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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우면산으로 모십니다(詩山會 제432회 산행)

우면산으로 모십니다(詩山會 제432회 산행)

때: 2022. 4. 9(토) 10 : 30

곳: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 5번 출구

매니저: 정한

준비물: 마음 가는 대로

뒤풀이 식사: 장어구이

 

1.시로 여는 산행

 

월화수목금토일 / 정다연

 

 

잘 지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잘 지내 답하고 싶은 순간이 있습

니다

 

 오늘은 당신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려놓고 기름기 묻은 손을 세제

로 씻으며

 

 물기를 닦던 사소한 습관과 벨을 누르면 가장 먼저 반겨

주던 당신에 대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음성에 대해

 

                            ―

 

 잘 지내고 있어?

 

 벽장에 비치는 것이라곤 그림자 하나뿐인데

 

 문득 묻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비를 모으고 모으다 못 견디고 무너지는 댐처럼

 

 폭설에 쓰러지는 나무처럼

 

 어떻게 지내

 

 묻고 싶은 순간이

 

                               ―

 

 오늘은 당신에 대해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누었습니다 당신

이 좋아하지 않던 음식을 앞에 두고

 

 왜 싫어했을까? 이렇게 먹기 좋은 것을

 

 웃으면서

 

 월화수목금토일

 

 당신을 잊다가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창비, 2021.

 

 

-시간은 잘 흐르고 있는가? 인디안들은 이때가 오면, 각 부족마다 4-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블랙 푸트),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체로키), 잎사귀가 인사하는 달(오글라라 라코타)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7만 년 전에 베링해협으로 우리들이 넘어간 같은 아시안이라고 한다.

 

 

2.산행기

 

"시산회 431회 '북악산둘레길' 및 '인왕산숲길' 산행기"<2022.03.27(일)> / 홍황표

 

◈ 산행월일/집결 : 2022년 3월 27일(일) /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10:30)

 

◈ 산행코스 : 안국역-와룡공원-말바위안내소-숙정문-촛대바위-청운대쉼터-청운대안내소-1번출입문-창의문옆-윤동주문학관 위 '시인의 언덕'-인왕산숲길-청운공원-가온다리-해맞이동산-세종마을-뒤풀이장소-경북궁역

 

◈ 참석자 : 14명 (세환, 종화, 진오, 정우, 재홍, 윤환, 경식, 원무, 윤상, 재웅, 일정, 문형, 양기, 황표)

 

◈ 동반시 : "3월이어, 어서 오렴" /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김종화 산우 추천)

 

◈ 뒤풀이 : 돼지고기 구이에 소·맥주 및 막걸리 / '황금정' <경복궁역 2번출구 근처 (02) 720-6985>

 

전염력이 강하여 하루 30만 명이 확진되는 코로나 오미크론 상황 속에서도 산우들이 적지 않게 모였다. 역시 시산회원들은 누구보다 강하고 건강하다. 지각하는 산우들이 있어 1진 10여명은 걸어서 가고 나머지는 2번 마을버스로 이동하여 와룡정에 도착, 한차례 휴식을 가진 후 출발한다(약 11시).

 

오늘의 코스는 숭례문(남대문)-광희문-혜화문-숙정문-창의문(자하문)을 잇는 18.5km 성곽길의 일부와 인왕산 숲길로 역사적인 길이다. 게다가 와룡공원에서 숙정문까지는 고 박원순 시장이 죽음을 향해서 걸었던 발자국이 남은 길이기도 하다(나는 2003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시절, 풍문여고 옆 아름다운가게 오픈 때 환담한 적이 있었는데, 선하고 순수한 분이라는 인상이 남아 있다).

 

우리가 웃으면서 가볍게 걷고 있는 이 길(성곽밖길)을 고인은 어떤 고뇌 속에서 올라갔을까? 시신이 발견된 곳이 숙정문 돌담 밑이었다는데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누가 이곳으로 유인해서 살해했다는 설도 있고, 오로지 숙정문과 성곽만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

 

숙정문의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원래 북대문이기도 한 숙청문(肅淸門)은 태조 4년인 1395 년에 건립되었는데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키다’는 의미의 숙정문(肅靖門)으로 바뀌었는데, 숙정문을 개방하면 숙정문이 음의 기운이라 조선여성들이 바람이 나고 남녀 간 풍기가 문란해지니 문을 패쇄해야 한다는 풍수지리학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박원순 시장이 성문제 때문에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숙정문으로 올라가는 동안 오른쪽의 멋있는 VIEW와 함께 삼청각이 보인다. 부근에 있는 대원각과 함께 유명한 정치요정으로 박정희, 김종필, 정일권, 이후락 등이 이용했으며, 국회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오빠 손에 죽은 정인숙 사건이 발생했는데, '정인숙이 낳은 자식이 정일권 총리의 자식이냐'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삼청동 반대편 성북동에 있는 대원각 주인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대법사가 1997년에 길상사가 되었다. 여기서 김영한과 시인 백석의 러브스토리를 알아보자. 백석이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 교사로 재직하던 1936년 회식자리에서 김영한을 보고 첫눈에 반하여 사랑을 하게 되어 김영한에게 자야(子夜)로 지여주고 3년간 행복한 동거생활을 하게 되었다.

 

백석의 부모가 기생이라고 반대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켰지만, 백석은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만주로 도망가자고 제안하였지만, 자야는 백석의 장래에 부담이 될까 염려하여 거절을 한다. 백석은 언젠가 자기를 찾아 만주로 올 거라 확신하며 만주로 떠난다. 이때 홀로된 백석은 자야를 그리워하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짓는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을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가마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동안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되고야 만다. 해방이 되자 백석은 오지 않는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내려갔지만 자야는 서울에 있어야 했고 6.25가 터져 둘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

 

이후 백석은 1996년 사망하게 된다. 혼자 남겨진 김영한은 아픔을 잊기 위하여 악착같이 돈을 벌기 시작했고 3대 요정중 하나인 대원각을 세워 엄청난 재력가로 성장한다. 평생을 백석만 그리워했던 김영한은 늘 담배를 곁에 두고 살았다 결국 폐암으로 1999년 세상을 떠난다.

 

1천억의 재산을 기부했는데, “아깝지 않냐” 란 기자의 질문에 "1천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라고 했다. 김영한은 일 년에 하루(7. 1.)는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그날이 백석 생일이다. 유언으로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길상사에 눈 많이 내리는 날 뿌려 달라" 였는데, 위 시(詩)에서와 같이 눈 많이 내리는 어느 날 길상사 앞마당에 뿌려졌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서 '청운대-백악마루-북악산정상을 거쳐서 내려가자'고 하였으나 계단이 너무 많고 연로하셔서 못 가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우회길로 곡장 밑을 경유하여 내려오다 성벽 밖인 옛 군견훈련장에서 간식 자리를 폈다. 둘려보니 우리 노인네처럼 먹을 것을 놓고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는 무리는 없었다.

 

지나가는 관리소 직원들이 빨리 마셔 버리라고 한다. 우리는 성 밖에서는 괜찮은 줄 알았다. 청운대안내소에서 표찰을 반납하고 새로 개방되었다는 낮고 쉬운 길을 따라 내려오니, 아델라 베일리 식당 앞의 1번 출입문으로 나와 창의문 아래를 지나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도착, 시(詩) 한편을 읽어 본다.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시인이 28세에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1945. 2. 16). 어려운 시대에서도 굴하지 않고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시인,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 올 아침을 기다리던 청년, 죽어서 저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청년으로 남아서 언제나 빛나고 있습니다. 다 아는 시이지만, 다시 잃어보니 숙연해 집니다.

 

지금 부터는 '인왕산숲길'을 걷는다. 사전 답사를 왔을 때 길을 잘못 들어 청운문학도서관 옆으로 내려와 경기상고, 청운동을 지나 왔지만, 이번엔 실수 없이 채부동~옥인동~청운동~효자동을 왼쪽으로 내려다보며 아기자기한 '인왕산숲길'을 걸어왔다.

 

또 걷고 싶은 서촌 동네길 이었다. 유명한 세종마을은 조선시대는 왕족과 사대부, 중인들의 거주지로 유명했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문인과 예술인이 많이 자리 잡은 곳이다. 세종마을은 2011년 종로구청장이 직접 붙인 이름으로 세종대왕이 태어난 준수방(俊秀坊)이 세종마을에 포함되는 통인동 일대였기 때문이다.

 

이제 산책은 다 했으니 뒤풀이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의 '황금정' 식당에서 하기로 하였다. 산행 때 낭송하지 못한 동반시는 뒤풀이 때 음식을 먹기 전에 오늘의 매니저인 내가 낭송하였다.

 

"3월이여, 어서 오렴" /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3월이어 어서 오렴

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오기를 무척 기대했어

 

모자를 벗어 놓게

넌 걸어왔구나

얼머나 숨이 차니

3월이여, 어떻게 지냈니,

 

그리고 다른 이들은

자연은 잘 보살펴 두고 왔겠지

아, 3월이여, 나와 함께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자

말해 줄 게 너무 많아

 

난 네 편지를 받았어, r그리고 새들도 왔어

단풍나무들은 네가 오는 것을 결코 몰랐어

내가 말하건대 - 그들 얼굴이 얼마나 빨개졌는지

 

하나 3월이여, 날 용서해

네가 나보고 물들이라고 맡긴 저 모든 산들도

거기에 맞는 볼색을 찾지 못했어

네가 전부 다 가져가버렸기 때문에

누가 문을 두드리나? 4월이네

문을 잠가라

난 만나지 않을 거야

그는 일 년이나 날 찾지 않았잖아

 

내가 바쁠 때는

하나 하찮은 것들은 아주 작게 보이네

내가 오자마자

 

비난은 칭찬만큼 귀중하고

그리고 칭찬은 비난만큼 미미하네

 

'황금정'에서 배고픈 허기를 채우고, 경복궁역에서 집으로 향하였다. 오늘 하루도 즐거운 산책날이었다. 여기까지 부족한 산행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하면서...

 

2022년 4월 2일(토)  홍황표 씀.

 

3.오르는 산

4월은 잎새달. 물 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 돋는 달이다.

 

좋은 날 다가오고 좋은 날 가는데 나는 왜 이 자리에 그대로 있나. 가고 오는 것이 모두 좋기만 하던가. “오늘날은 신이 왜 필요한가? 철학과 종교는 왜 필요한가? 과학이 발전하여 모든 것을 밝히는데 창조자가 왜 필요한가?” 하며 낄낄거리면서 “빅뱅의 순간을 로마카톨릭이 인정한다지만 음모(?)가 있으며, 종교와 철학이 혼재하여 일어났던 먼 옛날, 그리스에서는 과학자가 철학자였다.”고 그의 책 ‘위대한 설계’에서 스티븐 호킹은 말한다. 그러면서 쐐기를 박는다. “빅뱅의 순간 모든 것은 하나였으니 신도 나도 하나였다. 만약 그가 빅뱅을 창조의 계기로 삼으려면 대폭발의 순간, 그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가 숨을 곳은 없었다.” 그러므로 창조는 허구다. 그것을 호도하려고 내놓은 ‘지적설계론’은 유치하다. 더 나아가 우주의 모든 것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갖는데 우리의 마음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그렇다면 신은? 니체는 죽었다고 했지. 죽은 것은 소멸하므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모든 과학자가 동시에 철학자이므로 철학도 죽었다. 우리의 의지는 자유의지인가? 과학은 아니라고 한다. 깨달음은 있는가? 없다고 한다. 양자역학을 배우면 바로 깨달음이 온다고 한다. 블랙홀 이론을 발전시킨 호킹은 우리 우주는 수많은 다중우주 속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한다. 내 자신이 하찮다고 실망하지 말고,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하므로 현재를 잘 살아가라고 한다.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나는 이러한 쓸데없는 것을 공부하며 허송한다. 이런 것을 공부하는 나는 좋은 봄날보다 비 오는 여름이 좋지만 공교롭게도 습한 공기는 신경을 에이며 나를 고통의 길로 데려간다. 이래저래 별 볼 일 없는 삶이다. 잘들 다녀오시라. 미필적 고의로 둘째를 임신한 작은딸이 할 말이 있다고 양재천으로 손녀와 함께 산책을 가잔다. 그미의 마음은 빤하지만 한편으로 궁금하다. 나를 닮아 엉뚱하니까. 서재 한 구석에서 골뱅이 통조림이 오래 전부터 나를 째려본다.

 

4.동반시

대학 입학할 때 교정에 꽃이 많아 그것들이 피고 지는 것으로, 또는 최류탄 가스 냄새로, 축제로 철이 지나가는 것을 뚜렷하게 구분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의 나쁜 기억은 지금은 사라진 역사의 한 인물을 떠올리며 쓸데없는 마음을 일으킨다. 지금은 묘한 이유로 계절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한 조각 변화다.

 

여유 있는 시간을 기다려 책을 읽고자 하면 해를 마칠 때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없다. 여유가 있을 때를 기다려 남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죽는 날까지 남을 구제할 시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여유가 없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옛 사람은 한가로울 때도 바쁜 한 순간이 있듯이, ‘바쁠 때도 한가로운 한 순간이 있다.(間時忙得一刻 忙時間得一刻)’고 하였다. 어찌 독서만이 그러랴? 무릇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말을 자신을 반성하는 도구로 삼아야 하리라. 이 이야기를 적어두어 옛일을 본받고자 한다.” -박규수

 

3월의 그대에게 / 박우복(박형채 추천)

 

어느 꽃이 먼저 필까

기다리지 말아라

꽃잎이 흔들릴 때마다

떨리는 몸과 마음

어찌 감당하려고

 

가슴을 적시는

봄비도 기다리지 말아라

외로움 안고 창가에 앉아

가슴에 번지는 그리움

어찌 감당하려고

 

3월이 되면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뛰는데

 

2022. 4. 9.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