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주의자의 밤 / 도봉별곡
달이 밤을 지새우며 녹아내리고 어둑새벽 그믐달 뜰 때
바람이 물 위를 스치며 지나가면
일어나는 물결무늬
먼 길 떠나야 할 때를 모르는 사람의 결심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초승달은 그림자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죄가 많아 하늘을 보지 못하고 다만 인식할 뿐인 것을 모른다
‘사회주의 종교인은 사회주의자인 무신론자보다 더 무서운 법’
‘종교적 원리주의에게는 맹신이라는 이름의 답만 있을 뿐, 신자가 아닌 자도 행복추구권이 있다는 관용이 있거나 보다 나은 변화를 통한 제도중생을 위한 의심과 질문이 없다. 그 결과는 참혹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밤 술이 깨서 속박 없는 자유를 만끽하는 무정부주의자가 되고 싶었다
진정한 수행자야말로 무정부주의자 아닐까
그 의심 끝에 무정부주의자와 성자들을 비교해보았다
외로운 만족감과 불완전한 고독감
빛은 태양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그것들의 빛이다
빛이 불꽃이 되는 날 모두는 더욱 빛날 것임을 믿는다
거미줄을 새어나가는 순한 바람에도 몸서리치는 그믐달
다음 달에는 무슨 기별이 올까
내 손끝만큼 아프지 않으면 누구를 붙잡고 우나
소쩍새 우는 소리 기이하다
술잔은 얕고 가난한 이야기와 속 깊은 눈빛은 어우러
지지 않아도 우리들의 화두는 밤을 새운다
때 묻은 쇠북소리는 어김없이 찾아든다
칼 세이건은 신의 굴레에 대한 과학자의 견해에서
변곡점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맹신과 맹목이 판을 엎어야 변곡점의 꼭대기에서 내려올 수 있다
아직도 성경, 코란, 불경, 힌두경전, 사서오경이나 서양철학서가 필요한 것은
인류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이 없다는 역설인가
*제3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