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448회 산행)
때 : 2022. 11. 27.(일) 10시 30분
곳 : 사당역 4번 출구
길라잡이 : 정동준
뒤풀이 장소 : 속초어시장방배점 사당역 13번 출구
1.시로 시작하는 산행
슬픔을 보는 눈, 죽음을 만지는 손 / 기형도
아아, 그때의 빛이여. 빛 주위로 뭉치는 어둠이여. 서편 하늘 가득 실신한 청동의 구름떼여. 목책 안으로 툭툭 떨어져 내리던 무엄한 새들이여. 쓴 물 밖으로 소스라치며 튀어나오던 미친 꽃들이여.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여 너희들을 기다리라. 내 속의 모든 움직임이 그치고 탐욕을 향한 덩굴손에서 방황의 물기가 빠질 때까지.
밤은 그렇게 왔다. 포도 압착실 앞 커다란 등받이 의자에 붙어 한 잎 식물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둠은 화염처럼 고요해지고 언제나 내 눈물을 불러내는 저 깊은 空中들 기억하느냐, 그해 가을 그 낯선 저녁 옻나무 그림자 속을 홀연히 스쳐가던 천사의 검은 옷자락과 아아, 더욱 높이 흔들리던 그 머나먼 주인의 임종. 從者여, 네가 격정을 사로잡지 못하여 죽음을 환난과 비교한다면 침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네가 울리는 낮은 종소리는 어찌 저 놀라운 노을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 저 공중의 욕망은 어두움을 지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종교는 아직도 지상에서 헤맨다. 묻지 말라. 이곳에서 너희가 완전히 불행해질 수 없는 이유는 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밤은 그렇게 왔다. 비로소 너희가 전 생애의 쾌락을 슬픔에 걸 듯이 믿음은 不在 속에서 싹트고 다시 그 믿음은 부대의 석방 속으로 돌아가 영원히 숲 것이나, 곧 자기는 정적에 싸이고 우리가 그 전적을 사도하듯이 어찌 비밀을 숭배하는 두가 많지 않으며, 밤은 그렇게 노여움을 가장한 모습으로 찾아와 어두운 실내의 램프볼을 돋우고 우리의 후회들로 빚어진 주인의 말씀은 당신의 헛된 식용처럼 아름답다. 듣느냐, 이 세상 끝 간 곳엔 한 자락 바람도 일지 않았더라. 어떠한 슬픔도 그 끝에 이르면 짓궂은 변증의 쾌락으로 치우침을 내가 아느냐, 밤들어 새앙쥐를 물어뜯는 더러운 달빛 따라가며 휘파람 부는 작은 풀벌레들의 그 고요한 입술을 보았느냐. 햇빛은 또 다른 고통을 위하여 빛나는 나무의 알을 잉태하느니 從者여, 그 놀라운 보편을 진실로 네가 믿느냐.
(「포도밭 묘지 2」)
미학적 구조는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 아래서 발생한다고 한다. 작품의 미학적 양상은 작자와 독자의 심리 활동과 관련시켜 볼 때 ‘표현적’일 수도 있고 ‘감정적’일 수도 있다. 순수한 인간적 고뇌가 동기가 될 때는 표현적이지만 사회적 갈등의 동기인 경우는 대개 감정적 양상(비판적 감정)을 띠게 마련이다.
기형도 시의 슬픔의 동기는 순수한 인간적 고뇌가 동기가 된다. 그리고 미학적 양상은 표현적이다. 표현적이란 것은 무시간적 · 무장애적 자유감정을 임의롭게 하면서 어떠한 표현의 질량도 이미지나 관념의 용기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인간의 원형적 운명 조건을 벗어나지 못한다.
-유시욱 평
나는 이런 시를 버릴 수가 없다. 기형도 시인이 그 나이에 이런 시를 썼다는 것을 경이롭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시를 쉽게 쓰라고 하지만 내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이 시키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불교 심리학인 唯識論에서는 마음의 분포를 빙산에 비유한다. 보이는 약간의 부분은 표층의식, 잠겨있는 대부분은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으로 분류한다. 이런 이유로 마음속 커다란 잠재의식을 외면할 수 없다. 이해바란다.
-도봉별곡
2.산행기
제447회 비봉산 산행기 / 나양주
◈ 산행일/집결 : 2022년 11월 23일(수) / 1호선 안양역 2번 출구
◈ 참석 : 나양주, 김진오, 위윤환, 한양기, 염재홍, 이경식, 김정남(7인의 시산인)
◈ 산행코스 : 안양역-대림대-만장사-오솔길-팔각정
◈ 뒤풀이 : 은모래해물아구찜
안양역에서 만나 오르는데 그동안 소식이 뜸했던 나를 보더니 모두 반갑게 맞이한다. 나는 전립선암의 치료에 따라 얼굴이 아주 조금 부은 상태다. 동네 비뇨기과의 검사결과를 너무 믿어 병을 키웠다. 산우들도 나이가 들어가니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관심을 가짐으로써 나처럼 낭패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더구나 암 치료에서 항암제 투여나 방사선 치료는 무척 힘들다. 산행 내내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준 산우들에게 감사드린다.
비봉산은 안양시 대림대학교의 뒤에 있는 산(295m)으로서 산의 크기와 모양이 봉황이 날개를 펴고, 훨훨 나는 형상이라고 산의 명칭을 지었다.
비봉산은 관악산과 삼성산의 그늘에 가려 보통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는 산이다. 세심천을 건너 대림대 오른쪽 아파트 단지를 지나 올라가니 삼성사와 만장사가 있었다. 좌측으로 올라서니 끝물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단풍이 화사하게 피었다. 오솔길 양쪽으로 참나무가 무성하다.
도봉산국립공원에 근무하여 교육을 받아 나무에 관한 상식을 넘어선 정남 산우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1차 휴식장소인 팔각정에 도착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참나무는 소나무를 구축한다. 이 의미는 높이를 통해 참나무는 소나무를 정상으로 쫓아내며, 정상의 바위틈에 안착한 소나무를 참나무는 수분이 거의 없는 바위까지는 쫓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소나무는 씨에 날개가 있어 기슭으로 자손을 퍼뜨릴 수 있지만 참나무는 열매인 도토리로는 기슭까지는 쫓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순환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참나무는 6가지 종류가 있는데 짚신 안에 깔았다는 신갈나무,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상수리나무, 껍질의 골이 깊다는 굴참나무, 잎과 열매가 작아서 졸병 같다고 해서 졸참나무, 잎이 커서 떡을 쌌다는 떡갈나무, 가을 단풍이 가장 이쁘고, 늦게까지 잎을 달고 있어 가을이란 뜻의 갈을 붙여 갈참나무, 이렇게 각각 이름을 얻었습니다. 열매의 모양으로도 구별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마침 팔각정에 도착했다. 낮아서 더 올라가려 했는데 다수의 의견이 쉬자고 해서 올라갔는데 떡 본 김에 쉬어간다고 간식을 먹자고 한다.
간식이 나오고 막걸리를 한잔씩 마시고, 분위기가 분방하게 흐른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이야기 특히 뜬금없이 ‘문재인이 종북‘이라는 표현을 하니 분위기가 부산해진다. 어떤 산우가 문재인이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는 주사파나 민족민중주의 등의 좌파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자신을 위해서만 열심히 살았으므로 전혀 모르는 이야기다. 그러다 분위기 또한 갑자기 조용하게 잦아들었다. 우리들에게 자정능력이 있다는 증거다.
뒤풀이 장소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왔으며,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해물탕으로 결정했다. 내가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곳으로 이동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맛과 양으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조그마한 잔치 분위기다.
2022. 11. 23. 나양주 올림
3.오르는 산
관악산은 커서 사당역까지 흘러내려 온다. 마침 손녀를 봐주기 위해 봉천으로 와서 무척 가깝다. 아직 아파트 단지의 단풍은 지지 않고 빨갛게 핀 나무가 많다. 올 11월은 가을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으니 오랜만에 가을은 길다. 외국인이 나오는 유튜브를 보면 한국의 가을은 유난히 아름답다는 외국인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한국의 밤거리문화와 안전. 사계, 음식, 음악, 반도체, 방산, 조선, 드라마, 등 모두를 동경하며 가고 싶어나는 나라 중 상위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가 선진국이며, 잘 산다는 것을 우리만 모른다고 한다. 누군가 ‘아름답지 않으면 가을산이 아니다’고 했다. 모두 산에 올라 일요일 하루를 즐기자. 다만 근래 과도한 음주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비봉산 뒤풀이를 보면 각 1병의 음주가 적당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지 않은 산우들의 회비를 너무 과용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뒤풀이 비용도 수익자부담의 원칙을 세우면 좋겠다.
4.동반시
결국 거의 모든 시간과 거의 모든 에너지를 나 이외 것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신이 선사한 소중한 시간을 우리는 나 이외의 것을 위해 몽땅 바치면서 인생을 허비한다.
-김종건 『나는 자유롭고 싶다』
가을, 늦가을이 되면 이런 류의 글이 자주 눈에 띈다. 올 가을은 길게 이어지고 있어 덜 스산하다. 예년에는 이미 내렸을 첫눈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기만 하다. 나이 들어 70이 넘어가니 마음이 들뜨지 않아도 마냥 좋다. 최소 한국의 가을은 거의 만끽한 나이가 되어서 좋다. 오래 육아를 맡아줘서 고맙다며, 이렇게 좋은 가을에 여행을 떠나라는 작은딸의 권유도 나쁘지 않다. 얼마 전 세종시에 사는 큰딸의 집들이에 갔다 왔다. 그러나 여행 내내 불편했던지 고생한 기억에 당분간은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동반시는 이런 나의 기분과 비슷해서 선택했다. 형채는 이런 나의 기분을 기막히게 맞춰서 공급했다. 감사드린다.
깊은 가을 / 나해철(박형채 공급)
가을은 내 가슴의 추수를 끝내버렸네
빈 기슭이 되었네
달던 과실도
알곡식도 푸르른 나뭇잎도 떠나버렸네
무엇으로 채울까
못 견디게 서늘한 바람만 부는데
목메이게 불러볼
그리운 이도 없는데
불타듯
부르짖어 기다리는 고운 세상도
멀기만 한데
꽃도 져버렸네 새도 가버렸네
가을은 내 가여운 넋마저
데리고 깊어져버렸네
2022. 11. 26.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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