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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이중성이 시사하는 기이한 현상/명상록과 경합
우주의 거시이론인 상대성이론과 미시이론인 양자역학을 공부해보면 모든 물질은 입자이면서 파장이라는 이중성을 띄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것도 관측을 할 때는 입자로 보이며 그 전에는 파장의 상태다. 이 관측도 상대성이론을 관련하여 보면 불확정성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더불어 아직도 우주의 기원을 모르므로 생명이 오고 감을 당연히 모른다. 나라고 하는 것도 뇌가 생각하는 것인데 뉴런이라는 1000억 개의 뇌세포와 신경접합부라 불리는 기억의 작용을 하는 200조 개의 시냅스, 그 사이를 오고가는 신경전달물질들이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흔히 '나' 또는 有我論者들이 사용하는 '참나'라는 것의 영속성/순간성×을 두고 '참나'와 '본성'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여래장사상에 다름 아니었다. 후에 여래장 사상의에 대한 입장을 바꿔 나는 연기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것은 연속적 찰나성 때문에 실체가 없다는 무아론자이므로 그들은 나를 원시불교의 원리주의자라고 할지 모르지만 붓다가 처음부터 주창한 무상∙고∙무아의 무아론에 충실하고자 하며, 그들 유아론자들은 과연 무아론에 충실하게 정확한 논리를 가지고 대적하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우선 개념의 오류를 원인으로 하는 것이 아닌지 안타까운 일임을 밝힌다. 물론 인간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여래장사상에 대해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님을 아시라. 간절히 강조한다. 붓다는 분명 연기의 적용을 받는 모든 것은 自性이 없다고 했으므로 自性을 空寂靈知라 생각하는 ‘참나’라는 개념이 힌두의 ‘아트만’과 같지는 않는지 열린 마음으로 살펴보시라. 自性과 佛性이 같음은 여래장사상 또한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을 상기하시라. 아직까지 계속하는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날이 오기나 하려는지 걱정스럽다. 다시 분명하게 밝힌다. 연기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것은 자성이 없으므로, ‘참나’는 연기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논리인지 명확하게 밝히기 바란다. 여래는 7번의 윤회를 거듭하면서 붓다, 즉 ‘스스로 깨어난 자, 항상 깨어있는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깨달음 한 번으로 붓다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돈오돈수는 참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화엄경 52위 중 처음 단계인 10信을 지나 겨우 一住에 해당되는 것을 가지고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등각(等覺) 묘각임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며 봐줄 수 없는 오류임을 밝힌다. 一住에서 10住까지 올라갔더라도 끊임없이 실천해야 하는 십바라밀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데 감히 妙覺을 이루었으니 다시 닦을 일이 없다는 돈오돈수는 어디서 배워먹은 짓거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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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고통이 뒤에서 오면
서면 땅이지만 걸으면 길이다
걸어야 도봉이고 돌부리에 채이며
이겨내라는 호된 운명이다
멀리 보면 길이지만
가까이 보니 너덜겅길이더라
사교입선 이심전심 불립문자 교외별전 견성성불 직지인심
선문답은 문자가 아니더냐
이게 비틀기의 정수이다
그러므로
선사들 말 그대로 듣지 말라
그들이야말로 언어의 연금술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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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름대로 공짜를 좋아해 머리가 대머리인 독수리는
몸집은 커도 죽어서 썩은 고기를 먹고
까치에게도 쫓겨다닌다
흰꼬리수리는 몸집은 작아도 직접 잡아먹지
썩은 고기는 먹지 않는다
그 새가 먹이를 잡는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하다
신설동 풍물시장 음수대 근처에 사는
비둘기는
떨어져 고인 물은 먹고
참새는 나무에서 살지만 음수대 꼭지에서 떨어지는 새 물을 좋아한다
비둘기는 평생 목욕을 하지 않는다네
덩치 값을 못하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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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세상 1 / 시와 수상록 중 선택
인간은 필요에 따라 신을 만들었고
신성불가침의 시대가 열렸다
칸트에 이르러 감성과 이성 오성의 구별이 가능해졌고
현대는 신성과 과학 철학의 분리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신성이 과학의 발달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는가?
흥미로운 시대가 열렸다.
나는 바보다 한 번 말하면 끝을 맺는다
왕도 그랬다는 전설과 사실 사이에서
너 그대는 한 번도 바보였던 적은 없었는가
가장 바보스런 일상은 가을꽃 피고 바람 불며
비 오는 날 아침에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일이다
천축사 불상 앞에서 소원을 비는 것은
나무덩어리에다 하는 짓이니 차라리 내 집 앞 채송화에게 빌어라
바보는 시로 말을 해야지
호구/거짓말로 꾸민 소설을 쓰지 말아야 한다
옛날에 일어난 기적 지금 일어날 수 없다면
그냥 신화거나 설화다
신화는 본래 엉성해서 바보와 동격을 이루고 동거하기/살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는 것은 마음이 불편해서 하는 짓거리다
닳아터진 주역/환유/을 놓고 점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바보가 된 것 같거나 바보로 살고 싶다면
히말라야 설산에 오르거나 사막 한가운로 가 볼 일이다
소낙비 내리는 날 메밀꽃 피는 봉평 장터에 가면 살고 싶어지는,
그런 곳은 갈 일이 아니다
더구나 왼손잡이 장돌뱅이와 실랑이를 벌이지 마라
바보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보가 되고 싶다면 혼자서 불상 없는
정암사에 가서 삼천 배쯤 올리다 죽을 일이다
죽어서 왜 그랬냐거든 바보여서 그랬다고 답할 일이다
묻는 사람이 웃거든 그때나 화 낼 일이다
행여 일출을 보러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삼대의 공덕을 쌓지 못해 혁명의 불길을 지피우지 못했다고
할 일은 절대로 아니다
혁명은 공덕과는 관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악산 대청봉 구름바다에 빠져 죽고 싶어도 바보로 죽을 일은 아니다
바보는 결코 죽어서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라 동해의 해는 바보 같은 사람이 보러가는 곳이며
누구든 바보가 되고 싶거든 조용히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상비판과 판단력비판을 읽을 일이다
도올 김용옥도 이해하기 힘든 책을 읽으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다
오늘날 박물관의 박제가 되어버린 그 책들에 눈을 돌리면
‘존재와 무’처럼 사팔뜨기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같이 어리석은 책과 가까이 하면 바보가 된다
제발 전쟁터에 나가 죽는 바보ᆢ는 되지 마라
명색이 인간인데 조그만 총알이나 포탄의 폭풍에 죽어서야 되겠는가
혹은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설움 ㅡ서러움을 안고 울어보아라
혼자만의 사랑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듯
바보 또한 눈물도 서러움도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될 때야
비로소 내가 바보가 이님을 알게 되리라
슬플 때는 바보같이 요절한 모짜르트의 바보행진곡을 들어라
사랑의 배신에 우는 바보들이여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닌 배신이듯
증오가 두렵거나 무서우면 사랑하지 않을 짓이다
죽지도 않고 산에 오르지 않고 책을 보지도 않고
바다에 빠지지도 않고 바보가 되고 싶다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고 숨을 쉬지 않는다면 바보가 될 것이다
먼 훗날 죽어서 염라대왕이 왜 그랬냐고 묻거든
웃으면서 얼굴을 들이밀면 다시 세상에 보내줄 것이다
그래서 바보들의 세상에 다시 돌아와 다시 바보로 살아가면 된다
세상은 바보처럼 돌고 돌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더 이상 묻지 마라 밥통바보들아
내가 실없는 얘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 이유는
나보다 훨씬 똑똑한 바보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똑똑한 줄 아는
그리하여
바보들의 세상이 올 때 혼자만의 바보가 부끄럽지 않으리
때로는 북한강 어디쯤에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앞을 지날 때쯤 하얗게 불을 지피며
세상을 까맣게 덮는 눈 같은 바보들아
이렇게 노래하는 시인도 한때 세상을 미워하다 사랑하는 바보였느니
단비 내릴 때 그릇을 거꾸로 들고 서있는 바보들
히말라야에 오르면 바람에게 묻고
사막에서라면 못별에게나 물을 짓이다 바보가 되는 길을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면서
심판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 ㅡ 불교 연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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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닮기
내 몸은 전쟁터
나는 내 몸과 정확히는 신경통증과 전투 중이다
내 몸은 전장터
적은 보이지 않고
의무병은 이미 포기했고
구원을 청하러 간 병사는 도망갔는지 죽었는지 소식이 없다
목의 뼈는 반이 내 것이 아니다
어제는 작은 뼈 둘이 떨어져나갔다
그러나
나는 혼자일 때
살아서 돌아가야 할 자신이 생기는
특이/이상체질이며 이상적인 성격이다
집에 있을 때는 온갖 자연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볼 수 없는 적이 된다
가을이 되면
명상센터에 들어가는 이유다
난공불락의 진지가 된다
걱정마라
꼭 살아서 돌아간다
하늘을 닮고 싶었는데
흐린 날, 기다리던 비님 오시는 날, 함박눈 내리는 날, 추운 날, 바람 부는 날은
적의 구원병들
내편이 아니다
그럴수록 힘이 난다
혼자이므로
태초에 꽃이 피었으니
뿌리는 듀카요
줄기는 무아였으니
꽃은 인연생기, 곧 연기법이었더라
뿌리에 삼독 말라식 아만의 62견 6견
줄기에 작은 줄기 불성이니 자성이니 공이니 유식이니 여래장이 붙었고
열매는 보살심의 완성
아직 길을 멀고 갈 길은 바쁘다
풍찬노숙 두렵지 않으니 어서 가자
무두 차안을 건너 피안으로 건너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날까지
너와 내가
전생 전체를 보지 못하는 까닭은
수상행식이 흩어졌다가
좋은 업과 나쁜 업은 끼리끼리 만나는 것
외로우면 배를 타라
산으로 가지 말고
배는 엎을 수도 태울 수도 있지만
천천히 간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물을 닮은 中道
화엄을 닮은 원융무애 圓融不二? 원융회통
우쭐한 마음에
붓다는 무기라 못을 박았을 것이다
무아도 유아도 자성도
듀카엔 무아가
눈 뜰 때는 자성을 보는 것이 약
이제는
제7말나식을 버릴 때
번뇌즉보리
번뇌와 보리는 동전의 양면
하나만으로 완성은 없다
번뇌가 있으므로 깨어남이 있나니
번뇌를 넘어서야 깨어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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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종의 기원-신은 주사위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양자역학에 대한 반론
완벽한 물체를 멸망시킨다는 것은 환경의 변화에 따른 다윈의 적자생존설이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신학적 판단과 과학성에 기반을 둔 이성적∙합리적 판단에 따르면 신의 지적 설계론은 터무니없이 저열한 논리이며 신의 무능력을 판단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갈릴레오와 당시 교회의 판단을 보면 그들의 무지와 무지에 따른 행위-교황의 무오류-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혐오, 그 자체이다.
분노와 증오는 내 양식
나는 희망이라는 언어가 귀찮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좋아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하늘의 사람이 좋아
하늘은 물이라 했다
물을 바람이라 했다
‘바위는 바위다’라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
찾는 법을 아는 것은 죽었다 두 번 깨어나도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쉬운 것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갈 것이다
50
승려와 철학자 2
지금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애 닮은 어른이
물으며 칭얼거릴 때가 아니고
지금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향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행동해야 할 때다
아무리 축축한 땅에서 질퍽거리더라도
쓰레기들의 말을 개처럼 듣는 사람이 아닌
네가 너의 마음의 주인이 되어
진실의 땅 위에 굳건하게 서야 할 때다
적합한 때는 시골의 오일장처럼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한다
51
논쟁의 농담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월인석보ㅡ붓다의 화신이 세상에 두루 넘친다
나는 누구며,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너무 흔한 소재의 농담
젊을 적 불과 칼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부끄러웠다
아직도 칼을 꺾지 못하고 불은 잠잠하지 않다
무슨 까닭일까
證悟를 이루었다는 것은 오직 스승의 인가를 통한다 ㅡ증오는 스승의 인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객관적 인가는 아니다 후일 시자가 모시고 종정으로 추대 받더라도 많은 총림은 돌아먹기식 종정을 하지 말고 나아가 붓다의 말을 따라 앵무새처럼 지껄이거나 사판들의 간청에 못 이기는 척 권위를 앞세우지 말고 붓다의 행동을 따라 길에서 죽을지언정 끝없는 포교를 하여야 한다 너희가 진정 붓다가 되는 길은 대중에게 먼저 다가가 수많은 간청을 물리치지 말고 언제든지 근기에 따라 쉽게 또는 친절하게 알아들을 때까지 설법해야 하여 극기설이니 00설이니 함부로 설정하지 마라 누구에게도 그런 권한은 없나니 심지어 논쟁도 원한 없이 치러야 한다 내가 신을 물리쳤다는 것은 한낱 여래 입멸 후 후세 기록자들이 은유법이나 상징법 등의 수사를 총동원하여 나를 높인 것이다 차마 여래 위에 놓을 수 없어서 육도윤회의 객체로 설정했을 뿐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수사법이 있느냐 그 업을 어찌 감당하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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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하늘에 대고 울며불며 떼 쓴 흔적이 남아
때꼽 낀 얼굴로 바람은 무섭고
남의 눈에 무딘 무관심을 반성하러
도봉의 우이암에 오시라
누구의 눈에는 성모로 보이고
내 눈에는 손가락으로 보이고
내 님의 눈에는 반달로 보이리라
내친 김에 불암산을 넘어 오는 달을 맞고는
부질없는 반성은 필요 없다 내려가자
검은 달은 서슬 퍼런 지팡이가 되어 아픈 손 더 아프게 한다
갈 데 없는 그리움을 길라잡이 삼아
중랑천 따라 난 길을 잡아 집에 도달할 때는
서슬에 멍들고 자진해서 풀이 죽어있었다
그리움에 풀 죽고
보고픔에 목숨 걸지 말아야 함은
그것들은 하찮은 갈등의 극복을 위한 탄생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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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하늘은 나더러 그만 훈풍이 되라 한다
억울한 마음을 누를 길 없다
아무리 바람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진정 바람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공사장에서 혀끝을 댄 철근의 맛을 좋았지만
내 취향과 맞았을 뿐
부드럽지 못한 유전자를 타고 태어나고 호된 훈련까지 받았으니
영혼의 내밀한 움직임 따위는 관심 없는 나에게
나더러 강성이라 한다, 억울하다, 뜬금없기도 하고 흉터로 남기도 하고
뭐가 아쉬운 게 없어도 오만으로 변질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수 없는 교훈은 얻은 셈이니 손해날 것 없다
맹자의 시정잡배들 공동체는 마음에 두지 않았으나
그의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은 내 스승이기도 했으니
내가 언제 한 번이라도 무의도식 한 적 있던가 흔들린 적이 있던가
자신의 틀 속에서 마음대로 해석한 것은 나더러 돌이 되라는 거다
불편한 마음이 들면 안 보면 그만인 것이라고
말해준 것은 영혼이 아닌 바람이었다는 것을
말해준 것은 아쉬움이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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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이름으로 / 시와 수상록 중 선택
목을 심하게 다쳐 신경이 망가졌으므로 회복기에는 알코올과는 상극이라 좋아하는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었고 산에 오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어두운 밤에 돌아다니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목에 충격을 주게 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는 의사 선생의 따뜻한 협박도 있었으므로 집에 있어야 가장 안전한 것임이 틀림없으나 죽음과 바꿔서라도 그 짓만은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붙여 우둔하게도 쉽게 바뀌지 않는 내 성정에 맞지도 않고 마나님에게 세끼 밥을 꼬박꼬박 얻어먹어야 한다는 끔찍함은 내 자존을 몹시 건드리는 것이다. 지금은 생활비를 벌어야 할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 내게 즐거움을 주는 일은 쓰다만 책들을 완성하기 위하여 관련된 책을 읽고 메모하는 일이다. 시를 짓고 제법 두꺼운 책을 만들 긴 글을 쓰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다친 것이 하필 목 부분의 신경이어서 신경의 손상은 처음에는 컴퓨터를 움직이지 못하게 힘을 빼앗아서 조금 회복이 되고는 있지만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유난히 많게 손가락 끝에 집중된 신경을 몹시 자극하여 고통을 수반한다. 그나마 시를 짓는 일은 ㄲ·ㄸ·ㅃ·ㅆ·ㅉ 등의 된소리는 새끼손가락으로 오른쪽 쉬프트 키를 동시에 눌러야 하므로 오타가 많이 나와도 두드려야 할 자판의 양이 많지 않아 참고 쓸 만하나 원고의 수량이 많은 종교 철학 책을 쓰는 일은 현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으니 작가 한강의 경우 손가락이 아파 자판을 두드리지 못해 손으로 쓰다 보니 문체의 밀도가 높다거나 손목이 아파 볼펜을 거꾸로 쥐고 자판을 하나씩 두드려가며 맨부커상 수상작 소설 ‘채식주의자’를 완성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 그의 열정에 한참 못 미치는 나는 아직 글을 쓸 능력과 실력이 부족하므로 소위 내공을 더 길러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하늘의 계시로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집에 있는 책은 모두 읽었으므로 책을 빌리려고 시립 동대문도서관에 들렀다. 집 근처의 구립 도서관과 작은 도서관은 역시 장서의 수와 한꺼번에 빌릴 수 있는 책의 수량에서 비교가 되지 않으므로 굳이 멀어도 현재의 몸 상태로는 걷는 것보다는 차편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 편하므로 전철을 타고 시립도서관으로 가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 입구에 커다랗게 걸려 있어 쉽게 눈에 띠는 안내문에 ‘한자 지도사 양성’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책을 빌리는 내내 신경이 쓰였으나 공인 자격증을 취득해야 애들을 지도할 수 있는 제도에 묶여 있으므로 여명을 자유롭게 살자는 내가 간섭이 필수가 되어버린 제도권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기존의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문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시 짓기 강의 설명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여기에 자세하게 설명하기 곤란한 이유로 문단이라는 제도권에 들어가기를 포기한 적이 있고 시 문학지에 관한 경험도 밝히고 싶지 않은 기억이므로 공모전과 문학지의 추천을 통하여 제도권에 들어갈 이유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착한 남편으로 살아가는 일이 매우 쉽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생의 끄트머리에서 알았지만. 정답에 가까운 해답은 술을 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취해 있는 시간에 할 수 없는 건전한 일을 하는 것이다. 금전을 아껴 마나님 좋아하는 것을 사 오는 것은 덤으로 한다. 안주거리로 쓰는 시보다 덜 비틀거리는 것 같고.
직유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속내를 많이 들어 내보이는 것이고 환유는 적당히 빼거나 생략하고 은유는 온전히 감추므로 경외감과 신비감을 줄 수 있고, 상징/비사치기/은 상당히 어렵다. 개인적으로 일부러 환유법을 선호한다. 은유와 직유의 중간 지대여서 적당하게 타협하는 회색인 같은 입장이라서 내키지 않지만 본래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인 것은 주변의 모든 지인이 아는 바인데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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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이유
불교와 모든 종교를 버릴 때가 되었다. 동시에 수많은 의심 의문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신을 믿는 사람과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만나면 무엇이 될까
먼 나라의 이웃이 될 것이다
먼 나라의 이웃을 만나러 가는 물결을 닮아
천천히, 천천히 가자
가다가 무인의 섬이 나타나면 쉬어도 가고
수많은 성자가 다녀갔어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 만큼
모른 척 가자
그림자 없는 바람처럼 흔적 없이 조용히 가자
언어의 수평선을 넘으면 뭐가 남을까
언어의 지평에 오르면 무엇이 될까
먼 나라의 이웃이 되고
남는 건 우울이다
수평선은 끝이 없어야 하고 지평선의 끝에는
사건의 블랙홀이 기다리고 있다
밖에서는 블랙홀을 모든 것의 생성의 끝이 있을 뿐이라지만
들어갔다 나온 존재가 없는 바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는지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
생성의 기다림이 있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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