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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부처님은 어떻게 머무셨는가? ㅡ 수행의 처음과 마지막(첫번째 이야기)

부처님은 어떻게 머무셨는가? ㅡ 수행의 처음과 마지막(첫번째 이야기)

 

불교에서, 사념처는 수행의 시작이기도 할 뿐 아니라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해진 마음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이후에도 지속해 나가는 포괄적인 수행이다.

즉 신참 빅쿠에서부터 번뇌 다한 아라한들까지 모두 이러한 사념처를 닦아 나가는 것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는 왕도[지름길]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슬픔과 비탄, 고통과 고뇌와 절망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얻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 네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사념처)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Mahāsatipaṭṭhānasuttaṃ 대념처경 MN10, ambapālisuttaṃ 암바빨리경 SN47.1 등등).

"빅쿠들이여, 이 길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愁)과 비탄(悲)을 건너기 위한, 고통(苦)과 고뇌(憂)를 사라지게 하기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니, 즉 사념처(四念處)이다."

- ambapālisuttaṃ (암바빨리경 SN47.1) -

"빅쿠여, 그렇다면 그대는 유익한 법들에서 출발점을 청정히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유익한 법들의 출발점인가? 계(戒)의 청정과 견해의 올곧음이다. 빅쿠여, 계(戒)의 청정과 견해의 올곧음이 갖춰지면, 빅쿠여, 그때 그대는 계를 의지하면서 계를 확고히 하면서 사념처(四念處)를 삼중(三重)으로[세가지 방법으로] 닦아야 한다."

- bhikkhusuttaṃ (SN 47.3)[비구 경] -

 

기타 paṭhamarahogatasuttaṃ(한적한곳에 감경 SN52.1), dutiyarahogatasuttaṃ(한적한곳에 감경 SN52.2) 등에는 tividhena(삼중으로>세가지 방법으로)라는 단어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안과 밖, 안밖으로 사념처수행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설사 계행을 갖추어 화두참구로 바른삼매에 들었다 한들 그것은 깨달음을 위한 토대에 불과할 뿐이고, 이를 토대로 사마타 수행으로 탐욕을 제거하고 위빳사나 수행으로 무명을 제거해야만 완전한 깨달음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네 스님들은 삼매를 조금 맛본 것으로 깨달음을 성취한 줄로 알고 있기도 하였으나 그런 그들은 예류도에도 이르지 못한 범부일 뿐이다.

몇 년 전 함께 공부하던 ○○스님께서 계행을 갖추어야만 삼매에 들고 해탈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법담을 구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선불교는 그렇게 가르쳐 왔거나 묵인하여 왔던 것이다.

하지만 계행을 갖추지 못한 삼매는 '바른 삼매'가 아니고, '필수품(바른견해~바른 알아차림을)을 갖춘' 바른삼매의 토대가 없이는 다섯가지 장애를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해탈은 커녕 바른 삼매에도 이를 수 없는 것이다.

sālasuttaṃ(살라경 SN 47.4)에 의하면, 신참 비구의 경우에는 몸 등을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서(如實知)’ 신-수-심-법 사념처를 닦아야 한다고 표현하였고, 유학(예류자~아라한도)의 경우에는 몸 등을 ‘완전하게 알기 위해서’ 사념처를 닦으며 머문다고 표현하였으며, 아라한(무학)의 경우에는 몸 등의 묶임에서 ‘벗어난 채로’ 사념처를 닦으며 머문다고 표현하고 있다.

신참 빅쿠에서 유학의 경지에 이른 성자들도 삼매를 닦은 평정한 마음으로 사념처 수행을 하고, 아라한들도 삼매를 닦은 평정한 마음으로 사념처 수행에 머물며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sālasuttaṃ (SN 47.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꼬살라에서 살라라는 바라문 마을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빅쿠들이여'라고 빅쿠들을 부르셨고, 빅쿠들은 '세존이시여'라고 받들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빅쿠들에게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빅쿠들이여,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빅쿠들이 있나니, 그 빅쿠들이 네가지 알아차림의 확립(四念處)을 수행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하고 안착하게 해 주어야 하고 확립하게 해 주어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그것은 ‘오시오, 벗들이여. 그대들은 몸을 있는 그대로 알기[여실지(如實知)] 위해서(kāyassa yathābhūtaṃ ñāṇāya),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서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으로부터,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무시오.

etha tumhe, āvuso, kāye kāyānupassino viharatha ātāpino sampajānā ekodibhūtā vippasannacittā samāhitā ekaggacittā[탈격], kāyassa[여격,속격] yathābhūtaṃ ñāṇāya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기[여실지(如實知)] 위해서(vedanānaṃ yathābhūtaṃ ñāṇāya),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서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으로부터, 느낌에서 느낌을 이어보면서 머무시오.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기[여실지(如實知)] 위해서(cittassa yathābhūtaṃ ñāṇāya),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서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으로부터, 마음에서 마음을 이어보면서 머무시오.

법을 있는 그대로 알기[여실지(如實知)] 위해서(dhammānaṃ yathābhūtaṃ ñāṇāya),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서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으로부터, 법에서 법을 이어보면서 머무시오.

빅쿠들이여, 유학(有學)들도 마음이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멍에를 여읜 안온(yogakkhemaṃ)을 바라며 머문다.

몸(身)에 대해 완전히 알기 위해(kāyassa pariññāya),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서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으로부터,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느낌에 대해 완전히 알기 위해(vedanānaṃ pariññāya),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서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으로부터, 느낌에서 느낌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마음에 대해 완전히 알기 위해(cittassa pariññāya),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서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으로부터, 마믐에서 마음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법에 대해 완전히 알기 위해(dhammānaṃ pariññāya),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서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으로부터, 법에서 법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6. “빅쿠들이여, 아라한들은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했고 짐을 내려놓았고 최고의 선(善)에 도달했고 존재의 족쇄를 부수고 바른 구경의 앎으로 해탈하였나니.

그들도, 몸(身)에 의한 묶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kāyena[도구격] visaṃyuttā),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으로부터, 몸(身)에서 몸(身)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그들도, 느낌에 의한 묶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vedanāhi[pl,도구격, 탈격] visaṃyuttā),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 집중된 깨끗한 마음에서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에서, 느낌에서 느낌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그들도, 마음에 의한 묶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cittena visaṃyuttā),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 집중된 깨끗한 마음에서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에서, 마음에서 마음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그들도, 법에 의한 묶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dhammehi visaṃyuttā), 열심히 올바른 앎을 가지고 집중된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삼매를 닦아 평정한 마음으로부터, 법에서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빅쿠들이여, 새로 출가했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이 있다.

빅쿠들이여, 그 빅쿠들이 네가지 알아차림의 확립(四念處)을 수행(修行)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하고 안착하게 해 주어야 하고 확립하게 해 주어야 한다.”

[출처] 부처님은 어떻게 머무셨는가? ㅡ 수행의 처음과 마지막(첫번째 이야기)|작성자 Kusa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