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시

능가경(入楞伽經) 7

능가경(入楞伽經) 7

 

대혜여, 그 망상 법체에 집착함에 의하여 말하되, ‘법이 공하여 생함이 없고 자체가 없으

며,

 

둘이 아니라’고 한 것이니라.

 

대혜여, 공함이 일곱 가지가 있나니 무엇이 일곱이냐.

 

첫째는 모양이 공함이요, 둘째는 일체 법의 있는 물질과 없는 물질이 공함이요,

 

세째는 행(行)이 공함이요, 네째는 행 아닌 것이 공함이요, 다섯째는 일체 법이 말없는 것의

공함이요,

 

여섯째는 제일의인 거룩한, 지혜 큰 것[第一義聖智大]의 공함이요, 일곱째는 저와 저가공[彼

皮空]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모양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일체 법의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이 공함이라는

소견이

 

번갈아 서로 쌓여 모인 것이니, 대혜여, 낱낱 법의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할진대

 

한 법도 있을 수 없고, 제 모양과 다른 모양인 두 모양을 떠난 것이어서,

 

모양들이 있을 수도 볼 수도 없기에 제 모양이 공한 것이라 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일체 법의 있는 물질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자체모양에 실로 법이 있다고

하나

 

대혜여, 모든 법의 자체 모양은 있고 없는 것이 모두 공했나니,

 

그러므로 자체 모양의 있는 물질과 없는 물질이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행(行)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五음등이 <나>와 <내것>이라 함을 떠났는

 

인연과 짓는것과 업에 의하여 생기게 되나니 대혜여, 이러하므로 행이 공한 것이라 하느니

라.

 

대혜여, 어떤 것이 행 아닌 것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五음법 가운데는 본래 열반일 뿐 행은

있지 않음이니,

 

대혜여, 이를 행 아닌 것이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일체 법이 말없는 것의 공함이냐. 말하자면 허망한 생각으로 모든 법을

분별한 것이어서

 

말로서는 말할 수 없나니 대혜여, 이를 일체 법이 말없는 것의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제일의인 거룩한 지혜, 큰 것의 공함이냐.

 

말하자면 자기 몸이 안으로 거룩한 지혜와 법이 공함을 체득하여

 

모든 사뙨 견해와 훈습의 허물을 떠난 것이니

 

대혜여, 이를 제일의인 거룩한 지혜, 큰 것의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저와 저가 공함이냐. 말하자면 어떠 어떠한 법에는 저 법은 없고 이 법은

있으며,

 

저법은 있고 이 법은 없나니, 이러하므로 저와 저가 공함이라 말한 것이다.

 

대혜여, 내가 옛적에 사슴어미[鹿母 = 一名 鹿子母니 人名으로 女子의 이름]를 위하여 말한

 

전당(殿堂)이 공했다 함은 코끼리와 말과 소와 염소 등이 없으므로 공했다 함이요,

 

여래 비구(比丘)들이 있으므로 공함이 아니라 한 것이다.

 

그리고 전당에는 전당 자체가 없고 비구에도 비구 자체가 없고 코끼리와 말과 소와

 

염소들이 딴 곳에도 없는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이러한 모든 법의 제 모양과 같은 모양도 또한 얻을 수 없고,

 

이와 저의[此彼] 곳을 떠났기에 내가 저와 저가 공함이라 말한 것이니라.

 

대혜여, 이를 일곱 가지 공함이라 한 것이다.

 

대혜여, 이의 ‘저와 저가 공함’이 가장 거칠고 옅음이 되나니,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저와 저가 공한 것을 떠날 것이요, 닦을 것은 없나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생하지 않는[不生]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자체가 생하지 않으며 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 것만 세 법에 의하여 생(生)함이라

말하고,

 

본래 생하지 않는 것에 의하여 불생(不生)이라고 말한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자체 모양 없는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말한 자체모양이 없다는 것은 일체 모든 법의 자체가 본래 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법이 자체가 없고, 계속되는 자체도 찰나 동안에도 머무르질 않는

다’고 말한 것이니라.

 

대혜여, 보고 나서는 달라져서 달라지는 모양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법의 자체 모양이

없는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떤 것을 둘이 아닌 법의 모양이라 말하옵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두 법의 모양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햇빛과 그림자와 길고 짧고 검고 흰 이러한

법들이

 

각각 이름이 다르나니 둘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없다. 대혜여, 저 세간(世間)과 열반과도 같

아서 모든 법도

 

각각 둘이 있나니 대혜여, 어떤 열반인들 그 곳에 세간이 없으며,

 

어느 곳의 세간인들 그 곳에 열반이 없으리요.

 

다르다는 것은 모양 때문이니, 그러므로 나는 모든 법이 둘이 아니라 말하니라.

 

모든 법이 둘이 아니라는 것은 세간과 열반이 둘이 없는 까닭인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대는 마땅히 모든 법이 공했으며, 생함이 아니요.

 

자체가 없고 둘이 아닌 것을 닦아 배워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항상 공한 법 말함은

 

단견과 상견 떠난 것이니,

 

죽고 삶은 환과 꿈 같은데

 

그러나 그의 업만은 없질 않네

 

 

허공과 그리고 열반이여

 

둘 없앤 것도 또한 이러한데

 

범부들은 괜히 분별하건만

 

성인은 있고 없는 것 떠났다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모든 법이 공했으며 생함이 아니요. 자체가 없고 둘이 아닌 것들은

 

모두 여래의 말씀하신 수다라 속에 들어 있나니, 모든 법문엔 이러한 뜻을 모두 말하였나니

라.

 

대혜여, 모든 수다라에서는 여러 중생의 마음을 따르기 때문에 분별로서 알려 주었나니

 

대혜여, 비유컨대 아지랑이를 잘 알지 못한 새와 짐승들은 허망한 집착으로서 물이라고 생

각하건만

 

그러나 아지랑이 속에는 실로 물이 있지 않는 것과 같아서

 

대혜여, 모든 수다라에서 말한 법도 또한 그와 같나니, 범부들의 마음속으로 분별하는 것을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요. 진실한 성인의 지혜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뜻을 따르고 말한 바 명자나 글귀에는 집착하지 말 것이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여래 갈무리의 자성[如來藏自性]은 청

정하여

 

三十二 모양을 갖추고서 일체 중생의 몸속에 있건만 욕심 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진실치 못

 

번뇌의 때로 더럽혔으며,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의 옷에 얽히고 싸인 것이 피었기에

 

값진 보배가 때옷 속에 묻힌 것과 같다 하시옵고, 세존께서 또한 말씀하시되

 

‘떳떳함이고 항상함이고 청량(淸凉)함이며, 변치 않는다’ 하옵시니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 할지라도 외도도 또한 말하기를

 

‘나에게 신비한 나[神我]가 있어 항상 있으며, 변치 않는다’하옵니다.

 

여래께서 또한 여래 갈무리는 항상 떳떳하며 내지 변치 않는다 말씀하시오나 세존이시여,

 

외도도 또한 말하기를 ‘떳떳한 것으로 된 것인 <나>는 모든 인연에 따르지 않고도

 

자연히 모든 것에 두루하고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나이다.

 

만일 그와 같을진대 부처님과 외도의 말이 다를것이 없겠나이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시었다.

 

“대혜여, 내가 말한 여래 갈무리가 떳떳하다 함은 외도들의 있다고 한 신아(神我)와는 같지

않나니라.

 

대혜여, 내가 여래 갈무리를 말하는데 공함과 실제(實際) 진리와 열반과 생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않는다는[不生不滅]것과 모양 없으며,

 

원(願)함 없다는 등의 말과 글귀로서 여래 갈무리를 설명하였노라.

 

대혜여, 여래 응공 정변지(正遍知)는 여러 어리석은 범부들이 무아(無我)란 말을 들을 적에

 

놀래고 두려워 하는 생각 내는 것을 위하기 때문에 내가 여래장(如來藏)을 있다고 말한 것

이다.

 

그러나 여래장은 분별할 바 없으며, 고요하고 모양 없기에 여래장이라 말한 것이니라.

 

대혜여, 현재와 미래의 모든 보살은 응당 <내>가 있다는 상(相)에 집착하지 말 것이니

 

대혜여, 비유컨대 질그릇 만드는 이가 진흙과 미진(微塵)과 바퀴와 끈와 인공(人功)과 손과

나무와

 

방편의 힘에 의하여 여러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나니,

 

대혜여, 여래 세존도 또한 그와 같이 저 법이 <나>라 함이 없고, 모든 분별하는 모양이 없

는데서

 

지혜와 교묘한 방편으로 여래 갈무리라 말하며, 혹은 무아(無我)를 말하기도 하며,

 

혹은 실제와 열반등의 가지 가지 명자와 글귀를 말하여 알려 주는 것이

 

그 질그릇 만드는 이가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대혜여, 내가 말한 여래 갈무리는 외도가 말한 <나> 있다는 것과 같지 않느니라.

 

대혜여, 내가 여래 갈무리를 말한 것은 외도의 <나>라 함에 착함을 위한 것이니,

 

그들을 포섭하려고 여래 갈무리를 말하여 저 외도들로 하여금 신아(神我)가 있다고 하는

 

허망한 소견과 마음에 집착한 곳을 벗어나고,

 

三해탈의 문에 들게 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노라.

 

대혜여, 이러한 뜻으로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는 여래 갈무리를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말한 여래 갈무리가 있다는 것은 외도의 신아(神我)가 있다고 집착한 것과

다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모든 외도의 사뙨 견해를 버리기 위하여 부처님이 이러한 말을 한 것이니,

 

그대는 마땅히 여래의 <나>라 함이 없는 법을 닦아 배울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남이니 나니하고 그리고 五음과

 

뭇 인연과 또한 작은 티끌과

 

자성이 제대로 지은 것이여

 

이가 곧 마음의 허망한 분별일세.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미래의 모든 중생을 관찰하고서 또한 부처님께 청하여

말하였다.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을 위하시어 진실한 수행법을 말씀하옵소서.

 

저 여러 보살들이 진실한 수행법(修行法)을 듣기만 하오면 진실한 수행자가 되오리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가지 법이 있어야만 큰 진실한 수행자라 할 것이니 무엇이 네가지냐.

 

첫째는 제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아는 것이요,

 

둘째는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을 멀리 떠나는 것이요,

 

세째는 바깥법의 있고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요,

 

네째는 속 몸으로 체득한 지혜를 좋아하여 닦는 것이니

 

대혜여, 보살이 이와같은 네가지 법을 성취한다면 큰 진실한 수행자라 할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알아 관찰함이냐.

 

말하자면 삼계(三界)가 다만 한 마음으로 된 것이며, <나>와 <내것>을 떠난 것이며,

 

움직이는 것도 없고 지각(知覺)함도 없으며, 취하고 버리는 것을 떠났으며,

 

끝없이 오면서부터 삼계의 훈습함과 희론의 마음에 허망스리 집착한 것이며,

 

가지 가지 색[色]과 행(行)에 항상 묶인 것이며,

 

몸과 살림살이와 기세간(器世間)속에 육도(六道)가 허망하게 나타난 것들을 관찰함이니

 

대혜여, 이를 보살 마하살이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아는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을 모든 보살 마하살이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을 멀리 떠난

다고 하느냐.

 

말하자면 모든 법이 눈홀림 같고 꿈 같은 것이며, 모든 법의 자타(自他) 두가지가 없는 것이

며,

 

그 생기지 아니하건만 제 마음에서 나타나는 지견(知見)을 따르는 것이며, 바깥 법이 없는

것이며,

 

여러 알음알이가 일어나지 않고 모든 인연의 모임이 없는 것으로 관찰하는 것이며

 

三계가 인연으로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며, 안과 바깥의 모든 법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음

 

실체가 없기 때문인 것이며, 모든 법이 있다고 하는 바르지 못한 견해를 멀리 떠난 것이며,

 

모든 법이 환(幻)의 모양과 같은 데에 들어가는 것이니,

 

보살이 그 때엔 초지(初地)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것이라

 

심(心)과 의(意)와 식(識)과 다섯법의 체상을 멀리 떠나며, 두 무아[二無我]와 뜻과 같은 몸

을 얻고,

 

그리고는 내지 제八 부동지(不動地)의 뜻과 같은 몸을 얻나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뜻과 같은 몸이라 하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뜻을 따라 빨리 갈 수 있고 생각하는 대로 곧 이르되 걸리는 것이 없으므로

 

뜻과 같은 몸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뜻과 같다고 말한 것은 석벽(石壁)과 산이 막히기를

 

한량없는 백천만억 유순(由旬)이어도 본래 보았던 바 경계를 생각만 한다면

 

자기 마음속엔 장애물이 구애될 것 없이 자유로이 가게 되느니라.

 

대혜여, 뜻과 같은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여환(如幻) 삼매의 자재한 신력을 얻어

 

그 몸을 장엄하고 모든 거룩한 지혜의 종류에 나아가는 몸이기에 걸림 없이 뜻을 따라 가

되,

 

본원력(本願力)의 경계를 생각하므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교화하나니,

 

대혜여, 이를 보살 마하살이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을 떠난 것이라 하느니

라.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바깥 법의 있고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냐.

 

말하자면 보살은 모든 법이 아지랑이 같고 꿈 같고 털바퀴 같으며,

 

끝없이 오면서 가지가지 희론 분별과 망상 훈습에 집착된 것이며,

 

일체 법이 체상(體相)없는 것임을 보고서 거룩한 지혜의 경계를 체득하려고 수행하나니라.

 

대혜여, 이를 보살의 바깥 법의 있고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

 

이가 곧 큰 여실수행(如實修行)을 성취한 자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이와 같이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여쭈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일체 법 인의 모양을 말씀하옵소서.

 

저희와 여러 보살들이 모든 법인연의 모양을 잘 아오면, 있다 없다 하는 바르지 못한 견해

 

망상으로 모든 법을 분별하여 차례로 생긴 허물과 일시로 생긴 허물을 여의게 되리라 하옵

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이 두가지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 있나니,

 

이른바 안[內]과 바깥 법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은 이른바 진흙덩이와 나무 기둥과

 

바퀴와 줄과 사람의 공력과 방편의 인연으로 병(甁)이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진흙덩이 등의 인연으로서 병이 생기는 것과 같아서 실[絲]로 짠 것과 초석(草席)과

 

짜는 틀을 끼움과 젖의 즙과 인공(人功)으로 타락[酪]이 생기고, 타락이 생기고는 수가 생기

고,

 

수가 생기고는 제호를 얻나니라.

 

대혜여, 이를 바깥 법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함이니 밑[下]에서 부터 위에 이르러[上上]

 

그러함인 것을 응당 알 것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안의 법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냐. 대혜여, 이른바 무명(無明)과 업(業)과 사

랑인

 

이러한 법들을 안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하나니

 

대혜여, 무명등과 음(陰), 계(界), 입(入)등으로 인한 것임을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이름함

이니,

 

여러 범부들은 그를 허망스리 분별하여 각가지 다른 모양으로 보나니라.

 

대혜여, 인연이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섯이 되느냐. 첫째는 당인(當因 = 자체인 원

인을 말함)이요,

 

둘째는 상속인(相續因)이요, 세째는 상인(相因 = 자체에서 움직이는 모양인 원인)이요,

 

네째는 작인(作因)이요, 다섯째는 요인(了因)이요, 여섯째는 상대인(相對因)이니라.

 

대혜여, 당인이란 것은 인연을 지으면 능히 안과 바깥법을 내는 것이니라.

 

대혜여, 상속인은 안과 바깥의 법과 음(陰)의 종자 등을 능히 반연하는 것이니라.

 

대혜여, 상인은 능히 상속(相續)을 내고 차례로 일을 지으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니라.

 

대혜여, 작인은 능히 증상(增上)하는 인(因)을 짓는 것이 전륜왕(轉輪王)과 같은 것이니라.

 

대혜여, 요인은 일이 생기는 것을 허망스리 생각하고서

 

능히 나타나게 보이는 것이 등불이 색상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대혜여, 상대인은 그 없어질 때엔 허망하게 생긴 법이 보이지 않고 상속(相續)하는 일이 끊

어지는 것이니라.

 

대혜여, 이러한 모든 법은 범부들이 자심(自心)에서 허망하게 분별함이니라.

 

대혜여, 이의 모든 법은 차례로 생긴 것이 아니요, 일시(一時)에 생긴 것도 아니니 무슨 까

닭이냐.

 

대혜여, 만약 일체 법이 일시에 생긴 것이라면 원인과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이니,

 

인과의 제 모양을 볼 수 없을 것이요, 만일 차례로 생긴 것이라면

 

제 모양을 얻을 수 없음에 차례로 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마치 아들이 있지 않음에 아버지라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자기 마음에서 차제(次第)와 상속(相續)이 서로 합하지 않는 것을

관찰하므로

 

이러한 말을 하되, ‘인연(因緣)과 차체연(次第緣)과 소연연(所緣緣)과 증상연(增上緣)들이

 

능히 모든 법을 낸다’고 하나니

 

대혜여, 이러한 차제(次第)로서는 모든 법이 생기지 않나니라.

 

대혜여, 이는 허망한 분별로서 법체상(法體相)을 취한 것이니, 일시와 차례로도 모두 생겨진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이는 자심중(自心中)에서 몸과 살림살이가 나타나 보인 까닭이니라.

 

대혜여, 제 모양과 같은 모양과 바깥 법은 원래 없는 법이니, 그러므로 차례로 일시에 생겨

진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그는 다만 허망한 알음알이가 자심의 견해를 낸 것이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인연으로 생겨진 일들이 차제로 일시에 생긴 법이라고 하여

 

올바르지 못하게 보는 것을 떠나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인연법도 없어 생하지 않나니

 

생하지 않으므로 멸하지 않고

 

생멸(生滅)과 인연이 모두 허망하여

 

생도 아니며 멸도 아니라네.

 

 

이러한 인연 모두 아니라 함은

 

어리석은 이 허망하게 집착하기 때문이며

 

있고 없는 연기법 생함 아니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생김 아니니라.

 

 

그는 삼계에서 훈습한

 

미혹의 마음 때문이니

 

인연이란 본래 없으며

 

생도 멸도 아니었네.

 

 

세상의 온갖 유위법(有爲法)을

 

돌 계집과 허공 꽃으로

 

관찰하여 능, 소취(能所取) 떠나면

 

허망한 소견 나지 않으리라.

 

 

현재 나타나 있는 것 본래부터

 

모두 생(生)함이 아니며,

 

인연인 연기법(緣起法)도

 

본래부터 있는 것 아니니,

 

 

이러한 모든 법들은

 

자체가 전혀 공한 것이며

 

또한 머무를 곳도 없건만

 

세속을 따라 있다고 말함이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세존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언어상(言語相)을 분별함이라.

 

말하는 심법문(心法門)을 말씀하옵소서.

 

저희와 여러 보살들이 언어상을 분별함이라 말하는 심법문을 얻어 잘 알게 되오면

 

곧잘 말과 뜻의 두가지 법을 통달하여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오며,

 

보리를 얻고는 말과 뜻으로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한 알음을 얻게 하겠나이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가지 허망한 모양인 언어가 있나니라. 무엇이 네가지가 되느냐.

 

첫째는 상언설(相言設)이요, 둘째는 몽언설(夢言設)이요, 세째는 망집언설(妄執言設)이요,

 

네째는 무시언설(無始言設)이니라.

 

대혜여, 상언설이란 것은 이른바 색(色) 등의 모든 모양에 집착하므로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몽언설이란 것은 본시 수용하던 허망한 경계를 생각하되 경계의 꿈에 의하여 깨닫

고는

 

허망한 경계, 진실치 아니한 것에 의지하여 생긴 것임을 아는 것이니라.

 

대혜여, 집착언설이란 것은 본시 듣는 바와 짓는 바 업을 생각하여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무시언설이란 것은 끝없이 오면서부터 희론번뇌와 종자훈습에 집착하여 생긴 것이

니라.

 

대혜여, 내가 말하던 네가지 말인 허망한 집착을 내 이미 말했노라.”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 다시 이의 뜻으로써 부처님께 청하여 여쭈려고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저희를 위하여 네가지 허망하게 언어(言語)의 상(相)에

 

집착한 것을 거듭 말씀하옵소서.

 

중생의 언어는 어느 곳에서 나온 것이오며, 어떻게 출현하오며, 무슨 원인으로 나게 되나이

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그 머리와 가슴과 목구멍과 코와 입술과 혀와 어금니와 이로부터 굴르므로,

 

화합하여 소리가 나는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입속의 언어가 허망한 법상(法相)과 다른 것이옵니까. 다르지 아니한 것이옵

니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언어는 허망한 법상과 다른 것도 아니며, 다르지 아니한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

이냐.

 

저 허망한 법상으로 인하여 언어가 나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만일 언어가 그와 다르다면 응당 원인이 없이 생겨졌어야 하리라.

 

대혜여, 만일 그와 다르지 않다면 언어는 능히 현진의 경계를 말로 표현함을 알리지 못하여

야 하리라.

 

대혜여, 그러나 저 언어는 현전의 경계를 능히 알리고도 남음이 있나니,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며,

 

다르지 아니한 것도 아니니라.”

 

대혜 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언어가 바로 제일의(第一義)가 되옵니까, 언어로서 설명할 바가 제일의가 되

옵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언어가 바로 제일의가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제일의로 하여금 언어를 수순하여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가게 함이니, 그러므로 언어로서 제일의를 설명함이 있을 뿐이요,

 

언어가 바로 제일의(第一義)는 아니니라.

 

대혜여, 제일의는 거룩한 지혜로 깊이 증득할 바요, 언어의 법은 아닌 것이다. 이는 지혜의

경계니,

 

언어로서는 그 경계를 알릴 뿐이니라.

 

대혜여, 제일의를 설명하는 언어도 이 생멸(生滅)의 법이니,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않고 인연으로 화합하여 언어가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인연으로 화합한 그것은 능히 제일의를 나타내지 못하리니 무슨 까닭이냐.

 

제모양[自相]과 다른 모양[他相]이 없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언어로는 능히 제일의를 나타내지 못하니라.

 

대혜여, 자심에서 바깥의 있고 없는 법들을 보고서 분별함을 따르기에 제일의를 능히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가지가지 언어로 허망스리 분별하는 상을 떠날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허망하여

 

진실한 자체가 없나니,

 

그러므로 여러가지 말로서

 

있다 없다 하지 못하리라.

 

 

공함과 또한 공함 아님을

 

범부는 잘 알지 못하나니

 

모든 법은 자체상이 없으며

 

중생이라 말함도 또한 그러하네.

 

 

있다 없다 분별하는 법은

 

마치 꿈과 환(幻)같나니,

 

일체 법을 관찰하여 열반에도

 

세간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리.

 

 

왕과 부자 어른들이

 

여러 아들을 기쁘게 하려고

 

진흙으로 만든 새짐승을 먼저 주고

 

진실한 물건은 다음에 주듯이

 

 

나도 여러 불자를 기쁘게 하려고

 

가지가지 법과 자체 법이며

 

거울 모양과 같은 것들을 말하고서

 

최후에야 실상법을 말하노라.

 

 

그때에 거룩한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세존께서는 여러 보살과 및 저희를 위하여 있는 것과 없는 것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俱]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없는 것을 떠난 것이어서 모든 외도는 행하지 못할 바며,

 

거룩한 지혜로서 스스로 증득한 깨달음으로만이 행할 수 있는 법을 말씀하옵소서.

 

그는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을 떠난 것이오며, 제일의의 참다운 법성(法性)에 드는 것이오며,

 

모든 지위의 차례와 최상으로 청정한 것이오며, 여래의 땅에 들어 가는 것이오며,

 

본원력에 의지하여 여의주(如意珠)와 같이 한량없는 경계와 수행하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

이오며,

 

일체 법에서 자심으로 차별상을 나투어 보이는 것이오니, 저희와 일체 보살들은

 

이와같이 망상으로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고, 일체 중생에게 편안함과 좋은 것들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모두 만족하게 할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대혜여, 그대는 모든 천인(天人)을 불쌍히 여겨,

 

그들로 안락과 이익이 많게 하려고 능히 나에게 이러한 뜻으로 묻는구려.

 

착하고 착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내 마땅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

하겠노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범부는 오직 이 마음으로 보여진 것을 능히 깨닫지 못하고

 

밖으로의 가지 가지 법상(法相)에 집착하여 참으로 있는 것으로 여기나니,

 

그러므로 허망스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게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

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분별하나니, 그는 자심의 훈습으로 인한 것이며,

 

허망스리 분별하는 마음을 의지함인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뭇 짐승들이 목마름에 시달려 아지랑이를 보고 마음이 착란하여 그를 물

이라 생각하고

 

동서로 헤매면서 물이 아님을 알지 못함과 같나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범부들의 어리석은 마음으로 생(生), 주(住), 멸(滅)의 법을 보고

 

잘 분별하지 못한 것은 끝없이 오면서 허망하게 희론 훈습과,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에 집착하여 미혹한 마음으로 시달려서

 

가지 가지 모든 색경계(色境界)를 좋아하여 구함이니,

 

그러므로 범부들이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

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에 떨어지느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범부가 건달바(乾達婆)의 성(城)을 보고 참 성이라고 생각을 내는 것은

 

끝없이 오면서 허망하게 성이라고 분별하는 생각의 종자와 훈습으로 인하여 보는 것과 같나

 

대혜여, 저 성은 성이 아니며, 성 아닌 것도 아니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도 또한 그와 같아서 끝없이 오면서의 희론과 훈습에 인하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법들에 집착하나니

 

대혜여, 그는 오직 마음에서 허망스리 본 것임을 깨닫지 못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어떠한 사람이 꿈속에서 여러 남자와 여인과 코끼리와 말과

 

수레와 도보(步)와 성읍(城邑)과 취락(聚落)과 소와 물소와 동산 숲과 나무와 각가지 산과

하수(河)와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과, 궁전과 누각과 가지 가지로 장엄한 것이 광대하고 화려한 것을

보기도 하며,

 

자기 몸이 그 속에서 있는 것도 보다가 문득 꿈이 깨어 깨닫고서는 그 광대한 성읍들을 생

각한다면

 

대혜여, 그대 뜻에는 어떻다고 할까. 그 사람을 성자(聖者)라고 할수 있느냐.”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의 사뙨 소견으로 본 여러 가지도 또한 그와 같나니,

 

그는 모든 법을 꿈속에 있는 마음에서 본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같은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의 견해에 집착한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그림속의 모양은 높지도 않으며, 낮지도 않는 것과 같건만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괜히 모든 법이 높고 낮음이 있는 것으로 보나리라.

 

대혜여, 닥아오는 세상에서 외도의 사뙨 소견에 의하여 마음에 훈습함이 더욱 더하여 허망

스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분별하리니, 대혜여, 저 외도는 자신도 버리고 남도 버리면서

 

이러한 말을 하되, ‘모든 법은 생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아니하여 있고 없는 것이 모두

고요하다’하나니,

 

그 사람을 이름하여 올바르지 못한 견해라 하느니라.

 

대혜여 저 외도는 인과법(因果法)도 비방하나니, 사뙨 소견에 빠진 까닭이라,

 

일체 착한 뿌리와 깨끗한 법[白法]과 청정한 종자를 뽑아 버리나니라.

 

대혜여, 수승한 법을 구하려면 마땅히 그와 같은 법을 말하는 사람을 멀리 할 것이니,

 

그 사람은 마음이 자타(自他)의 두 소견에 집착하였으며, 허망한 법에도 집착하였으므로

 

법을 비방하는데 떨어질 것이며, 사뙨 마음을 가졌기에 악도(惡道)에 들어가리라.

 

대혜여, 비유컨대 눈병으로서 허공중에 털바퀴[毛輪]가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하되,

 

‘이와 같이 푸르고 누르며, 붉고 흰 것을 보지 못하느냐’고 함과 같나니라.

 

대혜여, 그러나 저 털바퀴(毛輪)는 본시 자체가 없나니 무슨 까닭이냐.

 

보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외도들이 사뙨 소견에 의지하여 허망스리 분별함도 또한 그와 같나니라.

 

허망스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이 모든 법을 내었다고 집착하느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하늘의 비가 물거품을 내어 수정 구슬 같거든 어리석은 범부는

 

허망한 소견으로 집착하여 구슬이라는 생각을 내어 동서(東西)로 헤매는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그러나 저 물거품은 보배 구슬이 아니며 보배 구슬 아닌 것도 아닌 무슨 까닭이냐.

 

구슬이라고 취하여 취(取)하지 못할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저 외도의 허망한 마음으로 인하여 분별하며 훈습함도 또한 그와 같다.

 

그가 있지 않는 법을 말하여 ‘인연에 의지하여 생겼다’고 하며,

 

또한 ‘실로 법이 없어지는 것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대혜여, 저 외도가 삼종량(三種量)과 오분론(五分論)을 세워서 이러한 말을 하되,

 

‘실로 성자(聖者)의 안으로 증득하는 법이 있는데,

 

두 자체[二自體]를 떠난 것이라’하여 허망하게 분별하느니라.

 

대혜여, 심(心), 의(意), 식(識)을 떠나면 이 몸을 변해서 문득 성인(聖人) 종류의 몸을 얻으

리니,

 

여러 가지 행을 수행하되 그러한 마음이 없이 자심의 소견과 허망한 경계를 취하는 것을 떠

날 것이며,

 

여래의 지위에 들어가서 자신이 정진(精進)하여 거룩한 지혜를 증득할 것이니

 

여실히 수행하는 자는 있다 없다는 마음을 내지 않나니라.

 

대혜여, 여실히 수행하면 반드시 이와같은 경계를 얻을 것이니라.

 

대혜여, 만일 유무법(有無法)을 취함이 있다면 곧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되리라.

 

대혜여, 유무법(有無法)과 제모양과 같은 모양을 말함은 이는 응화불(應化佛)의 말이요,

 

법불(法佛)의 말이 아니니라.

 

대혜여, 응화 여래가 이와 같은 법을 말함은 어리석은 범부의 보는 마음을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수행하게 함이요, 참다운 수행을 건립하여 자신(自身)의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지혜와 삼매락행(三昧樂行)을 보여줌은 아니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사람이 물 속의 나무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저것은 그림자가 아니며, 그림자 아닌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나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나무가 없으면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저 외도가 사뙨 소견의 마음에 의하여 망상으로 훈습함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는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을 분별하나니, 이는 망상으로 분별함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그는 오직 마음에서 본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인연을 따라 모든 색상을 비추어 나타내되

 

분별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나니 대혜여, 저(거울에 비추어 나타난 것)은 색상도 아니며

 

색상 아닌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인연이 있으면 나타나 보이고 인연이 없으면 나타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이는 어리석은 범부들이 자심의 분별로 색상이 있고 없는 것을 본 것이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들이 자심의 망상으로 거울의 색상을 분별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들을 본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여러 음향이 사람과 산과 강물과 허공과 집으로 어울려서 들리는 것과 같

나니,

 

저 들리는 바 음향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소리로 인하여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는 자심의 허망과 분별 훈습으로서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

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보나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큰 땅이 풀과 나무와 동산숲이 없는 곳에 햇빛과 먼지와 흙이 어울림으로

인하여

 

물결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나니라. 그러나 저 물결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닌 것과 같나니 무슨 까닭이냐.

 

중생으로 하여금 그들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와 어리석은 범부도 또한 그와 같아서 끝없이 오면서 번뇌의 마음과

 

희론으로 훈습함을 인하여 생(生)과 주(住)와 멸(滅)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분별하나니,

 

이는 성인이 몸소 깊이 증득하는 지혜의 문에서 아지랑이를 목이 타게 좋아하는 일들을 보

여준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주술(呪術)의 힘에 의하여 죽은 사람과

 

기관목인(機關木人 = 움직이도록 만든 나무 사람)을 이르키기도 하며,

 

중생의 산 몸이 없는데도 피사카(전광귀癲狂鬼)의 힘과 공교한 환사(幻師)의 힘에 의하여

 

가고 오게 하는 일들을 하거든, 어리석은 범부는 그에 집착하여 실로 있는 것으로 여기나니,

 

그 오고 가고 하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들이 사견(邪見)의 마음에 떨어진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허망한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에 집착하나니,

 

그러므로 범부와 외도는 허망하게 이와 같은 법을 내세우나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생(生), 주(住), 멸(滅)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떠날 것이니,

 

이것이 몸소 깊이 거룩한 지혜로 분별함을 증득함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五음과 알음알이는

 

물 속의 나무 그림자 같고,

 

꿈과 환으로 보는 것 같나니,

 

의식에 의해 취하지 말지어다.

 

 

모든 법은 털바퀴 같으며

 

아지랑이를 물로 여기는 것 같나니,

 

삼계의 모든 것을

 

환과 꿈으로 관찰하리.

 

 

만약 이와 같이 관찰하여

 

수행하면 해탈을 얻으리라

 

여름날에 물을 찾는 짐승이

 

아지랑이에 착각 일으킴 같느니

 

 

그곳에 물이 없건마는

 

허망한 생각이 물로 보듯이

 

알음알이의 종자로서

 

경계에 통한 소견 같느니라.

 

 

어리석어서 진실인양 취(取)하나

 

저 법 생김이란 헛보임 같은데

 

끝없는 세월의 어리석음으로

 

물질을 취함이 품에 안음 같느니라.

 

 

쐐기로서 쐐기 나오게 함 같아서

 

범부를 속여 들어가게 하는 법이며

 

환술로 시체를 일으키는 기관이라

 

꿈, 번개, 구름이듯 항상 그러하네.

 

 

세간을 이와 같은 것으로 관찰하면

 

유(有)를 끊고 해탈을 얻으리.

 

아지랑이는 허공중에

 

모든 알음 있지 않나니

 

 

모든 법을 이와 같음으로 관찰하여

 

일체 법에 집착하지 말라

 

여러 알음알이는 이름뿐이니

 

모든 상이 공했기 때문이니라.

 

 

五음을 보는 것 헛 보이는 털바퀴거니,

 

어느 법엔들 분별하랴

 

그 그림과 헛 보인 털바퀴며

 

환이요, 꿈이요 건달바니라.

 

 

불바퀴와 새가 물로 여긴 아지랑이는

 

실로 없건만 있다고 보나니

 

떳떳함과 무상함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이며,

 

 

그는 끝없이 오면서

 

속박 되었는

 

범부의 미혹한 마음에

 

의지하여 된 것일세.

 

 

밝은 거울 보배 마니(摩尼)와

 

맑은 물 깨끗한 눈(眼)에서

 

가지 가지 색상이 나타나거든

 

허망스리 가지 가지 빛깔을 보느니라.

 

 

일체 법은 진실함 없는 것이

 

꿈과 돌 계집 같으며

 

짐승이 허공에 아지랑이를

 

물로 알고 좋아함과 같느니라.

 

 

대혜여, 부처님 여래의 설법은 네가지 견해를 떠났나니 말하자면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을 여읜 것이다. 있다 없다 내세우는 것을 멀리 떠난 것이니라.

 

대혜여, 일체 부처님 여래의 설법은 실제(實際)와 인연과 적멸(寂滅)과 해탈에 의지하느니

라.

 

대혜여, 일체 부처님 여래의 설법은 구경(究竟) 경계에 의지한 것이며 자성(自性)을 인한 것

이 아니고

 

자재천(自在天)이라 하며, 인(因)이 없고

 

미진(微塵)과 시간이라고 하는 이러한 설법을 따르지 아니하노라.

 

대혜여, 부처님의 설법은 두가지 장애[障]인 번뇌장(煩惱障)과 지장(智障)을 떠났느니라.

 

큰 장사주(大商主)가 여러 사람들을 거느리고 차례로 처음 보는 아주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 이르러 두듯이, 여래로 사람들을 차례로 안치하여 그들로 하여금

 

법과 지위의 차별상(差別相)을 잘 알게 하느니라.

 

대혜여, 네 가지 선(禪)이 있나니, 무엇이 네 가지가 되느냐,

 

첫째는 어리석은 범부의 행하는 선(禪)이요, 둘째는 뜻[義]을 관찰하는 선이요,

 

세째는 진여(眞如)를 생각하는 선이요, 네째는 부처님 여래의 선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어리석은 범부의 행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성문과 연각과

 

외도인 수행자가 인무아(人無我)와 자기의 몸, 다른 이의 몸을

 

골쇄(사람의 몸이 백골로 되었다고 관하는 백골관(白骨觀)임)로 관하므로 무상(無常)함이며,

 

괴로움[苦]이며 <나> 없으며[無我], 깨끗지 못한 것[不淨]이라 하고 모든 상에 집착함도 이

와 같고

 

이와 같아서 결정코 필경에는 다르지 않다 하여 이와 같이 차례로 앞에서 관한[前觀] 것으

로 인하여

 

차례로 올라가서 내지 비상(非想)과 멸진정(滅盡定)의 해탈에 이르나니,

 

이를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와 성문들의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뜻을 관찰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인무아와 자기의 몸 다른 이의 몸을 관

하였음으로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와 자기 몸과 다른 이의 몸인 자타(自他)의 모양이 진실함이 없는 것

을 보고,

 

법무아(法無我)와 모든 지위의 행상(行相)과 뜻과 차제(次第)를 관찰함이니

 

대혜여, 이를 뜻을 관찰하는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진여를 관찰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허망한 분별의 인연을 관찰하여

 

두가지 무아(無我)를 참다이 알고 일체 모든 법이 진실한 체상이 없는 것을 참다이 분별하

 

그 때로서 분별함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에 고요한 경계를 얻음이니

 

대혜여, 이를 진여를 관찰하는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여래를 관찰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참다이 여래의 땅에 들어가며,

 

안의 몸[內身] 거룩한 지혜의 모양과 삼공(三空)과 삼종락(三種樂)의 행에 들어 갔으므로

 

능히 중생에게 베풀 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을 이룬 것이니

 

대혜여, 이를 여래를 관찰하는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범부들의 행하는 선과

 

뜻을 관찰하는 선과

 

진여를 관하여 생각하는 선과

 

구경인 여래 청정선이여

 

 

마치 해와 달의 모양과

 

파드마[鉢頭摩]와 바다 모양과

 

허공과 불이 다한 모양인양

 

수행자가 이렇게 관한다면,

 

 

이와 같은 갖가지 모양은

 

외도에 떨어지는 법이며,

 

또한 성문과 벽지불들의

 

수행함에 떨어진 것이다.

 

 

일체 것을 버리고 떠나면

 

이는 곧 있는 바[所有] 없음이니,

 

이 곧 여여한 진실상에

 

수순하여 들어 간 것이라.

 

 

그때엔 시방 세계에서

 

여러 부처님이 진여의 손으로

 

그 수행자의 이마를 만져 주시며

 

진여의 모양이 없는 데에 들게 하리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께서 열반을 말씀하시니, 열반이란 것은 어떤 법을 말하여 열반이라 하나이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열반이란 것은 모든 알음알이의 법체상을 굴려서 소멸한 것이며

 

모든 소견으로 훈습함을 돌이켰으며 심(心)과 의(意)와

 

아라야식의 법상 훈습을 돌이켰음으로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나와 및 여러 부처님이 이와 같은 열반을 말함은 이 법체와 경계가 공한 것이니라.

 

대혜여, 열반이란 것은 말하자면 안의 몸 거룩한 지혜로 수행할 경계인 것이며,

 

유무법(有無法)을 허망하게 분별함을 떠난 것이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떳떳함이 아니라 하느냐.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인 분별법을 떠난 것을 말함

이니

 

이러므로 떳떳함이 아니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단멸이 아니라 하느냐.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일체 성인이 안의 몸으로 증득함을 말함이니 이러므로 단멸이 아니니

라.

 

대혜여, 반열반이란 것은 죽음도 아니요, 멸함도 아니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