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휴일, 2017. 3. 26. / 도봉별곡
꽃은 피면 할 일을 마치지만
질 때가 더 의미 있는 꽃도 있다
동백은 비장함을, 목련은 책임을 일깨워준다*
1년 세 명절의 3일 휴일뿐이었던,
일과 돈과 시간이 같은 무게였던 시절은
시원치 않은 은유적 상징의 언어가 되어가며 박제로 변했다
세월호의 천일야화千一夜話 뒤에서는
2017 LPGA 기아 클래식 골프에서 전인지가 하얗게 웃어도
국립박물관 이집트 미이라 전에서 죽음의 모습은 오래 되어도 한결같다는 것을
난 네가 다스리는 허황虛荒의 나라에서는 너의 공기와 함께는 숨쉬기 싫다는
세월호의 인내와 결기를 본다
세월의 흔적은 어떤 방정식으로도 풀지 못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며
인도네시아 늙은 어부의 부인이 넷이라 해서 부러울 것도 야만적이라 할 것도 없이 그들의 일이다 ‘인샬라, 신의 뜻이다’ 하여도 바뀌지 않을 것들이니 이승에서는 포기하고 만다 포기의 이로움에서 야합野合의 뒷거래를 본다
몽골의 장수와 일본 사무라이를 보면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건 어느 스님의 실없는 전생담 때문인지
세상은 너의 맘대로 흘러가면 환상이거나 신기루지 실상이 아닐 것이다 잠간 동안의 인식의 장난 아니면 뇌파의 오류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의 요지로 인간의 이기심을 인정해야 나라가 부강해지며
다윈은 이기심이 인간 생존 유지의 생물학적 대전제,
순자 역시 인간의 본성은 이기심이라는 도서관 철학 강좌 교수의 주장,
리처드 도킨스가 인간의 유전자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다는 주장을 펼친 책은 오랜 베스트셀러
촛불이건 태극기건 인식방식의 차이에 따라 살아온 삶이 다를 수 있고 달라서 생긴 것임을 인정하여 변증법적 방법으로 발전해가면 된다는 사회학자의 열강에 공감하다가
책상 위에는
주역과 무문관無門關*강송이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처럼 현학을 뽐내며 펼쳐져 있고
위대해야 할 삶이란 때로는 유희에 가까운 우화寓話*를 닮아가는 법
삶의 중심이 나이가 무거워지는 것과 대비해 비워야 함으로 서서히 물들어갈 때
여생은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의 기울기와 맞서야 한다
별생각 없이 나이라는 물리物理를 이기지 못해
생물적 해결을 위해 감행했던 결혼은 생물학과 물리학의 가벼운 충돌의 승자
존재의 무거움과 인식의 가벼움 사이에서 소용돌이치는 과거 속의 숨바꼭질
사랑, 영원함과는 가까이 할 수 없는 개념
근무일과 휴일의 방정식에 대한 고찰에 대하여
또는 증명에 대하여
뫼비우스의 띠는 영속적으로 변해간다
볼록렌즈는 크지만 좁게 보고 오목렌즈는 넓지만 작게 본다 ㅡ 오목과 볼록의 부등식
역사의 뒤안길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고 우리의 대부분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근무일과 휴일의 박물관의 대립 속에 숨어있는 것들
양자 사이에 어떤 방정식 있어 어렵게 만드는 가설과 의문, 진실 뒤에 숨는 가설을 파헤치고 자조하는 얼굴들 보기 민망하다
오늘은 휴일, 내일도 휴일과 휴일들
해가 저물어 기울기를 잴 수 없을 때
마치 방정식처럼 어렵게 수수께끼를 푼다
손가락 신경을 망가뜨려 놓은 신은 영 무심하다
내 사유는 손가락 끝의 고통과 함께 탄생한다 때로는 지워진다
65년의 온갖 경험과, 그 경험은 궁상각치우의 음정과 조율하면서 때로는 기승전결의 방식과 야합하는 척 독자를 속이면서 놀리면서 태어난다 그 속임수를 즐긴다
신은 철학에 관심이 없고 철학은 자기를 통해 신과 접촉하지 마라고 한다
철학은 동물에게 없는 이성으로 살아가라는 거고 명상은 인격의 상승 같은 건 꿈꾸지 말고 행동하기 전에 숨을 고르고 생각하라는 거고 시는 행동하기 전에 글을 쓰라는 거다 공교롭게도 세 개의 특징은 돈이 들지 않고 돈이 되지 않지만 돈으로 할 수 없다는 거다 가난해서 비루한 철학자의 삶은 다분히 신화와 가깝다 옛날에 일어났던 기적이 지금 일어나지 않는다면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의 입문은 실수와 우연에 의함이 많다 하겠다 - 행불행幸不幸의 총량불변법칙
산이 웃는다, 자기를 뺐다고
역시 생물적 휴일은 나쁘지 않다
위의 박물관적 메모들을 언어로 정리해야 하나 마음에 두지 않는다
*동백꽃은 사형수가 목 잘릴 때 목만 뚝 떨어지듯 지며, 목련꽃은 되바라진 퇴물기생의 얼굴처럼 질 때, 유난히 추하게 진다.
*무문관無門關 : 1228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유무(有無)의 분별을 넘어선 절대적 ‘무(無)’를 탐구한 송나라 때 선승 무문 혜개의 공안(公案) 해설집. ‘무문관’이란 ‘무’ 자의 정확한 탐구만이 선문(禪門)의 종지(宗旨)로 들어서는 제일의 관문이라는 뜻으로, 이 책의 총론에 해당하는 제1칙의 ‘오로지 이 하나의 무(無) 자가 종문의 일관(一關)이다. 이것을 선종(禪宗) 무문관(無門關)이라 한다’는 한 구절에서 비롯한다. 전 1권이며, 48칙의 공안에 대한 평석과 송(頌)으로 이루어진다.
*우화寓話 :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는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 전래 동화나 이솝의 우화에서 여우는 예외 없이 속임수나 쓰고 교활하며 꾀만 부리다가 제 꾀에 넘어가는 못된 동물로 등장한다.
*제3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