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의 앵무 / 이제니
소화꽃 피던 밤 눈 위의 앵무는 붉은 깃털을 세우고 영원의 길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보는 곳은 눈길 저 너머. 이곳에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낡은 호주머니 속 한 가닥 보푸라기를 만지는 심정으로. 나는 우리가 즐겨 했던 끝말잇기의 궤적을 그러보려는 헛되고 헛된 망상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 밤 눈 위의 앵무는 자신의 그림자를 끌고 날아오르려 날아오르려. 반성하는 습관을 버린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될 텐데. 앵무의 발은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부드러운 치자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꽃의 향기를 맡을 줄 압니다. 우리는 그리운 곳으로 손을 뻗을 줄 압니다. 네가 말하자 눈 위의 앵무는 눈썹 위의 물방을을 털어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내듯 길고 흐릿한 점선의 방향으로. 눈 위의 앵무는 모두들 잘 있다고만 했다 잘 있다고만, 너는 까닭없이 울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프리카> 창비시선 321 / 2010, 10
'산과 시, 사랑에서 행복을 찾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은 고스란히 나를 / 강신애 (0) | 2021.04.23 |
---|---|
이석耳石, 離席 / 박신규 (0) | 2021.04.20 |
하이쿠의 특성과 발달과정 (0) | 2020.10.09 |
거안사위(居安思危) (0) | 2019.06.11 |
김선우 시인 (0) | 2017.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