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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시인의 말 / 제4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

시인의 말 / 제4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

 

시민혁명의 시작은 프랑스대혁명이라는 이견이 없다. 혁명의 성공을 위해 고안하여 반혁명분자를 처단한 단두대에서 자신도 사라져간 로베르 피에로를 잠시 떠올린다. 산문은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한 문체, 시는 표현하고 공감하기 위한 형식. 나는 서사시의 형식으로 터를 잡았다. 바꾸는 것과 해보지 않은 것을 하는 것은 나의 취미가 된다. 앞으로는 참여문학으로 눈을 돌린다. 내게는 반골과 혁명의 피가 흐른다. ‘축의 시대*/카렌 암스트롱’을 읽으면서 한때 비교종교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종교는 인간이 만든 창작물 가운데 최악의 실패작임을 느끼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면서 철학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쓰면서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들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해야 했다. 첫째 무아론과 유아론. 둘째 깨어남인가 깨달음인가. 셋째 돈오돈수인가 돈오점수인가 점오점수인가 아니면 점수점오점수인가에 대해 결심해야 했다. 넷째 많은 설화에 대한 입장 정리. 다섯째 윤회의 주체. 여섯째 윤회와 무아를 무시하며 힌두의 아뜨만과 비슷한 개념인 자성을 중시하는 선불교에 대한 입장 정리 일곱째 경·율·론의 역사성과 진위에 대해 고심을 거듭해야 했다.

 

인간이 악해지고 선해지는 원인을 종교에서 찾으려 했는데, 아뿔싸, 종교가 더 극악한 집단인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종교에서 구원을 얻기를 포기했다. 구원은 철학에 있거나 아니면 차라리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시(詩)에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음에 한 가닥 즐거움이 있다. 극명하게 말하건대 내가 죽을 때까지 종교는 인류를 구원해주는 절정의 도구는 아니라는 확신에 변함이 없을 것이다. 깨달아서 뭐 할 건데? 수많은 역대 조사들이 제도 중생을 부르짖고 나섰으나 지금까지 변한 게 없는데, 우리는 천지개벽의 능력이 있어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나서는 것일까. 그냥 살다가 가야 할까. 그러나 가장 합리적이며 완벽해 흠잡을 곳 없는 붓다 말씀을 묻히기 아까워 나는 그의 길을 따라 가야겠다.

불수위위지 수처작주 입처개진 (不隨萎萎地 隨處作主 立處皆眞). “아무리 어려운 곳에서도 꺾이지 말고 서는 곳마다 주체/인가 되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을 모두 진리의 자리로 만들어라”라는 말이다. 인류의 구원은 합리성에 가장 가까운 과학에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인류의 구원에 관하여는 거짓이 없는 합리성이 절정의 도구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