽑아 우열을 겨루는 ‘수투數鬪’ 또는 수천(數千)·수투전(數鬪牋)·투전(鬪箋)으로 불리는 놀이가 유행하였다.
놀이도구는 보통 백지를 몇 겹 붙여서 두껍게 한 것을 오려내어 글자를 쓰고 기름에 절여서 만든다. 참대를 깎아서 만들거나 가죽을 오려서 만들기도 한다. 수투는 화투가 들어오면서부터 수투가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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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丹)의 의미>
열두 달 중 8월과 11월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달에는 홍단, 청단, 초단이 있다. 화투에 등장하는 단은 일명 ‘단책丹冊’이라고 하는 종이다. 단책은 하이쿠(俳句; はいく)라는 일본 전통 詩句를 적을 때 사용되는 종이로 크기는 대략 가로(6cm)×세로(36cm) 정도가 된다.
한국에서는 붉은색을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만, 일본에서는 쾌청한 날씨, 경사慶事스러움, 상서로움을 의미하고 1월, 2월, 3월에 홍단이 있다.
한편 6월, 9월, 10월을 의미하는 화투 그림에는 청단이 있는데 일본에서 청색은 우울, 좋지 않은 일을 암시하는 색상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6, 9, 10월는 집중호우나 태풍 등으로 수재민들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평균적으로도 1년 중 이 기간에 각종 사건·사고도 비교적 많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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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학과 태양 및 홍단이 그려져 있다. 태양은 신년 일출을, 학은 장수와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나타낸다. 소나무는 1월을 대표하는 일본의 세시풍속인 가도마쓰(門松; かどまつ)에서 유래한다. 일본인들이 1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소나무를 현관 옆에다 장식해 두고,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이기 위한 일련의 행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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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는 매화를 배경으로 꾀꼬리가 나온다. 일본의 매화 축제는 2월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꾀꼬리는 4월 이후에 일본으로 날아오는 새이지만 2월에 등장하는 이유는 매화와 꾀꼬리가 봄의 전령사임을 노래하는 대표적 시어詩語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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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는 벚꽃을 배경으로 만막(慢幕; まんまく)이라는 휘장이 등장한다. 일본의 벚꽃 축제는 대부분 3월 달에 최고 절정에 이르고 상춘객이 만막(慢幕; まんまく)이라는 휘장을 치고 벚꽃을 감상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림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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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등나무 꽃을 배경으로 두견새가 날고 있다. 이 그림은 흑싸리가 아니라 등나무 꽃을 의미한다. 4월에는 등나무 꽃 축제가 열린다. 등나무는 여름을 의미하는 시어詩語로 일본에서는 각종 행사시 가마에 장식하거나 가문의 문양으로 쓰이는 등 친숙한 식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절개가 없는 덩굴식물을 상징하므로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달밤(하현달)의 두견새는 원조(怨鳥), 귀촉도(歸蜀途), 또는 망제혼(望帝魂)이라고 하여 불길한 징조를 상징하므로 우리나라의 민화에서는 그려지지 않는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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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는 붓꽃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는 흔히 난초라고 생각한다. 붓꽃은 습지에서 피는 관상식물로 여름을 상징하는 시어詩語다. 노란색 형상은 붓꽃을 구경하기 위해 만든 산책용 목재 다리이며, 수직의 작은 막대기 3개는 다리를 지지하는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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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는 모란꽃을 배경으로 나비가 나온다. 모란은 일본에서는 가문의 문양으로 많이 사용한다. 모란꽃은 여름의 시어詩語이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꽃과 나비하면, 바로 모란꽃을 떠올릴 정도로 동양에서는 모란꽃을 꽃의 제왕으로 친다. 그러나 한국화에서는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이 오래된 관례인데 이는 당 태종이 신라의 선덕여왕에게 보낸 모란꽃 그림에 나비가 없었다는 점에서 연유한다.(참고: 모란꽃에는 은은한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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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는 싸리나무를 배경으로 멧돼지가 등장한다. 싸리나무 숲에서 멧돼지 나오는 이유는 일본에서는 7월에 멧돼지 사냥철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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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는 산을 배경으로 보름달과 기르기가 나오는데 8월이 오츠키미(달구경; おつきみ)의 계절인 동시에 철새인 기러기가 대이동을 시작하는 시기임 상징한다. 일본에서는 8월 대보름에는 달을 보며 과일 등을 창가에 두고, 달에게 바치는 소박한 명절인 월견자(月見子:오츠키미)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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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는 국화꽃을 배경으로 ‘목숨 수壽’자가 새겨진 술잔이 등장한다. 9세기경인 헤이안 시대부터 ‘9월 9일에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를 한다.’는 일본 전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또한 국화는 일본의 왕가王家를 상징하는 문양인데 9월의 10점짜리는 자기 맘대로 쌍 피로도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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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는 단풍을 배경으로 수사슴이 등장한다. 일본에서 단풍은 '낮에는 홍엽(紅葉), 밤에는 홍등(紅燈)' 이라고 하며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 그 색채의 변화를 즐기는 일본인들의 풍취를 상징하고 수사슴은 근세에 성행했던 본격적인 사슴 사냥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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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는 오동잎을 배경으로 봉황이 등장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11월을 의미하나 일본에서는 12월을 의미한다. 오동잎은 일왕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막부(幕府)의 쇼군을 상징하는 문양이며, 일본 화폐 500엔(¥)짜리 주화에도 오동잎 도안이 들어가 있고 지금도 일본 정부나 국공립학교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된다. 오동과 봉황은 군자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출현한다는 봉황이 벽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 하여 고귀한 품격의 표상으로 사용 된다. 즉 오동 광은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을 상징하는 봉황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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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는 수양버들을 배경으로 사람과 개구리, 제비, 문이 등장한다.
비 광의 그림은 에도시대에 성행했던 일본 풍속화 ‘우키요에(浮世繪; うきよえ)’로 우산을 쓴 선비는 일본의 3대 서예가 중 한 사람으로 과거 일본 교과서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유명한 ‘오노의 전설’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피의 문양은 ‘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일종의 쪽문’으로서, 라쇼몬(羅生門)을 뜻하는데 쌍 피로 대접받는 이유는 라쇼몬이 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문이기 때문이다,
오노의 전설
일본의 서예가였던 오노노도후(小野道風;AD.894-966)가 붓글씨에 몰두하다 싫증이 나자 잠시 방랑길에 올랐는데 수양버들이 우거진 어느 길목에 다다랐을 때, 아주 이상한 광경을 발견했다. 개구리 한 마리가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개구리는 오르다가 미끄러지고 또 오르려다 미끄러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그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오르기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연속적인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개구리의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미물微物인 저 개구리도 저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여기서 포기해서 되겠는가?”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 붓글씨 공부에 정진하였고 결국 일본 최고의 서예가가 되었다는 이야기.
하이쿠 한 詩문학/하이쿠 2014.11.02 댓글수0 0
- 한 줄도 너무 길다 : 하이쿠 시 모음집 / 류시화 문학/하이쿠 2014.11.02 댓글수0 0
- 春夏秋冬의 하이쿠☼ 봄(春)의 하이쿠 櫻舞う街のコンビニ獨りかな (さくらまう / まちのコンビニ / ひとりかな) 벚꽃 춤추고 / 거리의 편의점에 / 나 홀로 있네 菜の花とところどころにいいポ-ズ (なのはなと / ところどころに / いいポ-ズ) 유채 꽃밭과 / 곳곳의 사진 찍는 / 제각기 포즈 へい越しに古家藤の花故人しのぶ (へいごしに / こかふじのはな / ひとしのぶ) 폐가(廢家) 담 넘어 / 홀로 핀 등꽃 / 옛 님 그리네 ☼ 여름(夏)의 하이쿠..문학/하이쿠 2014.11.02 댓글수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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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시인 바쇼(1644~1694)의 여행 규칙
같은 여인숙에서 두 번 잠을 자지 말고, 아직 덥혀지지 않은 이불을 청하라.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니지 말라.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어떤 것, 같은 땅 위를 걷는 어떤 것도 해치지 말라.
옷과 일용품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지 말라.
물고기든 새 종류든 동물이든 육식을 하지 말라.
특별한 음식이나 맛에 길들여지는 것은 저급한 행동이다.
'먹는 것이 단순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라.
남이 청하지 않는데 스스로 시를 지어 보이지 말라.
그러나 요청을 받았을 때는 결코 거절하지 말라.
위험하거나 불편한 지역에 가더라도 여행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꼭 필요하다면 도중에 돌아서라.
말이나 가마를 타지 말라.
자신의 지팡이를 또 하나의 다리로 삼으라.
술을 마시지 말라.
어쩔 수 없이 마시더라도 한 잔을 비우고는 중단하라.
온갖 떠들썩한 자리를 피하라.
다른 사람의 약점을 지적하고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말라.
남을 무시하고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은 가장 세속적인 짓이다.
시를 제외하고는 온갖 잡다한 것에 대한 대화를 삼가라.
그런 잡담을 나눈 뒤에는 반드시 낮잠을 자서 자신을 새롭게 하라.
이성간의 하이쿠 시인과 친하지 말라.
하이쿠의 길은 집중에 있다.
항상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
다른 사람의 것은 바늘 하나든 풀잎 하나든 취해서는 안 된다.
산과 강과 시내에게는 모두 하나의 주인이 있다.
이 점을 유의하라.
산과 강과 역사적인 장소들을 방문하라.
하지만 그 장소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글자 하나라도 그대를 가르친 사람에게 감사하라.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가르치지 말라.
자신의 완성을 이룬 다음에야 비로소 남을 가르칠 수 있다.
하룻밤 재워 주고 한 끼 밥을 준 사람에 대해선 절대 당연히 여기지 말라.
사람들에게 아첨하지도 말라.
그런 짓을 하는 자는 천한 자이다.
하이쿠의 길을 걷는 자는 그 길을 걷는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
저녁에 생각하고, 아침에 생각하라.
하루가 시작될 무렵과 끝날 무렵에는 여행을 중단하라.
다른 사람에게 수고를 끼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들이 멀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출처 ; 보광풍류회http://cafe.daum.net/bo-g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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