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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공자에 관하여 기술한 정확한 역사적 사실

공자에 관하여 기술한 정확한 역사적 사실

 

요즘 루머로 나도는 괴담 비슷한 글들에 대하여 공자님 어머니가 무당이었다는 정사 기록은 없습니다. 공자님의 시호는 문선제(文宣帝),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启圣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부인(启圣王夫人)이십니다. 무당이라면 중국 고대에 왕이 최고 지위의 무당이었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혁거세왕의 큰아들 남해왕도 무당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나중의 무당 격하와는 그 시대가 다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무당이라면 은주시대의 왕의 제사가 일반에게도 널리 퍼져, 왕족·사대부계층의 집에서 제사를 치르게 되어, 전부 무당같이 제사 신분이 높아져서 그걸 보고 오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은나라왕족의 후손이시나 가난하여, 겨우 벼슬할 수 있는 士계급에서 시작하여, 만인의 스승이 되는 과정을 겪으신 위대한 성인이시자 스승 공자님. 제왕과 만백성의 스승 공자님! 공자님의 아버지가 그 당시 너무 나이가 많아 음양오행론에 비추어 볼 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난 것으로도 생각되어 생물학적인 야합으로도 서술된 기록도 있으나 성인 임금이시자 위대한 스승이라는 존경을 더 중요시하며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인류는 남자가 경제력이나 능력이 있으면, 어린여자를 얻어 종족을 보존하려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신성한 마음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될 게 전혀 없습니다. 공자님 어머니 안징재는 숙량흘의 동료 무사이자 친구였던 안양(顔襄)의 셋째 딸로서 같은 士계급끼리의 결혼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딸만 낳은 아버지가 정상적인 남자로 대를 잇기 위해 늦은 나이에 배필로 얻은 부인이 공자님 어머니이다. 그 당시 중국은 왕이나 士大夫계층이 일부다처제로 대를 잇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사회였습니다. 하느님, 성인이나 역사적 인물의 경우, 타국의 침략을 받아 지배자가 바뀔 경우 격하되는 경우가 많은데, 세계사와 국사, 유교경전, 가톨릭경전, 국내법·국제법 등 모두 정사(正史)로 판단해야 합니다. 혹시 루머로 대중언론에서 세력을 얻은 세력들이 하느님·성인·황제(요순우탕문무주공 포함)들에 대해 오도할까봐 걱정되어서 덧붙입니다. 공자님이 사시던 춘추전국시대에 무당이라면 은주시대 최고제사장인 왕의 제사가 일반에게도 널리 퍼져, 왕족과 사대부계층의 집에서 제사를 치르게 되어, 전부 이전 왕조 최고 무당처럼 제사신분이 높아져서 그걸 보고 억측하여 야담을 만들 수 있겠습니다. 요순우탕문무주공 및 공자님, 기자조선시대의 왕, 삼한의 왕, 부여 금와왕, 고구려 (고)주몽왕, 신라 (박)혁거세, 신라 남해왕 같은 고대의 최고 제사장(최고 무당이자 왕)과 관련되어, 나중의 개념으로 왜곡도 가능하겠다고 우려해봅니다. 그러므로 무당은 제사장과 같은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제가 가장 강조하는 주장입니다.

​@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 보내신 성인이며, 성인 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부터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 孔子 聖蹟圖에 보면 균천강성(鈞天降聖)의 그림이 있습니다.

@ 하느님의 모습을 가지신 공자님.

수천 년 동안 이어지는 유교의 공자님 숭배를 볼 때 공자님은 최고신 하느님과 또 다른 하느님의 모습을 가지셨다고 판단합니다. 유교는 조상신의 위치에서 승천하시어 계절을 주관하시는 오제(五帝)께서 최고신이신 하느님 하위신의 형태로 존재하시는 다신교적 특성이 있어왔습니다. 오제 하느님과 같은 유교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전통을 볼 때, 수천 년간 제사의 대상이신 공자님은, 공자님을 지상에 내려 보내신 균천(鈞天, 중앙의 天이시며 하느님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하느님)의 곁으로 혼이 승천하여 머무시는 게 어색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유교의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天生蒸民)하신 이후 균천(鈞天)께서 유일하게 지상에 내려 보내신 성자이신 분이 공자님입니다.

@ 공자님의 시호.

공자님의 시호에 있어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圣文宣王)이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임에 확실합니다.

공자님은 원래부터 왕이 아니시고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성자로 탄생하시고, 하느님(天)의 기품을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가르치시며 인의예지신, 삼강오륜의 덕목을 있게 하신 성인으로 사시다가 사후에 성인임금·성인스승(文宣帝,大成至聖文宣王·至聖先師)의 공식 칭호를 추존 받으신 분이십니다. 공자님은 하느님(鈞天)에게 덕을 부여받으신 분입니다.

​은나라왕족의 후손이시나 가난하여, 겨우 벼슬할 수 있는 士계급에서 시작하여, 만인의 스승이 되는 과정을 겪으신 위대한 성인이시자 스승인 공자님, 제왕과 만백성의 스승 공자님에 대하여 공자님의 아버지가 그 당시 너무 나이가 많아 음양오행론에 비추어 볼 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난 것으로도 생각되어 생물학적인 야합으로도 서술된 기록도 있으나 성인임금이시자 위대한 스승이라는 존경을 더 중요시하며 객관적으로 기록했다. 인류는 남자가 경제력이나 능력이 있으면, 어린여자를 얻어 종족을 보존하려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신성한 마음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될 게 전혀 없습니다. 공자님 어머니 안징재는 숙량흘의 동료 무사이자 친구였던 안양(顔襄)의 셋째 딸이므로 같은 士계급끼리의 결혼이며, 그리고 중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서자차별이 없었습니다. 한국과는 개념이 달라왔습니다. 왕의 경우 그 자손은 누구나 왕족이었는데, 양반의 경우 고려시대와 달리 서자가 적자보다 상당히 차별을 받는 게 조선시대 초기 이후의 풍속이었습니다. 한국도 갑오개혁 이후로는 서자차별이 없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더더욱 법률적으로 서자 차별이 없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위의 글은 저의 글에 댓글을 달아서 공자님을 하느님으로 생각하며 강조하는 분의 글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